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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 잡
크리스토퍼 무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자신이 죽음의 제왕 "루미나투스"일 것이라 착각한 찰리의 용기의 끝은 글쎄, 해피앤딩이라고 해야할까, 슬픈 결말이라고 해야할까. 마지막 장면조차 유쾌함을 선사하니 슬프지 않아 난감하기만 하다. 진짜 루미나투스가 마지막에 좀 더 빨리 나타났어야 하지 않을까? 잘난 외모를 갖춘 엘리트 알파 남성을 제외한 부류에 포함되는 베타 남성 찰리가 '죽음의 상인'이라니, 오히려 평범한 이 남자가 영혼을 수거해 가는 것이 더 안심이 되지만 사람이 가진 영혼도 진급을 하고 영혼의 주인이 죽고나면 그 영혼이 다른 주인을 찾게 되기까지 죽음의 상인이 보관한다는 내용은 솔직히 당황스럽다. 그 영혼을 가져가는 사람은 가져가기 전까지는 영혼이 없었다는 건데, 그럼 나도 영혼을 가지지 않았을수도 있다는 거잖아. 단 한번도 내가 영혼 없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해 본적도 없으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게 된다. 근데 영혼을 가지기 위해서는 뭘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나도 반짝반짝 붉게 빛나는 영혼을 가지고 싶다. 아냐 가지고 있을거야.
찰리의 아내 레이철이 소피를 낳고 죽는다. 아내에게 CD를 가져다 주려다 영혼의 그릇을 찾으러 온 민티 프레시를 만나 그 자신도 민티와 같은 일을 하게 된다. 이 곳에 함께 있는 소피 또한 영향을 받은 듯 손가락으로 가리켜 "나비야"라고 말하면 다 죽게 되니 찰리는 "고양이 다큐멘터리라도 하는 날엔 자신도 죽게 될지도 모르는 공포를 느끼게 된다. 죽음과 영혼들에 대해 다루고 있음에도 이 책은 시종일관 유쾌하다. 심각한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찰리의 존재때문이겠지만 까마귀 형상을 한 하수구 하피의 존재들은 무섭긴 하지만 조금 모자란듯 보여 찰리와 하수구 하피의 싸움에 큰 긴장감을 선사하진 않는다. 찰리는 자신을 의심하는 경찰 리베라로 인해 목숨도 건지지만 날아가는 까마귀 형상을 한 여자를 보고 리베라 또한 사태의 심각함을 알게 된다.
지상을 지배하려는 모리안들(찰리는 하수구 하피라 부른다)을 더이상 그냥 두고 보지 않겠다며 그들의 아지트로 향하는 찰리와 다람쥐 인간들, 이들의 싸움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악당이 지고 '선'이 이기겠지. 그 과정에서 누가 희생당하게 될지 너무 걱정이 된다. 모리안들과 대적하는 죽음의 상인들, 그리고 또 다른 축으로 등장하는 오드리와 오드리가 영혼을 넣어 만든 다람쥐 인간들. 사실 다람쥐 인간들이 등장하는 것은 참으로 생뚱맞은 상황인데 모리안들과 싸우는데 지대한 공을 세우기에 이곳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존재들로 부각된다. 죽음의 상인인 찰리를 연쇄살인범으로 오해하는 레이, 소피를 보호하는 개 앨빈과 모하메드, 영혼의 그릇이 유방 삽입물에 자리 잡고 있어 매디슨 매커니의 영혼의 그릇을 수거하지 못한 찰리의 모습과 원칙주의자인 경찰 리베라가 이 일로 죽음의 상인이 되는 설정은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사랑하는 아내의 영혼을 지키기 위한 찰리의 분투, 그리고 찰리에게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는 것을 보면서 너무도 인간적인 그의 모습에 마음까지 따뜻해져 온다. 그 뒤로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여전히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행복하게 잘 지내겠지? 나도 찰리처럼 반짝반짝 붉게 빛나는 영혼의 그릇들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죽음의 상인이 되고 싶진 않고, 그저 영혼을 한번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