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숫가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순스케가 후지마 부부, 세키타니 부부, 사카자키 부부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을까 내내 긴장하며 읽었는데 경찰이 등장하지 않고 끝나서 갑자기 힘이 빠진다. 미스터리, 추리 소설에는 범인, 경찰이나 형사나 탐정, 피해자가 꼭 등장해야 한다는 촌스러운 생각을 하고 있는 나에게 에리코가 살해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공범이 되어 이 사건을 덮고 끝내려 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네 쌍의 부부가 모여 후지마를 중심으로 에리코의 시체를 숨기는 일에 빈틈없이 계획을 세우고, 경찰이 에리코가 실종된 것을 알고 탐문수사를 할 때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까지 의논을 하는 것을 보면서 마치 연극무대를 보는 듯 기묘한 느낌에 휩싸였었다. 살인사건이 벌어졌는데 모두가 이 일을 덮으려고 하고 공범이 된다? 도대체 이 사람들 뭐지? 왜 갑자기 소름이 돋는 거지?

 

에리코의 죽음에 관여하지 않은 사카자키가 긴장감을 고조 시킬 때 이제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겠다고 예측했었다. 사카자키를 죽이자면 그의 아내 기미코와 아들도 죽여야 해서 일이 점점 복잡해지지만 이곳에 모인 사람들에게는 무언가 감추어야 하는 비밀이 있어 또 살인사건이 벌어진다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거기다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순스케도 죽임을 당하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봐야 했다.

 

그런데 이 사건에는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데가 있다. 너무나 완벽하게 짜여진 시나리오가 오히려 부자연스러워 에리코의 죽음에 또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짐작하게 했다. 에리코가 순스케의 아내 미나코에게 이혼을 요구해서 미나코가 우발적으로 에리코를 죽였다고 했지만 이는 미나코의 말만 들어서일 뿐이고 정확한 이유는 따로 있지 않을까. 일단 사람을 죽였는데 미나코가 너무 침착하고 뻔뻔하기까지 했다. 물론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었으니 기분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 사람을 죽인 후의 미나코의 행동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의심이 간다. 거기다 빌린 별장에서 아이들은 어떤 생활을 했을까. 중학교 입시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무언가 비밀스러운 일이 있지 않았을까. 의심하는 눈으로 보니 이렇게 끝이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모두가 기꺼이 공범이 되고자 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란 것이다. 사카자키 기미코가 순스케에게 어떤 언질을 주려고 하는데 이는 오히려 독자들을 더 혼란에 빠뜨리는 작용을 한다. 부부가 서로 상대를 바꿔서 관계를 갖는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들었는데 이것이 작가의 의도였다면 나는 제대로 함정에 빠졌다고 할 수 있겠다.

 

에리코를 호수에 떨어뜨린 후 세워둔 보트가 다시 뒤집혀 있는 것을 보게 된 순스케는 그때부터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받고 퍼즐을 하나씩 끼워 맞춰간다. 맞다. 여기 '호숫가 살인사건'에서는 순스케가 경찰이나 탐정의 일을 하는 역할로 등장해서 다른 사람들이 꾸며 놓은 트릭을 밝혀내게 된다. 경찰들이 등장하여 에리코의 죽음을 파헤치고 그녀를 죽인 범인을 밝혀내진 않지만 그녀의 죽음에 얽힌 사실들이 순스케의 손에 의해 밝혀지는 것만으로도 기막힌 반전이 일어나며 독자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결말에 깜짝 놀라게 된다. 작가는 여기에서 우리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라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떤 결정을 하겠냐'고  

 

