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합본 메피스토(Mephisto) 13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김선형 외 옮김 / 책세상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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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이 책의 정확성을 파악할 길이 없다. 무슨 수로 우주에 나가 알아본단 말인가. 머리 둘 달린 전 은하계 대통령이었던 자포드의 모습조차 마주 대할 용기가 없는 것을. 사실 우주로 나갈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파괴되기 전 과거의 '지구'인 듯 한데 뜻하지 않게 미래의 지구가 어떻게 될지 알게 된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썩 유쾌하지 않다. 음, 아주 충격적인 일이지. 지구인으로서는 아서 덴트와 트릴리언만이 지구를 탈출하여 자신의 삶을 연장해 나갔으니 자포드나 포드같은 외계 친구가 없으면 살아날 길이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 쓸데 없는 노력하지 말고 그냥 주어진 삶(삶이라고? 우리들에게 삶이 있기는 했나. 생쥐들에게 물어보면 나에게 '삶'을 논할 자격도 없다 할 것이다.)이나 살아가는 게 좋다. 시간이 나면 우주선이나 하나 만들어 보든가. 아, 정말 내가 무슨 큰 잘못을 했다고, 명령대로 "삶, 우주 모든 것에 대한 질문"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을 찾기 위해 '지구'에서 움직인 것 밖에 없는데 그놈의 우회로를 만들기 위해 지구가 파괴되어야 하다니, 지금 시점에선 정말 할 말이 없다.

 

아서의 집이 파괴될 위기에 놓였을 때 '지구'가 우회로를 위해 파괴된다는 글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껴 이건 뭔가 나의 감정선에 크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통쾌함마저 느꼈으니 그 증상이 심각하다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목구멍을 간지럽히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계속되자 이 책은 SF소설이라기 보다 풍자소설이라고 이름 붙이는 게 낫겠다며 나의 증상을 스스로 치료해 버리고 말았다. 늘 우울한 로봇 '마빈', 레스토랑에 가니 동물 스스로 죽겠다고 손님에게 "어떤 부위를 드시겠어요?"라며 묻지를 않나, 컴퓨터가 홍차를 만들어내겠다고 침묵하지 않나 이건 무엇을 상상했던 당신이 상상했던 그 이상이니 나의 상태가 이상하다고 의심할 게 아니다. 더구나 아이러니하게도 책을 읽는 동안은 웃음이 터져 나올듯 말듯 목구멍을 간지럽히기만 하더니 옆에 있는 사람에게 내가 알고 있는, 지금 막 알게 된 우주에 대해 말해주면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이건 대체 무슨 현상이지? '지구'를 대체로 무해함이라고 정의내린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읽으면서 자존심 상하게 옆에 있는 사람과 이러고 있다. 도대체 지금 상황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

 

우연과 운명이 겹치지 않는다면 우주에서 살아남기 힘들었던 아서는 외계 친구 포드와의 질긴 인연을 이어가며 우주를 신랄하게 바라보는 포드와 다르게 여전히 지구인의 특성을 몸에 지니며 세상을 아니 우주를 다르게 바라보며 생명을 이어나간다. 이 책은 아서가 바라보는 세상을 그려내고 있다고 해도 무방한데 대체로 모든 것이 이해가 된다고 해도(사실 지구에서 바라보는 우주는 지금의 우리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름만 복잡하게 변했을 뿐이다.) 포드의 우주 여행에 꼭 필요한 '타월'에 대한 집착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우주 여행에 꼭 필요한 필수품이라고 하는데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는 뜻으로 "내 옆에 타월도 있다" 이러고 있으니 도통 모를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여기에 대한 해답 중 하나를 유추해 볼 기회가 있었는데 자포드가 만난 루스타에 의해 의문이 조금 풀렸다. 타월에게 영양분이 고루 갖춰진 식량이라는 역할을 준 것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뿐일 것이다. 먹어도 될 정도로 위생 상태가 좋은 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순 없지만 타월이 내가 생각하는 타월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같은 이름이라도 우주 여기저기에서는 그 맛과 형태가 다를 수 있다고 하니 직접 눈으로 보지 않는 한 믿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보면 된다.

