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아들 '루트'를 소수만큼이나 아낀 박사로 인해 미혼모 파출부 '나'는 가족을 가진 듯 행복을 느낀다. 책을 다 읽고 가슴속에 벅차오르는 감동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교통사고로 기억이 80분밖에 지속되지 못하는 예순네살의 수학자, 파출부인 '나'와 아들 '루트'(머리가 밋밋하여 박사가 지어준 별명)가 80분간의 행복스토리를 만든다. 잠을 자고 깨어났을때 삶이 늘 새롭게 느껴지는 박사는 매일 보는 파출부에게 "자네 생일이 몇월 며칠인가?"의 질문을 한다. 외출했다 돌아왔을때 80분이 지나있다면 어김없이 이 질문을 받는다. 아마 이 질문을 매일 받는 사람이 나였다면 얼마 못가 지쳐버렸을 것이다. 아들 '루트'를 아껴주고 보호해주는 박사의 행동에 그녀는 박사의 똑같은 질문을 지겹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박사가 사랑하는 '숫자'만큼의 대접을 받는 듯 행복을 느끼게 된다.

 

숫자에 관해서는 천재적인 박사, 80분의 기억밖에 가지지 못하는 그에게 숫자는 자신이 가진 전부였다. 박사가 아플 때 간병하는 그녀를 보며 혹 박사에 대한 마음이 '사랑'이 아닐까 의심해 보았는데 박사를 돌봐주는 안채에 사는 형수도 같은 생각을 했었나 보다. 박사가 아플 때 옆에서 돌봐주며 집에 가지 못하는 그녀를 당장 해고시킨다. 부당한 대우라고 항의하고 싶지만 나도 어렴풋이 형수의 박사에 대한 마음이 짐작이 되기 시작했다. 파출부를 들이기 위해 면접을 볼때는 억지로 돌봐줘야할 사람으로 대우하더니 그래도 무슨 일이 있는지 형수가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며 다행이라는 생각과 박사와 형수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것이다.

 

기억해야할 것을 메모지에 적어 입고 있는 양복 곳곳에 꽂아두는 박사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매일 찾아오는 파출부를 기억하기 위해 못 그리지만 최대한 그녀의 모습을 담아 그려놓고 매일 맞이하는 박사, 새롭게 맞이하는 날들이 그에게 얼마나 큰 고통이 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사고 후 한번도 밖에 나가지 못한 그를 데리고 야구장에 간 그녀와 루트. 긴장해서 중얼중얼 야구에 관한 숫자를 이야기하는 것을 보며 애처롭기도 하고 기억이 멈춰있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다 알지 못하기에 마음이 아파온다. 이미 은퇴한 '에나쓰'의 생생한 옛 모습을 기억하는 박사에게 에나쓰는 이 경기에 등판하지 않는다는 거짓말은 그를 배려하는 그녀와 루트의 마음이다. 에나쓰가 다른팀에 들어가고 이젠 은퇴까지 한 것을 알았을 때 박사의 보인 절망에 너무 가슴이 아파 선의의 거짓말을 하지만 그녀와 루트가 선물한 에나쓰의 글러브 조각이 박혀 있는 1985년 한정 프리미엄 카드로 박사는 물론 나까지 가슴이 벅차오른다.

 

행복이란 물질적인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작은 정성, 마음에서 온다. 프리미엄 카드를 죽을때까지 목에 걸고 있는 박사의 모습은 그녀와 루트에게 '가족'이라는 의미를 제공해 준다. 선물을 받았을 때 이렇게 감동해준다면 주는 사람들이 얼마나 기쁠까. 멈춰버린 기억으로 영원히 기억되는 형수의 존재보다 늘 80분의 기억속에 존재할 뿐이지만 새로운 추억을 만드는 그녀와 루트는 박사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자네 신발 사이즈가 몇인가? 태어날때 몸무게가 얼마였지?"라고 누가 질문을 한다면 별 이상한 사람 다 있다며 쳐다만 보지 말고 성실히 대답해 주자. 80분간만 기억이 지속되는 병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짧은 시간에 그들이 느꼈을 소중한 시간이 나에게도 인생을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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