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짐승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두 눈을 아무리 비벼 보아도 글을 오롯이 씹어 삼킬 수 없는 이유는 나의 마음 때문인가 보다. 롤라를 외부에서 바라보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나'는 누구인지 혼란스럽다. '나'가 말하는 '네모'가 기숙사 방 안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제서야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귓가에 머무르고 흐릿했던 사물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헤르타 뮐러의 '마음짐승'은 롤라의 죽음만을 다루고 있지 않다. 롤라를 죽게 한 사람은 누구인지, 왜 죽었는지에 파고 들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롤라는 여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다. '나'의 기억속에 뚜렷하게 각인된 롤라의 죽음으로 '나'의 내부에 억압된 사슬이 스르르 풀려버리고 '나'와 에드가, 쿠르트, 게오르크가 함께 바라본 세상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나'와 롤라, 에드가, 쿠르트, 게오르크의 자유가 억압된 삶은 '숨그네'를 떠올리게 만들며 '마음짐승'이 '숨그네'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 착각하게 만든다. 그래도 '마음짐승'에서는 죽음을 무심하게 바라보게 만들진 않는다. 단지 침묵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해 준다. 롤라의 죽음에 대해 이제 모든 독자들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라져간 이 가련한 영혼을 기억해줄 이가 있을까. 흰 종이 위에 남겨진 글에서만이 롤라가 이 세상에 있었음을 증명해줄 뿐이다. 그러나 롤라가 남겨 놓은 공책이 사라졌으니 '나'가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그녀를 기억해내야 한다.

 

독재자 '차우셰스쿠' 아래에서 자유를 억압당한 채 살아가는 이들은 감시원의 시선 아래에서 말을 잃어가고 마음의 빗장마저 닫아 버린다. 자신의 소유물인 트렁크조차 자신의 것이 아니었으니, 수없이 많은 똑같은 열쇠들이 열어 젖힐 수 있는 트렁크는 이미 '억압'의 대상물이다. 편지 속에 머리카락 한 올을 넣고, 트렁크 위에도 머리카락을 둬야 할 만큼 나를 에워싼 모든 것이 나를 감시한다. 편지를 쓸 때는 손톱가위는 심문, 수색은 신발 등 우리들이 평상시에 아무렇지 않게 쓰는 단어들을 암호로 사용해야할 정도로 영혼까지 억압당한다. 생각들이 자유롭게 흘러 가지 못하고 고여 썩어가고 급기야 '나'와 에드가는 고향을 등지게 된다.

 

얼마동안의 세월이 흐른 후 '나'와 에드가가 고향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 그네들이 기억하고 있는 시간들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쿠르트', '게오르크'가 어떻게 되었는지 이미 언급하여 알고 있었지만 왜 '나'와 에드가가 그들과 함께 할 수 없었는지 알아가는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경감 프옐레가 집요하게 이들을 압박해 오고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에 불행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지만 모든 것에 침묵하지 못했던 이들의 끝이 어떻게 되었는지 봐야 한다는 것은 독자들의 마음에도 큰 상처를 남긴다.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조차 헤르타 뮐러의 시적 언어는 현실이 잔혹함을 알고 있음에도 물결이 잔잔하게 흐르는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듯 착각하게 만든다. 억압받는 삶이지만 다른 이들처럼 외면하고 살면 되지 않느냐, 는 말조차 던지지 못하게 막아 버린다. 옷 속에 그림자만 있을 것 같은 지쳐있는 한 남자의 모습을 표현한 글 정도만이 삶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전체주의의 흐름에 거스른 사람은 하나, 둘 사라져 가고 정신이 빼앗긴 이들만이 이 곳에서 살아간다. 도피하고, 떠날 수 있는 자들만이 이곳을 기억하고 죽은 이들만의 기억속에서나마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가장 아름다워야 할 청춘의 시대에 자유과 정신을 억압당한 이들이 자신의 가슴속에 있는 "마음짐승"을 누르며 억압하고 나서야 헤르타 뮐러의 아름다운 시적 언어에 의해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 있었으니 이 상황이 참 아이러니 하지 않는가. 무릇 역사란, 사람들의 삶이란 이렇게 되어지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사체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8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헛, 서장이 연설하는 동안 한가롭게 코털을 뽑는 고마지의 배짱은 그대로네. '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에서 함께 사건을 해결한 고마지의 부하 히토쓰바시 경사는 도대체 어디로 보낸 것일까. 이번 사건도 함께 했다면 제법 여유롭게 고마지를 상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사체' 편에서는 이곳에 부임한지 얼마되지 않은 신참 이쓰키하라가 함께 하니 또 고마지에게 휘둘리는게 당연하지.
 
