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읽기에는 두툼하고, 두껍다 하기에는 얇은 책. 그래서 그런지 술술 읽히면서도 여전히 ‘꽤 남아있네? ‘라고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언니네이발관’이란 유명한 인디밴드에서 활동하는 사람의 글을 모아낸 책이다. ‘보통’이란 단어의 말이 새롭게 재조명되고, 그러면서 많이 쓰이기 시작하자 새로 불러낸 의미마저 퇴색되려 하는 중이다. 그래도 이 책이 ’보통‘이란 단어를 다시 불러낸 책이 아닐까 싶다.

‘꿈’에 대해 ‘꿈이 없어서 고민하고, 찾으러 애쓰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라는 말은 지나치게 현실적이지만, 그래서 더 위안이 된다. 무조건 ‘열정적으로 찾아라’라는 말보다는 현재의 젊은이들에게 더 위로가 된다고 할까나. 그는 꿈이 없다고 고민하지 말라고 한다. 그럼 관객이 되면 되니까. 모두 연예인처럼 주인공이 되기를 바라는 현실에서 이런 조언을 순순히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이런 사실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다. 안 그러면 다들 주인공이 되지 못했을 때의 열등감을 이기지 못 할 테니까.


산책에 관한 글에서는 산책을 할 때에 코스를 잘 선택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했다. 나도 혼자 걸을 때, 덜 쓸쓸 하려고 사람이 많지 않은 길을 택한다. 혼자 명동거리를 걷는 것은 산책이 될 수 없다. 혼자 하려고 일부러 나선 길이지만, 맞은편에서 깔깔대며 걸어오는 사람을 보면 당장 전화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반면, 창경궁을 지나 창덕궁으로 가는 길은 산책길이 될 수 있다. 대부분 혼자이거나 2-3명이 걸어서 아주 좋다. 저자는 산책이 하루 일과의 전부인 사람들이 노인이라고 하였다. 아침에 롯데리아에서 보고 온 10명 정도의 할아버지들이 생각난다. 패스트푸드점에는 학생들, 10대들이 많을 것 같은데 그 이른 시각에는 할아버지들이 모여 계셨다. 오늘처럼 추운 날에 아침부터 무얼 기다리시는 걸까, 그냥 시간을 때우시는 걸까 등등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 할아버지들은 밖에 많고, 할머니들은 덜 보이는 것 같을까? 등등 말이다.


진정한 친구라면 같이 슬퍼하기보다 진심으로 기뻐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은 참 마음에 와 닿았다. 왜냐하면 나도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의 부친상에 십년지기 친구처럼 달려갔으니까. 슬픔은 사람을 묶는 힘이 기쁨보다 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친구가 잘 될 때 질투가 나기 마련이니까. 나 역시 그런 경험이 많다. 그래서 내가 성격이 나쁜가라는 생각도 해본 적도 있다. 하지만 다들 조금씩 서로에게 부러워하는 점이 있으려니 해야 내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하고, 그 질투를 동력삼아 나에게 투자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


‘엄마가 말을 걸면 왜 화부터 날까’는 정말 거의 모두에게 해당되는 에피소드가 아닐까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친절하면서 엄마한테는 유난히 퉁퉁되게 되는 우리들. 작가라는 사람이 이렇게 고백을 해주니 나는 면죄부를 얻은 듯 가벼워졌다. 엄마한테 잘 해야지 라는 생각도 역시나 하게 되었고. ‘인생의 차트’에서는 인생에서의 많은 가치 중 사랑의 배타성에 대해 이야기 한다. 사랑은 다른 많은 가치들과 대립한다고. 예를 들어, 돈, 가족, 자아실현을 선택할 것이냐 사랑을 선택할 것이냐는 질문. 저자는 현실에서는 사랑이 늘 우선순위에서 밀린다고 한다. 행복과 사랑 중에는 행복이라며.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른 가치들을 송두리째 삼켜버릴 수도 있는 가치, 그게 사랑이라고 하였다.


