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가 본 영화

   기다리면서 책 읽는 아줌마  

                                                                             옆에서 왔다갔다 하는 아저씨 

영화관 나들이 


지난 여름에 있었던 이야기. 

우리나라 사람들은 숫자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무언가 숫자로 이야기 하기를 좋아하지요.
장마가 좀 오래 계속된다 싶으니 그런 통계가 나왔네요.   십삼 년 만의 긴 장마라구요. 45일간 계속되고 있다네요.
아무튼 제가 사는 곳은 너무 오랜 가뭄 끝이라 긴 장마도 견딜만 하고 남편은 비오는 것을 좋아하 니 분위기에 취하곤 합니다.
나중에 양철 지붕 집을 지을꺼나, 그러네요. 빗소리 듣고 싶어서요.
사실 남편 사무실 바로 옆집은 양철 지붕이라 비 오는 날 그곳에 있으면 또다른 분위기를 느끼곤 합니다.
게으른 사람, 게으름 피우기 좋을만하게 많이 내리지도 않는 비가 오락가락 합니다.
빗소리 들으며 낮잠을 한숨 잔 남편이 느닷없이 영화보러 가자네요.
제가 오전에 잠시 외출을 하고 온 사이, 나름대로 생각해둔 이벤트인 모양입니다.
그런데 전 아이들말로 '뚜껑'이 열릴라고 하네요.
나이가 들면서 외식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끼니는 집에서 하지요.
방학이라 집에 와 있는 아들녀석은 그렇다치더라도 영화보고 와서 저녁밥 해먹을 시간이 되지  않으니 미리 준비를 해두고 나가야 하는데, 남편은 나가자고 하면 자기만 옷 입으면 모든 준비가 끝나는 줄 압니다.
모처럼 영화 좋아하는 아내를 생각해서 계획한 스케줄인 모양인데 망칠 수가 없어서 저도 옷을  갈아입으면서 아들에게 이런저런 것을 일렀어요.
밥솥을 열어보니 밥이 반공기쯤 밖에 없었어요.
밥이 좀 적은데 곰국이랑 먹어라, 포도 씻어 먹어라, 점심때 먹고 남은 고구마도 먹던지, 하여튼  알아서 저녁 해결해라 등등.
십 분 만에 준비를 마치고 자동차를 타고 나갔겠지요.
저는 영화관 주차장에 주차를 했으면 싶었지만 남편은 복잡해서 싫다네요.
하는 수 없이 주택가에 차를 세워두고 십여 분 걸어갔지요.  매표소에 도착하니 네 시 십 분. 영화는 네 시 사십 분에 시작하는 게 있더군요.
저 같으면 내려와서 사람구경이나 하다가 영화를 보았으면 싶었지만 남편은 걸어서 십여 분 걸리는 다른 영화관에 가보자고 하네요. 암말 않고 갔지요.
도착하니 네 시 삼십 분. 영화는 다섯 시 오 분에 시작하구요.
남편은 십 분 남았으니 아까 그 영화관에 다시 가서 네 시 사십 분 영화를 보자네요.
누가 영화를 보여 달라고 하기를 했나,
빨리 영화를 보고 집에 가서 꼭 처리해야 할 일이 있나,
그전 같았으면 '그냥 집에 가자'고 소리지르며 폭발을 했을 겁니다.
근데 나이 먹는 게 좋은 점도 있더라구요.
그럴 만한 힘도 없어서 목소리를 한톤 낮추어서 이렇게 말했지요.
"그냥 여기서 좀 기다렸다가 보자"
영화를 보고 자동차를 타고 오면서 남편이 물었어요.
"저녁은 뭘 먹지?"
"밥 해서 먹어야지."
"집에 가면 8시가 넘을텐데"

저는 전업주부에요. 일년 365일 하는 밥이지만 제 나름의 소신과 계획이 있어요.
근데 이게 뭡니까?
또 속이 부글거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좀 일찍 알려줬으면 미리 쌀이라도 앉혀서 예약을 해 놓고, 찌개라도 하나 준비해 두었으면  좋지 않았겠어요.
그러면 집에 가서 다 되어있을 밥에 찌개에 불 한 번 올려 밥을 먹으면 되었을텐데.
근데 그 말을 하려다 그만 두었어요.
삽십 년 동안 고쳐지지 않은 걸 어쩌겠어요. 
집에 오니 아들이 간식만 먹고 밥을 먹지 않고 있더군요.
점심에 남편과 저는 라면을, 아들은 만두를 먹었어요.
남편은 시계를 보더니 라면을 끓여먹자고 하더군요.
식성은 까다롭지 않고 좋은 편이지요.
근데 하루에 두 끼를 라면이라니 지금이 무슨 비상체제인가요?
결국 남편은 밥 반 공기에 곰국, 저는 냉동실에 얼려 두었던 백설기 떡, 아들은 라면으로  교통정리가 되었어요.

 이런 남편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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