신원 불명의 사체가 등장하고 이 사체를 중심으로 묻혀져 있던 일들이 수면으로 떠오르는 것은 '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과 비슷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비슷한 패턴으로 사건이 해결되기에 조금 지루해지는데도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없으니 어찌된 일일까. 거기다 사건 현장을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이 조금씩 사건에 관여하고 있어 누가 진짜 범인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할 수 밖에 없다.
 
이왕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졌으니 책을 읽으면서 내가 떠올린 바보 같은 생각을 말해 보자면 '구도'가 히데하루가 아닌가 했었다. 12년이나 지났으니 히데하루가 구도라는 다른 이름으로 이곳에 찾아온다고 해도 알아볼 사람이 있을까 싶었으니까. 모든 것이 구도의 복수가 아닐까 했지만 왠걸 그래도 가족들이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은 잊고 있었던 것이다. 에효, 내가 그렇지 뭐. 역시 나는 탐정 소질이 전혀 없나 보다.
 
처음에 마코토에 의해 발견된 신원불명의 사체가 누구란 것이 나중에는 밝혀지지만 왜 죽었는지, 죽은 이유에 대해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는 마지막 책장을 덮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죽는 것이 이렇게 쉽나? 왜 죽은 거지? 고개를 갸웃 거리게 된다. 고마지가 밝혀낸 이 사건 곳곳에는 구멍이 너무 많다. 한 사람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가 아니기 때문인데 과연 누구에게 화살을 돌려야 할지 모르겠다.
 
"저기요, 누구누구님(죽은 사체에게 묻고 싶어 이렇게 부른다. 사건의 결정적인 열쇠가 될 수 있으므로 이름을 밝힐 수 없어 편의상 이렇게 부르니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기 바란다.) 이왕 이렇게 죽을 거 멋지게 복수라도 하고 죽지, 너무 억울하지 않나요? 이게 복수라고 생각했겠지만 자신의 죽음이 가장 억울한 법인데 왜이리 속절없이 세상을 버렸소" 참 답답하다. 그래도 뭔가 변화라도 생겼으니 소박한 복수라면 복수일 수 있겠지만 억울한 죽음임에는 틀림 없다. 뭐, 또 한 명이 죽었으니 복수는 복수겠다. 죽은 사람에게는 소박함을 넘어서는 복수일테다.
 
이 사건으로 큰 혜택을 입은 사람이 누가 있나 생각해 보니 없는 것 같다. 서로 상처만 남겼을 뿐이다. 나쁜 사람은 벌을 받았고, 착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은 고마지의 배려로 이 사건에서 조용히 빠져 나갔다. 아, 이번 일로 이쓰키하라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으니 가장 많은 혜택을 누렸다고 볼 수 있겠다. 헌책방 어제일리어에 로맨스 소설이 많지만 사건 덕분에 '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사체'가 핏빛처럼 선명한 붉은 색으로 보였는데 덕분에 그래도 핑크빛 분위기로 마무리 된 것 같아 다행이라면 다행이겠다. 간간이 '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에서 등장한 주민들이 언급되어 반갑기도 했다. 다음 권 '네코지마 하우스의 소동'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벌써부터 궁금한데 그 때도 범인이 누구인지 모르겠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이 생각을 하면 나 자신이 한심해서 한숨만 나온다. 아냐, 다음에는 정신만 빠짝 차리면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7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책 표지가 강렬하거나 화려하지 않아 시대적으로 뒤떨어져 있는 사건을 다루고 있는 것 같아 독자들의 흥미를 끌진 못한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형사반장 고마지의 쿨한 매력에 빠져들게 되는데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듯한 그의 행보를 따라가다 보면 그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되어 적당히 타락한 그에게 동조하게 되기도 한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곳은 바다가 보이는 빌라지만 하자키 해변은 여름 한 철 피서객들이 떠나가고 나면 황량하기 그지 없는 곳으로 버스도 몇 대 밖에 다니지 않는 외진 곳이다. 그렇기에 빌라 매그놀리아의 비어 있는 3호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사체가 발견된 후 이웃간에 서로 범인이라고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누가 범인일까. 서로가 범인이라고 으르렁 거리다 보니 아예 폭로전이 되어 버렸다. 나의 눈에는 모두 범인으로 보인다. 정말, 용의자가 너무 많다.

