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
클레르 카스티용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원한 사랑은 없다. 아니 사랑은 변하지 않는데 사람이 변하는 것일게다. 변질된 사랑을 앞에 놓고 구질구질하게 "사랑했었다"고 지금의 감정을 대변하는 것이 사람이다. 새로운 사랑이 찾아와 옛사랑을 벗어던지든, 보기 싫어져 사랑이 식었든 결론은 하나다. 싫으니 떠난다는 것이다. 이 말에 어이없이 멍하니 바라보게 되는 상대방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휑하니 바람소리만 남기며 떠나는 상대, 아마 죽일듯이 미워지겠지. 이렇게 가슴아프게 하는 사랑이건만 우리는 불에 타 죽을줄 알면서도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그 사랑에 손을 뻗는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끌어당기는 것일까. 그 사랑의 마력에 취할쯤엔 소용돌이속에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니 아마 이 때 클레르 카스티용의 책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를 읽으면 덜 외로울지도 모르겠다.

 

백마탄 왕자님, 신데렐라 등의 이야기들은 너무 현실감이 없다. 살아가는 것이 힘들고 각박할수록 우리는 아름다운 이야기, 왕자 공주 이야기를 꿈꾸게 된다. 그래서일까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의 23편의 이야기들을 읽어가자니 가슴이 서늘해진다. 부정할 수 없는 그녀의 이야기를 애써 외면하고 싶지만 무언가 나를 꽉 틀어쥐고 놔주지 않아 앉은자리가 불편하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이다. 나는 그저 저자가 전하는 이야기들을 100% 소화시킬 능력도 이해력도 없어 그저 내가 처한 상황에 맞춰 글들을 읽어나간다. 내면을 틀어막는 무언가를 치워버리고 오롯이 받아들이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안타깝다. 내가 너무 현실적인가 보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라고 지적해주지 않으면 이해할 수가 없으니 그점이 조금 아쉽다.

 

돈 벌기 바빠 사랑하는 여인의 곁에 머무르지 못하는 남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늘 기차역으로 나가야 한다. 서로의 트렁크들을 교환하며 서로를 느껴가는 두 사람. 그러나 그가 건네준 트렁크 안에는 빨아야 할 옷들뿐만 아니라 원피스와 그 안에 임신테스트 시약 하나가 들어있었다. 남편에게 여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애써 부정하며 자신이 아이를 가진양 사람들에게 "난 지금 애를 가졌어요"라고 말하는 그녀. 제정신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역시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는 제목에 맞는 내용이 아닌가.

 

여기 단편들은 몇 사람이 등장해도 한사람의 기억에 의존하여 독백으로 이루어지기에 읽어나가는 것이 힘들고 조금 지루하다. 대체 어떤 상황인지 조금이라도 알려면 단편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알 수 있으니 힘든가 보다. 이러니 내용을 읽어나가면서 추상적으로 느껴지지 않겠는가. "사랑"에는 실체가 없으니 추상적으로 느껴지는게 맞겠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남녀는 모두 완전하지 않은 존재로 등장한다. 불완전한 모습이기에 그들의 사랑의 결말은 더 애처롭고 가슴이 아프다.

 

"콩쿠르를 위해 태어난 아이들"의 단편은 스릴러적인 요소도 갖추고 있어 섬뜩하기까지 하니 저자가 말하는 사랑의 모습엔 도저히 밝은 색채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도 세상이 살아갈만한 곳이라고 느끼는 건 "사랑"과 "따뜻한 정" 때문일텐데 이 책안에서의 삶은 희망보다는 절망을 더 많이 느낄 수 있어 오히려 내가 발딛고 사는 이 곳이 핑크빛으로 보이게 된다. 이것이 저자의 의도일까. 아주 어두운 곳을 보여준 뒤 밝은 곳에 데려가면 찬란한 빛 때문에 눈조차 뜰 수 없을테니까. 그래서 삶은 참으로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닐까.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는 글이 가슴에 박혀 움직이지 않는다. 실체도 없는 그 사랑이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고 살아가는 우리는 강한 존재일까, 약한 존재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