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가족 레시피 -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
손현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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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이네 가족들을 레시피대로 요리하면 아마도 '그리움'만 남을 것이다. '외로움'이라는 진한 향취도 느낄 수 있을 테지만 아무도 이 맛들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여울이조차도 가족들에게서 느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니까. 그런데 '그리움'에는 어떤 맛이 날까. '외로움'은? 달콤쌉싸름한 맛? 시큼한 맛? '사랑'이 어떤 냄새를 피우는지, 어떤 맛을 내는지 알지 못하는데 '외로움'과 '그리움'을 논할까.

 

학교에서 수행평가로 자서전을 쓰라는 숙제를 내어 준 후 진지하게 아주 아주 잠깐 가족들에 대해 고민해 본 여울이는 바로 결론을 내린다.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는 불량 가족'. 돈을 모은 후 출가를 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한 여울이, 내가 보기에 집에 있는 것이 인내와 수행을 필요로 하는 출가일 것 같은데 굳이 가족들을 떠나 집 밖으로 훨훨 날아가고 싶단다. 코스튬플레이에 빠져 자신을 깊이 감춰버린 여울이는 피오나 공주 옷을 입고 현실을 잊는다. 슈렉이 나타난다 해도 마법이 사라진 후의 현실만 남을 뿐이지만 여울이가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은 코스튬플레이의 세상 뿐이다.

 

온몸에서 '외롭다'는 말을 발산하는 여울이는 나이트클럽 댄서였다는 엄마를 그리워한다. 그녀는 자신의 가족이 이렇게 불량할 수 없다며 사랑을 먹지 못하고 자란 자신이 얼마나 불행한가 말하고 있지만 여울이에게 송장 칠 나이에 똥기저귀 빨게 했다며 할매가 신세 한탄을 하며 여울이에게 욕을 해도 그 밑바탕에는 분명 '애정'과 '사랑'이 깔려 있음을 절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할매가 하는 한탄 속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세월이 묻어 있다.

 

술을 마신 후 물을 마시며 밤하늘을 올려다 보는 여울이의 뒷모습이 그렇게 슬퍼보일 수가 없다. 비록 잠시 후 아빠에게 무지막지하게 얻어 맞게 되지만(사실 이런 구타 장면은 쉽게 봐지지 않는다. 이런 모습이 가족이냐 물으면 할말도 없다.) 술을 마신 이유를 묻지 않고 때리기부터 하는 아빠가 야속하지만 이것이 현재 여울이의 위치다. 술을 먹고 늦은 시간까지도 들어오지 않는 딸에게 왜 술을 마셨느냐고 묻고 뭐라할 부모는 몇 없을 거다. 그래도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찾고 연락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들이 가족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니 여울아. 자신을 찾아주는 가족이 있기에 이런 투정도 부려보는 거지? 여울이 넌 할매가 없이는, 아빠가 없이는, 엄마가 다른 형제들이지만 언니와 오빠가 없으면 가족일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잖아.

 

짐을 챙겨 집을 나간 삼촌이 택시를 타기 전 여울이에게 돈 있느냐고 묻는 장면에선 유쾌하진 않아도 심각했던 상황에 잠시 여유가 생긴다. 하지만 유일하게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 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아무 것도 묻지 않았던 삼촌이 집을 나가는 것이 여울이에게는 가족이 해체 되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한다. 물론 태어나자마자 엄마와 떨어지게 된 것이 처음이지만 그 때의 기억은 없으니까. 코스튬플레이에서 만난 아줌마가 여울이의 엄마였다면 하고 간절하게 바랐었지만 그런 드라마 같은 일은 여울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인가 보다. 여울이를 그리워 해 딸을 보기 위해 코스튬플레이에 나타난 엄마, 따뜻한 보리차 한 잔으로 가슴이 따뜻해진 여울이에게 이런 일이 생긴다면 정말 행복할텐데. 원하는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인생인 것이다.