처음에는 결말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에 불만이 있었다. 갑자기 끝나 버린 느낌 때문에 생각이 갈피를 잡지 못했다. 경찰들이 에리코의 실종에 대한 조사를 하며 이곳 별장에까지 탐문수사를 해 네 쌍의 부부의 주변으로 좁혀 들어왔을 때 벌어지는 일들을 더 다루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때문이다. 작가는 이후의 일을 독자들의 손으로 넘겼는데 지금은 더 이상 불만이 없다. 작가가 히가시노 게이고였기 때문에 이런 결말을 내릴 수 있었고 이렇게 끝을 맺었기 때문에 여운이 많이 남는, 독자들의 가슴을 울리는 한 편의 멋진 소설로 탄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순스케의 말대로 이들의 영혼은 이곳 호숫가에서 벗어나지 않겠지만 이것으로 된 것이다. 순스케에게도 지켜야 하는 가족이 있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는 숲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잠자는 숲속의 공주님은 가가 형사의 입맞춤에 눈을 떴을까.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처럼 끝을 맺었지만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픈 이야기였다. 단순히 이야기라고 말해도 될 책은 아니지만 한 여인을 사랑하여 "당신을 사랑하니까"라고 고백한 가가 형사의 마음을 조금 더 지켜주고 싶었다. 그가 아름다운 그녀를 지켜주고 싶어 했듯이 말이다. 대학을 다니던 시절 가가는 냉소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세상 일에는 무관심한 듯 보였었다. 사토코가 첫사랑이라고 하지만 그녀와의 사랑도 '저 두 사람 정말 사랑하는 사이가 맞는가?'라고 의심할 정도로 열정을 느낄 수 없었는데 지금은 한 여인을 마음에 담아 그녀를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까지 가지게 된 것이다. 이런 모습이 조금 낯설어 보이긴 해도 지금의 변화된 모습이 좋아 보인다. 다만 살인사건이 발생하여 그녀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이 문제라면 문제인데 가가 형사는 그녀를 잘 지켜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도 좀처럼 마음을 내보일 것 같지 않은 그가 진심을 담아 고백했으니까.

 

'다카야나기 발레단'에서 발생한 첫 살인사건으로 죽은 이는 가자마 도시유키였다. 처음에 경찰들은 죽은 사람의 신원조차 밝히는 것도 힘들어 했는데 이에 하루코의 정당방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었다. 그런데 연이어 또 한 번의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이는 살인사건의 범인이 '다카야나기 발레단' 내부인의 소행이라는 것으로 좁혀 들어가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그렇다고 해서 용의자로 의심되는 사람이 눈에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발레단의 폐쇄성으로 인해 사건은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들게 된다.   

 

'다카야나기 발레단'의 비극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건들이 계속 벌어지지만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만으로도 범인이 누구인지도 알 수가 없다. 가자마 도시유키와 가시타가 죽은 사건의 접점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가가 형사가 보여주는 증거들로 인해 가시타의 죽음은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하지만 첫 번째 벌어진 가자마 도시유키의 죽음부터 풀지 않으면 '다카야나기 발레단'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완전하게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형사가 사건을 풀어가는 게 아니라 정상적인 방법으로 탐문을 통해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것이기에 일의 진행이 더딜 수 밖에 없지만 오랜만에 등장인물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책을 만난듯 해 내심 즐거웠다. 가가 형사와 오타가 고민하는 것을 함께 고민하고 또 다른 살인 사건이 벌어지면 누가 범일일까 고민하는 시간들,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이들을 바라보는 가가 형사의 인간적인 면에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피비린내 나는 살인 사건이지만 조금은 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무대 위의 발레리나가 춤을 추는 모습은 화려해 보이지만 무대 뒤편에서 쓸쓸히 발레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처연하기까지 하다. 사랑도, 삶도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그들에게 남아 있는 것은 '발레'뿐이었다. 아니 남아 있다는 표현은 틀린 것이다. '발레'가 모든 것인 이들에게 남아 있는 것이 뭐가 있겠는가. 단 한 명뿐인 프리마발레리나가 되기 위해서, 자신의 무대에 만족하기 위해서 홀로 걸어가야 하는 이 길이 이렇게 쓸쓸할 줄은 몰랐다. 그래서 살인 사건 뒤의 감춰진 진실이 밝혀진 뒤에도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는데 가가 형사의 사랑이 오랫동안 지켜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커서 감히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 '다카야나기 발레단'은 깊은 잠에 빠질 것이다. 멋진 왕자님이 나타나 입맞춤을 하면 모두 깨어나 행복한 결말을 맞게 되면 좋겠지만 그보다 현실은 냉혹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다행스러운 일은 피로 얼룩진 살인이 그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하여도 발레를 향한 열정만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니 무대 뒤의 쓸쓸한 모습은 감춘채 화려한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그들의 모습을 계속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연일까? 1
김인호 그림, 남지은 글 / 홍익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연일까? 아니 운명이 되었으면 하니까 계속 우연을 만들어가고 있는 거겠지. 학창시절에는 홍주를 좋아해도 그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던 후영이 지금은 홍주의 곁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한다. 홍주의 집 가까이로 이사를 가고 좋아하는 마음을 종종 표현하기도 하는 등 그가 홍주의 곁에 머물기 위해 인연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나까지 설레게 만든다. 홍주도 조금씩 후영에게 마음을 열어가고 있어 후영의 매력에 빠져 있는 건 나뿐만이 아니다. 우연을 만드는 것도 용기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학창시절 홍주의 친구 혜지가 후영을 좋아해서 후영은 그때 감히 홍주에게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혜지의 편지를 전해주는 홍주에게 마음이 있다고 어떻게 표현할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많은 시간이 지나 28살이 된 후영은 어렵게 다시 만난 홍주에게 조금씩 다가가고 용감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후영은 홍주와의 잦은 만남을 운명이라 여겼을 것이다. 운명이 홍주와 자신을 다시 연결해 준 것이라고.

