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살인 지금은 더이상 재능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된 지 오래다. 꾸준함 없는 재능이 어떻게 힘을 잃는지, 재능 없는 꾸준함이 의외로 얼마나 막강한지 알게 되어서다. 재능과 꾸준함을 동시에 갖춘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창작을 할 테지만 나는 타고나지 않은 것에 관해, 후천적인 노력에 관해 더 열심히 말하고 싶다. 재능은 선택할 수 없지만 꾸준함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24
남에 대한 감탄과 나에 대한 절망은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그 반복 없이는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기꺼이 괴로워하며 계속한다. 재능에 더 무심한 채로 글을 쓸 수 있게 될 때까지. - P26
영화 매니페스토)에는 한 글쓰기 교사가 등장한다. 그는 칠판에 "독창적인 것은 없어 Nothing is original"라고 적은 뒤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독창적인 것은 없다. 어디서든 훔쳐올 수 있어. 영감을 주거나 상상력을 자극하는 거라면 뭐든지 얼마든지 집어삼켜. 옛날 영화, 요즘 영화, 음악, 책, 그림, 사진, 시, 꿈, 마구잡이 대화, 건물, 구름의 모양, 고인 물, 빛과 그림자도 좋아. 너희 영혼에 바로 와닿는 게 있다면 거기서 훔쳐오는 거야. 독창성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훔쳤다는 걸 숨길 필요 없어. 원한다면 얼마든지 기념해도 좋아." 그런 뒤에 교사는 이렇게 덧붙인다. "하지만 장뤼크 고다르가한 말은 꼭 기억해야 해. 문제는 어디서 가져오느냐가 아니라, 어디로 가져가느냐다." - P136
동물을 가장 많이 귀여워하는 시대이자 동물을 가장 많이 먹는 시대를 살고 있다. 외면하는 능력은 자동으로 길러지는 반면, 직면하는 능력은 애를 써서 훈련해야 얻어지기도 한다. 무엇을보지 않을 것인가. 무엇을 볼 것인가. 스스로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며 수업에서 나온다. - P143
신형철 평론가의 책 『정확한 사랑의 실험 (마음산책, 2014)에 따르면 욕망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하지만, 사랑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해진다. - P169
쉼보르스카는 말했다. 자기가 쓰는 시의 유일한 자양분은 그리움이라고. 그리하여 돌아가야만 한다고. 그리워하려면 멀리 있어야 하니까. 그렇다면 작가는 어떤 일이 멀어지는 걸 보며 계속살아가는 사람 아닐까. 멀어지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을 기록하며, 그리움을 그리움으로 두며, 하지만 결코 디테일을 잊지 않으며 말이다. - P173
그들은 ‘절대 ~하지 마라‘는 말을 간과했다. 인간은 ‘절대‘ 라는 말에 오기를 품는 존재들인 것 같았다. 공포만화의 일반인들은 의심스러운 무언가를 향해 제 발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런 식으로 제 무덤을 파는 자 없이는 무서운 이야기란 완성되지않는 듯했다. - P184
나는 알게 되었다. 작가의 글은 일기 이상이어야 한다는 걸. 여기에서 ‘일기 이상‘이란 자신 이외의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쓰는글이다. 언제나 내 편을 드는 나를 제외하고, 은선생님처럼 내 말에 웬만하면 맞장구칠 준비가 된 독자도 제외하고, 불특정 다수가 읽어도 설득이 되는 문장을 향해 노를 저어가야 했다. 공식적으로 발표하거나 연재하거나 돈을 받고 쓰는 글은 적어도 일기에서 한 걸음 내딛은 어떤 것일 필요가 있었다. 내가 돈을 내고 읽는 글들이 거의 다 그렇듯 말이다. - P199
구구절절 해명을 늘어놓던 글쓴이는 어느 순간 말을 아꼈다. 말이 아니라 글로써 진작 잘 드러내야 했던 이야기라는 걸 스스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 P205
교사에게 발언권이 돌아왔을 때 나는 말했다. 좋은 글은 장면을 선물한다고, 읽는 이의 마음속에 몹시 인상적인 이미지를 그려서 글을 내려놓고도 이야기가 자꾸만 떠오르게끔 한다고, 어떻게 해야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보여줄 수 있을지, 텍스트로 이뤄진 문장을 가지고 이미지의 세계로 가는 방법은 무엇일지 열심히 고민해보자고. - P229
동시에 성립되지 않을 것 같은 두 가지는 사실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 심지어 충돌하지도 않는다. 나는 그것이 사랑의 복합성이라고 느낀다. 이 동시다발적인 복잡함에 대해 말하는 게 문학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예술들은 모두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그 사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그 사랑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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