 

삼촌과 언니, 오빠가 집을 나가고 이젠 아빠까지 구치소에 있는 지금, 할매마저 이 집을 떠나면 여울이 혼자 남게 된다. 가족들이 모일 때까지 할매와 둘이서 떠난 가족들이 돌아올 때까지 그들을 그리워 하며 기다리지만 이제야 비로소 자신이 가족 중 한 사람으로 인정 받은 느낌이다. 첫 키스의 달콤함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살아 갈 사춘기 소녀였던 여울이가 어른으로 성장하기까지 험난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이제 더이상 코스튬플레이의 세상에 숨어 자신을 내려놓지 않을 것이다. 가족은 함께 있을 때만이 서로를 외롭지 않게 하니까. 이제 더이상 그리워하며 살아갈 수는 없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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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범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0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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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사 두고 '모방범'의 후속작 '낙원'이 출간된 후에야 이 책을 만났다. 왜 책 제목이 '모방범'일까. "범인의 머릿속에 있는 환상, 어리석은 대중이라는 환상도 누군가가 말했던 것을 그대로 빌려온, 흉내나 내는 원숭이와 다름없다"고 진범 X에게 일갈하며 피해자의 가족인 요시오가 소리치는 말에서 '모방범'이라는 제목이 여기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솔직히 통쾌했다.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마에하타 시게코가 방송에서 진범 X에게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대다니 실제 생방송을 내 눈으로 봤다면 가슴이 떨렸을 것이다. 그러나 세 권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전개가 느려 결코 쉽게 읽어지는 책은 아니었다.

 

모방범은 오가와 공원의 쓰레기통에서 핸드백과 한 여성의 오른쪽 팔 하나가 발견되며 시작한다. 이것으로 연쇄살인의 서막이 올랐지만 실상은 오래전부터 많은 여성이 실종되고 살해되어 왔다. 무능한 경찰을 부각시키기 위함일까, 범인은 방송국에 전화를 하며 자신의 마음대로 세상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핸드백의 주인이 오른쪽 팔의 주인은 아니었다. 범인은 핸드백의 주인 후루카와 마리코의 할아버지 요시오에게 전화를 해 그 손녀가 살아있지 않을까 희망을 줌으로써 그 상황을 즐긴다. 살인을 하고 세상에 알리며 무대에 등장하는 범인, 사람들은 경악한다.

 

범인으로 생각되는 구리하시 히로미와 다카이 가즈아키가 갑자기 사고로 죽었을 때 이렇게 끝난 상황에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경찰은 범인의 윤곽조차 잡지 못했는데 사고로 죽다니, 이 사건은 이제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사람들은 범인이 천벌을 받은 것이라고 했지만 나는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건이 종결된 듯 보여 끝을 내야 했겠지만 저자는 2권에서 범인의 시각에 따라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여기에서 이미 죽었지만 히로미 외에 별명이 '피스'인 다른 범인이 한명 더 있음을 알게 되며 세상에서 알고 있는 다카이 가즈아키가 억울하게 범인으로 누명을 썼다는 생각에 2권을 읽는 동안 초조하기만 하다. 피스의 등장, 그렇다. 이 사건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아미가와 고이치는 각본에 따라 가즈아키의 무죄를 주장하며 자신이 만든 무대 위에 관객들도 가담시킨다. 그가 가즈아키의 여동생 유미코에게 접근하는 것을 보며 위험 상황이라는 생각에 긴장하게 된다. 경찰과 마에하타 시게코에게 당당하게 오빠의 무죄를 주장하던 유미코는 철저하게 아미가와의 꼭두각시로 전락하고 수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왜, 작가는 그녀를 이렇게밖에 그리지 않았을까. 나는 유미코가 어린시절 함께 보낸 히로미의 친구 '피스'의 존재가 진범일지 모른다는 단서를 경찰에게 제공할 줄 알았다. 그러나 단지 아미가와가 멋지게 무대에 등장하기 위한 발판일 뿐이었다니 이해할 수가 없다.

 

히로미와 가즈아키가 범인이라는 가정하에 글을 쓴 시게코는 아미가와로 인해 글을 더이상 쓸 수 없게 된다. 자신이 만든 무대에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시게코를 인정할 수 없었던 아미가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그를 얼마나 끔찍하게 여겨야 하는 것일까. 진범이 누군지 알고 있는 그가 가즈아키는 무죄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며 소름이 돋았다. 시게코는 실종된 여성들을 다루는 글을 쓰다 자신의 취재 대상에 있던 마리코의 핸드백이 등장하는 것을 보며 이 사건을 다루게 된다. 피해자 가족 입장에서 보면 그녀가 글을 쓰는 이유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왜 이런 범죄가 일어나는지 파헤쳐 보고 싶은 시게코, 그녀는 이 책에서 꼭 필요한 존재로 부각된다.

