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더 월드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공경희 옮김 / 밝은세상 / 2013년 4월
절판


독일 출신의 수리물리학자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와 관련된 문서를 몇 페이지 찾을 수 있었다. 불확정성 원리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는 이렇게 말했다.
'물리학에서는 움직이는 입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 길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 입자들이 어디로 움직일지 예측할 수 없죠.'
당시에 나는 그 대목을 읽으며 혼잣말로 중얼댔다.
'바로 그게 인간의 운명이야. 임의대로 떨어져 나온 입자들이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듯이 인생도 우리를 상상하지 못한 세계로 데려가는 거야. 결국 불확정성 원리가 인간 존재의 매순간을 지배하는 것이지.'-566쪽

인생은 - 가장 고통스러울 때조차 - 본래의 부조리함에서 몇 걸음 떨어져 있지 않으니까.-553쪽

"사람들은 삶을 마음먹은 대로 살지 못해요. 삶이라는 무대에서는 항상 시끄러운 소동이 벌어지죠."
"그러다가 사라지게 되죠, 죽음이 찾아오면."
"죽는 게 두려워요?"
"내가 더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것, 내 모든 사연이 죽음과 더불어 사라진다는 게 당황스러울 뿐이죠. '나'가 없는 것. 내 존재가 영원히 사라진다니?"
"'나'가 없는 것?"
나는 번의 말을 되뇌고 나서 덧붙였다.
"일 년 전 내게는 죽음만이 유일한 대안 같았어요."
"지금은?"
"지금은 만신창이가 된 나 자신을 어떻게 끌어안고 살아갈지 고민하고 있죠."-459쪽

서가에 꽂힌 백 권 가량의 책 중에서 제법 괜찮은 작품이 더러 있었다. 그레이엄 그린의 <사랑의 종말>을 꺼내 읽었다. 8년 전, 처음 읽었을 때는 감명을 받았지만 상실감을 다룬 주제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린의 정확한 언어와 간략하고 함축적인 문장은 여전히 마음에 들었다. 그린은 소설에서 '인간은 충동적이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감정에 충실하려는 욕망을 포기하지 못한다.'라고 썼다. 예리한 통찰이었고, 내게 큰 위안이 되는 말이었다. 그린이 '모든 인간은 결점이 있고, 상처가 있고, 혼돈의 삶에 질서를 부여하려는 욕망이 있다.'라고 설파한 점도 위로가 되었다.-334쪽

"왜 내 인생은 상호 모순되는 불운의 연속일까?"
"우리는 해야 할 일은 하지 않는다/우리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다/그리고 그 일이 우리를 살아가게 해준다는 생각에 기댄다."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
"브라우닝 풍이긴 하지만 사실은 매튜 아놀드의 시야. 아무튼 당분간은 일에만 전념해. (...)"-182쪽

"우리의 인생에서 접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석할지의 여부가 인생이라는 서사시를 어떻게 기술할지를 결정합니다. 누구나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지 선택합니다. 나이를 먹게 되고 경험이 축적되면서 최초의 인식은 차츰 변하죠. 월러스 스티븐스가 시에 썼듯이 검은 새 한 마리를 보는 방법만 해도 13가지가 있습니다. 세상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지 결정하는 건 매우 주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인생 또한 매우 주관적이죠."-158쪽

나는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바람이 등 뒤에서 불었다. 돌아올 때를 생각하니 아찔했다. 바람이 등을 떠밀다시피 했다. 눈은 커지고 콧구멍이 얼어붙는 느낌이었지만 짭짤하고 알싸한 공기를 피하지 않고 들이마셨다. 광활한 해변에 사람이라고는 나 혼자밖에 없었다. 발목이라도 겹질려 쓰러지면 며칠이 지나도 발견되지 않을 곳이었다. 그렇지만 혼자 위험한 곳에 있다는 생각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매서운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해변을 걷다보니 갑자기 엔도르핀이 저절로 솟아나는 것 같았다. 마치 만물에 신성이 깃드는 순간을 경험한 듯 했다. 대자연의 압도적이고 위대한 힘에 저절로 경외심이 느껴졌다. 갑자기 삶의 시름도 저만큼 물러섰다. 어두운 빛깔의 성난 바다가 빚어내는 웅장한 풍경에 잡다한 생각들이 모두 녹아내렸고, 나는 비로소 환희를 느꼈다. 살아 있다는 느낌이 온몸을 관통했다.
밤잠을 설치게 만든 온갖 고뇌를 벗어던지는 순간, 대자연의 경이로운 풍경에 압도되어 시름을 잊은 순간 나는 환호작약했다.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기까지 필요했던 건 추위와 바람, 드넓은 바다에서 포효하는 파도가 전부였다.-144-1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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