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게 뭐라고 - 시크한 독거 작가의 죽음 철학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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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좋아하는 편인데, 이 작가의 글이 국내에서 왜 이렇게 인기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혹자는 전작인 <사는 게 뭐라고>가 더 낫다고 하던데, 전작을 읽지 않고 바로 이 책을 읽어서일까? 모르긴 몰라도 전작에서는 광고에서 붙이는 '시크한', '거침없는'이라는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리는 글이 많은가보다. 제목과 부제만 보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초월한 어느 작가의 당당하고 거침없는 철학을 그려놓은 느낌이 든다.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기 마련인데, 죽음 앞에서 너무 소란스럽게 호들갑 떨거나, 고통을 참아가며 삶을 연장하고 싶지는 않다던 태도에는 공감가는 부분이 적지 않다. 그런데 책을 다 읽은 후 원제인 '죽을 의욕 가득'이라는 말을 곱씹어 보면, 번역된 '죽는 게 뭐라고'와는 뉘앙스 차이가 크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에 대한 관조적인 태도를 넘어서 자신의 바로 눈 앞에 닥친 죽음을 적극 수용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는 (약간의 허세가 섞인) 원제가 더 그 맛을 잘 살린 것 같다는 생각이다.


글을 읽다보면, 작가가 매우 자주 인용하는 "돈과 목숨을 아끼지 말거라"라는 아버지의 인생관이 작가의 삶에도 그리고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큰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더불어 동생과 오빠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지극히도 가난했던 어린시절의 삶은 죽음은 언제나 그녀 곁에 있는 것임을 깊이 각인시켰을 것도 같다. 이러한 배경이 그녀를 '시크한' 독거 작가로 성장시켜, 일흔 가까운 나이에 암 선고를 받고도 그렇게 초연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삶도 그렇지만 죽음에 대한 인식도 우리는 다분히 사적일 수밖에 없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이 정도의 솔직한 글을 쓴다는 것이 우리의 관점에서는 특이하고 독특할 수는 있겠지만, 죽음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가 매우 스타일리쉬한 것은 맞지만, 죽음에 관한 매우 색다른 관점이나 죽음을 대하는 지혜를 제시하는 것은 아니어서 막상 읽어보니 읽기 전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에세이 한 편을 읽으면서 뭐 그리 큰 것을 바라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내 입장에서는 웬일인지 작가의 글에 별로 이입되지 못한 채 각 장의 에피소드를 건조하게 눈으로 쫓는 독서를 하고 말았다. 덕분에 전체적인 느낌에 집중하기보다는, 무엇이라도 남기려고 한 문장 한 문장에 집착하여 의도와는 다르게 밑줄 친 부분이 많아졌다. 



일평생 돈을 얼마나 벌고 얼마나 썼는지를 생각해보니, 지금껏 당연하게 여겼던 일들도 꺼림칙하고 무서웠다. - 16쪽

나는 암 투병기가 너무 싫다. 암과 장렬한 싸움을 하는 사람도 너무 싫다. 비쩍 말라서는 현장에서 죽는 게 소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너무 싫다. - 24쪽

동물들은 고독을 견디는 강인하고도 적막한 눈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언어를 사용하는 동물은 고독한 눈을 잃어버렸다. 그런 눈은 온갖 욕망을 표현하는 도구로 전락하여 탐욕스럽게 번들거린다.
우리 인간은 숙명적으로 그렇게 변해버렸다. - 50쪽

