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네가 그만 살고 싶은 듯한 얼굴로 나를 봤던 걸 기억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어. 네가 계속 살았으면 좋겠는데 고작 내 바람만으로 네가 살아서는 안 되잖아. 살아가려면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들이 있어야 하잖아. 울다가 잠든 네 모습을 한참 봤어. 아침이면 일어나고싶은 생을 네가 살게 되기를 바랐어. 왜냐하면 나는 너 때문에 일찍 일어나고 싶어지거든. - 17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우리는 한 생에서도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날 수 있잖아. 좌절이랑 고통이 우리에게 믿을 수 없이 새로운 정체성을 주니까. 그러므로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었어. 다시 태어나려고, 더 잘 살아보려고, 너는 안간힘을 쓰고 있는지도 몰라. 그러느라 이렇게 맘이 아픈 것일지도 몰라. 오늘의 슬픔을 잊지 않은 채로 내일 다시 태어나달라고 요청하고 싶었어. 같이 새로운 날들을 맞이하자고, 빛이 되는 슬픔도 있는지 보자고, 어느 출구로 나가는 게 가장 좋은지 찾자고, 그런 소망을 담아서 네 등을 오래 어루만졌어. - 20

오늘은 나 역시 그 말을 내뱉은 하루였어. 태어나는 건정말 피곤한 일이지 뭐야.
하지만 또 어느 날에는 태어나서 참 좋다고 말하는 날이 또 오게 될 것을 알아. 시인 쉼보르스카가 말했듯 두 번은 없을 테니까.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기까지 우리는 모든 일을 꼭 한 번씩만 겪어.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지. 두번의 똑같은 밤도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어. - 28

안아보기 전에는 모르는 사랑이 있지. 걸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체력과, 싸우기 전에는 낼 수 없는 힘도 있지. 써보기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도 있고 말야.- 39

너를 보며 생각했어. 윤리란 나의 다음을 상상하는 능력일지도 모르겠다고. - 42

슬픔은 상실을 마주한 채로 고통받는 감정이야. 반면 애도는 슬픔을 끝내기 위한 작업이야. 언뜻 비슷한 과정처럼 보이지만, 사실 애도는 슬픔의 지속이 아니라 슬픔의 종결을 위한 작업이라고 해. 상실한 사람들이 섣부른 애도를 거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 슬픔의 봉합을 거부하기 때문이야. 슬픔의 보존을 요구하기 때문이야. - 44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적당한 속임수에 동의 한다는 걸 의미하기도 하잖아. 하나의 사회는 사실 적당히 속아주는 사람들 덕분에 유지되니까. 하지만 유가족은 그 모든 것에 속지 않는 자들로서 방황했어. 기존 권력으로 유지되는 현재 세계를 거부하면서. 그들의 요구는 현재 세계에서 통용되는 정의를 낡고 초라한 것으로 만들었어. ‘적당한’ 수준의 정의가 민낯을 드러내도록 했어. - 45

"존, 인생이라는 건 본질적으로 선을 긋는 문제이고, 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지는 각자가 정해야 해. 다른 사람의 선을 대신 그어줄 수는 없어.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규칙을 지키는 것과 삶을 존중하는 건 같지 않아. 그리고 삶을 존중하려면 선을 그어야 해." -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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