 

사실 시게코가 등장할 이유가 있었을까. 다른 사건의 피해자인 신이치의 등장 또한 시선을 분산시킬 뿐이라 불필요한 존재로 여겨졌다. 실종된 많은 여성들. 독자의 시선을 잡아두지 못한 채 사건의 전개는 지루할만큼 느렸고 경찰들 또한 가즈아키의 몸에 있는 주사바늘만 봤어도 그가 이 사건의 범인이 아닌 피해자임을 알았을텐데 너무 무능하게 대처했다. 가즈아키의 죽음에 동정심이 들진 않는다. 끝까지 히로미를 믿은 가즈아키가 조금 안쓰러울 뿐, 히로미가 범인임을 알면서도 또 다른 희생을 막지 못했기에 그도 공범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조금 아쉽긴 하지만 무대 위에 직접 나타난 아미가와를 보며 가슴이 서늘할만큼 충격적으로 다가온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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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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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본 밤 하늘에는 달이 하나 밖에 없답니다. 두 눈을 비비고 아무리 자세히 살펴 보아도 달이 하나입니다. 그건 엄청나게 다행스런 일이라구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로지 앞으로만 나아갈 수 있는, 되돌아 갈 수 없는 곳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정말 많이 슬퍼질 것 같거든요. 물론 극소수의 사람만이 달이 두 개인 것을 알아차리겠지만요.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제가 발을 디디고 서 있는 이 곳은 1Q84년이 아닌 1984년을 훨씬 지나 2010년의 아주,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말한다고해서 무엇이 달라질까요. 다만 후카에리가 들려준 '공기 번데기', '리틀 피플', '리시버'와 '퍼시버' 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는 믿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믿지 않으면 덴고와 아오마메의 사랑이 너무 슬프니까요.  

 

'1Q84'란 책 제목을 처음부터 제대로 읽어내는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것이다. 'IQ84'로 읽은 사람이 대체로 많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 책을 읽어본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것들에는 책 제목을 자신있게 '1Q84'라고 제대로 발음할 수 있는 것까지 포함되는데 이는 달이 두 개인 하늘을 바라보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그 달. 들. 을 눈으로 직접 보지 않는다 해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음을 서로가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어 무라카미 하루키가 만들어낸 작품 세계에서 내가 수많은 사람들속에서 이질적인 존재로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덴고의 이야기, 아오마메의 이야기가 하나씩 나열되고 이들이 어떤 형태로든 운명적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아니 덴고의 입에서 '아오마메'라는 이름이 불리었을 때 두 사람은 그대로 서로의 운명이 된다. 같은 공간에서 하늘에 떠 있는 두 개의 달을 함께 바라보는 두 사람의 모습이 겹쳐질 때 나는 덴고와 아오마메는 꼭 만나야만 한다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책장을 넘겼다. 어디까지나 모든 결말은 작가의 손에서 탄생하는 것이겠지만 한 사람은 1984년에, 또 한 사람은 1Q84년에 놓아둔 것도 아닌데 시공을 초월하는 공간에 함께 있는 두 사람을 못 만나게 한다는 것은 독자로서 괘씸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다. 두 사람이 없었다면 결코 1Q84는 탄생될 수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한 소녀가 한 소년의 손을 강하게 잡으며 서로의 눈을 들여다 보며 마음과 마음이 통했다고 해도 이 기억을 몇 십년 동안 간직하고 이 감정에 매달려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것이 가능할까. 어리 아이들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말이 아니다. 그 때는 사랑인줄 몰랐을 것이다. 세월이 지나 상대를 그리워하게 되면서 사랑이라는 확신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그 뒤로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을 운명적으로, 우연하게 만나길 기대하면서 살아가는 아오마메가 덴고를 향한 사랑을 지키며 목숨까지 내어 놓는다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모르겠다. 현실이 아닌, 소설속에서나 가능한 것이 아닐까 묻고 싶다. 덴고의 아오마메를 그리워하는 마음, 아오마메의 덴고를 향한 마음, 이것이 두 사람을 1Q84라는, 현실과 어긋난 공간속으로 불러들였겠지만 덴고와 아오마메의 로미오와 줄리엣보다 더 슬픈 사랑이야기에 가슴이 아파 이들이 사랑과 다른 이유의 운명으로 이끌린 것이라고 그 사랑에 외면해 버리고 싶게 만든다. 사랑하지만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 덴고와 아오마메의 사랑은 이로인해 비극적인 사랑을 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보다 더 가슴 아픈 사랑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제 우리는 후카에리와 덴고가 함께 만든 '공기 번데기'라는 책으로 인해 이 세계의 어딘가가 어긋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Q84라는 공간으로 어떻게 걸어 들어갈 수 있는지 모르지만 독자들도 이 책으로 인해 나도 모르는 사이에 1Q84에 들어와 버렸다. 같은 공간에 있지 않다면 덴고와 아오마메, 후카에리의 이야기를 결코 들을 수 없었을 테니 우리들이 1Q84에 있다는 것은 정확한 말일 것이다. 다시 1984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게 되었다. 앞으로만 나아갈 수 있는 이곳에서 힘들지만 덴고와 아오마메, 후카에리를 지켜볼 수 밖에 없다. 달이 두 개인 괴이한 공간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 밖에 없다. 덴고와 아오마메, 후카에리만을 제외한 우리들이 상실되는 상황이 벌어진다해도 우리는 그저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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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장미 문학동네 청소년문학 원더북스 13
캐서린 패터슨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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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장미], 이 책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분명 소년이 가지고 있는 빵보다 소녀가 가지고 있는 붉은 장미꽃에 눈길이 머물며 소년과 소녀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일까 착각에 빠져 망설임이 없이 책장을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빵은 로사와 제이크의 생존을 위해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장미는 빵 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에 책장을 넘기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이 책의 첫 장을 펼쳐들 자격이 나에게 있을까', 한참을 고민했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렸던 기억이 없으므로, "공장에 나가 일을 해서 받은 돈으로도 가족들을 굶기고, 파업을 해 돈을 벌지 못해도 가족을 굶기는 것은 똑같다"고 한 로사의 엄마의 말을 가슴으로 느낄 수 없으면 어쩌나 저어하여, 과연 나에게 로사와 제이크를 만나도 될지 이 아이들에게 감히 물어볼 수가 없었다.

