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평원의 개미들 - 제2회 문학동네 청소년장편소설 공모 대상 수상작
오송이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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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평원에 있는 소년과 C는 신기루 같았다. 동쪽과 서쪽을 잇는 철길 뿐인 이 곳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도저히 현실 같지 않았다. C와 소년은 C의 떠나간 애인을 기다리고 있다. 곧 닥쳐올 모래폭풍은 시간이 멈춘 듯한 이 곳에서 유일하게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C에게 "애인이 정말 기차를 타고 돌아 온다고 했느냐"라고 묻고 싶을 정도로 소년이 들려준 오래지 않은 이야기들이 점점 나의 머릿속에서조차 희미해진다. 다가오는 모래폭풍만이 유일하게 모두에게 긴장감을 선사한다. 어쩌면 소년에게만 두려움을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C는 이곳에서 죽기를 각오한 것 같다. 다만 모른척하고 있을 뿐인 애인이 결코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소년은 이곳에서 죽을 이유가 없다. C의 마음이 바뀌길 기다리고 있지만 집으로 돌아갈 길을 잊은 소년에겐 C와 함께 도시로 가는 것만이 유일하게 살 수 있는 길이다. 아니면 혼자라도.

 

아무도 찾아올 것 같지 않은 소년과 C과 있는 이곳에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오고 간다. 소녀 집배원, 세금징수원 노인, 갑부, 임신부, 개 한마리, 강도, 경찰까지. 이들은 모두 한 가지 사건으로 동쪽을 출발하여 서쪽으로 향하지만 이들에 의해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된 것은 소년 뿐이다. 보이는 것이라곤 모래뿐인 이곳에도 삶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모래평원의 개미들", 이 책이 끝까지 이 의미를 잃지 않는 것은 모두 이 소년 덕분이다.

 

소년이 모래 위를 이동하는 개미들을 유심히 바라볼 때 나는 이 개미들이 이곳에 있는 이유를 떠올려 보려 했다. '모래평원의 개미들'속의 주인공이 혹시 우리들이 아닌 개미들이었나 떠올려 보지만 그저 궁금증만 남을 뿐이다. 서쪽으로 간 경찰은 다음에 어떻게 되었을까. 다시 동쪽으로 왔겠지. 혹시 소년의 말을 믿고 세금징수원을 잡아간 것은 아닐까. 아니면 모래더미에 묻혀 있을지도 모를 다이아몬드를 찾아 모래평원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고통스러운 갈증과 더위, 해가 지고 난 후의 추위를 견뎌야 하지만 동쪽과 서쪽을 잇는 이 철길로 인해 사람들은 모래평원에 가는 것을 더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 비록 기차가 더이상 다니지 않는 길이라 해도 이 철길은 도시와 도시를 잇고 있으니 언제든 그 끝에 닿는다. 그것을 아는 한 이곳으로 언제나 사람들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이 책의 결말을 떠올려 보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모래폭풍 뒤에 무엇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간단한 일이다. 과연 모래폭풍은 올까 생각해보면 의심이 가지만 이 철길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여전히 미련을 못 버리게 되는 이유는 소년과 C만이 있었던 이 곳에서 너무나 많은 죽음들을 봐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 죽음은 이제 모래속에 갇혀 움직이지 않는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 형태가 변하고 그들을 기억하는 이조차 남아 있지 않겠지만 여전히 인간들은 이 철길를 이정표 삼아 동쪽과 서쪽을 오고 갈 것이며 그 속에 모래더미에서 살아가는 생명들 모두 자신들의 삶을 열심히 살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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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유희 뫼비우스 서재
막심 샤탕 지음, 이세진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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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3부작'으로 만난 막심 샤탕은 대단히 매력적인 작가다. 하지만 '악의 3부작'이 생각나는 '악의 유희'는 그 내용에서 '악의 3부작'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다룬다. 마케팅의 전략인지 뭔지, 이 책은 '악의 3부작'과 닮은 표지와 책 제목으로 연결선상에 놓여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들지만 '악의 3부작'과의 유사함으로 이 책을 들었다면 당신은 어쩌면 대단히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1달러 지폐에 담겨져 있는 비밀, 오컬트적인 신비로움, 링컨과 케네디 암살과 관련된 사실 등은 다른 책들에서도 충분히 접할 수 있는 내용들이라 이 책의 초반부에 해당하는, 야엘이 그림자들에 의해 공포심을 느끼고 자료들을 찾으면서 이 세상의 다른 면들을 보게 되는 장면은 지루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거울 속에서만 나타나는 시커먼 형체는 밤에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공포심을 선사하는 바, 지루함을 넘어서 야엘을 압박하는 존재가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욕구를 건드린다. 야엘이 처음 만난 토마스에게 자신의 집에 함께 가 줄 것을 요청하는 이른바 아주 대담한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처음 거울 속에서, 컴퓨터 모니터에서 대면한 존재에 대한 공포심 때문이지만 하나씩 진실을 알아갈 수록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을 수 있기에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는 일에 토마스와 함께 강력하게 대응할 수 밖에 없다.

