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이사를 하게 될 것 같아서 일주일에 한두 차례 살림살이들을 정리하고 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이웃에 줄 것은 주고.
남편에게도 몇날 며칠 잔소리를 해가며 보지 않는 책을 좀 치우자고 얘기하는 중인데 끄떡도 하지 않는다.
남편은 버리는 것이라면 질색이다.
좁은 서재에 대학시절 쓰던 노트까지 자리 잡고 있으니.
고등학교 시절에 보던 독일어교본, 심리학 입문, 히브리어 사전, 성문종합영어, 기본영어...골동품 수준의 책들도 상당수이다.
내가 좀 버리자고 얘기를 꺼냈더니 혹시 몰래 버렸을까봐 한 술 더 떠서 며칠에 한 번씩 점검까지 한다.
나는 남편과 책장도 따로 쓰고 지금이야 이름까지 써놓진 않지만 네 책, 내 책 구분을 명확하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의 머리 속에는 무슨 책이 책꽂이 어디에 몇 번째 있는지 훤히 꿰고 있다.
자기가 둔 자리에 있어야지 한두 칸이라도 옮겨져 있으면 있는 대로 인상을 쓰곤 한다.
하는 수 없이 내 책만 반 이상 줄였다.

며칠 전 남편이 록펠러 책을 사 달라고 했다.
남편은 인터넷으로 책을 살 줄 모른다. 그것은 당연히 내 몫으로 넘어와 있다.
남편 책 한 권 사면서, 은근슬쩍 묻어서 내 책을 여덟 권이나 샀다.
이 사실을 알면 며칠 동안 책 좀 정리하자고 들들 볶은데 대한 화살이 날아올 것이다.

게다가 그릇들도 삼분의 일은 버렸는데 며칠 전에 새로 두 세트나 샀다.
무슨, 이런 계산 안 맞는 살림살이를 하는지 모르겠다.

책이 왔는데 마침 남편이랑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택배 아저씨가 화단에 올려놓고 갔을 것 같아서 남편보다 한 발 앞서 와서 보니 역시 화단에 얌전히 놓여있었다.
얼른 사진 한 장 찍고, 남편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당신 얘기한 책 왔네.”
“이거 한 권만 주문했단 말야?”
또 날아오는 눈총.
한 권을 어찌 배달시키냐는 뜻일 터.

남편은 양복을 사러 가도 처음 간 매장에서 처음 입어본 옷을 산다.
이유는 이것저것 입어보는 게 미안하다나 뭐라나.
매장 직원들이 아무리 다른 거 좀 입어봐라고 해도 막무가내다.
“그냥 이거 주세요.”
상황종료, 쇼핑 끝이다.

그나저나 여행에 관한 책이 많다.
눈으로 하는 여행 말고 발로 하는 여행을 하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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