 

드라마 주인공들처럼 후영과 홍주의 사랑이야기를 중심으로 일상이 흘러간다면 이들의 밀고 당기는 달콤새콤한 사랑을 지켜보기만 하면 될 테지만 준호를 바라보는 홍주와 후영을 바라보는 혜지, 또 그 혜지를 바라보는 경택으로 인해 마음이 쓸쓸해진다. 서로의 등을 바라보는 쓸쓸한 눈빛을 오롯이 바라보기가 힘이 든다. 어떻게 이놈의 사랑은 서로를 향해 다가가지 않는 것인지. 홍주와 후영의 관계 또한 어떻게 될지 몰라 그냥 이대로 서로의 뒷모습만을 바라보다 끝이 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혜지에겐 후영이 첫사랑이라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지금까지도 그 마음 그대로 후영을 잊지 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첫사랑'이라는 단어는 왠지 그리움을 불러 일으키고 그것이 사랑이라고 착각까지 하게 만드니 혜지의 마음이 어떨지 조금 더 지켜봐야겠다. 그렇지만 홍주를 바라보는 후영의 모습은 분명 혜지에게 아픔이 된다. 홍주를 좋아하는 후영을 제 것으로 만들 생각은 없는 것 같아 혜지의 쓸쓸한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거기다 혜지를 바라보는 경택까지. 이건 뭐 왜 이렇게 짝사랑들을 하시는지 모르겠다. 누가 누구를 바라보는지,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그것이 눈에 보이니 이렇게 모두가 아픈 사랑을 하는 것이다.

 

얼마만에 이런 설레임을 느끼는지 모르겠다. 잔잔한 일상속에서 조금씩 서로에게 다가가는 연인을 보는 것은 그들 뿐 아니라 나의 마음까지도 따뜻하게 만든다.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만남이 어른이 되어서도 이어질 수 있다면 이것은 분명 우연이 아닌 운명일 것이다. 다른 곳을 바라보던 후영과 홍주의 마음이 서로를 향하게 되어 사랑이 이루어지며 결말을 맺어도 그 뒤의 삶이 궁금할 것이다. 이제는 결혼을 하며 결말을 맺어도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에 사랑이 이루어진 이들이 그 사랑을 어떻게 지켜나가는지 보고싶다. 세월이 지나면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까. 어떤 사랑을 할까 궁금하다.