 

세상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 '우리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끊임 없이 메시지를 보내는 그 무엇들. 이들이 왜 야엘을 선택했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책을 계속 읽으면 알 수 있지만 그 전에 그녀가 의미 없이 잠깐 직업으로 몸 담게 된 박제일과 교통사고로죽은 엄마, 이상하게 설계되어 있는 집 등 이 모든 것이 밝은 면보다는 어두운 면을 보여줘 야엘이 선택받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한다. 자신이 일하는 곳에 와서 늘 눈알만 사가는 손님을 봐라. 어디 한 군데 멀쩡한 사람이 있는지. 이런 환경에 놓인 야엘이 과연 거울 속에 등장하는 어두컴컴한 존재들에게 휩싸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유일하게 야엘에게 힘이 되어 주고 빛이 되어 주는 존재는 지금으로선 토마스 뿐이다.

 

유령이라도 나타났을까. 거대한 악의 세계에서 뻗어나오는 힘인가. 머릿속에 수많은 질문들이 떠오르지만 그 중에 단 하나의 질문인 "야엘과 토마스로 인해 밝혀지는 것들과 오롯이 마주할 수 있는가"의 질문에 답해 보자면 그저 이 책의 책장을 넘길 뿐이라고 답할 수 있을 뿐이다. 사실 음모론이 담겨져 있는 책들은 지루해서 책장을 넘기는 것이 쉽지 않다. 막심 샤탕의 '악의 3부작'만큼의 흡인력 또한 없기에 이 책 '악의 유희'는 많은 부분 인내심을 요구한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이 책의 마지막까지 야엘과 토마스를 따라가 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될 테니까. 그것만이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악의 유희', 책 내용과 맞지 않는 듯 하지만 묘하게 어울리는 듯한 느낌 때문에 잠시 책 표지 안에 그려진 파란 손들을 만지는 것이 저어될 정도로 나는 지금 야엘을 덮친 그 어둠의 힘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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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라장 사건
아유카와 데쓰야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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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많은 희생자가 나온 리라장 사건. 애초부터 예정된 살인사건이었지만 그 결과는 참혹했다. 연쇄살인사건의 수수께끼를 풀었다는 니조의 으스대는 꼴은 결국 끔찍한 결과를 불러왔고 몇 명의 희생자가 더 나와 버렸다. 왜 처음부터 "니가 범인이지"라고 밝히지 않은 것일까. 증거 불충분에다가 모든 퍼즐들이 제자리게 끼어 맞춰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속 사건이 터지게 방치할 수 밖에 없었겠지만 역시 경찰의 무능력은 이번에도 확연하게 드러나고야 말았다. 살인사건마다 시체 곁에 떨어져 있는 스페이스 카드. 이것은 연쇄살인사건의 시작을 예고한다. 이 카드를 모두 사용한다고 하면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나오게 될 것인가. 호시카게 탐정을 빨리 불러 들였다면 한두 명의 희생으로 이 사건은 막을 내렸을 텐데 억울한 죽음만 늘었다. 

 

나는 리라장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내내 '마키'가 범인일 것이라는 예측했다. 아마 릴리스의 약혼자로 그녀를 죽이기 위해 어느 정도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아마 릴리스는 독자인 내가 보기에도 너무 버릇이 없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어 그녀가 죽었을 땐 동정심마저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 죽음은 너무도 끔찍했다.)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냈다 여겼지만 역시나 범인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인물 중 하나였다. 처음 일곱 명이 이 리라장을 찾았고 뒤에 니조가 합류했으므로 한 명씩 희생될 때마다 범인의 윤곽은 점점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었음에도 나는 이번에도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지 못했다. 아, 이 무능함이며. 나는 경찰들의 무능함을 탓할 자격이 없다. 하지만 작가가 보여주는대로 따라가다 보니 내 개인의 생각을 전혀 할 수 없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조금 봐줄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사건을 직접 눈으로 봤다면 범인을 잡아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건 오로지 내 의견일 뿐이지만.

