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가 파스텔톤으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했더니 단편소설들의 주인공들을 다 모아놓은 거였다. 이 책은 밤에 읽으면 안되겠다. 문득, 문득 말이다. 첫 번째 단편인 [카스테라]를 읽고 나면 손 안에 카스테라가 있는 듯 입 안 가득 베어 먹고 싶어지니까. 실제로 달콤하게 녹아드는 맛까지 느낄 수 있으니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할 게다. 너구리, 기린, 도도새 등등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드넓은 지구에 어째 주인공이라고는 인간이 아니라 이 녀석들이 주인공들인 것 같다. 가장 가까운 이들이 너구리임을 숨기고 살고 있다거나(단편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내가 모르는 곳에서 오리배를 타고 하늘을 날아 올라 세계를 주유하고 있지는 않은지 까만 밤 하늘이라도 주의 깊게 쳐다 봐야 하고(단편 [아, 하세요 펠리컨]). 오리배가 무슨 유에프오도 아니고 수납공간에, 사람들이 생활할 공간까지 마련하여 날아다니다니, 정말 박민규 그의 글은 어디까지 이해해야 하는 걸까. 거기다 주인공의 눈에 이게 오리배인줄 알았는데 또 펠리컨으로 보이는 게지. 작가의 상상력은 독자들의 수준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단편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마지막 글에선 또 왜 이렇게 서글픔을 느껴야 하느냐고. 기린이 자신을 기린이라고 소개하는데 왜 이렇게 슬픈지 모르겠다. 사라진 아버지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인지. 이 기린이 아버지였다면 이 단편의 결말은 아주 아주 깔끔하게 박민규 식으로 처리가 되었을텐데 말이다. 이걸 아쉽다고 해야 하나. 푸시맨이라는 단어는 지금은 쓰지 않아 옛 과거에나 있었던 단어로 생경스럽기만 한데 시간당 삼천원을 받기 위해 푸시맨을 하는 '나'가 지하철 안으로 아버지를 밀어넣어야 하는 상황은 보통의 감정으로 볼 수 없는 아주 슬픈 상황일 것이다. 먼 우주로 나가 지구를 볼 수 있는 방법이 흔하지 않은데 단편 [몰라 몰라, 개복치라니]를 읽으면 나도 따라하고 싶어진다. "애들은 따라하지 마세요. 아니 어른들도"라는 푯말을 붙이고 시작해야 할 정도로 승강장을 통해 우주로 날아오르는 일은 대단히 쉬워 보인다. 핸들의 조작만 신경쓰면 되니 말이다. 우주에서 본 지구의 모습은......지구의 표면을 향해 거대한 빛이 터져 나오고 드디어 산란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모두 우주 밖으로 튀어 나오는 것인가. 사실 이 부분에서는 어떤 의미를 품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 되지 않는다. 산란하는 장면을 보던 이들이 핸들을 돌리지 않았으면 어땠을까가 먼저 떠오르는 것을 보면 이 단편이 그리 낯선 것은 아닌것 같긴 하다만. 단편 소설의 맛깔스러움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려 주는 박민규의 "카스테라". 풍자소설 같은 글들이 독자들을 그리 심각하게 몰아대지 않고 조금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주지만 오히려 이런 것들이 삶의 무게를 더 무겁게 만든다. 사람들이 아닌 동물이나 새들이 주인공으로 나와 인간과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솔직히 더 슬프다. 그렇다고 눈물을 찍어낼 정도로 흐르진 않지만 뭐라 말 할 수 없는 비애를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