 

로사의 가족들이 겪은 일은 100년 전의 내가 밟아보지 못한 땅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로사의 가족들과 함께 거리로 나간 이들의 마음을 가까이에서 호흡하며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로사 엄마의 맑은 목소리로 선창한 "우리는 결코, 우리는 결코 움직이지 않으리. 우리는 결코, 우리는 결코 움직이지 않으리. 물가에 심은 나무처럼......"을 따라 부를 수 없었으며 가슴 벅찬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생존권을 위협받는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처지와 그들의 마음이 하나로 뭉쳐질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물론 이해한다고 그들과 온전히 하나가 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이들의 이야기를 기억할 순 있을 것이다.

 

로사의 재능을 아까워하는 핀치 선생님은 공장주의 입장에 서서, 아니 법의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돈이 없어 먹을 것을 해결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교과서를 사 오길 기대하는 아주 순진한 사람으로 등장한다. 이는 로사의 엄마-로사-핀치 선생님 이렇게 세 사람이 사람들이 공장이 아니라 거리로 나설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해하고 화합하는 과정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변화시켜 가는지 잘 알려줄 수 있는 인물로 여겨지는데 파업이 장기화 되면서 아직 학교에 나오는 아이들을 위해 아침을 준비하는 핀치 선생님의 변화된 행동은 시간이 흐르며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게 되었는지 잘 나타내 준다. 이는 독자들이 마지막 책장을 넘겼을 때의 감정과 동일한 것이었을 것이다.  

 

같은 곳에서 살아가지만 로사와 제이크의 삶은 너무나 다르다. 벌어온 돈을 아버지에게 모두 빼앗기고 구타까지 당하는 제이크는 쓰레기 더미에서 만난 로사와의 첫 만남이 부끄럽기 보다는 이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음을 당당하게 여기며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제이크에게 양심이란게 있느냐는 질문은 불필요하다. 성당에 있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헌금을 훔쳐가 먹을 것을 해결하는 제이크에게 그 누구도 손가락질을 할 수 없다. 이들과 함께 호흡하며 '빵과 장미'에 대한 의미를 알 수 없는 자라면 그 누구라도 말이다.

