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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하이웨이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31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펭귄 하이웨이'를 꼭 어떤 범주속에 넣어야 할까. SF소설? 성장소설? 그 어떤 장르속에 포함되어야 한다 해도 아오야마의 누나에 대한 마음을 단 하나로 정의 내리기 쉽지 않다. 아오야마는 펭귄을 만들어내는 누나의 정체를 놓고 장르를 논하고 싶진 않을 것이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무대로 한 '펭귄 하이웨이'만은 모리미 토미히코의 작품세계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유정천 가족'이 좀 더 이해하기 쉬웠다. 전차와 물고기가 날아다니고 공중부양을 하는 대학생이 등장하며 헌 책의 신이 강림하는 등 교토거리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그 특유의 신비로운 느낌때문에 명백한 판타지 장르속에서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오롯이 즐길 수 있었으나 '펭귄 하이웨이'는 눈 앞에 신기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이 현상들을 도무지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니 인정하고 싶지가 않았다. 아오야마가 사는 마을에 어느 날부터 펭귄이 출현하고, '바다'가 숲을 집어 삼키고, 흰긴수염고래와 재버워크가 나타나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는 우리들이 흔하게 겪을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 아니다. 눈 앞에 벌어지고 있는 이 믿을 수 없는 일들이 현실이라니. 진실을 이야기해도 믿어주지 않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냥 꿈이라고 해 버리는 것이 더 믿기 쉬웠을 것이다.
'펭귄 하이웨이'의 끝은 어디일까. 아오야마와 우치다가 연구하는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하나의 문제로 통하고 있고 언젠간 그 끝에 이르게 되겠지만 그 중심에 '누나'가 있는 한 정의로운 답을 내리는 것이 쉽지 않다. 어른보다 더 어른 같은 아오야마는 일어날 수 밖에 없는 문제를 회피하지 않지만 그 끝에 이르는 것을 감당하지 못할까 겁이 날때가 있다. 그러나 그 끝에 이르렀을 때 아오야마는 결코 울지 않았다. 저 멀리 우주를 향해 나아간다면 언젠간 그리운 사람을 만날 수 있을테니까. 아무 것도 움직인 것이 없지만 누나와 그를 중심으로 한 세상은 몇 바퀴쯤 회전을 한 듯 복잡해졌지만 결혼할 상대로 여전히 '누나'로 정해둔 당찬 아이 아오야마는 펭귄 하이웨이 프로젝트를 연구하며 세상의 끝에 다다른 느낌을 받는다.
아오야마의 아버지는 그동안 마을에서 일어나는 신기한 일들을 모두 알고 있었던 듯 하다. 아오야마가 답을 찾을 수 있게 길을 잡아주고 세상에는 해결하지 않는 게 좋은 문제도 있다는 조언을 하며 아오야마가 상처를 받을까 걱정한다. 그러나 아오야마는 주위에서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한, 아무리 불합리한 일이었다고 해도 세상에 드러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역시 애늙은이 같은 녀석이다. 누나의 말처럼 스즈키가 왜 아오야마를 좋아하지 않는지 이해가 간다.
우리는 펭귄의 정체와 흰긴수염고래, 재버워크, '바다'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이렇게 말하니 나도 아이들과 함께 연구를 계속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 누나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쉼 없이 달려왔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 연구에 어떤 결론을 내릴까 궁금함이 더했지만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도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내려주진 않아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웠다. 물론 "누나는 무엇이다"라는 한 마디로 끝내 버린다면 아오야마, 우치다, 하마모토, 스즈키가 겪은 일들이 너무 황당하긴 하겠다. 어린 시절 겪을 수 있는 꿈 같은 일들이라고 정의 내려 버린다면 그것 또한 억울할 것이다. 아오야마가 누나의 나이쯤에 이르러 다시 한 번 누나를 만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많은 위로가 되겠지만 어른이 아닌 아이라서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 건 글쎄 그건 좀 별로다. 그저 누나를 만나기 위해 아오야마가 연구를 멈추지 않는 것만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라니 성장소설이라면 너무 가혹한 처사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아오야마는 자신의 연구를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멋진 어른이 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