 

솔직히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사랑이 어떻게 될지는 이미 짐작이 가능하다. 드라마를 볼 때면 주인공들의 사랑에 걸림돌이 되는 이들이 등장할 때 괜히 미워하고 그랬는데 후영과 홍주의 주위를 맴도는 혜지와 혜지의 곁을 맴도는 경택은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다. 그들에게도 그들의 삶 안에서는 모두가 주인공들이고 그들의 이야기가 우리들 일상과도 벗어나지 않는 평범한 이야기이기때문이다. 화려하지 않은 그들의 사랑을 무시할 수가 없다. 그들의 사랑 또한 존중받아야 하고 그들의 이야기 또한 두 주인공들에 묻혀서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경택과 혜지가 잘되고 후영과 홍주가 잘 되었으면 한다.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가겠지만 홍주와 후영의 사랑에 걸림돌이 되는 경택과 혜지가 잘 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경택의 사랑도 소중하고 혜지의 사랑도 소중하기에 그 누구도 상처 받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에효, 사랑이든 삶이든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구나. 세상 사람들 모두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거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골의 도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8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8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소년은 20년 동안 산 속에 묻혀 있었다. 그동안 세상은 계속 변해 갔으며 소년에 대한 기억은 잊혀져 갔다. 그 세월동안 가족들 외에 소년을 기억하는 이는 없어 보였다. 20년만에 유골이 세상에 드러난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테지만 이 사건은 그대로 땅 속에 묻혀 있었던 것이 더 나았을 것이다. 해리 보슈가 이 사건을 맡게 되었을 때부터 이 사건은 꼭 해결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진실이 드러나는 중에 누군가는 상처 받고 누군가는 죽게 될 것이며 그 무엇보다 이 사건을 담당한 해리 보슈에게 아픔이 될 사건이 될 것이라는 것이기에.  

 

해리 보슈가 지금까지 오랜 시간 동료인 에드거와 함께 사건을 해결해 왔지만 '유골의 도시'에서만큼 에드거의 활약이 두드러진 적은 없었다. 그동안 해리 보슈가 사건의 중심에서 활약할 때 에드거는 늘 존재감이 약했고 사건에서 드러나는 진실에도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20년 전 살해된 소년이 살아 생전 학대를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아이가 있는 에드거는 이 사건을 감정적으로 대하기 시작한다. 용의자로 의심되는 사람에게 냉혹한 모습을 보이고 감정적으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혐의가 없어 보이는 이들에게도 그러는 것은 부당해 보이긴 하지만 에드거가 처음으로 해리 보슈의 곁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내며 범인을 꼭 잡고 말겠다는 결심을 한다. 물론 이번 사건도 모든 퍼즐은 해리 보슈 혼자서 다 맞추긴 하지만 콤비라는 말이 어울릴정도로 서로가 마음을 맞춰 사건의 진실 가까이 다가간다.

 

해리 보슈 시리즈마다 늘 한 가지쯤은 명쾌한 해답을 내리지 않고 끝을 맺어 왔는데 그때마다 해리 보슈에 의해 추측이라도 해 볼 수 있었으나 이번에는 해리 보슈가 더 이상 이 사건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멈춰 버려 의문을 풀 길이 없다. 소년을 죽인 범인에게 그 사건이 벌어졌을 때의 상황을 듣지 못했다. 이렇게 한 소년의 죽음이 그대로 묻혀 버리면 안되는데, 범인이 밝혀졌다는 것만으로 잊어야 하는 걸까. 살아 생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지 못한채 학대 받은 한 소년만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 소년도 한 번쯤은 행복한 적이 있지 않았을까. 스케이트보드를 좋아했다고 하니 이걸 탈 때는 행복했겠지? 모든 것이 부질 없는 물음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런 생각이라도 하지 않으면 소년의 기억에서 놓여날 수 없을 것 같다. 길을 가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불쑥불쑥 나의 기억 속을 헤집어 나타날 것만 같아서, 살아 있는 것보다 오히려 죽는 것이 나았을 것이란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서 행복이라는 말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소년을 죽인 범인보다 이 소년을 죽음으로 몰고간 이들에게 더 큰 죄가 있다고 생각해 그들이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소년의 유골이 땅에 묻혀 있던 20년간 속죄의 길을 걸어온 이들에게 이보다 더한 형벌은 없을 것이기에 위안을 삼는다. 또한 그들은 지금과 같이 계속 삶을 살아내야 한다. 