‘서점’에 대해서 작가는 서점이 최고의 안식처이자 벗이라고 하며 자신이 서점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정리를 해 보았다. 첫 번째로, 서점은 혼자가도 쓸쓸하지 않고 자유롭다. 둘째로, 들고나가는 것이 자유롭다. 셋째로, 그곳은 평화롭다고 한다. 넷째로, 그렇기에 서점은 신기하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에 사람이 많아도 괜찮은 유일한 공간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도 내가 서점을 좋아하는 이유를 찾아보았다. 첫째로, 책을 마음대로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다. 세 번째로, 책 보는 사람들의 실체가 느껴져서 좋다. 다들 책보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그 곳에 가면 분명 많은 사람들이 있다. 저자가 써놓은 이유를 보니까 그 이유가 납득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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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소담 한국 현대 소설 1
이혜린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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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이 필요한 시대다. 특히나 취업의 문을 뚫으려는 20대에게 ‘열정’은 필수 요소이다. 기업의 인재상을 살펴보면, 저마다 ‘열정’을 가진 인재를 바란다고 써있다. 나는 딱, ‘열정’이란 것이 청년의 필수 아이템이 되어갈 때 대학생이 되었다. 동아리를 지원할 때에도 열정이 있어야 했고, 수업을 듣는데도 열정이 있어야 했다. 열정이란 단어가 귀에 못이 박혀, 지겨울 법도 했다. 이 책을 펼치게 된 건, 순전히 제목 때문이다.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라는 말이 귀에서 음성으로 들려왔다.


책은 작가의 경험으로 구성되었다. 스포츠 신문 연예부 기자로 시작한 경험이 담겨있다. 주인공은 대학교 졸업반의 이라희다. 운 좋게, 졸업 전에 수습기자로 취직이 되었다. 하지만, 알고보니 인턴이었던 것. 5명의 인턴 중 2명만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이 소설은 생생하다. 3분 만에 써지는 인터넷 기사와 상사의 고함을 듣다보면, 소설은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다. 소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악명 높은 상사의 업무와 지시를 다 이겨내고, 성장하는 사회 초년생의 초상이다.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는 한국의 진정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이다.


말도 안되는 기사 작성과 기분 따라 내려오는 업무 지시. 선배 기자는 여기서 네가 해야 할 말은 단 두 개라고 알려준다. 네 혹은 아니요. 연예인들의 진심은 숨고, 자극적인 것만 살아남는 연예 기사에 주인공은 점점 적응해간다. 그녀는 부장님과도 죽이 잘 맞아, 거의 정규직이 될 것 같은 대우를 받는다. 


하지만, 평소 후배 기자들과 사이가 안 좋았던 부장은 그 사실이 전무에게 알려져 퇴출 위기를 맞는다. 이 때, 부장의 퇴출에 결정적인 진술을 한 주인공. 라희는 살 사람은 살자며, 부장을 외면한다. 그런데, 부장은 진급하여 돌아온다. 그리고 주인공에게 회사를 그만두라고 한다. 주인공은 자기가 부장님을 몰아내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해서 자르냐고 물어본다.


이에 듣고, 부장은 네가 열정이 없기 때문에 내보낸다고 한다. 시키는 것만 했지, 다른 것을 찾아서 스스로 한 적이 있냐고 타박한다. 그 소리에 질린 주인공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한다. 정말 열심히 한 주인공이다. 그런데, ‘넌 열정이 없어’라는 말을 들으면 얼마나 힘이 빠질까. 소설은 1년의 인턴생활을 마친 주인공이 집에서 자는 것으로 끝난다.


그녀가 학교에서 배운 것은 회사에서는 다 쓸모없는 것이었다. 회사에서는 줄 서는 능력, 업무 능력, 거기에 ‘열정’을 보여주어야 했다. 아마도 부장은 그녀가 열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을 배신했기에 잘랐을 거다. 주인공이 언제 기운을 차리고, 다시 구직 생활에 띄어들지는 모른다. 그녀는 나와 닮았고, 보통의 20대들과 닮았다. 그랬기에 더더욱 애정이 가는 캐릭터이다. 나는 주인공이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는 길을 택하길 바란다.