 

리라장을 방문한 일곱 명에게는 모두 살인사건의 범인이 될 소지가 있었다. 서로가 적대시까지 하는 관계인데도 왜 이들이 함께 리라장을 방문했는지 의문이었는데 호시카게에 의해 밝혀진 것을 살펴보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일이다. 모든 것은 계획되어 일어난 일이었다. 살인사건이 벌어졌을 때 얼른 이 무서운 곳을 떠났어야 했는데, 범인이 누구인지 예측 가능했다면 빨리 경찰에게 밝혔으면 되었는데,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하는 반전이 독자들을 충격에 빠뜨리지만 여러가지로 아쉬움이 많이 생긴다. 아비코가 이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경찰에게 체포 되었을 때 사건이 일단락 되었다면 '리라장 사건'은 세상속에서 묻혀 버렸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억울하게 아비코만 희생되고 독자들의 답답함도 풀리지 않은 채 땅 속에 묻혀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과 증오, 욕망 등 이 모든 것들이 사건이 끝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 감정들로 인해 사건은 호시카게의 손에 의해 해결이 되고 마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안위 따위 벗어던지고 몸을 던져 버리는 것을 과연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 모든 살인사건이 '사랑'을 지키기 위해 일어났으니 한 편으로 생각하면 정말 어이 없고 슬프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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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서 1 문학동네 청소년문학 원더북스 14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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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영웅을 꿈꾼다. 어릴적부터 영웅의 이야기를 들으며, 읽으며 자랐고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늘 멋진 영웅이 눈 앞에 나타나기를 고대한다. 영웅은 정의로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또한 인간다움을 가지고 있어 착한 모습과 나쁜 모습이 공존해 세상에는 그리고 이야기속에는 늘 사악한 일이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영웅'의 이야기에 홀려 자신을 던져 '최후의 그릇'이 되어 버린 히로키를 찾아 오기 위해 유리코가 대적해야 할 상대는 '영웅'의 다른 모습인 '황의를 입은 왕'이다. '이름 없는 땅'에서 벗어난 이 '황의를 입은 왕'을 찾아야 오빠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너무나 거대해진 이야기속에서 유리코는 오빠를 구하는 일이 세상을 구하는 일이 되어버린 것을 믿을 수 없지만 무서운 이 일을 오빠를 위해 해내고자 한다. 임무를 완수하고 '이름 없는 땅'을 떠난 사람도 있다 했으니 자신이 용기를 낸다면 분명 오빠와 함께 부모님이 있는 따뜻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처음 '영웅의 서'를 들었을 땐 유리코의 오빠가 친구들을 찌르고 도주했다는 내용에 판타지 장르의 책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히로키가 현실로 돌아올 수 있게는 해 줘야 하지 않냐는 마음 뿐이었다. 분명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믿었기에 유리코가 오빠를 데려오기 위해 한 긴 여정이 모두 꿈이 되는,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지게 되는 일을 겪을 수도 있겠다, 고 생각했었다. 나의 머릿속에서 소라, 아쥬, 애시, 유리와 만난 기억이 모두 사라지더라도 상관 없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회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왕따'문제가 한 세상을 구하게 되는 거대한 이야기 속에 들어가면서 히로키 한 개인의 생각은 나의 기억속에서 금세 잊혀져 버렸다. 그랬기에 히로키에 대한 이야기에 나도 어느 정도 책임감을 느낀다. 잊혀졌다는 것에 대해.

 

유리코는 마음이 참 따뜻한 사람이다. 이름이 없이 '무'의 존재로 살아가는 무명승에게도 마음을 준다. '황의를 입은 왕'에 의해 다친 사람들을 치료해 주고자 하고 '소라'라고 이름 붙인 자신의 시종 무명승에게 유리코는 '이름 없는 땅'에서 추방당한 것이 아닌 '공허의 서'가 선택했음을, 이제 인간다움을 찾게 될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그녀의 이야기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나는 진정으로 유리코를 동정했다. 그녀가 짊어진 올 캐스터의 운명을. 히로키의 운명을.

 

내가 읽은 '영웅의 서'에서 만난 이들은 어딘가에서 생명을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유리코는 분명 테두리 안의 존재하는 실제라 해도 유리코 개인의 삶은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므로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진짜가 아닌 거짓, 어딘가에서 생명을 가지고 살아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살아낸다는 표현이 정확한 걸까. '자아내는 자'에 의해 탄생한 이야기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어낸 이야기 속의 인물일 뿐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까. 나의 삶이 이야기라 할지라도 잊혀지지 않고 어딘가에 존재하길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너무나 많은 질문이 생각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유리코가 경험한 일들 또한 수많은 이야기들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아쥬, 소라, 유리, 애시와의 만남이 '죄업의 대륜'에 흡수되지 않고 계속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아직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았으니까.

