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되어 받고 싶지 않다. 그럴 때면 안받으면 그만. 이리 간단한 것이 힘들 때가 있으니.. 상대는 호의라고, 감사한 마음이라고, 우정이고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절대 그게 다가 아님을 안다. 내가 이만큼을 너에게 줬으니 너는 응당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그에 대한 보답을 하시오가 전제로 깔려 있는 것. 주는 이나 받는 이, 부정할 수 있겠는가. 진짜진짜 모르고 순수한 마음으로 받았던 순진했던 시절도 있었으나, 속물이 된 지금은 빤히 보이는 걸 모르는 척 하기 싫어 대놓고 싫다 한다. 주위 사람들-가족 포함-은 이런 내가 냉정하다고, 차갑다고, 정 없다고, 심지어 이기적이라고 까지 한다. 아니 대체 내가 뭘 했다고..? 그렇게 이기적이고 차가운 사람 취급을 받으며 No라고 외쳤건만 어떤 이에게는 아직도 No가 Yes로 들리나보다. 싫다는데 끝까지 주겠다는 건 도대체 무슨 심리일까. No는 그냥 No라고요.

 

내놓으라는 강요가 아니라 받으라는 강요. 이게 왠 떡이냐 덥석 물고 아이고 감사합니다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게 안 되는 인간이다. 그래서 받으라는 강요는 내게 폭력이다. 나의 의사를 묵살하고, 주고 싶다는 자신의 욕구만 충족시키려는 행동이 이기적으로 느껴져 오히려 마음이 돌아서버린다.

 

스포츠의류점을 운영하고 있는 K는 만날 때마다 봉봉이 운동화며 가방, 우리 부모님 커플운동화, 각종 사은품까지도 살뜰하게 챙겨 준다. 마음도 지갑만큼이나 넉넉하고 어렸을 때부터 워낙 베푸는 것을 좋아하던 절친(자그만치 35년 지기)이기에 늘 고마운 마음으로 받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선물의 도가 내가 생각하는 선을 자꾸 넘어가고, 마음의 센서에 빨간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네 마음은 알겠으나 이건 받기 싫다고 돌려줬는데, 집에 와보니 내 가방 속에 도로 들어있기를 몇 차례. 당시에는 알겠다고 해놓구선 내 가방에 다시 몰래 넣어놓는 거다. 쪼끄마한 다이아가 박혀있는 그 황금 하트목걸이는 지금껏 내 옷장 속에 쭈욱 처박혀있다. 다음번 돌아온 K의 생일에 엄마생신때 선물하는 명품화장품 세트와 가족용 영화상품권을 선물해줬다. 좋아하더군.. 그래도 정색하고 한번 난리쳤으니 다신 안그러겠지 했는데, 그 뒤 카톡 선물함으로 시계가 날아왔다. 거절 클릭. 이런 거 싫다고 했잖아. 그러고나서 며칠 후 책 선물 카톡이 날아왔다. 책은 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거절 띡. 읽고 싶은 책인지는 좀 물어보고 보내야 하는 거 아님? K는 그냥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보낸 거였다. 왜 내 의향은 물어보지 않지? 그래서 거절 띡. 주고도 욕먹는 경우가 이런 것이다. K의 입장에서는 몹시 억울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 쓰다 보니(아..글쓰기의 중요성!) 내가 K에게 넘치도록 받는 주제에도 왜 자꾸 섭섭한 마음이 쌓이는지 알게 됐다.

주는 기쁨이 상대방에게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것. 받는 사람에 대한 기본 배려가 결여된 행위는 스스로의 기쁨에 도취된 자의 자만이고 착각이다. (이렇게 까지 이야기했어도 우리는 여전히 절친이다.)

 

한우1++을 내 입 한 가득 넣어주고 뿌듯해하는 당신. 나는 채식주의자라네.

