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5년 5월, 마키아벨리가 메디치가 출신의 교황 클레멘스 1세에게 피렌체사』를 바친다. 피렌체를 지배한 메디치가의 의뢰에 따라 지은 책이기 때문에, 메디치가 사람들을 허심탄회하게 평가할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메디치가의 군주적 지위와 성향을 분명히 드러내 보인다. 메디치가 사람들의 능력이 뛰어났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정치적 의미와 효과에 대해서는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메디치가의 군주화를 공화정에 해로운것으로 파악했다. 개인적 평가와 정치적 평가는 엄연히 다르다. 뛰어난 수장들 덕에 메디치가는 성공 가도를 달렸다. 개인이나 가문이라는 사적 차원에서는 좋다. 하지만 국가 차원에서는 군주정의 대두이자 공화정의 몰락으로 나타났다. 마키아벨리는 성장하는 편이 아니라 쇠락하는 편에 섰다.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메디치가를 더 혹독하게 비판하고 싶었을 것이다.
메디치가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그의 저작에서 어렵지 않게 볼수 있다. 『군주론』에서 군주는 모름지기 자신의 권력을 탐하기보다.
는 제도 개혁을 통해 강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메디치가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 P92

『로마사 논고』와 『피렌체사』에는 사적 이익을 위해 사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메디치가에 대한 비판이 적혀 있다. 공화정을 옹호하는 현실주의자 마키아벨리는 피렌체가 직면한 메디치가의 군주적 권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메디치가의 권력이 피렌체를 더 강한 나라로 만드는 데 쓰일 수 있도록 설득하는 방법으로 비판적 지지를 택했다. 바로 이것이 마키아벨리를 군주제의 옹호자로 보이게 했다. 그러나 그는 군주제를 옹호하지 않았다. 자유를 누려온 피렌체에는 공화정이 더어울린다는 생각을 분명히 드러냈다. 그는 군주제를 지지해서가 아니라 메디치 군주 가문이 이미 장악한 권력을 제대로 사용하기를바라서 『군주론을 썼다.
- P94

마키아벨리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 

■ 로렌초 데 메디치
1449년에 태어났다. ‘국부‘라는 호 칭을 받은 할아버지 코시모의 뒤를이어 ‘위대한 자‘로 불릴 만큼 메디치가를 전성기로 이끌었다. 메디치가를 대표하는 문화·예술 후원 활동으로 피렌체 르네상스를 꽃피운것이다.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를비롯해 수많은 예술가들이 로렌초의 후원을 받았다. 1478년에 일어난 파치가의 암살 시도에서 자신은
부상을 입는 데 그쳤지만 동생 줄리아노를 잃은 뒤 철저히 복수하며,
피렌체에 피바람을 일으켰다. 파치가의 편에서 음모에 가담한 사람들
로렌초 데 메디치의 시신이 시뇨리아궁에서 내걸리거나 아르노강에 던져졌으니, 메디치가에 반기를 들면 어떤 꼴을 당하는지 확실하게 보여준 셈이다. 파치가가 메디치가를 제거하려고 일으킨 사건이 결과적으로는 메디치가의
피렌체 지배를 강화했다. 이렇게 변화무쌍한 현실이 만들어내는 뜻밖의 결과를 어릴 때
보았기 때문에 마키아벨리가 현실주의자로 성장했을 수도 있다. 1492년에 죽은 로렌초의 무덤은 산로렌초성당에 있다.
- P97

■라모보나를라1452롤라

1452년에 페라라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의사이자 대학교수인 할아버지의 교육을 받았는데, 그를 의사로 키우려는 할아버지의 뜻과 달리 신학과 철학에 관심이 많았고,
결국 도미니코수도원에 들어갔다. 수도회의 발령에 따라 피렌체 산마르코수도원의 강사로 일하다 볼로냐로 갔다. 그런데 교회 개혁을 외친 그의 이미지를 이용하려는 메디치가에서 그를 다시 피렌체로 불러들였고 그는 얼마 있다 산마르코수도원장으로 뽑힌다. 그는 메디치가가 씨를 뿌린 세속적 축제를 종교 행사로 바꾸면서 피렌체 개혁에 나섰다. 샤를 8세의 침입으로 쫓겨난 메디치가의 자리를 차지하지만, 피렌체 내의 정적들과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집요한 공격을 받아 결국 집권하고 4년만인 1498년에 시뇨리아 광장에서 화형당한다. - P96

