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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서 1 ㅣ 문학동네 청소년문학 원더북스 14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사람들은 영웅을 꿈꾼다. 어릴적부터 영웅의 이야기를 들으며, 읽으며 자랐고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늘 멋진 영웅이 눈 앞에 나타나기를 고대한다. 영웅은 정의로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또한 인간다움을 가지고 있어 착한 모습과 나쁜 모습이 공존해 세상에는 그리고 이야기속에는 늘 사악한 일이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영웅'의 이야기에 홀려 자신을 던져 '최후의 그릇'이 되어 버린 히로키를 찾아 오기 위해 유리코가 대적해야 할 상대는 '영웅'의 다른 모습인 '황의를 입은 왕'이다. '이름 없는 땅'에서 벗어난 이 '황의를 입은 왕'을 찾아야 오빠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너무나 거대해진 이야기속에서 유리코는 오빠를 구하는 일이 세상을 구하는 일이 되어버린 것을 믿을 수 없지만 무서운 이 일을 오빠를 위해 해내고자 한다. 임무를 완수하고 '이름 없는 땅'을 떠난 사람도 있다 했으니 자신이 용기를 낸다면 분명 오빠와 함께 부모님이 있는 따뜻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처음 '영웅의 서'를 들었을 땐 유리코의 오빠가 친구들을 찌르고 도주했다는 내용에 판타지 장르의 책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히로키가 현실로 돌아올 수 있게는 해 줘야 하지 않냐는 마음 뿐이었다. 분명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믿었기에 유리코가 오빠를 데려오기 위해 한 긴 여정이 모두 꿈이 되는,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지게 되는 일을 겪을 수도 있겠다, 고 생각했었다. 나의 머릿속에서 소라, 아쥬, 애시, 유리와 만난 기억이 모두 사라지더라도 상관 없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회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왕따'문제가 한 세상을 구하게 되는 거대한 이야기 속에 들어가면서 히로키 한 개인의 생각은 나의 기억속에서 금세 잊혀져 버렸다. 그랬기에 히로키에 대한 이야기에 나도 어느 정도 책임감을 느낀다. 잊혀졌다는 것에 대해.
유리코는 마음이 참 따뜻한 사람이다. 이름이 없이 '무'의 존재로 살아가는 무명승에게도 마음을 준다. '황의를 입은 왕'에 의해 다친 사람들을 치료해 주고자 하고 '소라'라고 이름 붙인 자신의 시종 무명승에게 유리코는 '이름 없는 땅'에서 추방당한 것이 아닌 '공허의 서'가 선택했음을, 이제 인간다움을 찾게 될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그녀의 이야기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나는 진정으로 유리코를 동정했다. 그녀가 짊어진 올 캐스터의 운명을. 히로키의 운명을.
내가 읽은 '영웅의 서'에서 만난 이들은 어딘가에서 생명을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유리코는 분명 테두리 안의 존재하는 실제라 해도 유리코 개인의 삶은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므로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진짜가 아닌 거짓, 어딘가에서 생명을 가지고 살아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살아낸다는 표현이 정확한 걸까. '자아내는 자'에 의해 탄생한 이야기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어낸 이야기 속의 인물일 뿐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까. 나의 삶이 이야기라 할지라도 잊혀지지 않고 어딘가에 존재하길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너무나 많은 질문이 생각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유리코가 경험한 일들 또한 수많은 이야기들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아쥬, 소라, 유리, 애시와의 만남이 '죄업의 대륜'에 흡수되지 않고 계속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아직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았으니까.
판타지 장르의 성격에 맞지 않게 '왕따'문제로 독자들의 마음을 격하게 떨리게 만들더니 이런 문제는 아랑곳 없이 자기 마음대로 작가 미야베 미유키는 이야기를 끝맺어 버렸다. 물론 강한 여운을 남겨두긴 했다. '자아내는 자'의 손에 의해 탄생한 이야기는 여전히 생명을 가지고 테두리 밖에서 살아내고 있을 것이기에 이런 여운은 독자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다. 하지만 '자아내는 자'의 죄는 제쳐두고 '이름 없는 땅'을 좀 더 따뜻한 세상으로, 푸른 하늘이 있는 곳으로 만들었다면 생명을 가지고 움직이는 이야기속의 주인공들이 온통 회색빛으로 보이지 않았을텐데, 하는 아쉬움 때문에 나는 결코 이 '영웅의 서' 이야기를 잊지 않겠다 다짐한다. 그리하면 여전히 생명을 가지고 있을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