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사건사고
시바사키 토모카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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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똑같으면 "오늘 뭐 특별한 일 없나?"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특별한 일이란 즐겁고 행복한일이어야만 하는데 소소한 기쁨이 있는 어제가 오늘 같은 날들이 가장 행복한 날임을 나이가 들어갈수록 알게 되니 그리 특별한 날들을 기다리지 않게 된다. 이 책은 한자리에 모인 7명이 그날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잔잔한 일상을 5명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야기다. "2명은 왜 빼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이건 어디까지나 작가마음. 나도 궁금하긴 하다.

 

똑같은 시간을 배경으로 5명이 이야기 하자면 지루하지 않을까 생각되지만 겹쳐지는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케이토의 이야기 뒤에 나카자와가 시작하는 이야기는 케이토와 함께 한 학창시절을 회상하기도 하고 마사미치의 집을 나오고 난뒤의 상황을 이야기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된다. 케이토와 나카자와에게 일어난 일을 통해 마사미치의 집을 나선 뒤의 상황을 알수 있게 함으로써 또 어떤 뒷이야기가 있을까 궁금하게 만든다. 복선이 없어 독자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그런 내용은 없다. 단지 7명이 보낸 그 하루를 5명이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함으로써 5일로 늘어난듯 하루가 굉장히 소중해진다는 느낌, 그래서 5명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참 신선하게 다가온다. 내가 평범하게 보내는 하루가 이렇게 책으로,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어떤 기분이 될까. 마음이 간질간질한 느낌? 기분이 참 좋을 것 같다.

 

케이토가 관심가지는 가와치, 그가 이야기하는 "10년 후의 동물원"은 5명의 이야기 중 가장 마음에 남는 글이다. 어린시절 북극곰을 그릴때 북극곰이 뒷모습만 보여 물감을 던진 가와치, 하지만 북극곰이 물감을 먹어버린다. 어린나이에 북극곰이 죽을까봐 걱정했다는 가와치의 말에 치요는 웃음이 터진다. 지금 보고 있는 북극곰이 그때의 북극곰일까, 잠시 옛생각에 잠겨드는 가와치. 그렇게 그 사건 10년후 자신은 치요와 함께 있지만 가와치는 치요에게 완전한 사랑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타인을 많이 배려하는 마음이 치요에겐 아픔이 된 것이다.

 

잘생겨서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가와치를 마키가 잘라준 머리카락이 마음에 안드는 니시야마가 술김에 가와치에게 하는 행동은 솔직히 섬뜩하다. 손에 가위라도 들려 있었으면 큰일을 저지를 것처럼 무시무시한 상황이 되어 버려 케이토, 마키, 나카자와, 가와치의 이야기와 전혀 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아마 이 책에서 유일하게 긴장감을 느끼는 사건일 것이다.

 

드라마를 보면 누구와 누구가 이어지고, 저 사람은 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아주 분명한 생각을 가지게 된다. 살아가는데 있어 결말없는 이야기들이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왜 드라마에서는 명확한 결말을 원하게 되는 것일까. 이 책에서는 "사랑이야기"는 물론 아주 큰 사건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잔잔한 일상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와 조금도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내 삶에서는 내가 주인공이지만 다른이의 삶에서는 그저 지나가는 사람이나 자리나 차지하는 존재로밖에 인식되지 않으니 5개의 이야기속에 들어있는 나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내 일상도 타인의 인생 못지 않은 가치를 가진다면 그냥 보내는 하루가 얼마나 귀하게 느껴질 것인가. 찾아올 내일도 오늘과 같다면 그것으로 된거다. 이것이 진정한 행복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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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 잡
크리스토퍼 무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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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죽음의 제왕 "루미나투스"일 것이라 착각한 찰리의 용기의 끝은 글쎄, 해피앤딩이라고 해야할까, 슬픈 결말이라고 해야할까. 마지막 장면조차 유쾌함을 선사하니 슬프지 않아 난감하기만 하다. 진짜 루미나투스가 마지막에 좀 더 빨리 나타났어야 하지 않을까? 잘난 외모를 갖춘 엘리트 알파 남성을 제외한 부류에 포함되는 베타 남성 찰리가 '죽음의 상인'이라니, 오히려 평범한 이 남자가 영혼을 수거해 가는 것이 더 안심이 되지만 사람이 가진 영혼도 진급을 하고 영혼의 주인이 죽고나면 그 영혼이 다른 주인을 찾게 되기까지 죽음의 상인이 보관한다는 내용은 솔직히 당황스럽다. 그 영혼을 가져가는 사람은 가져가기 전까지는 영혼이 없었다는 건데, 그럼 나도 영혼을 가지지 않았을수도 있다는 거잖아. 단 한번도 내가 영혼 없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해 본적도 없으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게 된다. 근데 영혼을 가지기 위해서는 뭘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나도 반짝반짝 붉게 빛나는 영혼을 가지고 싶다. 아냐 가지고 있을거야.

