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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의 엄지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0
미치오 슈스케 지음, 유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평점 :
데쓰와 아내가 처음 만난 날이 잊혀지지 않는데 이것이 모두 만들어낸 이야기란 말인가. 열쇠를 잃어 버려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아내에게 데쓰는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했다. 열쇠가게를 하는 데쓰가 그녀의 집 문을 열어주었음에도 그는 "집이 어디냐?"고 물은 것이다. 데쓰는 첫 눈에 그녀에게 빠져버렸고 앞뒤 상황을 따질 여유도 없이 그런 질문을 하고 말았다. 풋, 웃음이 날 정도라 기억에 오래 남았는데 이것이 모두 거짓이라면, 휴~ 한숨이 나온다. 그러나 까마귀의 엄지를 떠올리면 데쓰부터 생각나는데 이까짓 지어낸 이야기가 뭐란 말인가.
사기꾼을 까마귀라 한다 했다. 처음에는 까마귀에 엄지가? 책 제목이 좀 이상했다. 분명 내가 모르는 뜻이 있겠지 했는데 역시, 여기에는 깊은 뜻이 있었다. 영어의 속담을 인용해서 사기꾼의 능력 같은 것을 말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서야 데쓰가 손가락을 가족들에 비유하며 설명할 때 알았다. 데쓰만이 다케자와, 야히로, 마히로, 간타로의 마음을 제대로 보고 있었다는 것을. 데쓰가 타인이 만나 엮어진 이 가족의 가장이라는 것을 말이다.
처음에 데쓰와 다케자와가 은행 앞에서 한 남자에게 사기를 칠 때 이사카 고타로의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와 같은 장르의 소설인 줄 알았다. 다케자와와 데쓰의 행동이 나쁘긴 했지만 꽤 유쾌했다. 내가 피해자였다면 화가 났겠지만 왠일인지 다케자와와 데쓰가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데쓰와 다케자와, 야히로, 마히로, 간타로와 함께 한 '앨버트로스 작전'도 그럴듯 했고 멋졌다. 그 시기가 어설펐을 뿐이지 성공확율도 높아 보였다. 다케자와가 히구치한테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하는 중에 '앨버트로스 작전'을 실행에 옮겼으니 그 누가 속았겠는가. 이 작전이 성공만 했다면 사채업을 하는 나쁜 놈들도 혼내 주고, 돈도 얻고, 더이상 도망다니지 않아도 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었는데 아쉽다. 아니지, 그리 아쉬워 할 것은 없을지도. 이 작전의 결과만 놓고 본다면 그럴듯한 성공이었으니까. 그래, 아주 그럴듯한 성공.
예상하지 못했던 결말이었지만 좀 더 감동적인 결말로 이끌어 갈 수 있었는데 작가 미치오 슈스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야히로, 마히로 자매도 데쓰처럼 모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등장인물들의 쓸쓸한 퇴장으로 야히로, 마히로, 간타로, 다케자와가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지만 통속적인 눈물, 콧물 다 짜 내는 그런 드라마 같은 결말로 이어지지 않아서 아쉽다. '앨버트로스 작전'이 성공하지 못한 것보다 더 아쉽다. 때론 이 소설안에서는 통속적인 드라마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렇게 마음이 쓸쓸하지 않았을 테니까. 나도 안다. 지금과 같은 결말이 가장 멋지다는 것을. 그래, 이기적이게도 내 마음 편하자고 해 본 소리다. 아직은 살아갈 날이 많은 사람들이니 앞으로는 우는 날 보다, 아픔이 있는 날보다, 웃을 수 있는 날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런 결말 정도는 괜찮겠지?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