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 1
허영만 지음 / 월드김영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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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를 보고 '엇, 칭기즈칸의 이야기인가?' 짐작했다. 최근에 읽은 김형수의 '조드'에서는 테무진의 삶을 영웅이 될 이야기에 촛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12~13세기 몽골에서 일어난 일들과 함께 그 속에서 살아내야 했던 테무진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영웅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영웅으로 만들어졌다 할 수 있는 삶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허영만의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는 예언에 의해 이미 테무진이 어떤 인물이 되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결론은 같을 것이다. 영웅이 될 것이다 예언이 되어 있든, 그렇지 않든 테무진의 삶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결말을 맞을 것이고 그 과정 또한 변하는 것이 없을 것이나 지금까지 읽어왔던 당연하게 생각했던 영웅들의 이야기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가족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는 테무진이 대몽골을 정복할 텡그리 신의 아들이 되기까지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알게 되는 즐거움이 더 클 것이다.

 

부르테를 좋아하는 자다란족 수장의 아들 자무카의 모습은 테무진의 모습보다 더 멋져 보인다. 이들이 순정만화 속의 등장인물들이었다면 독자들은 자무카와 부르테의 사랑에 더 큰 기대를 하며 지켜보겠지만 냉혹한 세상은 자무카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부르테의 마음을 얻을 기회를 주진 않는다. 세상을 통치하는 능력을 가진 자무카의 당당함은 사랑하는 여인 부르테 앞에서 작아지지만 부르테의 사랑을 받는 테무진을 시기하여 질투하기 보다는 부르테의 바람대로 테무진과 의형제를 맺어 세상을 함께 바라본다. 허나 대몽골을 정복할 텡그리 신의 아들이라는 예언을 받은 테무진과 몽골 제국을 통치할 욕심을 가진 자무카가 오랜 세월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지는 못할 것이다. 태생부터 선택되어질 수 밖에 없는 테무진과 그렇지 못했던 자무카는 이미 그 싸움의 승패가 어떻게 될지 예정된 수순을 밟게 되겠지만 자무카는 현재 테무진에게 초원에서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없어서는 안될 조력자가 된다.

 

아버지 예수게이가 죽고 난 후 테무진은 그의 배다른 형 벡테르의 견제를 받는데 테무진을 증오하는 벡테르가 그에게 어떤 존재가 될지 눈 앞에 그려볼 수 있을 정도로 그 증오심은 대단하다. 벡테르가 증오심을 가질 정도로 테무진은 예수게이에 의해 철저하게 그 정통성을 인정받으며 자랐고,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할까 싶을 정도로 벡테르를 대하는 예수게이의 행동에는 애정을 느낄 수가 없었다. 테무진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벡테르를 왜 그리 대했는지 모를 일이다. 테무진보다 먼저 낳은 벡테르를 인정하지 않고 테무진이 그의 후계자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겠지만 한 명의 적만 키운 셈이다. 그러나 벡테르는 그리 큰 위협은 되지 않을 것이다. 테무진보다 나이가 많은 것으로 어린 시절 힘으로 제압하려 했을 뿐 영웅을 알아보는 눈이 없었던 탓에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예수게이가 더 오래 살았다면 테무진의 삶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많은 역경들을 딛고 부족에 의해 칭기즈칸에 추대되었던 일이 지금보다 더 빨라졌을지도 모르나 훗날 사람들이 그에 대해 기억하는 많은 것들은 다르게 평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들은 사랑도, 권력도 쉽게 얻는 사람보다는 수많은 역경들을 딛고 영웅이 되는 모습을 기대한다. 라이벌인 자무카와의 싸움, 그리고 부르테의 사랑을 얻기까지 테무진에게 어떤 일이 있을 것인지 지켜보는 즐거움은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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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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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제이의 울음소리가 터졌을 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제이를 향해 뛰어갔다.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한다던 제이와 세상 사람들과의 첫 만남은 그랬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읽으며 가끔 김연수의 '원더보이'를 떠올렸는데 그 이유는 타인의 생각과 마음을 읽는 김연수의 '원더보이'의 김정훈과 제이가 닮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책장을 덮은 지금 이제는 그들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미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다. '사랑'의 열병이 지나간 후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된 정훈과 다르게 타인의 고통을 안고 세상을 향해 나아갔던 제이는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질주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그마저도 떨쳐 버리고 자유롭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세상이 원더보이라고 기억하는 것조차 거북해했던 정훈과 달리 세상을 향해 달려나간 제이를 세상은 오랫동안 기억했고 이제는 활자속에서 그 모습을 영원히 남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정훈과 제이가 외로움과 슬픔, 고통을 안고 살았온 것은 닮아 있었다.

