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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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지 못해도 같은 하늘 아래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이 글은 행복한 결말이라고 보면 될까. 노인이 나에게 반드시 이루었으면 하는 소원이 있느냐고 물었다면 이것 저것 생각하느라 정작 소원 한가지도 말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30년전 사고로 죽은 사랑하는 여인 일리나를 만나고 싶다고 소원을 이야기하는 엘리엇, 노인이 준 황금색 알약은 그를 30년전 과거로 데려가고 젊은 시절의 엘리엇에게 '시간여행자'라고 불리게 된다. 30년 후의 자신의 모습이라고 이야기 하는 예순 살의 엘리엇을 믿지 못하는 젊은 엘리엇, 이들이 서로 믿기 힘든 현실에 적응하느라 몇개의 알약을 소비하고 나서야 진정 둘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예순 살의 엘리엇은 이미 죽음을 앞두고 있어 더이상 잃을 것이 없는지라 무모한 모험일지라도 단 한번 사랑한 여자 일리나를 꼭 만나고 싶었을 것이다. 일리나가 죽은 이유가 자기때문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나비효과"란 영화를 보면 과거로 돌아가 불행했던 사람의 상황을 바꿔놓으면 뒤에 일어나는 결말도 바뀜을 알 수 있다. 죽을수 밖에 없는 일리나를 살려 놓으면 그 뒤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다른 누군가가 희생되는 것은 아닐까, 긴장하여 조바심이 났다. 과거를 바꾸었을때 현재 예순 살의 엘리엇의 미래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사랑하는 딸이 태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수도 있어 젊은 엘리엇과 거래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을 살렸음에도 같은 하늘아래 있음에 안도하며 보지 않고 살아야 한다면 그 고통이 얼마나 클까. 당사자에게 말 할수도 없는 상황, 젊은 엘리엇은 사랑하는 사람과 친한 친구인 매트까지 잃었다. 비록 함께 숨쉬고 살아가고 있지만 마음속의 공허함으로 인해 이런 삶이 숨쉬고 있다고 잘 살고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너무 가슴이 아프다. 미래에서 온 엘리엇으로 인해 서른 살의 엘리엇은 어느정도 자신이 가야하는 인생의 길을 알고 있다. 그래서 희망없이 세상을 살아갈 수도 있지만 예순 살까지 살고 있었던 자신의 삶을 생각하여 위험한 일에 뛰어들게 하는 무모한 용기도 보일 수 있으니 긍정적인 면도 있는 것 같다.

 

일리나를 구하기 위해 과거로 여행을 하며 먹은 알약은 9개, 단 한알을 남겨두고 엘리엇은 더이상 시간여행을 하지 않는다. 아마 자신의 생명도 다해가고 더이상 할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남겨둔 것이리라. 그러나 이것으로 인해 인생이 변할 기회가 한번 더 남게 되었으니 생각지도 못한 결론에 내 마음이 잔잔해진다. 상처받고 버림 받았다고 느낀 사람들이 서로 용서하며 안정을 찾고 남은 인생을 함께하지 않았을까. 떠나 보낸 친구 매트, 그러나 마음속에서 한번도 지우지 않은 친구 매트로 인해 또 한번의 다른 인생의 결말을 맞은 엘리엇이 이젠 평온한 삶을 누렸으면 좋겠다.

 

