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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
김사과 지음 / 창비 / 2008년 1월
평점 :
제대로 두 번 읽었고, 다시 훑어본 것까지 합하면 4번은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이게 무슨 내용인지 감이 안 잡혔다. 처음부터 나오는 이상한 대화는 의미가 통하지 않았다. 미나를 제외하고 내가 제대로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는 없었다. 이 소설을 읽고 독서동아리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구도 등장인물들이 평범하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조금씩은 있었다. 교육, 친구에 대한 열등감, 부러움. 우리가 겪은 십대이기 때문에 낯설지는 않았다.
이 소설에서 정상적이라고 볼 수 있는 사람은 ‘미나’다. 미나의 친구 수정, 미나의 오빠 민호. 3명이 소설을 꾸려간다. 중학생 미나와 수정이는 단짝 친구다. 그들은 사교육이 잘 이루어지는 P시에 살고 있다. 미나와 수정이의 관계는 같은 반 친구가 자살하면서 삐끄덕 거리기 시작한다. 자살한 친구 지예는 미나와 초등학교 시절 단짝 친구였다. 수정은 미나의 단짝 지예를 질투한 적은 있지만, 그녀의 죽음에 충격을 받지는 않는다.
수정은 지나치게 이성과 정확함을 좋아하는 아이로 그려진다. 그녀는 미나가 슬퍼하는 모습에 당황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슬픔을 표현할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점에 좌절한다. 그리고 이는 점차 미나에 대한 질투심, 증오심으로 바뀐다. 미나는 현재의 단짝인 수정에게 위로를 받고 싶어 했다. 그녀는 지예가 죽었다며,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하지만, 수정은 졸리다며 집에 가자고 한다. 한창 민감한 시기에, 위로받을 창구 하나가 닫힌 것이다. 미나는 그 뒤, 학교에도 잘 안 나오다 대안학교로 전학 간다.
수정과 미나의 관계는 미묘하다. 애증의 관계이다. 소설에서 결핍을 느끼는 쪽은 수정이다. 수정은 미나의 아버지가 지식인인 점, 더 잘 사는 점을 부러워한다. 자신은 이해하지 못하는 책을 읽고 논술교사와 다정하게 지내는 미나를 부러워하면서, 증오한다. 수정과 미나는 상극이다. 미나는 자유로운 영혼, 감정이 살아있는 아이이다. 수정은 감정을 거부하며 정확한 것만 좋아한다.
학창시절에 여자아이들은 예민하다. 누구와 친구인지, 친구가 어떤 아이인지. 나도 보통 여자아이들처럼 나보다 공부 잘 하는 아이를 질투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단순한 질투였다. 질투도 무엇을 알아야 한다.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내가 채우고 싶은 부분이 무엇인지, 내가 채울 수 없는 게 무엇인지. 질투는 모자란 것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보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질투할 대상이 더욱 많다.
수정이 미나를 미워한 것은 자신이 가질 수 없는 재능을 가졌기 때문이다. 수학식을 완벽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수정에게 감정, 사랑은 아무 느낌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수정은 미나의 감성적인 부분을 원했다. 슬픔의 공식을 풀어 봐도 모르는 수정은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내가 본, 수정과 미나 관계가 비극으로 치달은 까닭이다.
수정은 미나를 죽인다. 마지막에 미나와 수정은 쉴 새 없이 말을 토해낸다. 둘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민호는 죽은 동생을 보고도 수정을 바라보며 웃는다. 이 아이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 소설에서 미나와 수정의 부모님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이들을 학원, 학교에 데려다주고 필요한 것을 사주는 존재에 불과하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제시해주는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길을 잃어버린 아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