 

(*사족 - 같은 단지에 고등학교 동창이 산다. 반찬을 비롯한 먹거리도 그 친구에게 자주 얻어 먹고, 동남아 여행을 자주 다니는 친구 덕분에 좋아하는 젤리나 차도 종종 얻어먹는다. 부담없이 받아 먹는다. 나를 위해 음식을 새로 만들어서 주는 건 미안해서 싫다. 나로 인해 누군가의 노동이 부가가 되는 건 원치 않기 때문에. 남는 음식, 먹거리 이런 거 준다고 나와!하면 아주 좋아서 딸랑딸랑 튀어나간다. 저 무조건 받는 거 싫어하는 사람 아닙니다.)

 

하지만 부담이 되어도 받게 되는, 받아야 하는 유일한 예외 대상이 있다. 아낌없이 내주는 것이 부모의 사랑이라고. 그것이 그들이 아는 사랑법이고, 자식으로서 거절하는 것은 부모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크나큰 불효이니, 그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 주시는대로 일단 받는다. 하지만 불시에 그 사랑에 대한 댓가로서 나는 끝없는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부모님의 크나큰 사랑 아래 안개처럼 포진되어 있는 간섭과 제약은 지금도 몹시 버겁다. 숨이 막힌다.

 

아들아, 너는 때가 되면 훌훌 떠나가길 바란다. 너 힘들면 부담 없이 찾아와서 몸도 마음도 푹 쉬고 또 훌훌 그렇게 가려무나.

 

p.65 (「오직 한 사람의 차지」중)
기는 쩨쩨한 편도 아니고 장인도 돈 문제를 노골적으로 언급하거나-적어도 출판사가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은근히라도 부담을 주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나 자신이었다. 뭔가 자발적인 복종과 협조의 상태가 되곤 했다. 어쩐지 더 자주 농담하고 쇼핑에 따라가고 기가 좋아하는 많은 것들-벤폴즈 파이브나 김사월, 라이딩과 곤약조림, 심즈 프리플레이 등에 협조적이 됐다. 몸이 부서져라 협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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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1-26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도 내가 쓴 글 인 줄 ㅋㅋㅋ 안 주고 안 받고 싶어요. 그리고 아가들도 자유롭게 가고 싶은대로 훌훌 가길 바라요. ㅎㅎㅎ
(그치만 댓글만은 열심히 주거니받거니 ㅋㅋㅋ)
 

20200118
바닷가 마을 저녁 풍경.
따가운 바닷바람은 겁나 추운데, 바다가 품어주는 저녁 하늘은 따뜻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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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1-19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바다라니 바다라니!!!부러워요. 찬바람 대신 쐬고 싶어라
ㅎㅎㅎ

무식쟁이 2020-01-19 19:09   좋아요 1 | URL
🎼 여수 밤바다~🎶

무식쟁이 2020-01-19 19:10   좋아요 1 | URL
왜요. 우리에겐 한강이 있자나요. 써울메이트씨.
 

도시의 저녁 풍경. 차갑고 아름답다.
한때는 저 차가움 속으로 들어가는 게 낯설고 외로웠는데, 이제는 그 차가움이 평온하다. 차가워서 아름답다.

으따.. 등따시고 배부른 갑다. 아직 고단한 일터의 노동자들에게 브루주아적 낭만이라 질타받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쩔수 없어요. 아름다운걸.

휘황찬란 네온사인 아래서 미친년처럼 놀고난 뒤 몰려오는 허망감과 딛고 있는 거대한 콘크리트의 양감에 압도되어 숨막히던 때가 있었다. 돌이켜보니 이 도시를 핑계로 내 스스로 배운 내 욕망이고 내 결핍이었다. 유령의 실체를 알고나니 그제서야 가위가 스르르 풀리고 편안해진 것 같다.