쉼 없이 달려온 삶으로 인해 나도 긴장하여 책의 마지막에 이르렀을때엔 몸에서 힘이 다 빠져 나가버리고 말았으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지 못한 엘리엇과 일리나로 인해 가슴한쪽이 아프지만 "이것으로 되었다"며 나름대로 결론을 내려 보고자 한다. 같은 하늘아래 숨쉬고 있는 것으로도 다행아닌가, 죽어 다시는 보지 못하는 것보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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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 오늘의 일본문학 6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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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된 요시노에게 왜 마음이 머물지 않는 건가. 물론 타인에 의해 삶이 마감된 그녀에게 동정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만남 사이트를 통해 남성들을 만나고 돈을 받는 생활을 해 온 그녀이기에 "잘 죽었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늘 거짓말을 하는 그녀에게 진실을 찾아볼 수 없어 나와는 상반된 삶을 살아가는 그녀가 이해가 가지 않아 오히려 그녀의 마지막 숨을 놓아버리게 만든 사람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그의 마지막 사랑에 가슴이 아파온다.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과 공포에 누군가의 어깨가 필요했을 것이다. "미쓰요를 요시노보다 일찍 만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행복하게 잘 살지 않았을까. 난 처음에 유이치가 범인이라고 짐작했다. 요시노를 마지막에 만난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 요시노가 마스오와 연인이라고 이야기 하고 다녔고 그날도 마스오를 만나러 간다고 한 말때문에 경찰에게 마스오가 범인으로 지목되었다는 생각이 들때면 이대로 마스오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사건은 종결되는 것인가, 쓸데없는 걱정까지 했었다. 역시 "마스오가 행방불명된 상태로 그냥 나타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을.." 왜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인지 나도 내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다.

 

유이치는 사랑하는 사람인 미쓰요를 보호하기 위해 정말 거짓말을 한 것인가. 폭력적으로 납치해서 끌고 다녔다고 이야기한 그의 모습은 만남 사이트에서 만난지 얼마 안된 미쓰요를 보호하기 위한 마음이 들어 있는지, 그 진실은 본인 밖에 알 수 없겠지만 그가 악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살해된 요시노에게 마음이 가지 않는 내가 악인이라는 생각 뿐. 남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악평을 하고 수군수군 대는 모습을 요시노의 부모님들은 이해 할 수가 없다. 만남 사이트를 통해 남자에게 돈을 받은 딸이라는 말은 충격이지만 누구를 만나든, 어떤 삶을 살았든 자신들에게는 귀하고 이쁜 딸이지 않는가. 그런 딸을 잃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끔찍한 팩스를 보낼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 남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에는 아마 나도 포함될 것이다. 연예계 기사를 보고 이런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때가 많으니까.

 

요시노가 죽은 곳인 미쓰세 고개로 데려간 마스오에겐 왜 아무런 잘못이 없는가. 무죄로 판단되어 자랑스럽게 친구들에게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를 보니 울컥하는 마음에 할말을 잊고 만다. 물론 요시노의 삶에 문제가 있었지만 사건의 발단은 마스오가 만든것이 아닌가. "그렇게 살면안돼. 그렇게 다른사람이나 비웃으며 살면 되겠어?" 요시노의 아버지 요시오가 던진 말은 가슴에 박혀 떠날줄을 모른다. 그러나 마스오에게 던진 이 말이 과연 그를 깨닫게 했을까. 똑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여전히 요시노에 대해 가볍운 말을 던지면서 말이다.

 

선과 악, 욕망을 가지고 있는 인간들은 모두 악인이다.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할지는 그 앞에 서 보지 않으면 알수가 없다. 여전히 순하고 착한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그 누가 장담하겠는가. 뒤늦게 찾아온 행복을 놓치지 않으려면 그날 그날 성실하게 살아가야 하리라. 조금은 덜 악한 인간의 모습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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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사랑 파사랑
다이도 타마키 지음, 이수미 옮김 / 현문미디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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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사랑파사랑"이라는 말 들어본적 있는가? 나는 이 말을 처음 들었다. 밥 걱정을 해야하는 주부인지라 "파?" 음식재료와 관련이 있는가 잠시 생각해 봤을 뿐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는 감히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케사랑파사랑은 "행운을 부르는 신비한 생물"이라고 한다. 이녀석을 기르면 행운이 마구마구 쏟아지려나?

 

네 편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내용을 가만히 읽고 있다보면 억누르며 그저 착한 딸이라는 말을 들어보고자 조용조용 살아온 내 생활에 반하여 너무도 밝고 명랑한 자신의 의견을 거리낌 없이 뱉어내는 10대들을 보면서 간혹 "이건 아닌데..." 싶다가도 마음한쪽에서는 부러움에 시기심마저 가지게 된다. 성에 대해서도 참 자유롭다.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도 확고하게 밀어붙이며 소신있게 행하는 것을 보면서 난 왜그리도 의존적으로 살았나 반성해 보게 되니 다시 10대로 돌아간다면 이렇게 거칠것 없이 살아갈 용기도 없으면서 그 시절로 되돌아가길 바라게 된다. 분명 똑같은 인생을 걸어갈 것임에도 내가 하지 못한 자유로운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보며 "난 참 못난이"라는 자괴감도 드는 것을 보면 내 안에 숨겨진 일상을 벗어나고픈 마음이 잠재되어 있었나 보다.