 

사실 나는 우주를 여행할 것이 아니라서 이 책이 꼭 필요하진 않았는데 우주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딱 한 가지 있다면 자포드가 '순수한 마음 호' 우주선을 훔쳐서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는 궁금했다. 이것만이 이 책의 유일한 미스터리한 일이었는데 여기에 '삶과 우주 모든 것에 대한 질문'을 찾아 자포드와 아서, 트릴리언, 포드, 마빈이 움직인다고 해도 이것은 그리 궁금하지 않았다. 여기에 대한 답은 아무리 똑똑한 미래 컴퓨터라도 알아낼 수 없을테니까. 죽는 순간이 온다해도 알 수 있겠는가. 죽어서도 알 수 없는 문제다. 환생할 때마다 아서에게 죽임을 당한 이는 혹시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왜 죽을 때마다 아서의 얼굴이 낯이 익은지 퍼즐을 맞춘다고 궁긍적인 해답을 얻을 틈도 없었겠지만.

 

지구가 파괴 되는 것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은 아서는 그 후 히치하이킹 한 우주선에서 만난 보고인 프로스테트닉 보곤 옐츠에 의해 '시'로 고문을 당하고 우주로 내팽겨쳐져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기어코 살아남아 문명이 만들어지지 않았던 지구의 과거도 방문하고 여기를 탈출하여 크리켓 경기장에도 간다. 여기까지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물에 던지고 몇 년간 말을 하지 않은 것 밖에 없지만) 그는 지구에서 살아남은 정말 정말 행운의 사나이라 하는 것에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 행운의 사나이 아서에게 내가 바라는 것이 있는데 제발 '나'라는 존재가 지구에서 숨을 쉬고 살아있는 것(아니 살았었다는 것)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아서에 의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개정판이 나올 수도 있으니 '지구'란에 대체로 무해함 보다는 더 많은 말들이 적히길 바란다. 거기에 '나'에 대한 말을 짧게 언급해 준다면 더 좋은 일이고. 인류가 어떻게 생겨나고 우주가 어떻게 파괴되는지 그 과정을 모두 담고 있으며 세금을 내지 않으면 일정 기간동안 죽어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 획기적인 법을 집행하는 이 넓디 넓은 우주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물들이 살아간다. 생물과 우주 무한대를 비교하면 결국 '0'이라는 수가 나와 우리 개개인의 존재는 '무'와 다를 바가 없다고 해도 지금 나는 분명히 숨을 쉬며 이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누군가는 꼭 기억을 해줬으면 좋겠다. 이것이 너무 큰 희망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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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의 초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양억관 옮김 / 이상북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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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출장을 간 남편 우하라 겐이치의 실종. 연애기간 없이 선을 본 후 바로 우하라 겐이치와 결혼한 데이코에게 그는 아직 미지의 사람이고 완벽한 타인이다. 그런 그가 사라졌으니 우하라의 실종을 알아보려면 그의 삶을 거슬러 올라가 보는 수 밖에 없다. 한 사람의 삶이 주변 탐문만으로도 얼마나 자세하게 알아낼 수 있는지 알게 되면 놀라게 될 것이다.

 

'제로의 초점'은 남편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는 것으로 미스터리가 되는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우하라 겐이치에게 여자가 있지 않을까 처음부터 짐작은 가능했다. 경찰도 아닌 평범한 데이코가 우하라 겐이치의 실종과 우하라의 형 소타로의 죽음과 그에 이어 계속 벌어지는 살인사건까지 풀어내며 사건의 퍼즐을 완벽하게 모두 맞추는 것을 보면 놀라게 되는데 여기에 탐정은 등장하지 않지만 탐정의 역할을 하는 우하라 겐이치의 후임인 혼다가 등장하여 데이코를 도와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그가 없었다면 데이코가 사건을 풀어낼 수 없을 정도로 혼다는 중요한 인물이다. 사실 데이코보다 먼저 사건의 모든 열쇠를 풀어내기도 한다.

 

그런데 데이코와 혼다가 범인 가까이에 다가가는 동안에도 독자들은 아무 것도 알 수 있는 것이 없다. 아직 데이코의 머릿속에서 사건의 핵심을 정리하고 있어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거기다 데이코는 끊임없이 우하라 겐이치의 실종에 대해 떠올리고 처음부터 사건에 대해 자신의 이론을 정립해 나가는 것을 계속하기 때문에 '너무 말이 많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독자들을 지루하고 답답하게 만든다.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데이코의 머릿속에서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은 연쇄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긴장감을 느낄 수가 없고 사건이 벌어진 후 시간이 조금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꽤 오래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혼다조차 자신이 밝혀낸 증거에 대해 말하지 않으니 오로지 데이코의 독백에 의존할 수 밖에 없어 사건이 해결되긴 하는지 궁금할 뿐이다.

