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이라는 세찬 바람이 한차례 지나갔다. 나는 지금 여러 갈래로펼쳐진 길 앞에 서 있다. 모든 길을 가 볼 수는 없다. 용기를 가지고 어느 한 길을 선택해 걸어가야 한다. 해야 할 일을 착실하게 해나가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서두르지 말자. 음식을 맛있게 먹기 위해선 먹기 좋은 온도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일도 필요한 법이다. - P144
오랜 시간 일을 해 오면서 깨달은 건 기본기 없이는 단순해지기 어렵다는 것. 단순해지지 않으면 아름다울 확률이 적어진다는 것. 화려하고 어려운 것은 거짓말일 확률이 높다. 메밀 맛만 남은 메밀이, 회 맛만 남은 회가, 사케 맛만 남은 사케가 가장 맛있고 아름답다. - P147
마흔 넘으면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불행하게도 인생은 공평하지 않으며, 타협은 인생을 편하게 해 주지만 나중에 반드시 이자를 붙여 같아야 하며, 능력보다 중요한 건 운이지만 운은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 절대로 가지 않는다는 사실.
이런 것도 알게 된다. 아무리 멀어 보여도 달리다 보면 결국 도착한다는것. 물론 그 도착 지점을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많은 경우 그게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아무리 좋고 멋진 일이라도 할 수 있는때가 있다는 것. 성공하는 것보다는 실패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시간을 가장 잘 사용하는 방법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과 여행을 떠나는 일이라는 것. - P200
나무 그늘에서 쉴 때, 까마득한 산속에 만들어진 라타(죽은 사람을 기리기 위해 세워놓은 만장)를 내려다보았을 때 나는 결핍이 간절함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생에 대한 결핍이 간절함을 낳고 그 간절함이 역설적이게도 우리를 행복 앞으로 안내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건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 P212
"변한 게 하나도 없네요." 내가 말했다. 변하는 건 없어. 변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지." 파스타를 만드는 요리사가 말했다. 거리는 더웠고 오토바이 숫자는 줄어들지 않았다.
호텔로 돌아와 맥주를 더 마셨다. 창밖으로 오토바이 불빛들이 이리저리 흘러 다니고 있었다. 맥주는 미지근했고 나는 고독했다. 하지만 어쩔수 없는 일, 여행을 하면서 알게 된 건 이 세상은 어디든 다 똑같고, 고독은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것. - P227
그러니 어찌 모든 여행이 아름답지 않을 수 있을까. 궤적은 사라지고 흔적은 소멸하는데, 어찌 모든 인생을 걸고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날, 이륙한 비행기가 저녁의 하늘을 천천히 선회하던 그날, 앞으로의 인생을 가만히 가늠해 보던 그 저녁. 걸어야 할 걸음을 착실하게 걷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믿음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 P232
천둥이 칠 때마다 탑은 홀로 빛나고 나는 사랑으로 날카로운 높이를 세운 어느 석공의 마음을 가늠해 본다. 탑의 끝은 왜 날이 서 있는가. 왜서늘하게 빛나는가.
많은 과거를 뒤로 하고 바간으로 왔다. 과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미래는 아직 다가오지 않았다. 우리의 현재는 서로에게 무의미하다. 우리는 각자의 여기에서 각자의 지금을 살고 있을 뿐이니까. 우리는 언제나 서로에게 주관적이고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서로에게 아무런 의미가 될 수 없다. 그것을 아는 슬픔.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끝없이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알려 준다. 하지만 우리가 만나지 못하는 이 세계는 얼마나 넓은가. 우리는 언제나 서로를 잊으려 하고 있다. - P256
공항에서 자주 후회합니다. 결국 돌아가고 말 것을 왜 떠났을까. 애당초떠나지 않았다면 그리움 따윈 만들지 않았을 텐데…….. 그래서 모든 인생은 결국 실패라고 생각하는가 봅니다. 그래서 지나온 인생을 통째로 불태워 버리고 싶은 것이고요. 여행을 자주 떠나 본 이들은 알 겁니다. 모든 여행이 허무하다는 사실을요. 우리를 나아가게 한 건 의지가 아니라 착각이었다는 것을요. 결국 그걸 알게 될 것입니다. - P264
무릎을 웅크리고 혼자 있습니다. 어둠을 겪어 보지 않고서는 빛을 알 수 없는 법입니다. 마음속에 어둠이 없는 자는 세상을 건널 수 없습니다. 여행은 내가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기는 일입니다. 사랑은 내가가진 어둠을 당신과 나누는 일이구요. 이만큼 살아 보니 알겠습니다. 친구 따윈 필요 없더군요. 책과 음악, 그리고 어둠 한 줌이면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 P165
밤이 깊어갑니다. 거리는 눈에 띄게 어두워졌습니다. 인생이란 게 묘하네요. 그렇게 와보고 싶었던 프라하에서 이렇게 실망스런 기분으로 앉아 있으니까요. 시간이, 세월이 그렇게 만든 것 같습니다. 한때는 그렇게 갖기를, 닿기를 열망했던 것들이 지금은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그열망들은 어느새 빛이 바래 서랍 깊숙한 곳에 버려져 있습니다. - P277
살다 보면 기억해야 할 것보다 잊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잊는 것이 더 어렵기 때문에 신은 우리에게 사막과 바다와 겨울을 주었다. 가서 걸으라고, 가서 멍하니 서 있으라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따뜻한 손을 잡으라고, 결국 오고가는 일, 결국 만나고 헤어지는 일, 결국 떠나고 다시 돌아오는 일 아닐까. 사는 것 말이다. - P290
그 옛날 소중했던 일이 지금은 아무 일도 아니듯 지금의 간절한 하루 역시 먼 훗날에는 한낱 사사로운 일이 되어 희미해질 것이다. 그렇지만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게 인생이고 내 인생에 그런 일이 일어났을 뿐이다. 인생은 오늘도 저쪽에서 나를 보고 웃고 있다. - P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