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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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겠냐는 거. 결국 배려를 가장하며 책임을 미루려고 한 말이 아니었을까.-64쪽

샤워기를 틀자 쏴아- 하고 뜨거운 물이 쏟아져 내린다. 그녀는 문득, 자신이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순간은 바로 이런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수도요금을 지불할 수 있다는 것, 샤워기 아래서 그것을 아주 사실적이고 감각적으로 깨달을 수 있다는 것, 최고급은 아니더라도 보통보다 약간 좋은 목욕 용품으로 샤워를 하며, 쾌적감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에 대해 두려움 비슷한 안도감을 느낄 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자신이 선택하고 있다고 믿을 수 있을 때 말이다. -77쪽

서울에 온 지 7년이 다 돼가는데, 그중에는 내가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동네가 많다. 땅속에서 바람을 맞으며 안내 방송을 들을 때마다 나는 구파발에도, 수색에도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 것은 서울의 크기가 컸던 탓이 아니라, 내 삶의 크기가 작았던 탓이리라. -117-118쪽

K-59. 오래전 내 책상 번호. 1999년의 나는 어떤 공간이나 시간이 아닌 번호 속에 살았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때가 내겐 어떤 떳떳한 한 시절로 느껴진다. 그래서 가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그때만큼만 하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내가 그때만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때보다- 아는 게 많아졌기 때문이다.-147쪽

"앞으로 뭘 하실 생각이세요?"
나는 망설이다 대학원에 갈 거라고 말한다. 꼭 그럴 생각은 아니지만 계획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 사실 '안 되면 대학원이라도 가지'하는 생각도 있다. 학위란 몇 천만원짜리 자격증 같은 거니까 따놔서 나쁠 게 없다고.-2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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