책을 읽고, 나는 나의 회사생활을 상상한다. 내가 얼마나 상사와 동료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업무는 잘 할 수 있을까. 나도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다니고 싶은 직장에 지원을 한다. 그럼 그 곳에서는 내 꿈이 펼칠 기회가 있을까? 그건 장담은 못한다.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가진 조금의 열정을 믿고 나가는 수 밖에 없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하면, 누가 나를 믿겠는가. 불안하지만 다 같이 불안하고, 어딘가에 내 자리가 있다는 생각으로 버텨야지. 열정이 뜬 구름 잡는 이야기인 것도 맞지만, 그 구름을 잡고 갈 수밖에. 그래도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다. 열정에 필요한 건, 추진력이라고 누가 그랬다. 나는 추진력빠진 열정밖에 없다. 추진력은 어디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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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은 예쁘다 - 무엇이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나이
김신회 지음 / 미호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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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20대이다. 왜인진 몰라도 나는 작년부터 30살에 관한 책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올 것이 두려워서인지, 모르는 것에 대한 기대감인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나이대에 매력을 느낀다. 내가 생각하는 삼십대란, 드라마에서 30대 주인공과 다르지 않다. 경제적인 자립을 하고, 직장을 가졌다. 때때로, 친구들을 만나고 연애를 한다. 회사를 다니다가 문득, 창업을 해볼까 라는 생각도 하는 삼십대. 결혼을 고민하는 삼십대. 전반적으로 20대보다 훨씬 성숙해져있어야 한다고 상상한다. 


그렇게 서른에 관한 탐색을 하다 만난 책이다. ‘서른은 예쁘다’는 34살 여자의 이야기이다. 난 김신회 작가를 ‘가장 보통의 날들’로 접했다. 그 때는 그냥 보통의 여행작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른은 예쁘다’를 읽고, 반해버렸다.  그런 김신회 작가의 책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서른은 예쁘다’에 대해 말해보겠다.


이 책이 좋은 이유는 많다. 소재가 구체적이고 다양하다. 친한 언니가 카페에 앉아 들려주는 이야기 같다. 자기 이야기를 안 하고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는 에세이와 다르다. 자기 이야기에,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더하니 책이 더 풍성하다. 작가의 유머감각도 나와 어느 정도 통한다. 삼십대의 미혼 여성이 무엇을 고민하는지 미리 들여다 볼 수 있다.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이런 점들이 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크게 사랑, 결혼, 직장, 여행이다. 작가는 이 카테고리를 갖고 30대 여성이 가진 심리를 이리저리 잘 풀어낸다.


아무래도 결혼하지 않은 삼십대 여자에게 가장 큰 일은 결혼이다. 부모님이 알아온 선 자리. 작가는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 부모님이 주선한 선도 보러 간다. 그게 아무래도 부모님에게 적당히 구박받으면서 빠져나갈 틈을 만드는 방법이지 싶다. 나한테는 이제 40대 미혼인 친척 언니가 있다. 예전에는 친가 어른들이 결혼 언제 하냐고 물어보았지만, 이젠 그러지도 않는다. 작가도 그렇게 되면 어떡하지? 걱정하면서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한다. 결혼은 아무하고나 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다음으로는 나이 들어감에 대한 고민이다. 결혼식장에서 만난 옛 선배가 던진 “야, 너 삭았다!”라는 말에 가슴이 덜컹한 작가. 화장실로 달려가 거울을 보고,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늙었어?” 그녀는 아니라는 대답을 듣고 싶었다고 한다. 사실이 무엇이든 간에, 아니라는 대답을 듣고 싶었던 것. 친구 한 명이 무슨 소리냐며 분개해준다. 나이 들어가는 것에 작가는 무작정 긍정적이진 않다. 다만, 한 살 더 들기 전에 조금 더 예쁘게 꾸며보고 자신의 외적 장점을 극대화 시키자고 한다. 나는 작가의 이 말을 듣고, 올해 나의 옷 입는 스타일에 변화를 주었다. 어색해서 잘 안 입는 치마도 입고 유행이라는 맥시스커트도 입어본다. 지금이 내 인생 최대로 젊을 때라면, 시도해보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차림이 다양해진 만큼, 나는 조금 유연해진 느낌이다.


