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작가이길 원하거든 민중보다 반발만 앞서 가라. 한발은 민중 속에 딛고. 톨스토이의 말이다. 진실과 정의 그리고 아름다움을 지키는 것이 문학의 길이다. 타골이 말했다. 작가는 모든 비인간적인 것에 저항해야 한다. 빅토르 위고의 말이고, 노신은 이렇게 말했다. 불의를 비판하지 않으면 지식인일 수 없고, 불의에 저항하지 않으면 작가일 수 없다. 나랏일을 걱정하지 않으면 글(시)이 아니요, 어지러운 시국을 가슴 아파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요, 옳은 것을 찬양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다. 다산 정약용의 말이다. - 7쪽
특히 우리나라처럼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역사를 처절하게 살아온 민족일수록 그 지식인들은 가해자들을 향해 식을 줄 모르는 분노와 증오를 품어야 한다. 그 시간과 세월을 초월하는 분노와 증오는 이성적 판단과 논리적 분석이 없이는 생성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분노와 증오는 일시적 감정이나 비이성적인 것이 아니고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인 것이다. 지식인으로서 현실의 부당함과 역사의 처절함에 대해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를 가슴에 품고 있지 않다면 그건 지식인일 수 없다. 더구나 작가로서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가 가슴에 담겨 있지 않다면 그건 작가일 수 없다. - 235쪽
처자식 있는 몸!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말보다 훨씬 더 호소력이 강한 자기변명의 수단이고 무기였다. 그리고 비겁자, 보신주의자들이 가장 안전하게 몸을 숨길 수 있는 은신처였다. 처자식이 있는 몸이라…… 그 한마디는 그 어떤 난처한 입장, 그 어떤 궁지에서도 단숨에 탈출할 수 있는 만사형통의 묘수요, 만병통치 특효약이었다. 그 말의 밑뿌리는 우리의 골수에 박혀 있는 인정주의였다. - 248, 249쪽
누구든 자기의 인생은 자기가 질 수밖에 없다. 그 무게를 결정짓는 것도 오로지 자기 자신이다. 요령껏 가볍게 질 수도 있고, 우직하게 무겁게 질 수도 있다. 그 선택 또한 오로지 자기 자신이 하는 것이다. 아무리 무거운 인생의 무게도 묫 견딜 무게는 없다. 그것이 스스로 선택해서 오는 무게라면 더욱 그렇다. 다만 그 무게에 익숙해지고, 이겨 내는 과정에서 닥치는 고통과 괴로움이 외로울 뿐이다. 그 외로움은 혼자 견디어 내는 수밖에 없다. 그 쓰라린 인내는 육체와 영혼을 동시에 키우는 자양분이 된다. - 365, 366쪽
선거는 지배 계급에게 주기적으로 지배와 억압에 대한 정당성을 선사해 주는 제도일 뿐이다. 프루동의 말이다. 그러니까 지배 계급일 수 없는 일반 국민들은 단지 투표장에서만 나라의 주인일 뿐이다. 그들은 투표장을 나서는 순간 지배 계급에게 업신여김 당하고 짓밟히는 노예로 전락한다. 왜 그럴까? 이 말을 들어보라. 정치란 비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무도덕적인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말이다. 그런 존재들에게 국민의 생존권과 재산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국가 권력을 송두리째 넘겨주고 말았으니 그 결과야 뻔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들이 돈과 결탁하는 ‘정경유착’이 벌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들의 배신과 불의를 막기 위해서는 국민들은 또 다른 감시와 감독 조직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바로 시민단체다. - 373쪽
"충고란 그동안 있어 왔던 우정에 대한 배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배신을 무릅쓰고 한마디 하겠습니다." - 3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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