 

내게 처음부터 제이의 모습이 보인 것은 아니었다.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의 한 화장실에서 출생한 제이의 모습을 두 눈 속에 담은 이후로 나는 제이가 아닌 동규가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세상과 소통했었다. 함구증에 걸린 동규를 위해 동규가 표현하고자 하는 언어와 감정을 제이가 대신 전달해줬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동규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았다. 마주보고 있는 거울을 통해 악마를 잡겠다고 하는 제이는 이제 나의 기억속에서조차 머물 수 없는 존재가 되어 갔다. 그렇게 간단하게 그를 밀쳐내 버렸었다.

 

그런데 어느날 제이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한나의 집에서 뛰쳐나온 후 그가 느낀 고통의 실체를 들여다보면서 제이는 결코 내가 가벼히 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돼지엄마가 제이를 품에 안은 날 보게 된 양쪽 어깻죽지 부근의 뼈, 이것은 그가 우리와 다른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여겼다. 소리를 내어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지만 '천사'라고. 소리내어 내뱉는 순간 판타지가 되어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겁이날 정도였다.

 

거리를 떠돌며 거리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삶 가까이에 있는 제이가 폭주족들의 리더가 될 것이라는 전개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사건이었다. 한나의 집에서 뛰쳐 나온 이후로 도를 닦는 양 생쌀을 씹으며 살아가는 제이를 보면서 그가 이 세상에서 자신을 표현할 방법으로 선택한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제이의 목소리뿐 아니라 그의 몸짓 하나까지도 보이게 된 것이 이때부터였다. 어릴 적 서로의 그림자처럼 살았던 동규와 제이가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이 일이 아니었다면 경찰 같지도 않은, 아니 경찰이 되어서는 안될 인물인 승태가 등장하는 일도 없었을 것인데 가출, 집단 난교 등의 십대 소년, 소녀들의 문제들과 다르게 승태의 내면까지 바라봐야 하는 것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제이와 대면하는 이로 그가 선택되었다는 것이 화가날 정도였다. 그러나 승태가 아니면 제이의 몸짓을 바로 눈 앞에서 바라볼 수 없기에 그의 등장을 그냥 내버려둘 수 밖에 없다. 

 

세상을 소통하는 방법이 이것 밖에 없었는가. 제이의 삶은 이렇게 되어갈 수 밖에 없었는가. 타인에 의한 것이 아닌 스스로에 의해 선택한 삶이기에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가란 질문은 불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묻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출생의 비밀은 다루지 않았으나 제이가 마지막까지도 벗어날 수 없었던 그곳, 자신이 태어난 고속버스 터미널은 그의 두 눈 속에 담겨져 작게 나뉘어진 영혼들이 그곳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가 분명하게 알 정도로 그 장소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길 위에서 태어났으니 길 위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고 길 위에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소년, 제이. 그는 이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태어났을 것이다. 다른 삶도 있었을 것이란 생각은 불필요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의 삶은 그렇게 흩어져 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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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보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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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그때 나는 아홉 살이었다. 동전이 하수구에 빠지면 세상에서 가장 슬펐던 철 없던 시절이었다. 어떻게 하면 동전을 꺼낼 수 있을까 어리석은 생각만 했던 내가 살아간 그때 그 시절은 모든 사람들이 외로워하고 슬퍼하고 아파했던 시절이었다. 나의 가족들이 살아간, 내가 살아간 그시절이 지금 이곳에 모두 담겨 있다. 우리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그 시간은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여전히 그때 그모습 그대로 선명하게 살아 있었다.