■ 체사레보르자

타락한 교황의 대명사인 알렉산데르 6세의 아들이다. 그가 태어난 1475년에는 알렉산데르 6세가 추기경이었다. 아버지의 지대한 관심을 받으며 성장한 보르자는 10대 중반에 이미 교회의 주교가 되었고, 피사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메디치가와 교류했다. 위대한 자-로렌초 데 메디치의 아들이자 훗날 레오 10세가 되는 조반니가 보르자와 같은 나이로 피사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교황인 아버지와 프랑스 왕의 지원을 받으며 이탈리아 로마냐 지역의 군주가 되려고 했다. 마키아벨리가 이상적인 군주의 모습으로 여길 만큼 리더십을 발휘해 강력한 군대를 갖췄지만, 1503년에 아버지가 죽고 적대적 관계에 있던 율리우스 2세가 교황이 되면서 감금당하는 신세가 된다. 스페인 땅으로 이감되었다가 탈출한 뒤 자신이 주교로 있던 나바라 지역의 군대를 통솔하지만, 1507년에 배신자의 성을 공격하다 적의 손에 끔찍한 죽음을 당한다. - P96

■ 프란체스코 귀차르디니

1433년에 피렌체의 명문 귀족가에서 태어났으며 마키아벨리와 절친했다. 페라라와 파두아의 대학에서 법을 공부하고 정치가와 역사가로서 활약했을 뿐만 아니라 사업적 감각도 뛰어나 큰돈을 벌어들였다. 인민 중심의 공화정을 구상한 마키아벨리와 귀족 중실 공화정을 지향한 그가 오랫동안 교류하면서 서로 사상적으로 성숙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 가벼워 보일 만큼 자신을 드러낸 마키아벨리와 달리 귀차르디니는 차갑고 신중했다. 귀차르디니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얻은 세상 사는 지혜를 모아 후세를 위한 『회고록Ricoradi politici e civill을 만들었는데, 이 책이 지금까지 독자의 사랑을 받으며 그는 처세의달인으로 불린다. 1540년에 죽을 때까지 큰 시련 없이 영화를 누렸다.
- P97

독서와 토론으로 소통하는 인문주의자
마키아벨리는 소통을 즐긴 사람이다. 메디치가의 군주정이 강화되면서 공직에서 물러나 세상에 참여하고 소통할 길이 막혀버렸을때 그는 사람이 모이는 곳을 찾아다녔다. 그중에서도 당시 지식인과 엘리트 들의 정원 모임이 적극적으로 이용되었다. 오리첼라리정원은 젊은 귀족들과 소통하는 공간이었다. 지금 피렌체 중앙역 서남쪽에 자리한 오르티 오리첼라리는 마키아벨리에게 특히 중요한공간으로, 피렌체의 유력 가문인 루첼라이 집안이 소유한 정원이었다. 여기서 피렌체 명문가의 젊은이들과 마키아벨리가 독서와 토론을 함께 했다. 피렌체에서 새로 부활하는 인간에 대한 관심이 정원모임의 문학, 철학, 신학, 천문학 등에 관한 독서와 토론이라는 시민적 방식으로 드러난 것이다.
정원 모임에 참여한 젊은이들은 부와 영향력뿐 아니라 훌륭한자질을 갖춰 장차 피렌체 정치를 이끌 만한 잠재력이 있었다. 
......
당대 이탈리아와 피렌체의 정치를 비판한 《로마사 논고》를 썼다.......이 책은 그가 모임에서 특히 가까이 지낸 부온델몬티와 루첼라이에게 헌정된다. - P101

현재의 답을 과거에서 찾다.
마키아벨리의 대표작으로 『군주론』을 꼽는 사람들이 많지만 『로마사 논고』를 그보다 더 중요하게 보는 이도 있다. 그가 공직에서 물러난 뒤 인문주의자들과 함께한 정원 모임을 통해 『로마사 논고』를쓰기 시작했는데, 세상에 다시 나갈 기회가 되기를 기대하며 메디치가에 바친 『군주론』 집필 작업이 끼어들었다. 하지만 메디치가는 끝내 그를 견제하며 일할 기회를 주지 않았고, 그는 죽을 때까지『로마사 논고』와 『피렌체사』 등 역사 집필에 몰두한다. 앞에 말한것처럼 피렌체 사람들은 그를 역사가로 기억하며 그가 역사를 연구하지 않았다면 『군주론』을 쓸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역사 저술이 중요하다.
마키아벨리는 공직에서 외교와 국방 업무를 맡아보며 피렌체와 이탈리아가 놓인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진단한문제는 바로 ‘무력함‘이었다. 강대국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전쟁까지 일으키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약소국은 강대국의 힘 앞에 내던져졌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알프스 북쪽의 강대국들이 이탈리아반도로 내려와 사사건건 간섭하던 시기였고, 이를 겪은 마키아벨리의 문제의식은 강한 나라를 만드는 데 있었다.
- P105

