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원만함'이 뭐가 문제냐고 묻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원만함은 우리 사회에서 대체로 좋은 가치로 받아들여졌고, 어느 조직에서나 원만한 사람을 선호하는데 이건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 원만함이 사법 관련자들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되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원만함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지켜내는 것은 언제나 기득권층의 이익과 기존 질서입니다. 갈등상황에서 가만히 있는 것이 원만함으로 이해되는 조직에서, 모두 그러다보면 '정의'라는 본질적인 가치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315쪽
그러나 만약 그의 지시대로 모든 일이 통상적으로 처리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야간집회를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위헌소지가 매우 높은 법률에 의해 억울하게 기소당한 사람들은 대부분 처벌을 받게 됩니다. 물론 덕분에 그와 대법원장이 바라는 대로 "사회적으로 소모적인 논쟁"에 발을 들여놓지 않아도 됩니다. 참으로 깔끔하고 원만한 결론입니다. 마치 먼 우주에 존재하는 투명하고 객관적인 중립의 공간에서 혼자 판결을 내리는 것처럼 우아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언제나 현존하는 정치경제 씨스템을 합법화하고 고착시키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객관성이라는 게 있을 수 없는 법의 세계에서,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무시한 결과이지요.-3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