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숫가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순스케가 후지마 부부, 세키타니 부부, 사카자키 부부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을까 내내 긴장하며 읽었는데 경찰이 등장하지 않고 끝나서 갑자기 힘이 빠진다. 미스터리, 추리 소설에는 범인, 경찰이나 형사나 탐정, 피해자가 꼭 등장해야 한다는 촌스러운 생각을 하고 있는 나에게 에리코가 살해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공범이 되어 이 사건을 덮고 끝내려 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네 쌍의 부부가 모여 후지마를 중심으로 에리코의 시체를 숨기는 일에 빈틈없이 계획을 세우고, 경찰이 에리코가 실종된 것을 알고 탐문수사를 할 때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까지 의논을 하는 것을 보면서 마치 연극무대를 보는 듯 기묘한 느낌에 휩싸였었다. 살인사건이 벌어졌는데 모두가 이 일을 덮으려고 하고 공범이 된다? 도대체 이 사람들 뭐지? 왜 갑자기 소름이 돋는 거지?

 

에리코의 죽음에 관여하지 않은 사카자키가 긴장감을 고조 시킬 때 이제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겠다고 예측했었다. 사카자키를 죽이자면 그의 아내 기미코와 아들도 죽여야 해서 일이 점점 복잡해지지만 이곳에 모인 사람들에게는 무언가 감추어야 하는 비밀이 있어 또 살인사건이 벌어진다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거기다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순스케도 죽임을 당하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봐야 했다.

 

그런데 이 사건에는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데가 있다. 너무나 완벽하게 짜여진 시나리오가 오히려 부자연스러워 에리코의 죽음에 또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짐작하게 했다. 에리코가 순스케의 아내 미나코에게 이혼을 요구해서 미나코가 우발적으로 에리코를 죽였다고 했지만 이는 미나코의 말만 들어서일 뿐이고 정확한 이유는 따로 있지 않을까. 일단 사람을 죽였는데 미나코가 너무 침착하고 뻔뻔하기까지 했다. 물론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었으니 기분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 사람을 죽인 후의 미나코의 행동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의심이 간다. 거기다 빌린 별장에서 아이들은 어떤 생활을 했을까. 중학교 입시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무언가 비밀스러운 일이 있지 않았을까. 의심하는 눈으로 보니 이렇게 끝이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모두가 기꺼이 공범이 되고자 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란 것이다. 사카자키 기미코가 순스케에게 어떤 언질을 주려고 하는데 이는 오히려 독자들을 더 혼란에 빠뜨리는 작용을 한다. 부부가 서로 상대를 바꿔서 관계를 갖는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들었는데 이것이 작가의 의도였다면 나는 제대로 함정에 빠졌다고 할 수 있겠다.

 

에리코를 호수에 떨어뜨린 후 세워둔 보트가 다시 뒤집혀 있는 것을 보게 된 순스케는 그때부터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받고 퍼즐을 하나씩 끼워 맞춰간다. 맞다. 여기 '호숫가 살인사건'에서는 순스케가 경찰이나 탐정의 일을 하는 역할로 등장해서 다른 사람들이 꾸며 놓은 트릭을 밝혀내게 된다. 경찰들이 등장하여 에리코의 죽음을 파헤치고 그녀를 죽인 범인을 밝혀내진 않지만 그녀의 죽음에 얽힌 사실들이 순스케의 손에 의해 밝혀지는 것만으로도 기막힌 반전이 일어나며 독자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결말에 깜짝 놀라게 된다. 작가는 여기에서 우리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라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떤 결정을 하겠냐'고  

 

처음에는 결말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에 불만이 있었다. 갑자기 끝나 버린 느낌 때문에 생각이 갈피를 잡지 못했다. 경찰들이 에리코의 실종에 대한 조사를 하며 이곳 별장에까지 탐문수사를 해 네 쌍의 부부의 주변으로 좁혀 들어왔을 때 벌어지는 일들을 더 다루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때문이다. 작가는 이후의 일을 독자들의 손으로 넘겼는데 지금은 더 이상 불만이 없다. 작가가 히가시노 게이고였기 때문에 이런 결말을 내릴 수 있었고 이렇게 끝을 맺었기 때문에 여운이 많이 남는, 독자들의 가슴을 울리는 한 편의 멋진 소설로 탄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순스케의 말대로 이들의 영혼은 이곳 호숫가에서 벗어나지 않겠지만 이것으로 된 것이다. 순스케에게도 지켜야 하는 가족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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