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는 가끔 엄마가 어떻게 그렇게 자기 꿈과 깨끗이 작별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엄마는 ‘그저 다음 단계로 간 것뿐‘이라며, ‘작별한 건 맞지만 깨끗이 헤어진건 아니‘라고 했다. ‘대부분의 어른이 그렇게 사는데 그건 꼭 나쁜 일도 좋은 일도 아니‘라면서. 그땐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요즘에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자신에게 재능은 있되 그게 압도적인 재능은 아님을 깨달아서였다. - P129
‘이야기가 가장 무서워질 때는 언제인가?‘ 소리가 슬픈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이야기가 끝나지 않을 때‘ - P134
채운은 자신이 이렇게 늙고 무력한 남자를 오랫동안 무서워했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동시에 아버지가 당장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쏘아볼 것 같아 두려웠다. 아버지가 남들 다 보는 데서 자신에게 실컷 욕을 퍼부은 뒤 "아, 미안. 내가 거짓말을 잘 못해서"라고 으스댈 것 같았다. 아버지는 자신이 빈말 못하고 솔직하다는 사실을 늘 자랑스러워했다. 실은 그게 어떤 무능을 뜻하는지 잘 알지 못하면서. - P75
- 가난이란...... 지우는 문득 교실 안이 조용해지는 걸 느꼈다. - 가난이란 하늘에서 떨어지는 작은 눈송이 하나에도 머리통이 깨지는 것. 지우는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지만 조금 의연해진 투로 다음 문장을 읽어나갔다. - 작은 사건이 큰 재난이 되는 것. 복구가 잘 안 되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