 

'빵과 장미 파업' 기간동안 로사와 제이크는 버몬트에서 지내게 된다. 로사에게 버몬트는 가족들과 떨어져서 살게 되는 외로움과 슬픔이고 제이크는 현실을 부정하고 새로운 장소로 떠날 수 있게 하는 장소가 된다. 로사와 제이크의 버몬트에서의 삶은 독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모든 것에 안도하게 한다. '버몬트' 이곳은 현실적인 의미에서 벗어나지만 로사와 제이크가 어른이 되기 전에 머무르는 장소로 여겨져 독자들에게는 책장을 넘기는 손길을 편안하게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뉴욕'으로 떠나고 싶었던 제이크에게 '버몬트'는 새로운 삶을 선물한다. '빵과 장미 파업'이 마무리 되어 집으로 돌아가게 된 로사의 뒷모습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안도감, 그리고 행복과 사랑이 담겨져 있다. 버몬트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의 헤어짐은 또 다른 슬픔을 안겨주지만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은 오랜 시간 떠나있던 집으로 가는 듯 나의 마음까지 편안해지게 한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가슴 가득 느껴지는 따뜻함으로 인해 오늘 밤은 한결 행복하게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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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방 모중석 스릴러 클럽 29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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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와 티아, 애덤, 질, 이제 이들은 예전과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티아는 온 정성을 기울여 아이들을 사랑하면 된다고 끊임없이 되뇌이지만 어른이 되어가는 애덤과 질이 다른 아이들과 다른 성장과정을 겪었기에 모든 것들이 쉽지 않을 것이다. 친구 스펜서의 죽음 이후 달라진 애덤, 친구의 죽음으로 슬픔에 잠겨서 달라졌다고 하기에는 비밀이 많아 보인다. 애덤이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마이크와 티아가 한 행동은 이후 애덤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로 애덤에게 신뢰를 잃는 행동이었다. 아이가 위험에 빠져서 죽기라도 한다면 어쩌냐는 반대 의견을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애덤을 위험에서 구해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애덤을 믿고 기다렸다면 좀 더 긍정적인 결말을 얻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 모든 것이 가정이긴 하지만 단 두 통의 이 메일이 일으킨 폭풍은 정말 그 누구라도 겪고 싶지 않은 끔찍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할런 코벤의 '아들의 방'은 매리앤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책장을 넘기는 동안 매리앤의 죽음과 애덤의 이야기의 접점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변호사인 티아가 매리앤의 사건을 맡는 것인지. 매리앤의 죽음으로 알게 된 모든 사실들이 독자들에게는 반전과 같았다. 내시가 저지르는 살인이 너무 끔찍해서 한 곳으로 좁혀오는 그의 행동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작가는 매리앤을 죽인 내시를 그대로 노출시킨다.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범인을 찾는 것이 주 목적이 아니란 얘기다. 내시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행동을 하고 있고 그가 가야만 하는 곳에 대체 무엇이 있을지 나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우리의 삶은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타인에 의해 삶이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인생을, 삶을 열심히 노력하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나. 수전 로리먼, 조 루이스턴, 가이 노박, 매리앤, 야스민, 마이크, 티아, 애덤, 질, 스펜서 등 가까이 사는 이웃이 서로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알게 된다면 놀라게 될 것이다. 한 마을에서 여러 사건이 그것도 아주 끔찍한 사건이 연이어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지금 당장 가족들을 집에 보낸 후 현관문을 잠그고 영원히 밖으로 나오고 싶지 않게 될 것이다. 수전 로리먼이 개인적으로 겪은 사건만이 작가 할런 코벤에 의해 만들어진 결말이었다. 우연과 운명이 강하게 작용하여 수전의 아들을 살리는 긍정적인 결말을 만들어냈다.

 

마이크와 티아, 애덤, 질, 이 가족이 이번 사건으로 모두 죽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운명은 수많은 우연과 인연에 의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고, 예전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없을지라도 가족들이 함께 있을 수 있는 결말을 맞게 했다. 우정을 지키려고 노력한 애덤과 아들을 지키려고 목숨까지 건 마이크, 질을 지켜주려 한 티아, 엄마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하려한 질, 이런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 이들은 차디찬 땅속에 묻혀 있게 되었을 것이다. 가족의 사랑만이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것이다. 약하기만 한 가이 노박도 딸 야스민을 위해 목숨도 내어 놓을 수 있는 부모인 것이다. '아들의 방'은 자식을 지키려는 부모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정의'에 위배되지만 자식을 위해 그 어떤 거짓말을 해도 이해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완전하게 세상에 밝혀진다고 해도 바뀌는 것은 없을 것이다. 로렌 뮤즈가 어떤 사실을 알았다고 해도 아무말 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들도 그냥 조용히 덮어두면 된다. 이제 모든 사건은 끝을 맺었으니까.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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