 

많은 사실들을 알아내고 사건의 윤곽을 그려나가는 데이코는 절대 경찰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는다. 왜일까. 남편의 실종을 빨리 해결하려면 경찰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하는데도 우하라 겐이치의 사라진 배경에 더 관심을 가지는 데이코를 이해할 수 없다. 역시 그녀에게 우하라 겐이치는 미지의 남자일 뿐인가. 우하라 겐이치의 과거 삶은 의외로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경찰직에 있을 때 함께 근무했던 하야마를 찾아 알아낸 사실들로 사건의 중심에 다가가게 되는데 그는 살인사건들의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내는데도 큰 도움을 준다. 이러니 데이코가 사건을 쉽게 풀어내지. 그녀가 원하면 금세 알아낼 수 있는 것들이 너무 가까이에 있고 사람을 찾을 때도 찾는 사람들이 너무 찾기 쉬운 장소에 있다.  

 

게다가 우하라 겐이치가 살았던 마을의 사람들은 데이코가 알아내려고 하는 모든 정보에 대해 우호적으로 볼 수 있게 해 주지 않는가. 데이코가 타지에서 온 낯선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럼없이 그녀가 궁금해 하는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보여주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는 태도라니 그들에게 이런 것은 그저 일상에 지나지 않을 정도란 말인가. 이러니 하야마가 우하라 겐이치의 실종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야마는 자신이 말해준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랐겠지만 말이다.

 

