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 20대와 함께 쓴 성장의 인문학
엄기호 지음 / 푸른숲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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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이 같다는 말은 단지 삶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이해가 같다는 뜻이 아니다. 이것은 입장에 대한 대단한 착각이다. 우리는 입장이 같다는 말을 할 때마다 늘 생각이 같다거나 시각이 같은 상태를 즉각적으로 떠올린다. 즉, 해답이 같다는 것을 입장이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입장이 같다는 말은 같은 위치에서 같은 질문을 던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입장이 다르다는 말은 삶에 대해 던지는 질문이 서로 다르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인생에 대해 어떤 질문을 던졌는지, 그 질문은 그들과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를 견주어보아야 한다. 누군가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들이 내놓는 답을 가지고 왈가왈부한다면 그것은 삶에 대한 모독이다.-26-27쪽

아무도, 다른 이의 삶을 모독할 권리 따위는 없다. 각자의 삶이란 각자가 던지는 질문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그들 각자의 삶에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는 이해하려고 하지 않은 채 그 답만 가지고 도덕적으로 판단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탈정치화'라든가 '소비주의적'이라든가 '개인주의적'이라는 것이 바로 그러한 도덕적 판단의 언어이다. 무엇보다 이것이 우리가 그만두어야 하는 일이다. 질문을 공유하지 않으면서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나 페다고지가 나오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그곳에는 다만 날것의 폭력과 존재에 대한 모독만이 있을 뿐이다.-27쪽

그러나 좌나 우나 모두 묻지 않는 것이 있다. 20대가 성장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할 때 이들이 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 '성장'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묻지 않는다. 또한 그 성장이 어떠한 조건에서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역시 묻지 않는다. 성장은 다만 모든 도덕적 판단의 전제조건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자신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성장의 방식이나 방향대로 성장하지 못한 20대들이 세상을 어떻게 보고 경험하는지에 대해서는 지레짐작으로 재단할 뿐이다. 20대들이 어떤 언어로 세상을 읽고 세상에 어떻게 개입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도통 관심이 없다. -14쪽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가 20대들을, 대학생들을 잘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가는지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만 있으면 이들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다수의 부모와 선생이 이런 착각에 빠져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정보'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은 지배와 통제에 대한 욕심이지 이해에 대한 갈망이 아니다. 이해란 통제와는 달리 내가 그들과 무엇을,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는지 돌아보는 작업이다. 때문에 이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정보를 넘어 그들의 삶의 조건에 대한 지식이며, 그들의 감수서오가 나의 감수성 사이의 거리와 차이에 대한 성찰이다. -18-19쪽

한국의 식민화된 학문 풍토에서는 보편적인 것은 추상적인 것이라는 이상한 관념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sample'과 'example'은 아주 다른 것이다. 'sample'이 무작위로 뽑아내는 어떤 사례라고 한다면 'example'은 그 자체가 보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사례로 사용될 수 있는 구체적인 이야기이다. 그래서 구체적 보편성, 즉 구체적이기 때문에 보편적이라는 말이 성립하는 것이다. 학문이란 'sample'에서 보편성을 지니고 있는 구체적인 이야기인 'example'을 뽑아내는 과정이다. 이 과정 자체가 분석이라고 나는 믿는다. 어떤 'sample'이 왜 'example'이 될 수 있는지를 연구하고 논증하고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지 그 사례에 지저분하게 추상적인 이야기를 갖다 붙이는 것이 분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군더더기일 뿐이다.-21쪽

그렇기 때문에 지금 대학생들이 성장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목소리들은 그들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멈추고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첫 번째로 이들은 자신이 말하는 성장이라는 것이 무엇이고 그것이 어떤 조건에서만 가능한지 성찰해보아야 한다. 두 번째로는 지금의 시대가 과연 그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시대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만일 이 시대가 그런 성장이 가능하지 않은 시대라고 한다면 우리에게 이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는지를 물으며 이들에게 다가설 수 있는 언어와 페다고지가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가 무엇보다 먼저 고백해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이 세 가지 질문 모두에 언어가 없다는 사실이다. -23-24쪽

우리 모두는 본래 속물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속물이 되어야만 하는 존재이다. -67쪽

민주주의는 목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과정이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들에게 민주주의는 정치가 아니라 도덕의 문제가 된다.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는 법과 질서 중심의 사회로 치닫는다. 민주주의가 법치주의로 전환되면서 오히려 보수적인 무기가 되는 것이다. 한국의 진보 세력이 가장 실패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한국의 진보 세력은 민주주의가 정치적 언어에서 한쪽에서는 냉소주의로 다른 한쪽에서는 속물들의 윤리적 언어로 전환하였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96-97쪽

교실에서 돼지를 키운다는 재밌는 발상에 근거한 영화 는 성장에 대한 이야기다. 성장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중요한 키워드가 영화의 중심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상실과 자기 세계의 붕괴이다.-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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