마키아벨리는 비르투스 로마나의 핵심을 양과 질의 측면에서 파악한다. 『로마사 논고』 2권 2장에서 자유와 인구 증가와 능력 계발의 관계를 언급한 대목을 한번 보자.

자유가 보장된 모든 도시와 지방 들은 세계의 어느 곳에서나 매우 커다란 번영을 누린다. 이는 무엇보다도 인구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결혼이 사람들에게 더 자유롭고 매력적인 것이 되고 각자 자신의 가산을 빼앗길 것이라는 두려움이 사라져 아이들을 기꺼이 낳아 키우기 때문이다. 또 사람들은 아이들이 노예가 아닌 자유인으로 태어난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통해 뛰어난 인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기 때문이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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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

......
"열대 지방에서 말라리아에 걸리셨겠죠?"
시어도릭이 열대 지방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실론 섬에 사는 숙부가 해마다 선물로 차를 한 상자 보내 준다는 것뿐이었기 때문에, 말라리아조차 그에게서 빠져나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태의 진상을 조금씩 그녀에게 알려 줄 수 있을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생쥐를 두려워하세요?" 얼굴이 그보다 더 빨개질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는 얼굴을 더욱 빨갛게 붉히면서 대담하게 물었다.
"하토 주교를 먹어 치운 생쥐들처럼 떼 지어 들어오지만 않으면 무섭지 않아요. 그런데 그건 왜 물으세요?"
"방금 내 옷 속을 생쥐 한 마리가 기어 다니고 있었거든요." 시어도릭은 제 목소리 같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곤란하기 이를 데없는 상황이었죠."
"꼭 끼는 옷을 입고 있다면 정말 곤란하셨겠군요."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생쥐는 오히려 편안했을지도 몰라요."
"부인이 주무시는 동안 어떻게든 생쥐를 쫓아내야 했습니다. 그가말을 이었다. 그러고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덧붙여 말했다. "나는 생쥐를 쫓아내려다가 이 꼴이 된 겁니다."
생쥐 한 마리를 쫓아냈다고 해서 오한이 들지는 않을 텐데요." 그녀가 외쳤다. 그 경박한 태도가 시어도릭한테는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 P60

분명히 그녀는 그의 곤경을 알아차렸고, 그가 당황하여 쩔쩔매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그의 몸속에 있는 모든 피가 한 곳에 총동원되어 그의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것 같았고, 수많은 생쥐보다 더 나쁜 굴욕의 고통이 그의 영혼 위아래로 기어 다녔다. 그리고 머리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하자 완전한 공포가 굴욕감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시시각각 기차는 사람들로 붐비는 종착역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었다. 지금은 객실 구석에서 그를 빤히 지켜보는 한 쌍의 눈이그를 마비시켜 무력하게 만들고 있을 뿐이지만, 종착역에 도착하면수십 개의 눈이 그 한 쌍의 눈을 대신하여 그를 흘깃거릴 것이다. 가능성은 희박하고 절망적이지만, 한 가닥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앞으로 몇 분이 그것을 결정할 터였다. 길동무가 행복한 잠에 빠져들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가능성은 점점 사라져 갔다. 시어도릭은 이따금 그녀를 몰래 훔쳐보았지만, 깜박거리지도 않고 크게 뜬눈만 보았을 뿐이다.
"종착역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녀가 말했다.
시어도릭은 여행이 끝났음을 알리는 작고 꼴사나운 집들이 많아지는 것을 이미 알아차리고, 그와 함께 공포가 점점 커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말은 신호 같은 작용을 했다. 사냥꾼에게 쫓기는 짐승이 은신처에서 뛰쳐나와 일시적인 안전을 얻을 수 있는 다른 피난처로 미친듯이 돌진하듯, 그는 무릎덮개를 옆으로 내던지고 흩어진 옷들을 미친 듯이 주워 입었다. 그는 창밖으로 지나가는 교외의 한산한 역들을 의식했고, 목이 메어서 숨이 막히고 심장이 망치질하듯 두근거리는 감각을 의식했고, 그가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는 객실 구석의 얼음 같은 침묵을 의식했다. 마침내 옷을 다 입고 거의 착란 상태에 빠진 그가 - P61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순간, 기차가 속도를 늦추어 천천히 기어가듯 종착역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러자 여자가 말했다.
"미안하지만 나를 마차에 태워 줄 짐꾼을 불러 주실 수 없을까요?
몸도 좋지 않으신데 성가시게 해서 죄송하지만, 눈이 먼 사람은 기차역에서는 너무 무력하답니다."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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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피고인이 기소되면 변호를 받고 판결을 받아야 한다. 또 중요하게 여겨질 수 있는 다른 질문들, 즉 "어떻게 그와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왜 그 일이 일어났던가?" "왜 유대인이?" "왜 독일인들이?" "다른 나라들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동맹국들의 공통 책임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어떻게 유대인은 자신의 지도자들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에 협조할 수 있었을까?"
"왜 그들은 도살장에 가는 양처럼 자신들의 죽음을 향해 걸어갔을까?"
등과 같은 질문들은 중지되어야 한다. 
......
심판대에 오른것은 그의 행위에 대한 것이지, 유대인의 고통이나 독일 민족 또는 인류, 심지어는 반유대주의나 인종차별주의가 아니다.
- P52

