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범인 없는 살인의 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윤성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일곱 편의 단편들, 책 제목이 "범인 없는 살인의 밤"이지만 범인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마도 저자는 '악인'은 없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정말 사람을 죽이고 싶어서 죽인 사람은 없다. 우연히 단 한마디의 말로 그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하고, 그 죽음에 자신이 관련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있다. 누가 이들에게 죄가 있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고 소리칠 수 있을까. 이미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스스로 만든 감옥속에 들어갈 사람들인 것을, 꼭 눈에 보이는 곳에 갇히는 것만이 죗값을 받는다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의 고통,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벌인 것이다. 갑자기 소름이 돋는다. 의미 없이 던지는 말들속에서 늘 상처만 받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쉽게 내뱉고 쉽게 잊어버린 말들 중에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준 일이 없을까. 아직도 그 말을 잊지 못해 괴로워 하는 사람은 없을까. 각 단편들을 읽어가는 동안 내내 마음이 불안해진다.
첫 번째 단편을 제외하고는 범인을 잡기 위한 경찰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우발적인 살인이더라도 계획적으로 은폐하려 한 범인과 경찰들의 두뇌싸움은 트릭이 있지 않을까, 또 다른 반전이 있지 않을까 궁금해 하는 독자들에게 언제나 새로운 사실들을 던져준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첫 번째 단편 "작은 고의에 관한 이야기"에서 나카오카가 친구 다쓰야의 죽음을 파헤치는데 경찰의 도움 없이 친구의 죽음이 타살이라는 전제하에 다쓰야의 죽음을 목격한 친구들을 만나며 그 죽음의 진실에 다가간다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자면 옥상에서 떨어진 자살이라고 단정지은 이 사건이 그냥 묻혀버릴 수도 있는데 나카오카 덕분에 사건의 모든 진실이 드러난다는 것이 아쉽게 느껴지는데 범인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해도 누구에게 그 죄를 물어야 하는지 몰라 가슴만 답답해질 뿐이라 '법'이니 '정의'니 이런 것들이 모두 소용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호흡이 긴 장편소설이었다면 주변 인물들도 여러명 등장하며 누가 범인일까, 촉각을 곤두세우게 했을테지만 짧은 단편들로 이루어진 "범인 없는 살인의 밤"은 그 사건에 관계된 사람들만 등장하여 "이 사람이 범인일 것이다" 충분히 추측을 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왜 그 사람이 범인인지 알아내는 것이 어려워서 결국엔 짧은 단편이지만 빠르게 책장을 넘기게 되는데 그 결말에 이르게 되면 늘 무언가 생각할 수 있는 몇 개의 진실을 던져주는 저자에게 또 놀라게 된다. 범인이 잡히고 그 죗값을 치르게 하는 수많은 책들의 결말과 다르게 히가시노 게이고가 "범인 없는 살인의 밤"에서 독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한 것은 분명 '결말에 이르게 한 진실', 이것일 것이다.
작은 고의, 연정, 잘못된 생각 등은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있어 빠질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이지만 이것으로 인해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이 꼭 소설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여서 가슴이 서늘해진다. 텔레비전에서 접하는 끔찍한 사건사고들을 보며 '나는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는게 아니라 피해자인 불특정 다수속에 내가 포함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공포심을 느끼게 되는 것이 또 내가 살아가야 하는 삶이란 것이 무섭다. 한 번의 손짓, 한마디의 말만으로도 사람이 죽을 수 있어 때론 너무나 가혹하게 느껴지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