 

재진 아저씨의 표현대로 바보의 방식으로 본 '원더보이'는 힘이 센 소년? 악당으로부터 지구를 구하는 정의의 소년? 정도였다. 그런데 모범생의 방식으로 바라보니 "원더보이"의 의미는 "슬픔"과 "외로움"이었다. 원더보이 김정훈의 이야기는 숟가락을 구부리는 이만기의 이야기가 해학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현실적이었고 그의 이야기에 따라 머나먼 우주를 상상하다 고독해지다가도 별이 쏟아내는 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기도 했다. 

 

원더보이의 아버지의 차가 간첩이 탄 차와 충돌했는지의 여부는 짐작이 가능하지만 권대령에게 포상금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것이 원더보이, 그의 삶에 외로움과 슬픔을 하나 더하지 않는 일이 될 것이다. 원더보이라는 단어는 1980년대 그 시절, 그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단어로 대중매체에서 지겨울 정도로 단물, 쓴물 다 빼먹고 내던져 버렸지만 정작 김정훈은 자신을 원더보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그는 밤하늘의 별을 향해 '하이! 내 이름은 김정훈입니다. 나는 한국 소년입니다. 나는 열일곱 살입니다.'라고 주저하지 않고 거침없이 쏟아낸다. 이젠 강토 형과 재진 아저씨, 무공 아저씨, 선재 형, 권대령, 이만기, 쌍둥이 남매의 기억속에만 그가 '원더보이'라고 기억되는 듯 세상은 원더보이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잊어가는 듯 하다.

 

희선씨와 김정훈의 관계는 서로의 슬픔과 슬픔이 모여 위로가 되어주는 관계지만 살아온 환경도 살아갈 미래도 다르다. 모든 것을 다 가져도 외로울 수 밖에 없는 고아 '정훈', 그는 엄마가 보내는 사랑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고독을 떨쳐낼 수 없었지만 무공 아저씨가 가르쳐 준 호흡법, 말도 되지 않는 문장을 늘어 놓는 선재 형, 가끔 불쑥 나타나 그의 토사물을 덮어 쓰는 이만기로 인해 외로울 시간이 조금 줄어든다. 군복무 시간이 줄어든다며 말도 되지 않는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던 선재 형의 인생관을 그를 만났을 땐 알지 못했으나 그시절 이렇게 하는 것만이 그 시절을 살아낼 수 있는, 살아남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에 깨닫게 되었지만 '미친'이라는 단어를 즐겨 쓴 이만기도 혹 그 자신만의 생존방법이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그가 그리 우습게 생각되지 않는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의 몸짓을 떠올려 보기도 전에 엄마, 아빠가 밀렵꾼이었다니 하며 한숨짓는 정훈을 바라보며 풋, 하고 웃음이 터져 버린다. 바보의 방식으로 읽은 아빠의 일기장은 그가 해석해낼 수 없이 온통 암호 투성이었지만 우연일까, 운명일까 엄마를 기억하는 재진 아저씨로 인해 엄마에게 가는 문이 조금 열리게 된다. 아빠에게 마지막으로 잘 가라는 인사도 하지 못하고 숟가락 구부리는 데만 정신이 팔렸던 그에게 이제 살아가고 싶은 의미가 생긴 것이다. 열다섯 살 처음 환한 빛에 둘러싸였을 때 아버지를 떠나보내야 했던 그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슬픔이 차오르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자신만을 위해 눈물을 흘리게 된 그는 이제 소원을 말하지 않는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마도 우주에서 보내주는 별빛들보다 가까이에 있는 불빛들이 더 빛나게 느껴질 때부터 우리들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이것이 '우주에 그토록 별이 많다면, 우리의 밤은 왜 이다지도 어두울까요?'란 질문에 대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뭐, 이것으로 부족하다면 "다음 시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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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야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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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행'의 속편이라 해서 읽었는데 속편은 아니고 '백야행'이 인기가 있으니 그 소재를 그대로 가져와 등장인물만 달리 해서 쓴 책인듯 느껴졌다. '백야행'에서는 료지와 유키호를 제외한 타인의 시선으로 두 주인공을 지켜봤다면 '환야'는 마사야와 미후유의 시선에서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었다는 점이 다르다. '백야행'에서 알 수 없었던 료지와 유키호의 심리를 '환야'에서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즐거움은 있었지만 불행한 어린 시절을 지켜봤기에 료지와 유키호의 삶은 조금의 동정심을 가질 수 있었으나 '환야'에서의 미후유 행동은 시간이 흐르는 것이 더디게 느껴질 정도로 역겨움만 안겨주었다.  