책을 읽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30대를 생각하는 수준은 고등학생 때 대학생활을 상상하는 것과 같다고. 막상 입학하고 나면 별것 없지만, 닥치기 전에는 몰라서 더 매력적인. 지금 30대인 사람과, 내가 30대가 될 때의 30대가 같을까? 그런 생각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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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레이드 오늘의 일본문학 1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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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집에 사는 다섯 명의 이야기다. 5명이 각자 돌아가면서 화자가 된다. 그래서 책 제목이 퍼레이드로 지은 것 같다. 흔히 퍼레이드의 주인공은 맨 처음에 등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긴 행렬을 보다보면, 결국 누가 처음이고 마지막인지 모른다. 각자가 주인공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의 화자 다섯 명 모두 각자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점을 적절히 나타내준다고 본다. 퍼레이드를 보면, 저마다의 개성으로 복잡하고 어지럽다. 이 소 설도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평범하지만 조금은 독특한 구석을 지닌 사람들의 조합을 그릴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이 집 구석에 평범한 사람은 없다. 좋아하는 선배의 여자 친구와 몰래 만나는 요스케, 연예인 남자친구의 연락을 기다리느라 거의 집에 있는 고토미, 영화에서 여자가 강간당하는 부분만 모아서 보는 미라이, 18살이지만 자칭 ‘밤일’에 종사하는 사토루, 가장 멀쩡한 것 같지만 여자를 구타하는 나오키.


아는 사람의 소개로, 어쩌다 서로 같이 살게 된 사람들이다. 친한 친구들도 같이 살면 다신 안 본다고 한다. 근데 이 사람들은 잘만 산다. 미라이가 술을 마시다 데리고 온 사토루는 어쩌다보니 같이 살게 된다. 미라이는 나오키와 사토루에 관해 이런 말을 한다. ‘미라이가 보는 사토루, 고토미가 보는 사토루, 요스케가 보는 사토루가 모두 다르다’ 그러니까 우리는 사토루의 일정부분밖에 모른다. 지극히 맞는 말이다. 소설에서 말하듯이, 이들이 잘 어울리는 이유는 이 집에 맞는 얼굴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들은 서로에게 적당히 무심하다. 요스케가 선배의 여자친구를 만나도 그에게 비난하지 않는다. 고토미는 남자친구의 전화를 기다리느라 하루종일 집에 있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잔소리 하지 않는다. 한편, 이들은 서로에게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도 함께 하는 것을 즐거워한다. 특히 사토루는 이 집이 꽤 즐겁다며 좋아한다.


그런데 이들은 인근 역에서 여자들을 폭행하고 다닌 것이 나오키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침묵한다. 심지어, 폭행장면을 목격한 사토루는 괜찮다며 나오키를 안심시킬 따름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관여하지 않는 건 이해가 됐다. 하지만 나오키의 폭행 사실에 대해서도 침묵하는 것은 이해가 잘 안 된다. 나오키가 집 안에서는 멀쩡한 사람이라서? 아니면, 결국에는 그만둘 거니까? 휘말리기 싫어서? 이것도 한 사람을 인정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소설에서 나오키는 나머지 사람들이 모르는 척 해주는 걸 알고 이상한 감정을 느낀다. 그는 변명할 기회도, 사죄할 기회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거실에 모여 떠들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사토루가 핑크 팬더를 재녹화해놓은 미라이의 강간 시리즈 테이프를 보고 있다. 흉한 강간 장면을, 노래하는 핑크 팬더들이 덮어버린다. 사토루는 이 집단에 온 ‘빛’이다. 정상적인 직업을 갖고 있지 않지만, 이 소년의 순수함이 집안의 공기를 바꾸었다. 이 장면은, 나오키가 이제 더 이상 범행을 저지르지 않을 거라고 암시해 준다. 흉한 장면이 팬더들로 바뀌었으니까.


