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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사소한 기쁨이 사라지니 삶이 탁하다. 뭔가를 하기도 전에 소진되어 버린 느낌. 3월에 이어 반년만에 다시 찾아온, 전혀 반갑지않은 코로나블루. 이열치열이 될지 설상가상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다시 펼쳐본다. 뭐라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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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맨
애나 번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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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소설의 재미있는 점 중 하나는 등장인물 중 단 한 명도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밀크맨, 어쩌면-남자친구,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남자(진짜 밀크맨), 가장 오래된 친구, 아무개의 아들 아무개, 핵소년, 알약소녀, 알약소녀의 동생 등등.. 주인공 소녀에게 조차도 이름은 주어지지 않는다. 지명도 없다. 십분 지역, 일상적인 장소.. 뭐 이렇다.  나라나 도시 같은 사회공동체도 이름이 없긴 매 한가지. 우리 아니면 저들, 우리 종교 아니면 다른 종교, 길 이쪽 아니면 길 저쪽, 물 건너, 국경 건너.. 이름조차 과거로부터 이어온 공동체로부터 허가받아 결정되는 억압적인 배경이라 그런지 정체성이 드러나는 고유 이름은 드러나지 않는다. 가만 보니 밀크맨을 제외하곤 뭔가 누군가와 관계성이 드러나는 이름인 것 같다. (스포주의!) 관계가 바탕이 되지 않고 그냥 지칭된 대상. 밀크맨, 핵소년, 알약 소녀는 모두 죽는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는 억지를 부리던 차. 근데 밀크맨이 왜 밀크맨이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 열여덟 소녀는 마을 사람들에게 뭐라고 불렸을까. 걸으면서 책 읽는 소녀? 슬픈 남자의 딸? 어쩌면-밀크맨의 애인? 이 깨어나는 소녀는 자기 이름을 찾았으면 좋겠다. 빛나는 이름으로.

 

저쪽 세상에서라면 나는 뭐라 불릴까. 그리고 이쪽 세상에서는..

여전한 무명씨.  

 

p.43
그런데 써도 되는 이름의 목록은 없다. 누구든 허락되지 않는 것을 기준으로 삼아 허락되는 것을 짐작해야 한다.

p.117
내 옆에서 어쩌면-남자친구와 주위의 이상한 사람들은 전부 해넘이를 보고 있었는데, 그 순간 내가 저 사람들 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야 하고 생각하던 바로 그 순간, 그곳에서, 문득 내 안에서 무언가가 바뀌었다. 파란색, 파란색, 또 파란색-모든 사람이 알고 당연히 거기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공식적 파란색이 아니라, 진실이 내 감각을 두들겼기 때문이다. 거기에 파란색이라고는 한 점도 없다는 게 점점 확실해졌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색을 봤고 일주일 뒤에 프랑스 수업에서도 색을 보았다. 그때도 이때도 색이 물들고 녹아들고 흘러들고 번지고 새로운 색이 나타나고 모든 색이 섞이고 색이 영원히 이어졌는데 딱 한 가지 색 파란색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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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2020-09-03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사놓고 읽지 않고 있었는데, 쓰신 후기를 보니 호기심이 생기네요. 조만간 읽어봐야겠습니다~!

무식쟁이 2020-09-07 23:35   좋아요 0 | URL
흥미진진한 사건 중심 소설이 아니라 그런지 초반부에는 책장이 잘안넘어갔어요. 중반부쯤 작가의 특별한 입담에 익숙해지고나니 소녀 내면의 꽉찬 서사가 좋더라구요. ^^ 반갑습니다, 클로드님.
 

 

  지는 모습까지 아름답길 바라는가. 작별까지 아름답길 바라는가. 그러지 마라. 처절하게 지는 목련을 외면하지 마라. 흰 봉우리 무겁게 하늘 향해 올리느라 애썼다. 예고 없이 그렇게 사랑은 끝날 수 있다.

