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분 후의 삶
권기태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권태'라는 단어를 애써 떠올리지 않아도 될만큼, 우리네 일상은 때때로 매우 지루하고 무기력하기만 하다. "다람쥐 쳇바퀴"라는 상투적인 말처럼 우리의 상황을 잘 표현하는 말이 또 있을까. 바쁘게 허둥지둥 살아왔는데 "휴우"하고 잠시 한숨을 돌리려고 뒤를 돌아보면 언제나 그 자리라는 것에 우리는 또 얼마나 괴로워하고 있었는가.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갈망하던 내일"이라는 말이 주는 감흥도 이미 퇴색되어 버린지 오래다. 그러나 이러한 지루함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우리들은 일상을 탈출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들은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쾌락이나 재미에 그칠 뿐 삶에 대한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줄 그 무엇에 해당되지 않는다. 
 

 꼭 경험을 해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아니 독서도 간접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면, 이 <일 분 후의 삶>을 읽어보는 것도 자신의 삶에 대해 한 번 곱씹어 볼 수 있는 제법 괜찮은 방법이라 하겠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한 치 앞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 중에 예상하지 못했던 위기에 닥치게 되어 곧 삶을 마무리 할 순간에 이르게 되었다면 과연 어떨까? 그 순간 무덤덤하고 초연하게 삶을 정리하려 할리는 없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던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랑하는 이들에게 돌아가려고 간곡한 기도를 하던지 하지 않을까. 바로 몇 분 전만 해도 지루하고 지겹던 삶이라 생각했던 곳으로 말이다. 죽음을 지나오자 비로소 삶이 선명해 진 것이다.

 

 이 책은 죽음의 문턱까지 도달했다가 다시 삶의 정원으로 돌아오게 된 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논픽션집이다. 출렁이는 바다 한가운데의 배에서, 혹한의 추위로 무장하고 있는 어느 산맥에서, 승자와 패자가 공존하는 사각의 링에서, 빛이 허락되지 않는 어두운 하수도 안에서, 연이 걸려 있는 고압선 위에서, 산사태에 무너져버린 집 안에서, 푸른 창공을 나는 비행기 안에서, 꽁꽁 얼어버린 겨울날의 빙판 위에서 벌어졌던 이들의 경험들은 우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낯선 이들의 것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도 언제 어느 곳에서 이처럼 우연한 상황을 맞닥들이게 될 지도 모른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이들이 경험하게 되는 삶의 방식은 다양하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었다. 마지막까지 몸부림을 쳐야 했다. 백 번을 해도 일어나지 않는 일이 불과 한 번 만에 일어날 수도 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그 한 번을 붙잡는다"며 끝까지 포기 하지 않은 채 집중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그 집중의 시기가 지나 비로소 체념하는 순간 또 다른 삶의 문턱으로 들어서는 경우도 있다. "집착하면 일이 어려워지고, 마음을 비우면 시야가 넓어진다. 아르키메데스가 금관에 쓰인 순금의 부피를 알아낸 건 고심을 거듭하며 수학 공식과 계산에 매달릴 때가 아니었다. 모든 걸 체념한 채 옷을 훌훌 벗고 목욕탕에 들어갔다가 물이 넘치는 걸 보고서였다. 만유인력부터 라듐의 발견까지 역사상의 무수한 위대한 발견이 집착하던 일과는 무관한 듯 보이는 사소한 현상을 사심없이 바라보다가 생겨난 것이었다."

 

 결국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를 스쳐지나가는 운명의 크고 작은 흐름들을 바꾸어 놓을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지금 이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 살려고 하거나, 최선을 다해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 뿐이다. 여기에 옳고 그름의 판단은 개입될 여지가 없다. 세네카가 말했듯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우는 데 한평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생의 감각은 빛나고, 정원은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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