 

소년의 유골이 발견되고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사건은 계속 제자리에 맴돌고 늘 처음으로 돌아가는 듯 했지만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면서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된 해리 보슈는 이 사건으로 자신의 삶을 좀 더 능동적으로 살아갈 결심을 하게 된다. 그동안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버려 왔던 많은 것들을 다시 지키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해리 보슈를 만날 때마다 그를 잘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유골의 도시'에서 만난 그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며 고통받고, 상처받으면서도 인간의 대한 본질을 잊지 않으려 하는 그에게 앞으로 또 어떤 일이 주어지게 될지 알 순 없지만 '앤젤스 플라이트'와 '유골의 도시' 같은 사건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크니스 모어 댄 나잇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7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7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매케일렙, 해리 보슈는 아니라니까"

그는 용의자가 아니라는데도 매케일렙이 왜 자꾸 그를 위협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조차도 매케일렙의 이론을 따라가다 보면 어두운 심연에서 놓여나지 못하는 해리 보슈가 괴물이 되어 버린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니 보슈를 모르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아는 사람들까지 그가 에드워드 건을 죽였다고 생각해 버리고 말겠다. 이러니 '블러드 워크'이후 매케일립을 처음 만났음에도 그를 만난 것이 그리 반갑지가 않다. 지금까지 해리 보슈에게 수많은 난관과 그의 목숨을 위협하는 적이 도처에 있었지만 매케일렙이 해리 보슈를 용의자로 지목해 버리는 이 사건만큼 긴장감을 느끼게 한 적은 없었다.

 

모든 단서는 해리 보슈를 가리키고 있었고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슈가 등장했을 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것이 '함정'임을 알 수 있었음에도 매케일렙은 해리 보슈를 용의자에서 제외하지 않는다. 건의 죽음에 조금의 동정심도 느끼지 않고, 수레바퀴가 돌아 결국 응징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보슈를 매케일렙은 당연하게도 그가 에드워드 건을 죽였다고 단정짓는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윈스턴과 매케일럽이 해리 보슈가 뻔히 눈치챌 수 있는 방법으로 수사를 해 나가 그가 일찍 알아차렸다는 점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자신의 안전보다 자신으로 인해 데이비드 스토리 사건의 재판의 끝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 걱정이다.

 

여배우를 살해한 데이비드 스토리를 담당한 형사로서 검사들과 함께 데이비드 스토리의 재판에 선 해리 보슈에게 다른 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보슈에게 건방을 떨며 "자신은 결국 빠져나갈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스토리에게 정당한 대가를 받게 하려는 그에게 에드워드 건 사건은 위협이 된다. 몇년 전, 살인을 저지르고도 정당방위로 풀려난 에드워드 건의 일은 보슈에게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사건 중 하나였고 지속적으로 에드워드 건을 만나 그 사건에 대해 알아봤던 것이 이렇게 위험한 일이 될줄은 몰랐다. 그렇지만 지금 그런 일이 일어났다.

 

'다크니스 모어 댄 나잇'은 두 개의 사건이 맞물려 있어 해리 보슈와 매케일럽이 함께 수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매케일럽이 FBI를 관두고 일반인의 신분으로 사건에 뛰어 들었다는 점과 재판때문에 해리에게 시간이 많이 없다는 것이 사건 해결의 큰 걸림돌이 되고 거기다 잭 매커보이 기자가 건의 죽음에 얽힌 해리 보슈에 관한 기사를 쓸 것이라고 밝혀 결말을 도저히 예측할 수가 없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달아오르는 증상때문에 도저히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미리 책장을 넘겨 해리 보슈가 어떻게 되는지 모든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덮고 난 후에도 벅찬 가슴은 진정이 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해리 보슈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매케일럽이 있어 가능했던 일이었다. 세월이 흘러 해리 보슈의 고뇌도 깊어가지만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고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그의 모습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