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 지승호가 묻고 강신주가 답하다
강신주.지승호 지음 / 시대의창 / 2013년 5월
품절


언어의 고통 이전의 삶의 고통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삶의 고통은 자유로운 사람만 느껴요. 굴종하고 복종하는 사람은 못 느낀단 말이에요. 그 부분이 중요하죠. 언어 이전의 고통이 부족하다는 얘기는 너희한테 자유가 부족하다, 당당함이 부족하다는 거에요.-174쪽

위대한 문학가의 깊이는 곧 불행의 깊이에요. 모든 사람이 겪을 수 있는 불행을 성찰하고 그 불행을 우회하지 않는 것, 그것이 문학의 가치에요.-194쪽

감정이 중요한 게, '자기답다'라는 것은 곧 감정의 고유성을 말하는 것이거든요. 중요한 건 사람마다 감정이 다르다는 거에요. 느끼는 게 달라요. -207쪽

명심해야 할 것이 인문학에서 진보는 없어요. 공감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만 있어요. 디테일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사회과학자나 역사학자는 될 수 있어도 인문학적 사람은 될 수 없어요. -213쪽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와 시선이죠. 이렇게만 볼 게 아니라 다른 쪽으로도 볼 수 있다는 거에요. 그 시선으로 본 것을 얼마만큼 디테일하게 묘사하느냐 하는 것은 그다음 문제에요. 진짜 인문학적으로 중요한 것은 시선이에요. 시선을 틀어서 보기 시작하면서 고유성이 생기는 거죠. 인문학자의 가치는 시선의 고유성이거든요. 이미 누군가가 그 시선으로 다 봤는데 더 디테일하게 묘사해봤자 큰 값어치가 없어요.-248쪽

<<한비자>>에 <오두>편이라고 있어요. 다섯 좀벌레. 그 좀벌레 중 대표적인 게 지식인이에요. 지식인은 복잡한 담론을 만들어서 자기 기득권을 보호하고 사람들을 혼돈에 빠뜨리는, 사람들을 사상 갈등에 빠뜨려 죽게 만드는 좀벌레라는 거죠. 지식인은 사람들을 책임지지도 않으면서 자기 담론이 옳다고 하거든요. 그래서 비겁하다고 지식인을 비판해요. -252쪽

철학자든 시인이든 그 사람이 지금 살아 있다면 이 문제에 이렇게 대응했을 것이다 하는 것까지 알아야 정말로 그 사람을 아는 거에요. 그래서 시선을 배워야 하는 거죠. 인문학적 독해는 그렇게 해야 돼요. -253쪽

우리가 시작했다가 멈출 수 있는 경쟁은 예뻐요. 딱지치기 같은 것처럼요. 문제는 경쟁을 외부에서 만들어서 멈출 수 없게 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경쟁이 싫다고 온갖 경쟁을 다 없애버린 거에요. 제가 봤을 때 핵심은 그거에요. 인간은 때로는 경쟁이 즐겁기도 하거든요. '나보다 빨리 달릴 수 있어? 저거 딸 수 있어?' 꼬맹이 때 그렇게 놀았잖아요. 경쟁이라는 것이 내가 시작해서, 우리가 시작해서 멈출 수 있다면 괜찮은 거에요. 그런데 경쟁이 필수가 되어버리는 것, 내가 스톱 못 하는 게임이라면 문제가 있는 거죠.-319쪽

한비자는 덕德이라는 글자를 얻을 득得 자에 마음 심心 자가 결함되어 있는 것이라고 파자했어요. 마음을 얻으면 몸이 오지만, 몸을 얻는다고 마음이 오지는 않아요. -345쪽

오자는 안 그래요. 오자느 소수정예일 때 굉장히 무서워요. 오자의 모토가 부자지병父子之兵, 아버지와 아들의 군대인데요, 군대는 그렇게 되어야 강력하다는 거죠. 그래서 국가에서 현충일 같은 날을 지키는 거잖아요. 미국은 굉장하거든요. '죽으면 우리 국가가 지켜준다, 유골 다 찾아온다.' 현충 행사가 그거에요. 덕이라고요. 가는 게 있어야 오는 것이 있다. 교환의 논리에요. 국가는 수탈과 재분배의 기관으로 사유해야 한다는 거죠. 국가가 재분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원초적 축적량이 존재한다는 거에요. 재분배 이전에 원초적으로 수탈한 것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제가 국가주의를 싫어하는 거에요.-347-348쪽

사람들은 매번 저 사람이 나를 구해줄 거라는 착각에 빠져서 스스로 구제할 생각을 하지 않아요. 이 구조 자체가 보수적이에요. 그 구조를 따르는 사람이 아무리 진보적이라고 해도 구조 자체가 보수적인 거에요. 인간이 스스로 주인이 되지 못하게 하는 조건들을 공격하고, 그렇게 만드는 인간들을 지탄해야 해요. 모든 억압이 총집결된 것이 인간의 내면이에요. 개개인 스스로가 철저하게 노력해서 주인으로 서지 않으면 이 구조를 극복할 수 없는 거에요.-372쪽

제가 사회민주주의를 비판하면 사람들이 '그럼 대안이 뭐냐'고 해요. 제일 비겁한 담론이 그거에요. 뭐라고 비판하면 '대안이 뭐냐'고 하는 것. 집 나가야 하는데 어디 딱히 갈 데오 없고 대안이 없다고 못 나가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그건 살 만하니까 그러는 거에요. 진짜 힘들면 일단 나가고 보죠. 나가는 것 자체가 대안이죠. 대의민주주의에 문제가 있고, 그 때문에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면 다른 식으로 나가야죠. 제가 저기가 대안이라고 하면 그리로 갈 건가요? 그것도 아니잖아요. 잘못되었냐 아니냐만 얘기하면 되는데, 항상 대안이 있냐고 몰아붙여요. 지금 여기가 나쁘다는 건데 무슨 대안을 얘기해요? 대안 없으면 그냥 나쁜 채로 살아야 하는 건가요? 그게 문제인거에요. '이건 아니다, 이건 인간다운 삶이 아니다' 이 정도만 얘기해도 고칠 수 있는 건데.-377쪽