피고인들이 여러 민족에 속한 사람들에 대한 범죄 때문에 기소된 뉘른베르크 재판에서는 아이히만이 거기에 없었다는 단순한 이유로 유대인의 비극은 다루어지지 않았다
뉘른베르크 재판 때 아이히만이 심판대에 있었더라면 유대인의 운명이더 큰 주목을 받았을 거라고 하우스너 씨는 과연 정말 믿었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오로지 유대인법정만이 유대인에게 정의를 실현해 줄 수 있으며, 그들의 적들을 심판하는 자리에 앉는 것은 바로 유대인이 해야 할 일이라고 그는 믿었다.
그러므로 그 범죄가 ‘유대인에게 저지른 범죄가 아니라 유대인의 몸을빌려 인류에게 저지른 과오이기 때문에, 아이히만을 국제법정에 세워야 한다는 말을 꺼내기만 해도 거의 일반적인 적대감을 불러일으키게된다. 따라서 "우리는 인종차별을 하지 않는다"는 이상한 호언장담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말은 이스라엘에서는 그렇게 이상하게 들리지않는다. 랍비의 법으로 유대인 시민권에 대한 개인 자격을 규정하는 이스라엘에서는 어떤 유대인도 비유대인과 결혼해서는 안 된다. 해외에서 이뤄진 결혼은 인정하지만, 다른 민족과의 결혼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법적으로는 사생아이며 (결혼식을 하지 않았더라도 유대인 사이에 난 자녀들은 합법적 지위를 갖는다), 어머니가 유대인이 아닌 사람은 유대인과 결혼할 수도 없고 유대인식으로 장례를 치를 수도 없다. 
......
이유야 어떻든 간에 1935년에 입법화된, 타 민족과의 결혼 및 유대인과 독일인간의 성적 교섭을 금한, 악명높은 뉘른베르크 법을 비난한 검사의 소박함에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 P54

따라서 이 재판은 결코 연극이 되지는 않았지만, 벤구리온이 처음에 염두에 두었던 쇼, 즉 그가 유대인과 이방인, 이스라엘인과 아랍인, 간단히 말해 전 세계에 가르쳐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교훈을 담은 쇼는 이루어졌다. 바로 이 쇼에서 얻은 교훈은 교훈 받을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했다. 왜 이스라엘이 피고를 납치해야 하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재판 시작 전에 벤구리온이 작성한 많은 글 에서 이 교훈들은 개괄되었다. 비유대인의 세계에 주는 교훈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100여만 명의 아기들이 단지 유대인의 아기라는 이유 때문에, 어떻게 나치스에 의해 살해되었는가를 우리는 세계 만방에 입증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 P58