 

"내가 그랬어요"

범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범인이 누구란 것이 밝혀지고 난 후에도 나는 뭔가에 얻어 맞은듯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범인이라니, 이런 일이야 추리소설을 읽을때마다 겪는 것이지만 이번에는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3호에서 발견된 사체 외에 또 한 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연이어 계속해서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는데 다행히 또 다른 사건은 터지지 않았다. 이 살인사건으로 서로에 대해 자세하게 알게 된 주민들은 앞으로 더 가까워질까, 외면하게 될까. 가족사에 얽힌 일들이 이 사건으로 해결이 되는 것을 보면서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범인이 잡혀 가슴을 후련하게 하기 보다는 마음을 아프게 한다.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인지 그 경계선이 모호해져 버렸다.

 

모든 퍼즐의 조각들을 다 맞추었지만 이 사건은 완전 범죄일지도 모른다. 범인이 잡혔으니 완전 범죄가 아니라 할지도 모르지만 철저하게 조작되어 고마지조차 알아채지 못했으니 이 사건은 깨끗하게 해결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점이 독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혹시 고마지는 모든 것을 완전하게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 알고 있었지만 한 번쯤 눈감아 준 것은 아닐까.

 

"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은 끝까지 긴장의 끝을 놓치지 못하게 한다. 누구든 쌍둥이 마야, 아야가 발견한 것을 관심있게 봐 주면 좋겠다. 의외로 아이들의 시선이 가장 정확할 수 있으니까. 고마지가 이 점을 잊지 않았기에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겠지만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사건이 완전하게 해결될 수 있으며 이 같은 일들이 또 벌어지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jy 2010-08-31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들 리뷰는 괜찮다고 하시는데요~ 이 시리즈가 표지가 맘에 안들어서 쫌 그렇습니다만,
님의 멋진 리뷰를 보니 확~~~ 땡깁니다요^^
 
쪼르르 또또 - 올바른 의사표현을 도와주는 책 차일드 커뮤니케이션 Child Communication
이상희 글, 혜경 그림 / 상상스쿨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름이 '쪼르르 또또'인줄 알았다. 또또에게 이 말을 한다면 "선생님, 제 이름이 쪼르르 또또라고 생각했대요" 하면서 고자질을 했을까. 아니, 이제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으니 아마도 친구들과 함께 고민하며 선생님께 알릴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이건 그냥 한 번 씨~익 웃고 넘기면 돼"라고 했을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아도 동생이 내 말을 안들을 때 쪼르르 엄마에게 달려가 "동생이 이랬어요, 저랬어요" 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동생들도 "누나가, 언니가 이랬어요"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기억인데 자라면서 싸우는 횟수가 줄어들긴 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의견 충돌을 일으킬 때가 있는 것을 보면 아직도 마음은 동심의 세계에 있나 보다.   


 

종이접기하다가도 또또는 쪼르르~ "선생님, 선생님 치치가 빨간 색종이를 몽땅 가졌어요!", 점심 때에도 또또는 쪼르르~ "선생님, 선생님 고고가 밥 남겼어요!" 아, 정말 얌체다. 이러니 친구들이 똑같이 "선생님, 선생님 쪼르르 또또가 단추 잘못 채웠어요", "선생님, 선생님 쪼르르 또또가 볶음밥에서 당근 골라내요!" 하고 이르지. 단추 잘못 채운것도 이르나. 아, 정말 유치하게 별걸다 이른다. 이런 것을 보면 역시 애들이다.
 
정말 선생님 말씀대로 이러다 모두들 쪼르르가 되겠다. 선생님은 어른들에게 알려야 할 것인지, 아닌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다 함께 알아맞히기 놀이'를 제안한다. 친구가 신기한 모자를 쓰고 왔을 때 "나도 한 번 써 보고 싶어지니까 선생님께 알려야 돼", "자꾸 모자를 쳐다보게 되니까 쪼르르 달려가서 일러야 돼" 등,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친구한테 한번 써 보자고 그냥 얘기하면 돼"라고 현명한 판단을 하는 아이들. 아이들은 함께 고민하며 스스로 판단해 나간다. 애들이 뭘 알아? 라고 생각하지 말자. 이렇게 조금씩 성장해 나가고 있으니까.  
 