김수영이 이런 얘기를 했어요. 체제나 권력자의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를 '방종'이라고 한다고. 그리고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제일 방종하다고. 김수영의 기준에서는 자유에 사랑이 있으면 어떠한 자유든 방종이 아닌 거에요. 사랑도 없이 함부로 검열하는 것이 방종이죠. 타인에 대한 애정이 있는 한도 내에서는 스스로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해요.-392쪽

사회민주주의는 분배를 하겠다는 건데, 분배를 하려면 자기가 소유를 하고 있어야 하잖아요. 결국 소유 형식이 유지되는 거에요. 사회민주주의에서는 분배자와 피분배자의 위계가 생겨요. 분배하는 사람이 필요해지죠.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마르크스를 들먹이지만 정작 마르크스는 좌우지간 소유 관계를 그대로 내버려두고 분배 얘기하는 놈들은 다 사기꾼들이라고 하거든요. 마르크는 일체의 소유 관계를 없애자는 거에요. 마르크스가 원한 건 코뮤니즘, 자유로운 개인들의 공동체, 개인들이 자유로운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공동체에요. 일체의 소유 형식을 없애자고 얘기했을 때는 국유까지도 포함한 거에요.-402쪽

사회가 총제적으로 건강해져야 망령이 없어져요. 박근혜의 등장은 일종의 파시즘적 징후라고 할 수도 있어요. 가난한 사람들이 자기 삶을 개척하지 못할 때 결정적으로 꿈을 꿔줄 수 있는 어떤 사람, 우릴 보살펴주는 사람이 필요한 거죠. 지금 우리 사회에는 강력한 정치적 멘토를 찾고 있는데 1920, 1930년대 독일에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났을 때가 딱 이런 분위기였어요. 자기 스스로 구원하려고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자기 재산을 더 안정적으로 지키고 더 많이 얻을 수 있을까 할 때 히틀러가 등장한 거에요. 사람들이 나약해지면 독재자가 나오기를 꿈꾸기도 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고 방향감각을 잃으면 '야, 저기로 가' 이렇게 명령을 내려주는 사람을 찾거든요. 그런 나약함이 보여서 우려가 돼요. 경제가 나빠지면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회의하지 않고 돈을 잡아요. 구조의 잘못이라고 구조를 문제 삼을 것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가 않아요.-405쪽

노무현한테 느꼈던 배신감이 그런 거였조. FTA는 자본 편을 든 거잖아요. 사회민주주의 논리는 자본이 커야 세금이 많이 걷히고, 그 세금으로 분배하겠다는 거에요. 그런데 자본의 양이 늘어나야만 분배를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사랑이 있으면 콩 한 쪽이라도 쪼갤 수 있어요. 지금 분배하면 돼요. 빵이 커져야 자른다? 안 자르겠다는 거죠. 빵이 얼마나 커져야 커졌다는 건지는 자기들이 정하잖아요. 계속 아직도 덜 커졌다고 해요.-440쪽

자본주의의 원리 중 하나가 고립되고 분리돼야 소비가 촉진된다는 거에요. 개성을 강조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에요. 예컨대 형이 입었던 옷을 쭉 물려 입는데, '나는 나만의 개성이 있어' 이러면 옷을 따로 사야 하잖아요. 자본주의는 자유롭게 소비하도록 우리를 쪼개요. 더 심각한 것은 개인의 내면도 쪼갠다는 거에요. 개인의 내면을 분열시키는 거에요. 직장인으로서의 소비, 딸로서의 소비, 기타 등등으로 소비를 쪼개는 거에요. 그래서 인간관계가 많으면 소비가 많아져요. 왜냐하면 그 인간관계에 따라 자아의 형식을 정해야 하니까요.-477쪽

자본주의는 우리를 콩가루처럼 쪼개려 해요. 단결해서 같이 쓰지 못하게 해요. 자본주의는 공동체를 싫어한다고요. 개성, 개성 하는데, 소비의 자유를 개성이라고 하는 것일 뿐이죠. 지금 광고에서 떠드는 개성이란 건 다양하게 고를 자유에 불과한 거에요. 사지선다형 식의 자유일 뿐이죠.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 고르는 게 무슨 자유에요? 자본은 이렇게 인간을 파편화시키고, 개인과 개인을 떨어뜨려놓을 뿐만 아니라 한 개인의 내면을 산산이 쪼개놓을 수 있어요.-477-478쪽

라캉의 핵심 테마가 우리가 욕망하는 것의 타자성인데, 문제는 그 타자가 내가 선택한 타자냐, 아니면 부모처럼 내가 절대적으로 그 타자에게 던져져서 적응하는 것이냐 하는 거에요. 인생에 있어서 딱 한 번의 혁명이 필요한데, 그게 어린이 되는 거에요. 부모의 가치관을 철저하게 버리는 이 과정은 굉장히 힘들어요. 한번 어른이 되면 어른인 거에요. 자기 욕망을 갖추는 것이 어른이 되기 위한 기본이에요. 핵심은 내가 타자를 선택한다는 거죠. 생존하기 위해서라는 동물적 의미에서 어머니의 욕망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이 있어야 내 삶이 더 확장된다는 의미에서 적극적으로 타자의 욕망을 선택하는 거죠. 그럴 때 어른이 되는 거에요.-5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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