 

찰리의 아내 레이철이 소피를 낳고 죽는다. 아내에게 CD를 가져다 주려다 영혼의 그릇을 찾으러 온 민티 프레시를 만나 그 자신도 민티와 같은 일을 하게 된다. 이 곳에 함께 있는 소피 또한 영향을 받은 듯 손가락으로 가리켜 "나비야"라고 말하면 다 죽게 되니 찰리는 "고양이 다큐멘터리라도 하는 날엔 자신도 죽게 될지도 모르는 공포를 느끼게 된다. 죽음과 영혼들에 대해 다루고 있음에도 이 책은 시종일관 유쾌하다. 심각한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찰리의 존재때문이겠지만 까마귀 형상을 한 하수구 하피의 존재들은 무섭긴 하지만 조금 모자란듯 보여 찰리와 하수구 하피의 싸움에 큰 긴장감을 선사하진 않는다. 찰리는 자신을 의심하는 경찰 리베라로 인해 목숨도 건지지만 날아가는 까마귀 형상을 한 여자를 보고 리베라 또한 사태의 심각함을 알게 된다.

 

지상을 지배하려는 모리안들(찰리는 하수구 하피라 부른다)을 더이상 그냥 두고 보지 않겠다며 그들의 아지트로 향하는 찰리와 다람쥐 인간들, 이들의 싸움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악당이 지고 '선'이 이기겠지. 그 과정에서 누가 희생당하게 될지 너무 걱정이 된다. 모리안들과 대적하는 죽음의 상인들, 그리고 또 다른 축으로 등장하는 오드리와 오드리가 영혼을 넣어 만든 다람쥐 인간들. 사실 다람쥐 인간들이 등장하는 것은 참으로 생뚱맞은 상황인데 모리안들과 싸우는데 지대한 공을 세우기에 이곳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존재들로 부각된다. 죽음의 상인인 찰리를 연쇄살인범으로 오해하는 레이, 소피를 보호하는 개 앨빈과 모하메드, 영혼의 그릇이 유방 삽입물에 자리 잡고 있어 매디슨 매커니의 영혼의 그릇을 수거하지 못한 찰리의 모습과 원칙주의자인 경찰 리베라가 이 일로 죽음의 상인이 되는 설정은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사랑하는 아내의 영혼을 지키기 위한 찰리의 분투, 그리고 찰리에게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는 것을 보면서 너무도 인간적인 그의 모습에 마음까지 따뜻해져 온다. 그 뒤로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여전히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행복하게 잘 지내겠지? 나도 찰리처럼 반짝반짝 붉게 빛나는 영혼의 그릇들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죽음의 상인이 되고 싶진 않고, 그저 영혼을 한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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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
클레르 카스티용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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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사랑은 없다. 아니 사랑은 변하지 않는데 사람이 변하는 것일게다. 변질된 사랑을 앞에 놓고 구질구질하게 "사랑했었다"고 지금의 감정을 대변하는 것이 사람이다. 새로운 사랑이 찾아와 옛사랑을 벗어던지든, 보기 싫어져 사랑이 식었든 결론은 하나다. 싫으니 떠난다는 것이다. 이 말에 어이없이 멍하니 바라보게 되는 상대방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휑하니 바람소리만 남기며 떠나는 상대, 아마 죽일듯이 미워지겠지. 이렇게 가슴아프게 하는 사랑이건만 우리는 불에 타 죽을줄 알면서도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그 사랑에 손을 뻗는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끌어당기는 것일까. 그 사랑의 마력에 취할쯤엔 소용돌이속에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니 아마 이 때 클레르 카스티용의 책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를 읽으면 덜 외로울지도 모르겠다.