 

거기다 '환야'에 등장하는 가토 형사는 어떠한가. '백야행'에서 료지와 유키호를 쫓는 사사가키와 다르게 형사가 아니라 범죄자 같은 느낌을 주었다. 거들먹거리며 사람들을 위협하며 미후유에 대해 탐문을 하러 다니는 가토의 모습은 그리 정의감 있어 보이지 않는다. 자신도 말했었지만 미후유에 대해 알아보러 다니는 이유가 그녀에게 반했기 때문이라고 했으니 그녀를 대하는 마음에 끔찍한 상상이 들어있지 않다고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되면 법의 심판을 받게 하겠다? 과연 그러할까. 가토는 그녀에게 어떤 거래를 제안할지도 모를 일이다. 미후유가 자신에게 뻗어올 손길을 가슴이 두근거릴정도로 기대하지 않았는가. 한 여자의 정체를 알게 되는 것에 쾌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백야행'을 읽었을 땐 료지가 유키호와 함께 하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다 여겼었다. 그러나 '환야'를 읽고 난 후에는 이 생각이 바뀌었는데 료지 또한 마사야처럼 유키호의 계획에 의해 그녀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게 된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유키호를 지켜주었던 료지가 너무 안쓰럽다. 마사야는 자신의 손으로 만든 삶이었기에 동정심을 느낄 수 없지만 유키호를 위해 자발적으로 자신의 삶까지 파괴하며 살아왔던(료지가 그랬을 것이라 믿는다) 료지는 자신의 삶을 바꿀 기회조차 없었기에 더 안쓰러운 것이다. 마사야는 미후유가 자신을 이용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삶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를 향한 사랑이 그의 삶을 지탱해주는 모든 것이었기에 내려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결말은 두 작품이 비슷하다. 미묘한 차이가 있어 개인적으로 '환야'에서 맞은 결말이 더 마음에 드는데 그 이유는 그럴듯하게 현실적이기때문이다. 미후유에게는 최상의 결말일 것이다. 유키호는 아니었을 것이다. 단지 내 생각일 뿐이지만 유키호가 료지에게 의존하는 마음도 있었다고 생각된다. 미후유에게 마사야는 없어도 되는 인물일 뿐이지만 유키호에게 료지는 꼭 필요한 존재였을 것이다. 마사야에게도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결말이었을테지만(자신도 그렇게 믿었을 것이지만) 지금도 자신이 목표한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 유키호와 미후유를 생각하면 그녀들로 인해 불행해질 다른 이들이 떠올라 쓸쓸해진다. 죽음에 이르면 그들의 악행은 멈춰지겠지만 그들이 쓴 가면은 죽어서도 벗겨지지 않을 것이다.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들 자신밖에 없을 것이므로 누가 진실을 알 수 있겠는가.