 

일상적인 이야기들속에 10대들의 성장이야기를 보는 듯 유쾌하지만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어중간한 경계에 놓여 어른 흉내를 내려는 아이들을 보려니 왜이리 마음이 불편한 것일까. 너무 문란한가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내가 너무 노인네 같은 말을 하나" 하며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 조금은 나 자신이 이해가 가지 않기도 한다. 여기엔 열정적인 사랑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을 보면 이쁘게 보인다. 이리저리 재어보고 마음을 고백하는 그런 신중함은 보이지 않아 이런 감정표현이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부러움만 느끼게 된다.

 

네 편의 이야기들은 분명 한국의 정서와는 다르게 다가온다. 개방적인 성문화, 집안에서 와인, 위스키를 자유롭게 마시는 것을 보며 좋게 보이진 않는다. 내 어린시절과 비교하여 그렇게 보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너무 솔직한 것 보다 조금은 더 순수한 모습의 아이들을 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을 느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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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즈 비 Boys be
가쓰라 노조미 지음, 양윤옥 옮김 / 에이지21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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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속이 뭉클하기도 하고 즐거워서 웃음이 나오기도 하는데 도대체 이런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다. 에이조라면 "그냥 느낀대로 말하는거지. 뭘 고민하나?"라고 툭 던지듯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래, 하야토가 동생 나오야를 생각하는 마음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에이조와 하야토가 엄마가 만들어주던 푸딩 맛을 동생에게 맛보게 해 주기 위해 직접 푸딩을 만드는 모습은 이웃들의 마음까지도 따뜻하게 녹인다. 주변 사람들에게 신경쓰지 않고 독불장군처럼 살아가던 에이조의 작업장 가까이에서 그림 수업을 받고 있는 동생 나오야를 기다리다 에이조와 하야토가 만나게 된다.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을 나오야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에이조에게 조언을 구하게 되고 에이조의 말대로 했다가 실패할 때도 있지만 함께 고민하며 점점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사랑하는 가족이 죽는다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 느껴보지 못했지만 나조차도 '죽음'이란 것을 눈 앞에 보고서도 믿겨지지 않는 것을, 엄마를 이 세상에서 더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여섯 살의 나오야가 어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그저 보이던 사람이 눈에 안보이면 잠깐 어디 여행이라도 떠난 것으로 생각될 뿐 영원히 내 곁을 떠났다는 것을 좀체 믿을 수가 없다. 하야토의 말처럼 삶도 이해하지 못할텐데 어찌 죽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엄마를 잃은 고통은 아이들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아빠도 혼자있을때 울어버릴만큼 엄마의 빈자리를 느낀다. 그것을 이해하기엔 아직 어린 나이긴 하지만 하야토는 세상에 없는 엄마와 같이 아빠마저 멀리 떠나려는 것 같아 무섭다.

 

아직 어린 하야토는 엄마, 아빠의 자리를 대신해 동생을 감싸안으려고 한다. 에이조가 보기엔 어린나이에 왜저리 신경쓸게 많을까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들만의 세상이 있는 듯 어리긴 하지만 어른 못지않은 깊은 마음 씀씀이에 내 고개가 절로 숙여지게 된다. 엄마의 쌍둥이 자매인 이모가 집에 계속 드나들면서 엄마의 자리가 자꾸 사라지는 듯한 위기감을 느끼는 아이들, 그러나 그 무엇도 엄마의 자리를 대신할 순 없다. 엄마가 없다면 아빠가 그 자리를 메워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늘 꽁꽁 가슴속에 덮어두었던 아빠에 대한 마음이 하야토의 가슴에서 둑이 무너지듯 분출한다. "아빠가 필요해. 엄마처럼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울어버린다.

