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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가게
장 퇼레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림원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으면서 웃음이 나지만 "자살가게"라니, 자살을 권하는 가게를 보면서 조금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는게 아닐까 고민하게 된다. 나이 드신분들 앞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인생의 고비를 힘들게 넘겨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그 나이때에 해야할 고민들을 안고가면서 때론 "자살"을 생각해 보기도 했었다. 미래가 보이지 않을때? 아마 그럴때였던 것 같다. 늘 똑같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나를 못견디게 했으리라. 그러나 죽을 용기도 없었다. 죽지 않고 살아나서 불구로 살아가거나 병원에 입원해서 고통을 견뎌야 할지도 모른다는 쓸데없는 걱정으로 인해. 그러나 여기 "자살가게"를 통해서라면 "인생은 실패했지만 죽음은 성공하게 해 드리겠다"는 자신감있는 판매전략에 따라 고통없이 단번에 죽을 수 있을 것 같아 관심이 가게 된다.
이 가게가 호황을 누리는 것에 대해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하는게 아닐까. 그러나 텔레비전으로 자살하는 모습을 생중계하는 사회이고 보니 "자살"이라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내 자신의 문제뿐 아니라 지구가 처한 상황에 우울해서 못견디겠다고 자살용품들을 사러 오는 사람들, 장례식에 참석하라는 전화를 하면서 권총으로 죽는 사람,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인 것 같다. 어쩌면 말야. 자살을 하고자 준비를 해 놓는다고 해도 이것을 보면서 더 열심히 살아보고자 결심하게 될수도 있지 않을까? "해보고 안되면 까짓 죽으면 되지"라고 생각해서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다 보면 안되는게 없을테니까.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자살가게를 운영하는 가족들은 우울해 하고, 절망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생활이 된 것 같다. 미시마, 튀크레스, 뱅상, 마릴린은 자신의 몸을 희생해서라도 많은 이들이 죽음에 이를 수 있게 각종 아이디어를 내며 온몸에서 우울이 뚝뚝 떨어지지만 최악의 경우에라도 긍정적인 모습만을 보는 막내아들 '알랑'으로 인해 이 자살가게에도 위기가 찾아온다. 희망의 노래를 부르는 아이, 독이 든 사과를 골라내고 먹어도 죽지 않는 사과로 바꾸고, 누나가 자신의 몸에 독을 심기 위해 놓는 주사액도 포도당으로 바꾸는 알랑을 통해 마릴린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도 약속할 수 있게 되었지 않나. 음식을 잘 먹지 않던 뱅상도 이젠 잘 먹고 사람들을 웃게 하기 위한 물품을 만드는 일에 전력을 다하니 아버지 미시마가 보기엔 최악의 상황이긴 하지만 오히려 매출은 늘어나니 다행이다. 사실 정말 진짜로 죽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자신의 마음을 들어줄, 하소연 할 곳이 필요했을 것이다. 나를 봐 달라는 절규, 맞아 그랬을 것이다.
사람들이 잘 죽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아닌 잘 살수 있게 도와주는 가게, "자살은 노후에"라는 말을 하며 호황을 누리는 이 가게를 보면서 행복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자살"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요즘 통렬하게 비판하기 위해 이 책이 세상에 나왔는지도 모르지만 자살을 하기 위해 끈이나 칼, 권총을 사러오는 사람들을 보며 풍자소설이기에 유쾌한 시간을 보냈지만 행복해지는 사람들을 보는게 참 좋다. 비록 마지막 알랑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지만 말이다. 이제 가족들이 모두 행복해졌는데 왜 아픔을 주고자 했을까. 진정한 "자살가게"의 주인은 알랑이었단 말인가. 잠시 행복했던 가족들은 다시 슬픔에 잠겼을 것이다. 그러나 알랑의 뜻을 이어받아 즐겁게 살아가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살아가는 것이 힘들어 죽고 싶은가?" 그러면 직장에서 사표를 늘 품안에 넣어 가지고 다니듯 내 맘속에 자살충동을 깊숙히 숨겨두고 아주 힘들때 최후의 수단이 있음을 기억해 보자. 그러면 또 힘이 불끈 솟아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