그래. 그동안 억울했겠다 도시. 그래서 내게 차가웠던거니.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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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3



부암동 방문의 원 목적지였던 환기미술관으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평일이라 사람도 별로 없고 한적하니 좋구나. 크고 시원한 작품이 보고 싶었다. 사실 지난 월요일에 MMCA(국립현대미술관)에서 5시간을 돌아다녔는데도 내 마음에 들어오는 작품하나를 못 만나 허전했었다. 그래서 부암동에 오고 싶었던 것 같다. 감동에 목 말라있는 나는야 선인장. 물을다오 물을. 결론부터 말하면 여전히 목이 말랐다. 전시가 뭐 나쁘지는 않았지만 정작 김환기의 작품은 별로 없었고, 다른 작가들의 작품 중에서도 나랑 교감되는 작품은 없었다. 환공포증 있는 사람은 김환기의 점화 작품은 절대 못보겠지? 하는 잡생각을 하며 돌아다녔다는.. 재작년(?) MMCA에서 윤형근 전시회 했을 때 그때 자주좀 갈 걸.. 2년이 지났는데도 그때 감동의 여운이 화선지에 먹물 번지듯 내안의 선을 자꾸 넘어간다. 단아하게 절제된 것 같으나, 흙, 나무, 하늘 물, 바람. 세상이 다 들어있는 것 같은 깊이의 색. 김환기와 윤형근이 장인과 사위 관계라는데 이렇게 뛰어난 예술가가 한 집안에 두 명이나 나오다니.. 참 대단한 인연인 듯. 집안 내력이라고 하기에는 사위는 혈연관계도 아닌데, 어쨌든 장인어른의 이름은 넘어서야 할 벽이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자신만의 그림을 완성해낸 윤형근 화백도 정말 대단하다. 모든 예술가는 위대하지. 환기미술관와서 윤형근 전시회를 검색하고 있는 나. 오늘 부암동 내머릿속 미술관에 다녀오셨어요.

 

자.. 이제 잠시 쉬며 커피와 활자를 섭취할 타이밍. 엄청 고대했던 ㅈ카페는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오픈이 1시인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 시각은 2:30 혹시나 휴가를 갔다거나 임시휴일인가 해서 인스타를 살펴봤지만 아무 예고도 없음. 오픈시간 안지키는 가게는 신뢰도급하락. 골든냐옹이 보고 싶었는데 나랑은 인연이 아닌가봐. ㅠㅠ 아쉬운 마음으로 창밖이 시원하게 잘 보일 것 같은 다른 카페로 들어갔다. 더러운 창문 너머, 그래도, 가까이에 북악산, 왼편 멀리 북한산까지 잘 보였다. 


따뜻한 비엔나커피를 마시며 창밖 세상 움직이는 것도 훔쳐보고, 앤드루 포터의 세상도 한참 구경하며 부암동 산책은 마무리되었다. 여기저기 사부작사부작 잘 돌아다니다가 해 질 무렵 집에 돌아가는 길은 기분이 항상 차암 좋다.

 

p.29 「코요테」

그 해 여름의 저녁에는, 간혹 인근 언덕 지대에서 코요테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가 데이비드와 나가고 없을 때 나는 걸핏하면 내 침실 창문 밖에 있는 지붕 위에 앉아, 우리집 뒤쪽의 가파른 경사지에 사는 녀석들의 울음소리를 듣곤 했다. 녀석들은 낮에는 보이지 않다가, 밤이 되어 해가 거리 저편으로 떨어지고 나면, 멀리서 개들처럼 우짖었다. 뒤뜰의 잔디 너머로, 달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이는 어두운 대양과 요트 정박지에 있는 자그마한 집들의 불빛들이 보였다. 나는 내 유년의 모든 때를 그 지붕에서 보냈을 것이다. 바다를 내다보면서, 충분히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이 움직이는 방식에 대해 뭔가 의미심장한 발견을 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p.68

고양이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자유를 좋아할 뿐이다. 그는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지만 항상 정해진 집으로 되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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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1-16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위에 책 좋아서 빌려보고선 결국 중고로 질러버렸어요 ㅋㅋ섬은 엄마가 사둔 거 있긴 한데 무님 읽어보신 거니까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ㅎㅎ맨날 (의도치않게) 쫄래쫄래 따라읽음...