 

백마탄 왕자님, 신데렐라 등의 이야기들은 너무 현실감이 없다. 살아가는 것이 힘들고 각박할수록 우리는 아름다운 이야기, 왕자 공주 이야기를 꿈꾸게 된다. 그래서일까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의 23편의 이야기들을 읽어가자니 가슴이 서늘해진다. 부정할 수 없는 그녀의 이야기를 애써 외면하고 싶지만 무언가 나를 꽉 틀어쥐고 놔주지 않아 앉은자리가 불편하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이다. 나는 그저 저자가 전하는 이야기들을 100% 소화시킬 능력도 이해력도 없어 그저 내가 처한 상황에 맞춰 글들을 읽어나간다. 내면을 틀어막는 무언가를 치워버리고 오롯이 받아들이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안타깝다. 내가 너무 현실적인가 보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라고 지적해주지 않으면 이해할 수가 없으니 그점이 조금 아쉽다.

 

돈 벌기 바빠 사랑하는 여인의 곁에 머무르지 못하는 남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늘 기차역으로 나가야 한다. 서로의 트렁크들을 교환하며 서로를 느껴가는 두 사람. 그러나 그가 건네준 트렁크 안에는 빨아야 할 옷들뿐만 아니라 원피스와 그 안에 임신테스트 시약 하나가 들어있었다. 남편에게 여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애써 부정하며 자신이 아이를 가진양 사람들에게 "난 지금 애를 가졌어요"라고 말하는 그녀. 제정신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역시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는 제목에 맞는 내용이 아닌가.

 

여기 단편들은 몇 사람이 등장해도 한사람의 기억에 의존하여 독백으로 이루어지기에 읽어나가는 것이 힘들고 조금 지루하다. 대체 어떤 상황인지 조금이라도 알려면 단편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알 수 있으니 힘든가 보다. 이러니 내용을 읽어나가면서 추상적으로 느껴지지 않겠는가. "사랑"에는 실체가 없으니 추상적으로 느껴지는게 맞겠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남녀는 모두 완전하지 않은 존재로 등장한다. 불완전한 모습이기에 그들의 사랑의 결말은 더 애처롭고 가슴이 아프다.

 

"콩쿠르를 위해 태어난 아이들"의 단편은 스릴러적인 요소도 갖추고 있어 섬뜩하기까지 하니 저자가 말하는 사랑의 모습엔 도저히 밝은 색채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도 세상이 살아갈만한 곳이라고 느끼는 건 "사랑"과 "따뜻한 정" 때문일텐데 이 책안에서의 삶은 희망보다는 절망을 더 많이 느낄 수 있어 오히려 내가 발딛고 사는 이 곳이 핑크빛으로 보이게 된다. 이것이 저자의 의도일까. 아주 어두운 곳을 보여준 뒤 밝은 곳에 데려가면 찬란한 빛 때문에 눈조차 뜰 수 없을테니까. 그래서 삶은 참으로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닐까.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는 글이 가슴에 박혀 움직이지 않는다. 실체도 없는 그 사랑이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고 살아가는 우리는 강한 존재일까, 약한 존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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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티볼리의 고백
앤드루 손 그리어 지음, 윤희기 옮김 / 시공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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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주름살이 늘어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꾸준히 운동을 하고 웰빙음식을 먹으며 보톡스를 맞거나 눈가 주름예방을 위해 아이크림을 바르는 등 많은 노력을 하지만 역시 인간은 세월 앞에 무너질 뿐이다. 그러나 막스의 고백을 들으면서 세월에 따라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깨닫게 되었으니 역시 내가 가진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잃어봐야만 그 가치를 알 수 있나 보다.