데이코가 거듭 생각을 떠올리며 결론을 향해 가고 있기에 독자들도 어느 시점에 이르면 범인이 누구일까, 어떻게 해서 살인사건들이 벌어지게 되었나 조금은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역시 모든 퍼즐을 맞추는데는 데이코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녀가 가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모든 것을 알 수 있지만 데이코가 쫓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너무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너무나 많은 일들을 해결했지만 그동안 데이코의 남편 우하라 겐이치의 존재는 어디론가 사라진 느낌이다. 데이코에게 중요한 사람은 우하라 겐이치인데 말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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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 이마고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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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장애 환자들의 임상사례들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 몰랐다면 책 제목을 읽으며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책이었다. 실제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하다니, 풍자소설인가?' 정도로 생각하며 첫 장을 열었으니 이후 책장이 넘어갈 때마다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신경장애를 떠올리면 '치매' 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여기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나이가 들어 제발 '치매'만은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누구나 소원하는 생각을 떠올리며 살아가는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끊임없이 생각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환자들이 처한 상황을 떠올리며 신경장애를 앓고 있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겨내려 노력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고, 기억을 잃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을 보며 필자가 아무리 자세히 설명해줘도 그게 어떤 느낌인지 모르겠다고 되뇌인다. 활자가 주어진대로 읽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신경장애 환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그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나의 감정을 어떻게 조절하며 읽어야 하고 어떤 감정을 가져야 하는지 끊임없이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 따위는 필요없는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느날 갑자기 몸이 기울어져 걷게 되거나 나의 몸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음에도 인식을 할 수 없어 몸이 없다고 느끼거나('고유감각'의 문제라고 한다.) 오른쪽에 있는 것만 인지를 하고 볼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신경장애 환자들의 글들 중 완치되어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글은 보기 힘들다. 지금의 상황을 좀 더 나아지게 하거나 사라진 감각을 다른 감각으로 채워 상황이 좀 더 나아지거나 할 뿐이다. 과거는 기억하면서 현재까지의 몇 십년 동안의 기억이 모조리 사라진 사람의 증상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기억이 없다면, 과거이든 현재이든 기억이 사라지고 없다면 그 자신의 존재 이유조차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나', 오롯이 나라는 존재가 있기는 한 것일까. 살아서 숨 쉬고 있다는 것은 영혼이 있다는 것인데 어제 일은 물론 지금 당장의 기억조차 남아있지 않다면 영혼에 대해, 아니 거창한 영혼까지 말하지 않아도 존재 가치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지금도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시간이 고통이 되는 사람들, 과거는 물론 현재의 기억까지 사라짐으로써 오히려 고통까지 잃어버린 사람들, 이들 중 누가 더 불행할까. 아내를 모자로 착각하는 P 선생은 사람의 얼굴과 사물의 형태를 분간할 수 없었지만 음악이 자신의 삶의 부분이 아닌 모든 것이 되면서 극복해 나간다. 두 손을 60년간 쓰지 않은 매들린은 손을 써야만 하는 동기부여 즉 충동을 느낌으로써 손을 사용하게 되고 자신에게 잠재되어 있던 예술을 밖으러 드러내게 된다. 삶의 기적, 그래 이것이 바로 기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환자를 하나의 '질병'으로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신경학과는 환자를 병과 씨름하고 의사와 마주하는 살아 있는 인간, 현실적인 환자 개인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환자를 인간 자체로서 중시하는 것이다. 너무나 인간적인 말이지만 환자의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 알게 되는 것은 때론 감정의 동요를 일으킨다. 어떤 일이 있었기에 몇 십년간의 기억이 사라진 것인지 알지 못할 때, 가족들조차 과거의 모습으로만 기억하는 것을 볼 때 이를 가만히 지켜보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환자를 '질병'이 아닌 영혼을 가진 한 명의 인격으로 대하지만 신경학적 증세를 보이는 환자 당사자들에게는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그들의 삶이 잔인하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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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하이웨이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31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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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하이웨이'를 꼭 어떤 범주속에 넣어야 할까. SF소설? 성장소설? 그 어떤 장르속에 포함되어야 한다 해도 아오야마의 누나에 대한 마음을 단 하나로 정의 내리기 쉽지 않다. 아오야마는 펭귄을 만들어내는 누나의 정체를 놓고 장르를 논하고 싶진 않을 것이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무대로 한 '펭귄 하이웨이'만은 모리미 토미히코의 작품세계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유정천 가족'이 좀 더 이해하기 쉬웠다. 전차와 물고기가 날아다니고 공중부양을 하는 대학생이 등장하며 헌 책의 신이 강림하는 등 교토거리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그 특유의 신비로운 느낌때문에 명백한 판타지 장르속에서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오롯이 즐길 수 있었으나 '펭귄 하이웨이'는 눈 앞에 신기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이 현상들을 도무지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니 인정하고 싶지가 않았다. 아오야마가 사는 마을에 어느 날부터 펭귄이 출현하고, '바다'가 숲을 집어 삼키고, 흰긴수염고래와 재버워크가 나타나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는 우리들이 흔하게 겪을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 아니다. 눈 앞에 벌어지고 있는 이 믿을 수 없는 일들이 현실이라니. 진실을 이야기해도 믿어주지 않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냥 꿈이라고 해 버리는 것이 더 믿기 쉬웠을 것이다.

 

'펭귄 하이웨이'의 끝은 어디일까. 아오야마와 우치다가 연구하는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하나의 문제로 통하고 있고 언젠간 그 끝에 이르게 되겠지만 그 중심에 '누나'가 있는 한 정의로운 답을 내리는 것이 쉽지 않다. 어른보다 더 어른 같은 아오야마는 일어날 수 밖에 없는 문제를 회피하지 않지만 그 끝에 이르는 것을 감당하지 못할까 겁이 날때가 있다. 그러나 그 끝에 이르렀을 때 아오야마는 결코 울지 않았다. 저 멀리 우주를 향해 나아간다면 언젠간 그리운 사람을 만날 수 있을테니까. 아무 것도 움직인 것이 없지만 누나와 그를 중심으로 한 세상은 몇 바퀴쯤 회전을 한 듯 복잡해졌지만 결혼할 상대로 여전히 '누나'로 정해둔 당찬 아이 아오야마는 펭귄 하이웨이 프로젝트를 연구하며 세상의 끝에 다다른 느낌을 받는다.

 

아오야마의 아버지는 그동안 마을에서 일어나는 신기한 일들을 모두 알고 있었던 듯 하다. 아오야마가 답을 찾을 수 있게 길을 잡아주고 세상에는 해결하지 않는 게 좋은 문제도 있다는 조언을 하며 아오야마가 상처를 받을까 걱정한다. 그러나 아오야마는 주위에서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한, 아무리 불합리한 일이었다고 해도 세상에 드러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역시 애늙은이 같은 녀석이다. 누나의 말처럼 스즈키가 왜 아오야마를 좋아하지 않는지 이해가 간다.

