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부자' 남편  


나이 탓인지, 현실에 좀 고전을 하고 있는 탓인지 남편은 은퇴하면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짓겠다는 소리를 자주 합니다.  아직 은퇴를 하려먼 십여 년은 남았는데 말이지요.
딸기 농사를 지었다가, 감자 농사를 지었다가, 쪽파 농사를 지었다가 하루에도 농사를 엄청 많이 짓습니다.
기 죽을까봐 받아주면 끝이 없습니다.
제가 좀 피곤하다거나, 할일이 밀려 있다거나, 외출할 일이 있으면 남편의 농사짓기를 끝내는 묘약이 있긴 있어요.
꿈을 확 깨게 하는 좀 잔인한 방법이긴 하지만 이렇게 얘기 합니다.
"자기 땅 있어?"
아직까지 자기 이름으로 된 땅 한 평이 없는 남편입니다.
지금까지 한 눈 팔지 않고 자신의 일을 성실히, 열심히 해 온 남편인데 농사를 짓겠다는 사람이  자신의 땅 한 평 없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요?
농사에 관심도 없는 사람들은 땅을 수천, 수만 평을 갖고 있는 데 말이지요.
'사면 되지?'
남의 일이라고 쉽게 하지 마십시오.
'비빌 언덕' 없이 출발한 사람들은 먹고 살면서 노후를 위해 땅을 살 수 있을 만큼 세상살이가 녹녹하지 않습니다.
성실히, 열심히 일하는 소시민이 순리대로 살아서 일가를 이루기는 너무 어려운 세상입니다.
제 친구는 대학을 졸업한 아들을 '백수' 만들지 않으려고 대학원엘 보냈는데 한 학기 등록금이  700만원이라며 죽은 소리를 하더군요.
이래저래 소시민들의 '희망'을 빼앗은 사회가 원망스럽습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이제 속담 사전에만 존재하는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법학전문대학원이니, 의학전문대학원이니 하며 경제적인 능력이 없으면 시험을 쳐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지요.  '돈'이 없으면 공부할 수도, 공부를 못해 학벌이 없으면 번듯한 직장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현실입니다.
이런 아이러니나, 사회의 모순을 삿대질 할 데가 없어 애꿎은 남편만 기를 죽입니다.
때로 귀찮아서 꿈을 확 깨게 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부부다 보니까 불쌍한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그래서 제 핸드폰에 남편의 이름을 이렇게 적었어요.

'땅부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