 

 

 

목련꽃 지는 모습 지저분하다고 말하지 말라

순백의 눈도 녹으면 질척거리는 것을

지는 모습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그대를 향한 사랑의 끝이

피는 꽃처럼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 복효근, <목련 후기> -

 

 

 

  사랑이 지나간 후 고통이 머무를 자리를 내어주고 존중하라. 그 마지막 처절한 고통과 공존하는 것을 허용하라. 아름답게 실패할 기회를 허락하라. 그러고 나면 애도할 수 있을테다.

 

 

 

 

 

 

 

 

 

 

 

 

 

p.70 (시를 잊은 그대에게/정재찬/창비)

추해보이는 목련의 낙화를 변호하며 사랑과 작별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쿨하게 헤어지자고? 상처 따윈 남기지 말자고? 그래서 밥만 잘 먹더라고? 아니다. 이 시인은 제대로 앓기를 원한다. 금세 아무는 상처는 사랑이 아니었음을 반증할 뿐이다. 작별 앞에서 구름에 가는 달처럼 지내는 것, 그러한 초월과 달관은 인간적이지 않다고, 적어도 청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고 시인은 항변한다. 그런 의미에서 목련은 뒤끝이 지저분한 사랑이 아니라 끝난 뒤에도 그 끝까지 사랑하려는 순정함의 표상이다. 떠나는 처지에선 그것이 지저분해 뵐지 몰라도, 말은 바르게 해야 하니, 떠나는 이가 작별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 것, 동백 같은 순교를 바라는 것이야말로 정말 지저분한 욕심이 아닐까.

p.79 (시를 잊은 그대에게/ 정재찬/ 창비)
멋지게 떠나는 것까지 바랄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멋지게 떠난 이들이 박수를 받는 것일 게다. 박수칠 때 떠나라 하지 말자. 떠나는 모든 이에게 박수를 보내자.

p.247 (하바드 사랑학 수업/마리루티/웅진지식하우스)
깨진 관계를 뛰어넘어 잘 사는 법을 배울 때야말로 그 관계를 떠나보내도 괜찮은 때입니다. 애도는 역설적인 과정입니다. 우리가 상실한 것에 집착하게도 하지만, 우리에게 너무나 큰 의미였던 그 사람 없이도 생을 살아갈 수 있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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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이 직접 만든 이야기 식물도감 - 최신 교육 과정에 맞춘 전면 개정판 선생님들이 직접 만든 어린이 도감
박헌우 외 글.사진 / 교학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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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해 살펴보고 있는 여러 식물도감들중에서 이 도감이 가장 활용도가 높다. 잠깐 피고지는 꽃의 접사나, 다 비슷해보이는 풀샷만 가득한 도감이 아니라, 식물 전체 모습과 함께 꽃이 피었을 때 모습, 꽃이 지고난 모습, 열매나 씨앗, 잎의 모양이나 줄기 방향 등 그 식물의 특성에 맞게 적절하고 다양한 사진들이 제시되어 있어서 실제 식물과 맞닥트렸을때 두눈으로 충분히 식별가능하다는게 참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도심의 공원이나 가까운 산과 들, 도시의 딱딱한 보도블락들 틈새에서 흔히 볼수 있는 식물들로 가득하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이 책 덕분에 회색 콘크리트 사이에서도 열심히 살고 있는 초록이들을 알아보고 불러 줄수 있게 되었다. 깊은 산 맑은 숲속에서만 볼수 있는 귀한 야생화들은 이 책에서는 보기 힘들다.
그외 간단명료한 식물정보와 함께 재미있는 이야기마당은 색다른 덤이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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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무 이름 사전
박상진 지음 / 눌와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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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여종의 나무들의 ‘이름’과 그 유래에 대한 궁금증들을 시원하게 해결해주는 책. 모르는 나무는 휙휙 패쓰하면서 무지 재밌게 읽었다. 생김새가 아리까리할 땐 바로바로 검색하면서도, 사전의 특성상 긴호흡이 필요없으므로 다시 금방 푹빠져 읽게 된다. 식물도감과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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