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조대장경'을 둘러싼 의문의 죽음들. 그 첫 시작은 구년 전 마에다의 죽음부터였다. 그의 죽음이 '초조대장경'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아는 이라부와 그의 손녀 하야코는 마에다가 죽기 직전까지 모아 놓은 자료와 그의 행적을 토대로 '초조대장경'을 찾아나선다. 이라부와 하야코가 마에다로 인해 '초조대장경'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 하야코가 개성에서 가져온 일본 호리꾼들이 현화사비 근처에 은닉한 도굴품 중 하나인 족자 두루마리에 '초조대장경'의 경판이 존재하고 있다고 언급되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거기에 마에다의 죽음이 정말 '초조대장경'의 경판이 실존하고 있을까의 의구심에 확신을 심어준다. 그런데 '초조대장경'을 향해 집념을 불태우는 사람은 이라부와 하야코만이 아니다. 장기봉과 그의 손자 장재석 또한 감히 '초조대장경'에 욕심을 낸다. 하야코보다 조금 뒤 개성에 도착한 장재석이 '초조대장경'을 언급한 누런 족자 두루마기를 찾아 이라부와 하야코의 발자취를 따른다. 솔직히 일본인보다 우리나라 사람인 장기봉과 장재석이 '초조대장경'을 찾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지만 시종일관 이라부와 하야코보다 한 걸음 뒤에서 쫓아가는 장기봉과 장재석이 썩 미덥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천년의 보물을 얻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을 터, 종국에는 누가 초조대장경을 손에 넣게 될지 두고보면 알 일이다. 이런 장르의 소설은 역사를 토대로 씨줄과 날줄이 교차하며 탄탄한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작가도 이미 언급한 이야기다.) 솔직히 여기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우선은 이라부와 하야코, 장기봉과 장재석의 삶이 닮아 있고 그들이 초조대장경을 찾아 옮기는 발걸음이 유사하다. 자료를 모으는 과정이나 이 자료를 토대로 초조대장경이 있을 곳을 유추하는 과정이 똑같지는 않으나 조금의 차이만 있을 뿐 이들은 똑같은 결과를 내놓는다. 작가가 초조대장경을 찾는 과정을 중요시했다면 긴박감 넘치는 한 편의 멋진 소설이 탄생할 수 있었으련만 '천년을 훔치다'는 처음엔 초조대장경이 실존하는지의 여부로 독자들의 시선을 끌고 그 뒤엔 초조대장경이 어디에 있는지, 그 실체가 세상에 드러날 수 있는지에 촛점을 맞춰 책장을 넘기는 지루함을 느끼게 한다. 초조대장경을 갖기 위해서는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라부와 하야코, 장기봉과 장재석의 생사에 관심이 가지만 결국 초조대장경은 천년의 보물로만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 결말 또한 예측 가능하다. 천년의 보물인 '초조대장경'을 둘러싼 의문의 살인사건은 결국 장각 스님의 말처럼 인간의 탐욕에 의해 벌어진 것이다. 아무리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어도 초조대장경을 갖기 위해 서로 죽고 죽이는 일들이 벌어져서는 그 빛갈이 퇴색될 뿐이다. 초조대장경이 세상에 드러나야 한다는 장각 스님과 초조대장경의 가피로 새로운 세상, 불심으로 가득한 새로운 천년의 새벽을 맞이해야 한다는 선광 스님은 초조대장경을 바라보는 인간의 욕심을 그대로 보여준다. 입이 싼 장재석으로 인해 사람들은 초조대장경이 더이상 전설속에서나 존재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초조대장경이 안전한 곳에서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당당하게 빛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초조대장경이 이렇게 음지에서 존재하는 한 하야코와 장재석을 비롯한 도굴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