 

판타지 장르의 성격에 맞지 않게 '왕따'문제로 독자들의 마음을 격하게 떨리게 만들더니 이런 문제는 아랑곳 없이 자기 마음대로 작가 미야베 미유키는 이야기를 끝맺어 버렸다. 물론 강한 여운을 남겨두긴 했다. '자아내는 자'의 손에 의해 탄생한 이야기는 여전히 생명을 가지고 테두리 밖에서 살아내고 있을 것이기에 이런 여운은 독자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다. 하지만 '자아내는 자'의 죄는 제쳐두고 '이름 없는 땅'을 좀 더 따뜻한 세상으로, 푸른 하늘이 있는 곳으로 만들었다면 생명을 가지고 움직이는 이야기속의 주인공들이 온통 회색빛으로 보이지 않았을텐데, 하는 아쉬움 때문에 나는 결코 이 '영웅의 서' 이야기를 잊지 않겠다 다짐한다. 그리하면 여전히 생명을 가지고 있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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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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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가 파스텔톤으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했더니 단편소설들의 주인공들을 다 모아놓은 거였다. 이 책은 밤에 읽으면 안되겠다. 문득, 문득 말이다. 첫 번째 단편인 [카스테라]를 읽고 나면 손 안에 카스테라가 있는 듯 입 안 가득 베어 먹고 싶어지니까. 실제로 달콤하게 녹아드는 맛까지 느낄 수 있으니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할 게다.

 

너구리, 기린, 도도새 등등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드넓은 지구에 어째 주인공이라고는 인간이 아니라 이 녀석들이 주인공들인 것 같다. 가장 가까운 이들이 너구리임을 숨기고 살고 있다거나(단편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내가 모르는 곳에서 오리배를 타고 하늘을 날아 올라 세계를 주유하고 있지는 않은지 까만 밤 하늘이라도 주의 깊게 쳐다 봐야 하고(단편 [아, 하세요 펠리컨]). 오리배가 무슨 유에프오도 아니고 수납공간에, 사람들이 생활할 공간까지 마련하여 날아다니다니, 정말 박민규 그의 글은 어디까지 이해해야 하는 걸까. 거기다 주인공의 눈에 이게 오리배인줄 알았는데 또 펠리컨으로 보이는 게지. 작가의 상상력은 독자들의 수준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단편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마지막 글에선 또 왜 이렇게 서글픔을 느껴야 하느냐고. 기린이 자신을 기린이라고 소개하는데 왜 이렇게 슬픈지 모르겠다. 사라진 아버지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인지. 이 기린이 아버지였다면 이 단편의 결말은 아주 아주 깔끔하게 박민규 식으로 처리가 되었을텐데 말이다. 이걸 아쉽다고 해야 하나. 푸시맨이라는 단어는 지금은 쓰지 않아 옛 과거에나 있었던 단어로 생경스럽기만 한데 시간당 삼천원을 받기 위해 푸시맨을 하는 '나'가 지하철 안으로 아버지를 밀어넣어야 하는 상황은 보통의 감정으로 볼 수 없는 아주 슬픈 상황일 것이다.

 

먼 우주로 나가 지구를 볼 수 있는 방법이 흔하지 않은데 단편 [몰라 몰라, 개복치라니]를 읽으면 나도 따라하고 싶어진다. "애들은 따라하지 마세요. 아니 어른들도"라는 푯말을 붙이고 시작해야 할 정도로 승강장을 통해 우주로 날아오르는 일은 대단히 쉬워 보인다. 핸들의 조작만 신경쓰면 되니 말이다. 우주에서 본 지구의 모습은......지구의 표면을 향해 거대한 빛이 터져 나오고 드디어 산란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모두 우주 밖으로 튀어 나오는 것인가. 사실 이 부분에서는 어떤 의미를 품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 되지 않는다. 산란하는 장면을 보던 이들이 핸들을 돌리지 않았으면 어땠을까가 먼저 떠오르는 것을 보면 이 단편이 그리 낯선 것은 아닌것 같긴 하다만.

 

단편 소설의 맛깔스러움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려 주는 박민규의 "카스테라". 풍자소설 같은 글들이 독자들을 그리 심각하게 몰아대지 않고 조금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주지만 오히려 이런 것들이 삶의 무게를 더 무겁게 만든다. 사람들이 아닌 동물이나 새들이 주인공으로 나와 인간과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솔직히 더 슬프다. 그렇다고 눈물을 찍어낼 정도로 흐르진 않지만 뭐라 말 할 수 없는 비애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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