 

일흔 살 노인으로 태어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점점 젊어지는 막스 티볼리. 그는 타인의 시선속에 갇혀 지내게 된다. 집에서 "올드맨"으로 불리우는 막스는 평생동안 어머니께서 일러주신 "사람들이 바라보는 나이로 살아야 된다"는 것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지만 사랑하는 앨리스에게만은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 책을 읽는 나도 믿기지 않는 일인데 어린 앨리스가 어떻게 이 일을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겉은 중년의 나이로 보이지만 속은 어린아이인 막스는 앨리스의 어머니 레비 부인과의 관계를 처음부터 이어나가지 말았어야 했다. 어린 앨리스에게 마음을 고백함으로써 그는 어머니와 딸 두사람을 농락한 파렴치한이 되어 철저히 배척당하게 된다. 물론 두 사람에게 마음의 상처도 안겨줬으나 이것으로 인해 다시 만난 앨리스와 이별을 하게 되어 그 벌은 제대로 받았으니 너무 몰아세우진 말자.  

 

서른 살에는 신체의 나이도 실제 나이도 똑같은 상태가 된다. 이때 앨리스를 운명적으로 다시 만나게 되어 사랑을 키우고 마침내 결혼까지 하게 되는 막스, 레비 부인과 앨리스의 기억속에 존재하는 막스 티볼리를 죽은 사람으로 이야기 한 후 "아스가르"란 이름을 가지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막스.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젊어지는 자신을 어찌 감당하려고 하는지 친구 휴이가 말려도 듣지 않고 앨리스와 함께 살게 된다. 하지만 막스가 가진 펜던트와 휴이가 막스 티볼리에게 보낸 편지를 발견한 앨리스는 막스에게 모든 사실을 듣고 떠나게 된다. 막스와 자신의 아이 새미와 함께 살아가는 앨리스. 무엇으로부터 도망을 친 것일까. 어린시절 자신에게 상처를 준 막스와 결혼을 하게 되고 자신과 아이에게 위협이 될까 무서워 어딘가로 숨어버린 것일까.

 

앨리스에게 첫사랑인 휴이에게 편지를 보낸 그녀의 진심을 알 수가 없다. 막스에게 전달되길 바랬던 것일까. 휴이와 막스가 앨리스를 찾아나섰을때 막스는 타인의 시선속에 소년의 모습으로, 휴이는 노인의 모습이라 옛날 휴이를 막스의 아들로 보던 시절과 반대로 막스가 휴이의 아들로 보인다. 어떤 모습으로든 앨리스와 자신의 아들 새미곁에 있길 원하는 막스, 이 책속의 '막스 티볼리의 고백'은 새미에게 남기는 자신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혹자는 끔찍하다고 할지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머물기 위해 남편으로 아이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막스의 모습은 조금 두렵기도 하니까. 그러나 평생 마음을 나누는 친구인 휴이와 사랑하는 여자 앨리스 이 두 사람은 막스가 가진 전부였으니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끝내 알 수 없었던 것은 막스의 아버지가 실종되고 다른 나라에서 사업을 일으키고 결혼까지 했던 이유와 앨리스의 휴이에 대한 마음, 그리고 휴이의 막스에 대한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휴이의 동성애에 대한 사랑, 하인 테디를 사랑하는 휴이가 막스에게 품은 마음이 막스가 말한대로 "사랑"이었던 것일까. 우정으로 그의 곁에 평생 머물렀던 것이 아니었던 것일까. 막스의 사랑마저 받지 못한 휴이가 선택한 삶, 어느것하나 이해할 수 있는게 없었다. 하긴 막스가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난 것부터가 잘못된 시작이었을테니 무엇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들의 얽힌 운명의 끈이 이젠 끊어진 것인지, 또 다른 형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지 두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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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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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루트'를 소수만큼이나 아낀 박사로 인해 미혼모 파출부 '나'는 가족을 가진 듯 행복을 느낀다. 책을 다 읽고 가슴속에 벅차오르는 감동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교통사고로 기억이 80분밖에 지속되지 못하는 예순네살의 수학자, 파출부인 '나'와 아들 '루트'(머리가 밋밋하여 박사가 지어준 별명)가 80분간의 행복스토리를 만든다. 잠을 자고 깨어났을때 삶이 늘 새롭게 느껴지는 박사는 매일 보는 파출부에게 "자네 생일이 몇월 며칠인가?"의 질문을 한다. 외출했다 돌아왔을때 80분이 지나있다면 어김없이 이 질문을 받는다. 아마 이 질문을 매일 받는 사람이 나였다면 얼마 못가 지쳐버렸을 것이다. 아들 '루트'를 아껴주고 보호해주는 박사의 행동에 그녀는 박사의 똑같은 질문을 지겹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박사가 사랑하는 '숫자'만큼의 대접을 받는 듯 행복을 느끼게 된다.