사람들은 저마다의 약점과 비밀을 갖고 있다. 각자가 말하지 않는 것은 지켜주는 게 현명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걸까? 밝히기보다 포용하는 것이 사람에게 더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전하고 싶은 걸까? 나오키의 행동 때문에 혼란스럽다. 어쨌든, 나는 퍼레이드에서 노래 부를 수 있는 핑크팬더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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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
김사과 지음 / 창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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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두 번 읽었고, 다시 훑어본 것까지 합하면 4번은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이게 무슨 내용인지 감이 안 잡혔다. 처음부터 나오는 이상한 대화는 의미가 통하지 않았다. 미나를 제외하고 내가 제대로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는 없었다. 이 소설을 읽고 독서동아리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구도 등장인물들이 평범하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조금씩은 있었다. 교육, 친구에 대한 열등감, 부러움. 우리가 겪은 십대이기 때문에 낯설지는 않았다.


이 소설에서 정상적이라고 볼 수 있는 사람은 ‘미나’다. 미나의 친구 수정, 미나의 오빠 민호. 3명이 소설을 꾸려간다. 중학생 미나와 수정이는 단짝 친구다. 그들은 사교육이 잘 이루어지는 P시에 살고 있다. 미나와 수정이의 관계는 같은 반 친구가 자살하면서 삐끄덕 거리기 시작한다. 자살한 친구 지예는 미나와 초등학교 시절 단짝 친구였다. 수정은 미나의 단짝 지예를 질투한 적은 있지만, 그녀의 죽음에 충격을 받지는 않는다.


수정은 지나치게 이성과 정확함을 좋아하는 아이로 그려진다. 그녀는 미나가 슬퍼하는 모습에 당황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슬픔을 표현할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점에 좌절한다. 그리고 이는 점차 미나에 대한 질투심, 증오심으로 바뀐다. 미나는 현재의 단짝인 수정에게 위로를 받고 싶어 했다. 그녀는 지예가 죽었다며,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하지만, 수정은 졸리다며 집에 가자고 한다. 한창 민감한 시기에, 위로받을 창구 하나가 닫힌 것이다. 미나는 그 뒤, 학교에도 잘 안 나오다 대안학교로 전학 간다.


수정과 미나의 관계는 미묘하다. 애증의 관계이다. 소설에서 결핍을 느끼는 쪽은 수정이다. 수정은 미나의 아버지가 지식인인 점, 더 잘 사는 점을 부러워한다. 자신은 이해하지 못하는 책을 읽고 논술교사와 다정하게 지내는 미나를 부러워하면서, 증오한다. 수정과 미나는 상극이다. 미나는 자유로운 영혼, 감정이 살아있는 아이이다. 수정은 감정을 거부하며 정확한 것만 좋아한다.


학창시절에 여자아이들은 예민하다. 누구와 친구인지, 친구가 어떤 아이인지. 나도 보통 여자아이들처럼 나보다 공부 잘 하는 아이를 질투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단순한 질투였다. 질투도 무엇을 알아야 한다.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내가 채우고 싶은 부분이 무엇인지, 내가 채울 수 없는 게 무엇인지. 질투는 모자란 것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보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질투할 대상이 더욱 많다.


수정이 미나를 미워한 것은 자신이 가질 수 없는 재능을 가졌기 때문이다. 수학식을 완벽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수정에게 감정, 사랑은 아무 느낌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수정은 미나의 감성적인 부분을 원했다. 슬픔의 공식을 풀어 봐도 모르는 수정은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내가 본, 수정과 미나 관계가 비극으로 치달은 까닭이다.


수정은 미나를 죽인다. 마지막에 미나와 수정은 쉴 새 없이 말을 토해낸다. 둘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민호는 죽은 동생을 보고도 수정을 바라보며 웃는다. 이 아이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 소설에서 미나와 수정의 부모님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이들을 학원, 학교에 데려다주고 필요한 것을 사주는 존재에 불과하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제시해주는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길을 잃어버린 아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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