무식쟁이 2020-01-16 18:35   좋아요 1 | URL
저도 중고로 사둘까봐요. 저도 이책 넘 좋았어요. 열반님 어머니께서는?도! 지적이신가봐요. 장그르니에의 섬을 사두시다니.. 전 어디선가 본 고양이물루에 대한 구절에 꽂혀서 가볍게 읽었는데 제 얕은 생각보다 매우 깊은 책이더라구요.

반유행열반인 2020-01-16 19:55   좋아요 0 | URL
아름다운 책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올해 안에는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psyche 2020-01-18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은 옛날옛날에 남편이 친구였던 시절 저에게 건냈던 책이에요. 읽고 너무 좋아서 그르니에 전집을 모았었죠. 섬은 민음사에서 나온 거랑 청하에서 나온 거 둘 다 가지고 있는데 민음사 것은 막 한자가 섞여있더라고요. 예전에 그걸 어떻게 읽었는지 모르겠어요. ㅜㅜ

무식쟁이 2020-01-18 01:40   좋아요 0 | URL
악. 저 한자까막눈인데. 섬에 한자가 많았었나요?? 폰으로 사전 막 찾아보며 읽었던것 같기두 하고.. ^^;

psyche 2020-01-18 01:49   좋아요 0 | URL
제가 가지고 있는 섬은 민음사에서 나온 이데아 총서 중 하나로 80년에 초판이 나왔던 (제 것은 88년에 나온 거고요) 거라서 한자가 섞여 있는 거 같고요 이후에 나온 섬은 한자가 없을 거 같아요.
 










 20200103 


 감동의 눈물을 훔치며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향하여 열 댓 계단 올라가다가, 춥고 배고파서 망설임없이 바로 내려왔다. 빈속에 무리하면 몸 상해. 평소 궁금했던 식당으로 갔다. 엄청 무거운 철문을 낑낑 열고보니.. 옴마나. 주방으로 잘못 들어온 줄.. 생각했던 것 보다 정말 작음. (이날은 작은 곳들이 모두 좋았네.) 두 평 남짓한 공간에 테이블 하나. 끝. 그런데 그 작은 공간이 햇살로 가득했다. 와~ 햇살부잣집. 그래도 공간가득차는 햇빛이 때론 버겁진 않을까. 궁금했으나 묻지 않기로 했다. 초면이니깐.



 정말 간단한 음식 명란오차즈케. 녹찻물에 밥말아먹냐고 뭐라하는 사람도 있더만, 입안이 개운하고 깔끔해서 간혹 생각난다. 여긴 명이나물이 한수였다. 아 참. 햇살이 한수. 명이나물은 두수.



 여기에 몸 길게 늘려 일광욕하는 고양이 한 마리만 있으면 세상 멋진 그림이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했다. - 나만 고양이 없는 사람 - 

p.44 장그르니에의 「고양이 물루」중에서

고양이가 다리를 반쯤 편다면 그것은 다리를 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또 다리를 꼭 반쯤만 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희랍 꽃항아리들의 가장 조화로운 윤곽에도 이토록 철저한 필연성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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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0-01-16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햇살부잣집~~
사진도 표현도 이뻐 한 번 앉아서 먹어보고픈 풍경입니다.
부암동이 예쁜 풍경들이 많은 곳이군요?^^

무식쟁이 2020-01-16 18:01   좋아요 0 | URL
인왕산이랑 북악산 사이에 위치해서 공기도 시야도 좋아요. 특히 가을날 길가 가로수가 죄다 노랗게 물들면 더욱 좋아요. 하긴 가을단풍 물들면 안예쁜 곳이 없겠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