 

숫자에 관해서는 천재적인 박사, 80분의 기억밖에 가지지 못하는 그에게 숫자는 자신이 가진 전부였다. 박사가 아플 때 간병하는 그녀를 보며 혹 박사에 대한 마음이 '사랑'이 아닐까 의심해 보았는데 박사를 돌봐주는 안채에 사는 형수도 같은 생각을 했었나 보다. 박사가 아플 때 옆에서 돌봐주며 집에 가지 못하는 그녀를 당장 해고시킨다. 부당한 대우라고 항의하고 싶지만 나도 어렴풋이 형수의 박사에 대한 마음이 짐작이 되기 시작했다. 파출부를 들이기 위해 면접을 볼때는 억지로 돌봐줘야할 사람으로 대우하더니 그래도 무슨 일이 있는지 형수가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며 다행이라는 생각과 박사와 형수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것이다.

 

기억해야할 것을 메모지에 적어 입고 있는 양복 곳곳에 꽂아두는 박사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매일 찾아오는 파출부를 기억하기 위해 못 그리지만 최대한 그녀의 모습을 담아 그려놓고 매일 맞이하는 박사, 새롭게 맞이하는 날들이 그에게 얼마나 큰 고통이 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사고 후 한번도 밖에 나가지 못한 그를 데리고 야구장에 간 그녀와 루트. 긴장해서 중얼중얼 야구에 관한 숫자를 이야기하는 것을 보며 애처롭기도 하고 기억이 멈춰있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다 알지 못하기에 마음이 아파온다. 이미 은퇴한 '에나쓰'의 생생한 옛 모습을 기억하는 박사에게 에나쓰는 이 경기에 등판하지 않는다는 거짓말은 그를 배려하는 그녀와 루트의 마음이다. 에나쓰가 다른팀에 들어가고 이젠 은퇴까지 한 것을 알았을 때 박사의 보인 절망에 너무 가슴이 아파 선의의 거짓말을 하지만 그녀와 루트가 선물한 에나쓰의 글러브 조각이 박혀 있는 1985년 한정 프리미엄 카드로 박사는 물론 나까지 가슴이 벅차오른다.

 

행복이란 물질적인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작은 정성, 마음에서 온다. 프리미엄 카드를 죽을때까지 목에 걸고 있는 박사의 모습은 그녀와 루트에게 '가족'이라는 의미를 제공해 준다. 선물을 받았을 때 이렇게 감동해준다면 주는 사람들이 얼마나 기쁠까. 멈춰버린 기억으로 영원히 기억되는 형수의 존재보다 늘 80분의 기억속에 존재할 뿐이지만 새로운 추억을 만드는 그녀와 루트는 박사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자네 신발 사이즈가 몇인가? 태어날때 몸무게가 얼마였지?"라고 누가 질문을 한다면 별 이상한 사람 다 있다며 쳐다만 보지 말고 성실히 대답해 주자. 80분간만 기억이 지속되는 병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짧은 시간에 그들이 느꼈을 소중한 시간이 나에게도 인생을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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