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먹다 - 제13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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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단어는 지금이나 아주 아주 오랜 옛날이나 사람의 마음을 참 가슴아프게도 만든다. 대대로 내려온 끊어내지 못한 인연의 시작은 "묘연의 아버지부터라고 해야하나." 묘연의 아버지 류호가 듣는다면 아마 억울해 할지도 모르겠다. 집안에 함께 생활하는 종을 사유재산으로 생각하고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던 행태야 오래전부터 있어왔으니 딱히 종에게서 낳은 아이를 자식으로 생각이나 했던가. 류호가 묘연의 어머니와 동기간이나 다름없이 지내던 몸종 선이에게서 '하연'을 낳았던 것이 모든 인연의 고리가 엮이기 시작한 것으로 본다면 이것으로 인해 모두의 가슴에 아픈 상처만 남게되었으니, 기현이 세상을 벗어나 출가를 했어도 자신으로 인해 시작된 가슴앓이가 끝나지 않고 이로인해 계속 괴로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왜 나는 "달을 먹다"를 현대장르라 생각했을까. 시대를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시작하진 않지만 짐작으로 조선시대 어디쯤 될 것이다 충분히 알수가 있었다. 어려운 옛말을 쓰고 있진 않지만 주석이 달리지 않은 옛말들은 역시 대충 예상해서 읽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렇다고 전체적인 내용을 읽어나가는데 무리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읽는것이 그리 버겁진 않았다. "사랑"으로 인한 가슴앓이들을 어쩜 이렇게 절절하게 표현해 놓았을까, 놀라면서 읽었다. 가슴에 담아두고 싶은 구절도 많았다. 하지만 역시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야기는 내 가슴도 아프게 만든다.

 

기현이 차라리 출가할 용기로 '하연'과 도망이라도 쳤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연이 도망치듯 최약국에게 시집가서 불행하게 살지 않았다면 마음자리가 불편하지 않았으련만, 하연이 낳은 '난이'로 인해 동기간처럼 자란 묘연의 아들 희우가 또 얼마나 사랑때문에 힘들어했던가. '난이'는 자신이 누구인가 번민한다. 분명 희우와 외가쪽 피를 나눠 가졌건만 나는 '누구'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없다. 그렇다고 '무엇'이라고 말하랴. 아니 '무엇'이라도 되어야 했건만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인지 알수가 없다. 기현과 하연을 보며 함께 자란 묘연은 아들 희우에게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지만 분명 "난이와 함께 하지 않겠느냐"고 물어 기회를 주고자 한다. 그러나 "사랑"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선택하는 희우를 보면서 나는 울분을 느꼈다. 가족이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지만 그래도 "왜 난이를 데려왔느냐?" 원망하기 보다는 마음이라도 표현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난이조차 현실에서 도피하여 자신의 생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나. 이런 저런 상황들로 내 마음도 쓸쓸해진다.

 

묘연, 묘연의 남편 태겸, 희우, 난이, 향이를 사랑하는 여문, 기현 등이 화자가 되어 당시의 상황을 이어받으며 이야기 하는 "달을 먹다"는 솔직히 서로 연결된 관계들이 어떻게 되나 헷갈려서 내용을 놓칠때가 많다. 한 집안의 가계도는 물론, 따로 맺어진 인연들로 인해 이어진 이야기들도 있어 가지를 뻗어나가다 보면 전체적인 맥락을 잡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신분에 억눌려 살아온 조선시대 사람들도 지금의 나처럼 감정적으로는 얼마나 평범하고 인간다운지, 삭히며 살아야했던 그 시대의 상황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잘 나타내 준 것 같아 "헤어져서 가슴 아파다"고 절절하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가슴을 쥐어뜯게 하는 애절함을 느껴 표지에 나와있는 '달'을 보며 손을 대면 차가움이 느껴질까 겁이나 감히 가까이 쳐다보지도 못했다. 사람의 인생이란 죽어서도 기억속에 남아 끝나지 않으니 이들이 그 뒤로 어떤 인생들을 엮어갔을까 궁금해지지만 누구하나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란 것은 짐작할 수 있다. 기현으로부터 이어진 가슴아픈 사랑의 고리들이 이제는 더이상 이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아파할 사람이 없을테니까. 그렇다고 '사랑'이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리진 않을 것이다. '사랑'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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