 

'백야행'과 '환야' 전혀 다른 뜻을 가지고 있겠지만 나에게는 같은 느낌을 주었다. '환야'에서 료지가 없이 살아가는 유키호의 삶을 보여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든다. 유키호의 고백을 통해 진실을 들었다면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로 인해 지루했을지도 모르나 죽기 전까지 그녀의 삶이 평범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새로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료지와 유키호의 마음이 알고 싶다. 마사야와 미후유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궁금한 것은 이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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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는 미스터리와 함께 코이가쿠보가쿠엔 탐정부 시리즈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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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을 이런 위험한 학교에 보낼 수 없다." 키리가미네 료의 부모였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무리 탐정부의 부부장이라고 해도 아직 어린 학생인데, 아니 어른이라도 그렇지 이렇게 몇 번이나 살인사건이 일어날 뻔한 장소에 있었다는 것이 말이 되나. 학교 내에서 일어난 사건만 해도 도대체 몇 건인가. 키리가미네 료의 부모라면 이런 위험한 곳에 딸을 보낼 수 없다고 말할 법 하지 않은가.

 

'방과후는 미스터리와 함께'는 단편들을 엮어 놓은 책인 것 같다. 탐정부가 어떤 동아리인지, 키리가미네 자신의 이름의 유래에 대해 계속 언급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키리가미네가 어른이 되어서도 탐정이라는 매력적인 직업을 선택한다면 분명 이 분야에서 꽤 유면한 탐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눈에 들어오기 보다는 사건이 먼저 눈에 들어와 아직은 실력보다 의욕이 앞서는 것이 문제이긴 한데 그 누구보다 정의감은 투철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으니 세월이 지나면 멋진 탐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탐정부의 부부장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아직은 실력이 많이 부족하지만 앉은 자리에서 사건을 해결해 버리는 탐정 자질이 뛰어난 학교 선생님들에게 배운다면 분명 실력이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키리가미네가 놓쳤던, 아니 어떤 트릭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던 사건들을 손쉽게 해결해 버리는 선생님들을 보고 있으면 소시가야 경감은 별 필요가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쉽게 해결해 버린다. 사건을 맡은 소시가야 경감은 사건을 쉽게 보고 보이는대로 판단을 해 버리는 사람이라 동료 경찰 카라스야마 형사가 없었다면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이 한 건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키리가미네와 함께 사건을 해결한 선생님들에게 한 수 배워야 될 정도로 실력이 없다.   

 

살인 사건이 일어날 뻔 한 사건들을 자주 목격하게 되는 키미가미네의 일상은 결코 평범하지가 않다. 사건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재현해 본다고 선생님의 목에 연줄을 감아 버리는 행동은 보는 이로 하여금 섬뜩함을 느끼게 하고 이것은 너무 심한 행동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현실감을 느낄 수가 없다. 키미가미네는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유쾌한 성격이긴 하지만 바로 이점이 미스터리 장르의 느낌을 약하게 만들고 가볍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학생이 사건을 맡는다는 설정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동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에 키리가미네가 자주 관련이 되어 현실감을 느낄 수 없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경찰들의 손에 의해 사건이 명확하게 해결되어가는 것을 볼 수 없는 이유도 있다. 사건이 이러했을 것이다, 라고 추정하는 것도 있는데 추정한 것이 확실한 해답이라고 해도 미스터리라는 장르의 특성상 불편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선생님이 사건을 쉽게 푸는 것도, 학생이 카메라가 있었을 것이라고 쉽게 예측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하긴 모든 사건들에 키리가미네 그녀의 주위에 이런 일들이 자주 발생하는 것 자체가 미스터리한 일이니 '방과후는 미스터리와 함께' 책 제목과 잘 어울리긴 하는구나.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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