 

혹여 이모를 재혼상대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내심 걱정이 되었는데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에이조라면 하야토, 나오야, 그리고 아이들의 아빠를 즐겁게 만들어 줄 수 있을텐데, 하야토는 에이조의 작업장에 이젠 아빠도 데려오고 싶어진다. 예전의 에이조라면 "싫다"고 고함을 쳤겠지만 이젠 아이들의 할아버지 같이 너무 자연스럽게 느껴져 이 네 사람이 앞으로는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어깨에 짊어진 무거운 짐들을 모두 내려버리고 아이답게 뛰어노는 하야토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엄마와 대화를 나누는 나오야가 에이조와 함께 하는 생활을 들려줄테니 분명 하늘에서 기뻐할 것이다. 세월이 흘러 하야토와 나오야의 마음속에 슬픔은 추억이 되어 옅어져 가겠지. 그러나 엄마의 기억들을 완전히 잊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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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싱로즈
세르다르 오즈칸 지음, 유정화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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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여전히 십대"라며 우겨보지만 어렸을 적의 순수한 모습은 사라져 버린 것 같다. 아니 어렸을때조차 순수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탐나는 것을 가지기 위해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고 화가나면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나를 화나게 한 사람을 미워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런 것으로 순수의 유무를 따지는 것은 아니지 않냐?"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태어나고 세상을 알아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순수했던적이 없었던 것 같다.

 

"미싱로즈"는 어린시절의 나의 감성을 떠올리게 했지만 어른이 된 지금의 나를 변화시키는데는 실패한 것 같다. 이젠 직접적으로 말해주지 않으면 잘 알아듣지도 못하고 돌려서 충고를 해 주면 알아들으면서도 기분이 나빠 못들은척하기 일쑤라 이렇게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 잃어버렸던 장미가 무엇인지 찾기 위해 떠나는 여행은 정말 어려워서 책을 읽으면서도 내내 무슨 내용인가 알아맞추기 위해 머리가 조금 아팠다면 너무 과장한 것 아니냐고 몰아세울지도 모르지만 내게 이 책은 분명 쉽지 않은 책이었다.

 

다이애나에겐 엄마가 죽은 것도 큰 충격일텐데 죽었다고 이야기 하던 아버지가 살아있으며 거기다 쌍둥이 자매인 메리까지 있다고 한다면 얼마나 큰 혼란에 빠질 것인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조차 위기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어린시절 자주 듣던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처럼 엄마가 눈앞에 있다면 당장에 "다이애나가 소중하냐? 메리가 소중하냐?"라고 따지고 들게 될 것이다. 모든 사실을 알려줄 엄마는 이 세상에 없다. 해답을 찾을 사람은 오직 자신뿐, 메리가 보내온 네 통의 편지를 가지고 메리를 찾아야 한다. 장미와 대화를 하고 꿈 이야기를 하는 메리의 편지를 보면서 나도 "이 무슨 말인가. 어쩌면 정신병원에서 메리를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다이애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 역시 메리를 찾는 일은 불가능한 것일까.

 

걸인, 마티아스는 다이애나가 잃어버린 꿈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준비된 사람으로 여겨진다. 메리를 찾으라는 용기를 불어 넣어주긴 하지만 자연스럽지 못한 만난처럼 느껴진다. 제이넵 하님을 만나 장미의 언어를 듣는 능력을 배우는 수업, 다이애나가 자신의 꿈을 버리지 않고 손아귀에 움켜쥐게 하기까지 그 여정이 너무 어렵고 지루하다. 아마도 나는 이미 장미가 하는 말들을 들을 수 없는 불성실한 인간이 되어 버렸기에 제이넵 하님의 말들을 모두 부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냥 다른 방법으로 다이애나를 설득할 순 없었을까.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다이애나는 변호사 일을 시작했어도 언젠가 자신의 꿈을 찾아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너무 속물인지는 몰라도 다이애나가 찾아 떠나는 그 소중한 무엇이 내게는 전혀 공감할 수 없는 것이라서 읽는동안 내내 가슴이 답답했었다. 어린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장미가 무엇을 말하는지 듣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일까. 조금 더 시간이 지난다면 이 책을 읽었을때 다른 느낌을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내가 무엇을 잃었는지도 모르기에 그저 모든 것이 생소할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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