 

우리는 펭귄의 정체와 흰긴수염고래, 재버워크, '바다'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이렇게 말하니 나도 아이들과 함께 연구를 계속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 누나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쉼 없이 달려왔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 연구에 어떤 결론을 내릴까 궁금함이 더했지만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도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내려주진 않아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웠다. 물론 "누나는 무엇이다"라는 한 마디로 끝내 버린다면 아오야마, 우치다, 하마모토, 스즈키가 겪은 일들이 너무 황당하긴 하겠다. 어린 시절 겪을 수 있는 꿈 같은 일들이라고 정의 내려 버린다면 그것 또한 억울할 것이다. 아오야마가 누나의 나이쯤에 이르러 다시 한 번 누나를 만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많은 위로가 되겠지만 어른이 아닌 아이라서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 건 글쎄 그건 좀 별로다. 그저 누나를 만나기 위해 아오야마가 연구를 멈추지 않는 것만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라니 성장소설이라면 너무 가혹한 처사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아오야마는 자신의 연구를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멋진 어른이 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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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야, 미안해!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68
원유순 지음, 노인경 그림 / 시공주니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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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읽었던, 지금도 즐겨 읽는 신데렐라나 백설 공주의 이야기처럼 "고양이야 미안해"의 어느 단편도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고 끝맺은 동화는 없었다. 가슴이 따뜻해져 오는 동화였지만 자기 반성의 시간을 갖느라 이마저도 느낄 여유가 없었다. 오히려 각각의 동화들이 이야기를 들려주다 갑작스럽게 끝맺은 것처럼 느껴져 허무했다. 한 편의 장편 동화가 아닌 여섯 편의 단편들로만 이루어진 동화여서 명확하게 끝맺지 않고 끝나버린 아쉬움, 등장하는 아이들의 성장을 더 이상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저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바랄 수 있었던 것은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 상상해 보는 정도였다.

 

"고양이야 미안해'는 누구든 겪을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지만 이 이야기들이 특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상처 입은 야생동물을 돌봐주는 도도를 바라보는 '진이', 아픈 고양이를 지나치지 못하는 은선이,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 지호를 골탕 먹일 절호의 기회를 이용하지 않은 아이, 서로 다른 문화에서 살아가는 조나단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기특한 찬민이 등 이 아이들 모두 아직은 어리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를 피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해 나가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정해 주지 않아도 옳바른 길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그 길을 가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선택한 결정이 어른들이 생각하는 현명한 답은 아닐지도 모른다. 죽어 가는 고양이가 가엾긴 하지만 병이라도 옮을까 걱정되어 은선이의 부탁을 외면하는 미나는 지금 현재 나의 모습이며 무수히 많은 타인의 모습일 수 있다. [우아하고 고상한 우리 할머니]에서 할머니가 손주인 지민이보다 자신의 꿈인 화가의 길에만 관심을 가진다면 당연히 지민이처럼 서운한 생각부터 들 것이며 아빠 공장에서 달아난 일꾼 아저씨를 만나면 우주처럼 도움을 주기 보단 외면부터 하게 될 수도 있다. 어른들이라고 모두 정답을 향해 나아가진 않는다. 이런 어른들을 위해 "고양이야 미안해"에 담겨져 있는 여섯 편의 동화는 이렇게 하는 게 어떠냐고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여섯 편의 단편 동화들 중 [고양이야 미안해]를 책 제목으로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 중 수많은 문제들에 부딪치게 되지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들 보다 사람들마다 답이 다를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떤 답을 내어 놓을 것인지 생각해 보라는 의미일까. 각 단편들이 모두 쉽게 읽을 수 있고 쉽게 내려놓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 아니었기에 마음이 쓸쓸해지지만 [고양이야 미안해]와 [전화 한 통만]만큼 마음을 아프게 하는 글은 없었다. 아이들이 읽었으면 하는 동화이지만 아직은 슬픈 세상을 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읽어보라 권하기가 저어된다. 어른인 나조차도 한동안 마음이 심란하여 계속 머릿속이 복잡하다. 그저 글일 뿐이라고 하기엔 이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음을 아는 나이이기에 외면하는 것이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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