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레이드 오늘의 일본문학 1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한 집에 사는 다섯 명의 이야기다. 5명이 각자 돌아가면서 화자가 된다. 그래서 책 제목이 퍼레이드로 지은 것 같다. 흔히 퍼레이드의 주인공은 맨 처음에 등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긴 행렬을 보다보면, 결국 누가 처음이고 마지막인지 모른다. 각자가 주인공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의 화자 다섯 명 모두 각자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점을 적절히 나타내준다고 본다. 퍼레이드를 보면, 저마다의 개성으로 복잡하고 어지럽다. 이 소 설도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평범하지만 조금은 독특한 구석을 지닌 사람들의 조합을 그릴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이 집 구석에 평범한 사람은 없다. 좋아하는 선배의 여자 친구와 몰래 만나는 요스케, 연예인 남자친구의 연락을 기다리느라 거의 집에 있는 고토미, 영화에서 여자가 강간당하는 부분만 모아서 보는 미라이, 18살이지만 자칭 ‘밤일’에 종사하는 사토루, 가장 멀쩡한 것 같지만 여자를 구타하는 나오키.


아는 사람의 소개로, 어쩌다 서로 같이 살게 된 사람들이다. 친한 친구들도 같이 살면 다신 안 본다고 한다. 근데 이 사람들은 잘만 산다. 미라이가 술을 마시다 데리고 온 사토루는 어쩌다보니 같이 살게 된다. 미라이는 나오키와 사토루에 관해 이런 말을 한다. ‘미라이가 보는 사토루, 고토미가 보는 사토루, 요스케가 보는 사토루가 모두 다르다’ 그러니까 우리는 사토루의 일정부분밖에 모른다. 지극히 맞는 말이다. 소설에서 말하듯이, 이들이 잘 어울리는 이유는 이 집에 맞는 얼굴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들은 서로에게 적당히 무심하다. 요스케가 선배의 여자친구를 만나도 그에게 비난하지 않는다. 고토미는 남자친구의 전화를 기다리느라 하루종일 집에 있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잔소리 하지 않는다. 한편, 이들은 서로에게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도 함께 하는 것을 즐거워한다. 특히 사토루는 이 집이 꽤 즐겁다며 좋아한다.


그런데 이들은 인근 역에서 여자들을 폭행하고 다닌 것이 나오키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침묵한다. 심지어, 폭행장면을 목격한 사토루는 괜찮다며 나오키를 안심시킬 따름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관여하지 않는 건 이해가 됐다. 하지만 나오키의 폭행 사실에 대해서도 침묵하는 것은 이해가 잘 안 된다. 나오키가 집 안에서는 멀쩡한 사람이라서? 아니면, 결국에는 그만둘 거니까? 휘말리기 싫어서? 이것도 한 사람을 인정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소설에서 나오키는 나머지 사람들이 모르는 척 해주는 걸 알고 이상한 감정을 느낀다. 그는 변명할 기회도, 사죄할 기회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거실에 모여 떠들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사토루가 핑크 팬더를 재녹화해놓은 미라이의 강간 시리즈 테이프를 보고 있다. 흉한 강간 장면을, 노래하는 핑크 팬더들이 덮어버린다. 사토루는 이 집단에 온 ‘빛’이다. 정상적인 직업을 갖고 있지 않지만, 이 소년의 순수함이 집안의 공기를 바꾸었다. 이 장면은, 나오키가 이제 더 이상 범행을 저지르지 않을 거라고 암시해 준다. 흉한 장면이 팬더들로 바뀌었으니까.


사람들은 저마다의 약점과 비밀을 갖고 있다. 각자가 말하지 않는 것은 지켜주는 게 현명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걸까? 밝히기보다 포용하는 것이 사람에게 더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전하고 싶은 걸까? 나오키의 행동 때문에 혼란스럽다. 어쨌든, 나는 퍼레이드에서 노래 부를 수 있는 핑크팬더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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