한 남자가 자신은 절대 영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은 언제일까? - 26쪽
어머니가 오랜 시간 가만히 내 옆에 누워 계시길래 잠드셨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진중하면서도 애정 어린 말을 내뱉기 시작하셨어. 아들아, 절대 네 아버지 같은 남자는 되지 마라. 박력 있고, 강하고, 제구실하는 남자가 돼라. 여자들을 휘어잡고, 여자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꿈꾸도록 만들어야 한다. 설령 네가 지킬 수 없는 약속이라도 해. 세상 모든 여자들은 현실이 아니라 희망을 바라보며 사니까. 현실만 바라보고 사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야. 저녁 7시 30분에 저녁상을 차리고, 쓰레기를 비우고, 굿나이트 키스를 하고, 주일엔 몽투아 카페에서 4프랑 50상팀짜리 타르틀레트를 사 먹는 동안, 한 여자의 인생은 너무 허무하게 무너져버리고 말지. 너무 허무하게. - 28, 29쪽
사람들은 무언가를 할 때, 그건 다 자신이 남에게 잊히지 않기 위해 하는 거라고 하지? 그렇지만 난 진실은 그게 아니라고 생각해. 사람은 누구나 늘 혼자인 거지, 그게 날 슬프게 해. - 65, 66쪽
인생이 우리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왔어. - 66쪽
유년기는 너무도 짧았어. 우리가 양팔을 벌려 안으려는 순간, 저절로 품 안으로 되돌아올 것이라 오산한 바로 그 순간에 눈앞에서 지나가 버리고 말았지. 유년기의 일부를 간직하는 게 그나마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끈이었거늘. - 81쪽
그날 우리는 저녁 식사 후에 키스를 나누지 않았어. 상대방의 집에 함께 올라가지도 않았어. 그녀가 누군가를 마음속에서 떠나보내고 있던 중이었거든. 어떤 남자를. 그녀는 혼란스럽고 지저분한 상태에서 우리 사이가 시작되길 원치 않았어. 제로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 했지. 백지상태를 원했던 거야. 세상 모든 사람은 백지상태를 꿈꾸지만, 불행히도 결국엔 하얀 종이 위에 뭐라고 써 있는 글자를 발견하고 말지. - 88쪽
아들아, 사람은 멈출 줄 알아야 한단다. 그게 우리한테 주어진 선물인 셈이지. 끝이 언제인지를 아는 것. 자신을 아끼고 당당히 손가락으로 욕을 날려. 더는 상처받지 않을 거라며 그들한테 외치라고. - 139쪽
우리는 마치 이 세상의 끝에 와 있는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이 멈춘 곳. 지구가 둥글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곳. 그곳으로부터 몇 킬로미터만 더 가면, 대양이 절벽처럼 뚝 떨어져 바닷물이 우주로 모조리 빨려 들어가고, 물방울 하나하나가 아주 작은 별이 된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곳. 우리는 미물이며 이미 끝난 존재인 것을. - 164, 165쪽
자네의 은신처는 침묵이더군. 하지만 있잖아. 침묵은 권총의 총알과도 같은 걸세. 결코 잠자코 있지 않아. 언젠가는 파멸을 부르지. - 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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