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박범준.장길연 지음, 서원 사진 / 정신세계원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KBS TV <인간극장>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장길연, 박범준 부부의 이야기를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당시 나에게는 다소 낯설었던 이들의 행보는 충격적이기 까지 했다. 그것은 이들이 평범한(?) 귀농을 시도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일 것이다. 서울대와 카이스트 출신의 엘리트 부부(흔히 이러한 미사여구로 인해 어쩌면 이들이 그렇게 주목받은 것인지도 모르지만)가 '잘 나가는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시골로 떠났다 하여 화제가 되었던 프로그램이다. 그 내용도 신선했지만 무엇보다도 대중에게 어필하기 위하여 조작된 것이 아닌 이들 부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때문에 이 책을 서슴없이 집어들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책 선택에 걱정도 되었으니... 적당한 시골생활의 유유자적함으로 포장된 수필정도가 아닐까 라는 생각에서 였다. 

그러나 책장 가득히 펼쳐진 이들의 글과 사진을 보고 생각을 좀 달리하기 시작했다.

낡은 그네 의자에 나란히 앉아 마주보며 웃고 있는 이들 부부의 사진. 도시에서의 삶이라면 거져줘도 쓰지 않을 것 같이 낡고 초라해 보였지만, 그들 부부의 웃음 덕인지, 유쾌한 기운마저 전해지는 의자였다. 그 의자가, 그리고 그 의자 위에 앉아 함박웃음을 짓고 있던 부부가, 평범하기 짝이 없는 그들의 모습이 왜 그리도 마음을 끌렸는지 모르겠다. 내 손은 어느새 다시 그 책장을 펼쳐 들고 있었다. 그러자 내가 한동안 또 잊은 채 살아가던 것들이 새록새록 피어나는 듯 했다.

물론 이들의 이야기가 유명세를 탄 데에는 '엘리트 출신'이라는 타이틀이 무시 못할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산, 들, 바다로 떠난 부부가 어디 그들뿐이겠는가. 그럼에도 유독 그들이 주목을 받은 것은 그들의 배경이 적잖이 기폭제의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편견'없이 책을 대한다면, 그들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환경 앞에 서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그 다른 환경을 기반으로 자신의 재능을 새롭게 발견해가는 '무모한' 과정이 놀랍기만하다. 

그러한 결단과 용기의 근본적인 의문의 기저에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과연 난 언제쯤 행복해질까?

행복해진다는 것은 물론 그리 쉬운 일이 아닐 지도 모른다. 그래, 만약 행복이 어려운 것이라면 행복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우리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고, 우리가 가장 얻기 힘든 것에 행복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 객관식 시험문제에 하나의 정답이 있듯이 행복이라는 것이 어떤 하나의 모습으로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행복을 너무 어렵고 거북스럽게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제부턴가 물질적인 여유를 누리는 것, 그 하나가 우리 모두의 목표인 것처럼 느껴지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런 물질적인 富란 어차피 한정된 숫자의 사람들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인데 말이다. 그렇게 행복을 승부와 결쟁의 결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어려워하는지도 모른다. 승자의 자랑거리 또는 패배으 아픔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과연 행복은 그런 것이어야만 할까? (pp. 8-9)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행복의 다양성'이다. 일률적인 부의 축적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의 형태에서 다른 행복을 찾아가자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거추장스러운 현실의 껍데기를 기꺼이 벗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지금 딛고 있는 땅이 도시의 아스팔트이든 산골의 흙마당이든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선택으로 이곳에 와서 이곳에서 우리의 행복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p. 67)

소위 웰빙시대라 하여 이제는 자연, 친환경, 건강이 고가의 상품이 되어 버렸고, 우리는 또다시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동적 소비자로 전락해버렸다.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행복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춘기 시절 느닷없이 "엄마는 행복해?" 라며 물었을 때, 나를 이상하게 보던 엄마의 낯선 눈빛처럼, 행복은 동화속에서만 존재하는 그런 '파랑새'가 아닌 것이다.

비단 시골에서의 삶에만 무게를 두어 그것을 두둔하자는 것은 아니다. 도시인들을 어쩔 수 없이 참고 살아가는 '부품'으로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농촌생활에 대한 도시인의 막연한 동경을 자극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어렵기만한 행복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이며, 주위를 다시 한번 돌아보자는 것이며, 나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정말 용기가 부족해 하지 못한 삶을 정말 한번 뜨겁게 '살아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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