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게 새들에게 일상적인 일은 아닐 거라고, 비행에 최적화된 기관이 있다고 해서, 또 자주 날아다닌다고 해서, 새들이 비행에 별 감흥을 못 느낄 거라고 단정할수는 없다.
나는 외려 새들이 날 때 상당한 기쁨을 맛볼지도 모른다고 추측한다. 너무 어린 새나 늙은 새, 다친 새는 날 수 없다. 많은 새들이 날 수 있는 힘이 있지만, 실제로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때는 한정되어 있다. 놓칠 수도 있었던 잠재력을깨닫고 목적에 걸맞게 쓴다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 아닐까? - P52

나는 침묵했다. 대답을 미루고 침묵을 택한 것이 아니었다. 대답을 잃자 남은 게 침묵뿐이었다. 엄마에게 등을 돌린 채멀거니 서서 나는 한참 동안 대답을 찾아 머릿속을 헤맸지만 끝내 아무런 문장도 만들어 내지 못했다. - P58

"길을 찾고 있는 거야. 원래 달빛을 쫓아가고 있었는데 가로등 불빛이 자꾸 밝아지면서 길을 잃고 만 거야. 다시 달빛을 쫓아 헤매다가 결국 가로등 불빛을 달빛으로 착각하고저렇게 되어 버렸지." - P77

어쩌면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그 시기에는 누구나 아무 노력 없이 몸이 자랐고, 이해하지 않아도 조금씩 어른이됐다. 매일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그것을 잃었다는 사실도 쉽게 잊었다. 친구의 이름. 얼굴. 어제의 즐거움. 두려움. 화답을 기대하는 마음. 슬며시 생겨난 앙심. 단순하게 반복되는 폭력. 결별. 지난 계절의 더위. 추위. 꿈. 불가해한 죽음. 지속되지 않는 다짐. 너를 버린다는 말. 그 모든 것들이 기억 너머로 가라앉는다. 아래로 더 아래로 가라앉아 깊은 구덩이 속에 고이고, 바로 거기, 잔잔한 수면이 생긴다.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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