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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ㅣ 소담 한국 현대 소설 1
이혜린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12월
평점 :
열정이 필요한 시대다. 특히나 취업의 문을 뚫으려는 20대에게 ‘열정’은 필수 요소이다. 기업의 인재상을 살펴보면, 저마다 ‘열정’을 가진 인재를 바란다고 써있다. 나는 딱, ‘열정’이란 것이 청년의 필수 아이템이 되어갈 때 대학생이 되었다. 동아리를 지원할 때에도 열정이 있어야 했고, 수업을 듣는데도 열정이 있어야 했다. 열정이란 단어가 귀에 못이 박혀, 지겨울 법도 했다. 이 책을 펼치게 된 건, 순전히 제목 때문이다.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라는 말이 귀에서 음성으로 들려왔다.
책은 작가의 경험으로 구성되었다. 스포츠 신문 연예부 기자로 시작한 경험이 담겨있다. 주인공은 대학교 졸업반의 이라희다. 운 좋게, 졸업 전에 수습기자로 취직이 되었다. 하지만, 알고보니 인턴이었던 것. 5명의 인턴 중 2명만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이 소설은 생생하다. 3분 만에 써지는 인터넷 기사와 상사의 고함을 듣다보면, 소설은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다. 소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악명 높은 상사의 업무와 지시를 다 이겨내고, 성장하는 사회 초년생의 초상이다.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는 한국의 진정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이다.
말도 안되는 기사 작성과 기분 따라 내려오는 업무 지시. 선배 기자는 여기서 네가 해야 할 말은 단 두 개라고 알려준다. 네 혹은 아니요. 연예인들의 진심은 숨고, 자극적인 것만 살아남는 연예 기사에 주인공은 점점 적응해간다. 그녀는 부장님과도 죽이 잘 맞아, 거의 정규직이 될 것 같은 대우를 받는다.
하지만, 평소 후배 기자들과 사이가 안 좋았던 부장은 그 사실이 전무에게 알려져 퇴출 위기를 맞는다. 이 때, 부장의 퇴출에 결정적인 진술을 한 주인공. 라희는 살 사람은 살자며, 부장을 외면한다. 그런데, 부장은 진급하여 돌아온다. 그리고 주인공에게 회사를 그만두라고 한다. 주인공은 자기가 부장님을 몰아내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해서 자르냐고 물어본다.
이에 듣고, 부장은 네가 열정이 없기 때문에 내보낸다고 한다. 시키는 것만 했지, 다른 것을 찾아서 스스로 한 적이 있냐고 타박한다. 그 소리에 질린 주인공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한다. 정말 열심히 한 주인공이다. 그런데, ‘넌 열정이 없어’라는 말을 들으면 얼마나 힘이 빠질까. 소설은 1년의 인턴생활을 마친 주인공이 집에서 자는 것으로 끝난다.
그녀가 학교에서 배운 것은 회사에서는 다 쓸모없는 것이었다. 회사에서는 줄 서는 능력, 업무 능력, 거기에 ‘열정’을 보여주어야 했다. 아마도 부장은 그녀가 열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을 배신했기에 잘랐을 거다. 주인공이 언제 기운을 차리고, 다시 구직 생활에 띄어들지는 모른다. 그녀는 나와 닮았고, 보통의 20대들과 닮았다. 그랬기에 더더욱 애정이 가는 캐릭터이다. 나는 주인공이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는 길을 택하길 바란다.
책을 읽고, 나는 나의 회사생활을 상상한다. 내가 얼마나 상사와 동료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업무는 잘 할 수 있을까. 나도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다니고 싶은 직장에 지원을 한다. 그럼 그 곳에서는 내 꿈이 펼칠 기회가 있을까? 그건 장담은 못한다.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가진 조금의 열정을 믿고 나가는 수 밖에 없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하면, 누가 나를 믿겠는가. 불안하지만 다 같이 불안하고, 어딘가에 내 자리가 있다는 생각으로 버텨야지. 열정이 뜬 구름 잡는 이야기인 것도 맞지만, 그 구름을 잡고 갈 수밖에. 그래도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다. 열정에 필요한 건, 추진력이라고 누가 그랬다. 나는 추진력빠진 열정밖에 없다. 추진력은 어디에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