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정신병동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어요. 미쳐서 갇힌 자와 갇혀서 미쳐가는 자." - 213쪽

"… 아마 2만 피트 상공에서 잠깐 의식을 잃었을 거야. 눈을 떠보니까 이상한 곳에 흘러와 있었어. 잿빛 구름이 파도처럼 일렁이고, 구름 밑바닥에서 번개가 맥없이 깜박거리고, 머리 위엔 밤하늘이 있었어. 그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그토록 많은 별을 본 건 처음이었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바다로 흘러 들어온 기분이었어. 비가 내리듯 별똥별이 떨어지고 갖가지 색의 별들이 궁륭(穹窿)을 이루는 바다. 별들의 바다. 아름다웠어. 숨이 막힐 만큼, 그대로 죽고 싶을 만큼. 신기하게도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심장이 정지한 것처럼 고요해지더라. 뻑뻑하던 숨결은 편안해지고 눈이 스르르 감겼어."- 238쪽

"넌 누구나?"
당황스러웠다. 갑작스럽고 뜬금없는 물음이었다.
"가끔 궁금했어. 진짜 네가 누군지. 숨는 놈 말고, 견디는 놈 말고, 네 인생을 상대하는 놈. 있기는 하냐?"
얼굴이 확 달아 올랐다. 화가 났다. 잘 놀고 있다가 별안간 따귀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돌아서서 문짝에 등을 기댔다. 내가 제대로 들었다면, ‘존재의 징표’에 대해 물은 거라면, 내놓을 것이 없었다. 내 인생에서 나는 유령이었다. - 239, 240쪽

"난 순간과 인생을 맞바꾸려는 게 아냐. 내 시간 속에 나로 존재하는 것, 그게 나한테는 삶이야. 나는 살고 싶어. 살고 싶어서, 죽는 게 무서워서, 살려고 애쓰고 있어. 그뿐이야." - 286쪽

나무는 숲에, 돌은 채석장에 숨겨라. 어느 나라 격언인지는 몰라도 존중할 가치가 있었다. - 3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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