장례를 치를 절(寺)을 정하는 등의 준비를 해봐도, 살아 있으면 그만 잊어버리고 만다. 내가 죽는 다는 사실을. - 54쪽

지금이 인생 중 가장 행복하다.
일흔은 죽기에 딱 적당한 나이다.
미련 따윈 없다. 일을 싫어하니 반드시 하고 싶은 일도 당연히 없다. 어린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죽을 때 괴롭지 않도록 호스피스도 예약해두었다.
집 안이 난장판인 것은 알아서 처리해주면 좋겠다.
저세상을 믿진 않지만, 만약 저세상이 있어서 아버지를 만난다 해도 지금의 나는 아버지보다 스무 살이나 많으니 정말로 곤란하다.
찢어지게 가난했다. 나는 모든 것을 가난으로부터 배웠다.
부자는 돈을 자랑하지만, 가난뱅이는 가난을 자랑한다.
모두들 자랑 없이는 살아가지 못한다. - 62, 63쪽

내가 생각하기로 사람은 집에서 죽어야 한다.
병원에서 죽는 게 당연해진 세상이지만, 사실은 자기 집 다다미 위에서 죽어야 마땅하다.
그때는 목숨이 지구보다 중하다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은 일본 아이들의 목숨보다 이라크 아이들의 목숨이 더 가벼운 세상이다.
다다시와 오빠의 목숨도 혼불이 되어 훌쩍 사라질 정도로 가벼웠다. 하지만 모든 목숨은 저울로 잴 수도 돈으로 바꿀 수도 없다. - 70, 71쪽

나는 죽을 때까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단, 병과의 장렬한 싸움만은 싫다.
죽을 때까지 무대에 서고 싶다는 연극배우가 나날이 야위어가는 모습으로 등장했던 무대는 싫었다. 관객에게 실례가 아닌가. 나는 통증이 시작되면 곧바로 마취제를 놓아주었으면 한다. 지체 없이 놓아주었으면 좋겠다. - 72쪽

나는 저세상을 믿지 않는다.
저세상은 이 세상의 상상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저세상은 이 세상에 있다. - 73쪽

아무리 냉정하고 침착한 사람이라도, 생각의 가장 안쪽과 마음의 가장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지는 본인조차 알 수 없다.
막상 부닥쳐보지 않으면 모른다.
환자의 언어 건너편에 있는, 말로 표현되지 않은 감정은 누구도 부닥쳐보지 않으면 모른다. 이성이나 언어는 압도적인 현실 앞에서는 별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 150쪽

어릴 적에 더 이상 가지고 놀지 않게 된 유리구슬 하나를 아무래도 찾을 수 없었을 때 느꼈던, 어쩔 도리 없는 쓸쓸함과도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어린 나의 작은 우주에서 소중한 물건이 사라질 때면 그 물건이 어딘가에 섞여 들었다가 다시 나온다거나, 오빠가 장난으로 훔쳐 간 것이라서 결국 호주머니에서 발견된다는 식의 희망을 품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라져버린 것이다. 나의 작은 우주에서.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었지만, 그 감정은 소중한 물건이 영원히 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걸 깨닫는 쓸쓸함이었다. - 152쪽

대화를 나눈 적도 없고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이, 이제는 결코 투명한 모습으로 고요히 내 앞을 스쳐 갈 일이 없어진 것이다.
단지 나를 스쳤던 사람이 영영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마치 이 세상에서 소중한 존재가 사라진 양 돌이킬 수 없는 쓸쓸함을 느낀다는 사실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 153쪽

제가 의사한테 남은 날이 1년이라는 말을 들어서, 남편이 그때부터 절대로 저한테 고함치지 않기로 약속했어요. 성질이 급한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저한테 가장 기뿐 순간은, 제가 아프다는 걸 잊어버린 채 남편이 또 고함을 칠 때예요. 그건 제 병을 남편도 까먹고 있다는 거잖아요? 그게 가장 기뻐요. 전 뭐든 다 하면서 지내요. 병 걸리기 전이랑 완전히 똑같아요. 제가 생각해도 신기해요. 아무 데도 안 아프거든요. 왠지 이건 내 힘이 아닌 것 같아요. 비웃을지도 모르겠지만, 내 힘이 아닌 다른 힘에 의해 살아가는 것 같아요. - 161, 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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