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은 어떻게 돼? - 각자의 속도로, 서로의 리듬으로
박철현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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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 몰랐는데, 저자가 꽤 많은 팬이 있는 전직 에세이스트(?) 였나 보다(나중에 알았지만, 경향신문에 연재된 글을 출판한 것이라고 한다). 저자를 알지 못함에도 페이스북을 통해 그 지인들이 이 책을 홍보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자기가 아는 사람이 책을 썼으니 이 정도 홍보는 할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하며 넘겼는데, 책의 내용에 대한 것보다는 "4쇄 가자"와 같은 구매를 강조하는 노골적인 표현들이 더 많이 보이기 시작해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모르게 눈쌀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입소문이 아닌 입'광고'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소문의 근원에는 무언가가 있겠지라는 생각에 책을 폈다.


저자는, 현대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은, 4명의 아이를 둔 아빠이자, 일본인 여성과 결혼을 한 한국인 남성이다. 우리나라에서 생활하는 외국인 남성이 글을 썼다면, 부모 중 1인이 외국인인 가정에 대한 차별과 부당함에 대한 사례가 많았겠지만, 저자는 일본 정부의 사회복지 시스템의 혜택을 차별 없이 받으며, 그리 많지 않은 수입에도 불구하고 큰 걱정이나 불안 없이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한일 양국 간의 복지시스템이나 외국인에 대한 태도를 적극적으로 비교 분석하는 내용은 아니다. 일본 사회의 관용과 포용성은 도드라지게 강조되지는 않지만 각각의 에피소드에 녹아서 표현되어 있다.

  

책의 구성은 만남, 관계, 성장, 독립으로 되어 있는데, 이러한 구성들이 아이들의 탄생에서부터 독립까지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있는 것은 아니고, 각 장의 제목에 맞는 에피소들을 적절히 분산시켜 편집한 것이다. '4명의 아이'라는 특징 때문에 가장 많은 에피소드는, 단연 아이들과 관계된 것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아이들은 불필요한 과외 공부에서 벗어나 스스로 학습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에 대한 관념을 기르고, 학교와 이웃은 부모의 국적이나 직업에 따라 아이를 평가하지 않는다. 아빠와 엄마의 구분 없이 학교나 유치원 대소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부모는 일부로 자기 아이를 돋보이게 하려 하지 않지만 아이가 하고 싶다고 생각한 바를 믿고 지지해준다. 


에피소드를 읽다보면 부모가 오히려 아이들로부터 배운다는 말이 딱 맞는 경우가 많이 등장한다. 저자는 자신이 미쳐 생각하지 못한 아이들의 생각에 동의를 하고 지지해줌으로써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게 돕는 한편, 스스로도 부모로서 성장하게 된다. 아이들 부모의 소유가 아닌 독립적인 인격체로 대우하고, 우리와 같은 신파가 아니라 죽음과 이별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굳은 마음, 한국과 일본 어느 한쪽을 배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양쪽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을 길러주고 싶어하는 저자(와 그의 아내)의 태도에서는 너무 각박하게 극단으로 치닫는 지금의 한국사회를 살펴보게 한다.


글은 쉽고 매우 빨리 읽힌다. 다른 이의 삶을 엿보는 재미로 생각하면 적당한 수준일 수 있으나, 편집자나 광고가 밝히듯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닮은 가족 드라마"라는 표현에는 고개를 갸웃하고 만다. 내가 볼 때는 '일본'이 배경이라는 것과 식구들이 많다는 것 외에 공통점을 찾을 수가 없는데, <어느 가족>, <태풍이 지나가고>, <바닷마을 다이어리>,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와 같이 꼬여 있는 가족관계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장치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서이다. 기대만큼은 아니지만, 아이들에 대한 믿음과 포용이 가정을 얼마나 긍정적으로 만드는지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일본에서는 혼혈을 보통 ‘하프(half)’라고 표현한다. 절반씩 피가 섞였다는 건데 이 하프라는 표현이 부정적 의미라고 받아들여져 요즘엔 하프 대신 ‘더블(double)’이라는 표현을 의식적으로 쓰는 매체나 사람들이 늘고 있다. 아이들도 당연히 더블 전도사다. - 53

발단은 카렌이 미우에게 "너 정말 하프야?"라고 물은 데서 시작됐다. 카렌 입장에서는 외모상 순수한 일본인과 아무런 차이가 안 나는 미우가 ‘혼혈’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은 듯 물은 것인데 이 질문에 미우가 "응. 근데 하프 아니고 더블이 맞아"라고 답하는 게 아닌가? 그러자 카렌이 되물었다.
"왜 더블이야? 하프 아닌가?"
"하프는 2분의 1이잖아. 더블은 2이고."
"그런가?"
"카렌은 2분의 1이 좋아? 2가 좋아?"
"당연히 2가 좋지."
"그럼 앞으로 더블이라고 말해. 너 러시아어 하지?"
"응. 엄마한테 배워서 조금 하지."
"봐봐. 일본어도 하고 러시아어도 하니까 더블이잖아."
"와! 진짜 그러네!"- 53, 54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한국에 있었을 때는 거리에서 장애인들을 별로 보지 못했다. 그래서 ‘장애인이 별로 없나 보다’라고 단순히 생각했는데, 16년 전 일본에 온 이후부턴 거의 매일 한두 번 정도는 길거리에서 장애인을 목격한다. 잠시 다녔던 자원봉사단체에도 휠체어를 탄 장애인 청년이 있었는데 항상 밝은 얼굴이었던 것이 인상에 남는다.
그러니까 어느 사회에나 장애인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지만 한국은 밖에 안 나올, 아니 못 나올 환경인 것이다. 혼자서는 움직이기 불편한 도로 사정도 있겠고, 사회적 편견도 (예전만큼은 아니라고 해도 여전히) 어느 정도는 남아 있을 것이라 본다. - 125

독립된 인격과 삶은 서로가 서로를 소유물로 생각하지 않는 마음가짐에서 나온다. 그래서 나는 항상 아이들에게 18세가 되면 독립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강조는 표면적으로는 아이들에게 다짐을 받는 것이고 또 그들을 세뇌하는 것이지만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애지중지 키웠던 아이들이 떠나간다는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해놓는 것이다. 나중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들을 구속하고, 속박하지 않겠다는 반복적 자기세뇌다. -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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