 

친구가 혼자 울고 있을 때 그냥 좀 울고 싶을 때도 있다고 배려해 주는 모습을 보면 이미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많이 성장했는지 알 수 있다. 쪼르르 달려가기 전에 알려야 할 일인지, 아닌지 먼저 생각해 봐야 하는 것, 이것은 어른에게도 해당 되는 일일 것이다. 고자질 하는 유아의 행동을 바로잡을 수 있고, 왜 아이들이 고자질을 하는지 그 원인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니 이 책을 즐거움 삼아 가볍게 읽지는 말아야겠다. 쪼르르 달려가 이르는 것도 관심을 받고 싶은 아이의 다른 표현이니까. 또또야, 쪼르르~ 쪼르르~ 이번에는 어딜 가니. 오늘도 또또와 친구들은 바쁜가 보다. 아이들은 이렇게 매일 매일 한 뼘씩 자라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귀신전 6 - 완결
이종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검은 기운이 하늘을 뒤덮고 거리는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이 휑하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바이러스라도 퍼진 듯 도시는 괴괴하기만 하다. 이럴 땐 영웅이 나타나 이 지구를 구해줘야 할텐데, 이곳에는 요괴와 자귀 등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이들은 퇴마사와 그외 영적인 능력이 있는 몇 몇 사람들 뿐이다.

 

육신의 원래 주인인 영을 몰아내고 죽은 영들이 육신을 차지하고 사령자들이 된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이승에 남겨진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해야하는 이 싸움을 영적 전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결코 그동안 내가 알고 지내온 이들의 육신을 향해 총을 겨눌 수는 없다. 이것이 퇴마사들이 처해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일 것이다.

 

그동안 소심하게 행동했던 공표가 악귀들과 만나 싸우면서 아이들 앞에서 멋진 퇴마사의 모습을 보여주며 활약할 때 나는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꼭 순정만화에 등장하는 멋진 왕자님이라도 보는 듯 그동안 공표를 괄시했던 아이들에게 "이것봐라 너희가 그동안 공표를 무시했지. 얼마나 멋지냐?"라고 말해주고 싶으니 나는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게다. 나는 요괴가 바로 옆에 다가와도 아무 생각없이 당할 그저 내 인생에서나 주인공일뿐 '귀신전' 작품 속에 등장한다면 '지나가는 사람 10'정도로 세상에서 금방 사라지게 될 인물일 뿐인 게다. 이런 나도 지켜야 할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 이승은 이대로 사라져서는 안된다고 굳게 믿는다. 저승차사가 아무리 인간은 이 세상에서 불필요한 존재라 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해도 아직 생명이 붙어있는 한 나는 살.고.싶.다.

 

이룩해 놓은 모든 문명이 사라진다는 것은 내가 가진 모든 기억과 그 속에 포함된 추억까지 사라질 수 있음을 말한다. 혜윰은 모든 것이 정해진 운명대로 되어지고 있다라고 말했지만 "무엇이 운명이란 말인가" 소리치고 싶다. 인하가 당한 고통이, 석우를 사랑한 혜정의 운명도 모두 예정되어 있었다는 것인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한 기억을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무참히 깨부수다니, 이것이야말로 우리들에게 모든 희망을 도려내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모든 것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다시 시작하는 여정 또한 정해져 있는 운명은 아닐까. 이승의 움직이지 않는 모든 것을 사라지게 만드는 '는개'는 사령자들의 몸에도 예외를 남기지 않을 터 결국에 남는 것은 죽은 영들 뿐일텐데 정말 이승이 이렇게 사라져도 좋은 것인가. 누구에게 이런 물음을 던져야 할까. 정녕 한 번만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른 세상으로 바꿀 수 있을까?

 

눈물을 흘리고 싶어도 울지 못했던 영들이 사령자가 된 후 마음껏 울 수 있게 되었으나 인간이었던 옛 기억들을 아직도 잊지 않고 모두 함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잠깐 동안의 휴식이 찾아온 듯 평온하게 보인다. 선일, 용만, 박 영감, 수정, 공표 등의 퇴마사들은 이제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 싸움에 걸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낼 수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내가 작가라면 퇴마사들이 멋지게 적을 무찌르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결말을 맺을텐데 '귀신전'의 작가 이종호는 마지막 결말을 결국 우리들의 손에 맡겼다. 지금 내게 가장 두려운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결말을 바꾸지 못하고 먼 훗날에도 그 끝에 놓여져 있는 것이 하늘을 가득 덮고 있는 검은 기운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설마, 그렇지는 않겠지. 우리들 마음속에는 아직도 따뜻한 사랑이 있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