 벤구리온이 속한 노동당의 기관지인 《다바르》(Deanuar)는 "유럽의 600만 유대인의 학살에 대해 나치독일만 책임 있는 것이 아님을 세계 여론으로 하여금 알게 하려는 것이다"고 표현했다. 벤구리온 자신의 말로 하자면, "우리는 세계만방이.….. 알기를 원하며, 그들은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외지의 유대인은 정신적 업적과 윤리적 노력과 메시아적 염원을 가지고 4000년을 내려온 유대교를 세계가 어떻게 항상 적대적으로 대해 왔는지, 여떻게 유대인이 변질되어 양처럼 죽음을 맞이하게 될 정도가 되었는지,
그리고 이스라엘인이 독립전쟁과 수에즈 운하 사건, 그리고 불안정한 이스라엘 국경에서 거의 매일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 해왔던 것처럼 어떻게 유대인 국가의 수립이 유대인으로 하여금 반격을 가능하게 할 수 있었는지를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
홀로코스트 이후에 성장한 이스라엘의 세대는 유대 민족과의 연관성을 상실할 위험에 처해있다. 이는 그들 자신의 역사와의 연관성 상실을 의미한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유대 민족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던가를 기억해야 할 필요가있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실에 대해 그들이 알기원한다. 
......
만일 이러한 것들만이 아돌프 아이히만을 예루살렘 지방법원으로 데려온 것을 정당화하는 유일한 이유라면, 이 재판은 대체로 실패라고 할 수 있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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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르지 않고
느리게 사는 9가지 방법

1. 학생으로 계속 남아 있어라.
-배움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폭삭 늙기 시작한다.
2.과거를 자랑하지 마라.
-옛날이야기 밖에 가진 것이 없을 때 당신은 처량해진다. 삶을 사는 지혜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3.젊은 사람들과 경쟁하지 마라.
-대신 그들의 성장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용기를 주며, 그들과 함께 즐겨라.
4.부탁받지 않은 충고는 굳이 하려고 하지 마라.
-괜한 기우와 잔소리로 오해받는다.
5.삶을 철학으로 대체하지 마라.
-로미오가 한 말을 기억하라. ˝철학이 줄리엣을 만들 수 없다면, 그런 철학은 꺼져버려라.˝
6.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즐겨라.
-그림과 음악을 사랑하고, 책을 즐기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라.
7.나이든다는 것을 불평하지 마라.
-가엾어 보인다.몇 번 들어주다가 당신을 피하기 시작할 것이다.
8.젊은 사람들에게 세상을 다 넘겨주지 마라.
그들에게 다 주는 순간 당신은 천덕꾸러기가 될 것이다. 두 딸에게 배신당한 리어왕처럼. 춥고 배고픈 노년을 보내며 결국 죽게 될 것이다.
9.죽음에 대해 자주 말하지 마라.
-죽음보다 확실한 것은 없다. 인류역사상 그 어떤 예외도 없었다. 확실히 오는 것을 맞으러 갈 필요는 없다. 그때까지는 삶을 탐닉하라. 우리는 살기위해 여기 왔으므로.

-<셰익스피어가 주는 교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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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교실에서도 이 신발을 신을 수 있겠구나.
그리고 사무실에서도그리고 식료품점에서도.
그리고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서도.
이는 상당히 원대한 포부였다. 아디다스는 스탠 스미스 테니스화와 컨트리 러닝화를 통해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할 때도 운동화를 신도록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 두 종류의 신발 중에느 것도 와플형 트레이닝화만큼 특별한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나는 와플형 트례이닝화가 날개 돋친 듯 팔릴 때 청바지와 잘 어울리도록공장에 파란색 와플형 트레이닝화를 주문했다.
우리는 수요를 따라갈 수 없었다. 소매점 대표와 영업사원들은 와플형 트레이닝화를 확보하려고 난리였다. 매출이 급증하면서 우리 회사의 입지도 변했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지켜보면서 이것이 우리가 항상 부족함을 느꼈던 무엇인가정체성를 채워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장기목표를 수정했다. 이제 나이키는 누구나 아는 이름이 되어 브랜드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회사 이름을 변경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우리는 블루 리본이 자연스럽게 사라져야 할 시점이 됐다는 결론을 내리고는 나이키사Nike, Inc. 를 설립했다.
새로운 기업이 성장세를 이어가고 달러화의 가치가 떨어지는 여건속에서도 살아남으려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생산량을 늘려야 했다.
영업사원들은 우리 제품을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런상황을 오랫동안 그냥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는 일본을 벗어나 다른 지역에서 생산기지를 찾아야 했다.  - P406

단지 실망감 혹은 판매 기회를 상실했다는 아쉬움 때문만이 아니었다. 쇼터가 나이키가 아닌 다른 신발을 신고 나타나 나를 크게 실망시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나이키는 신발 이상의 것이었다. 이제 나만 나이키를 만드는 게 아니었다. 나이키도 나를 만들고있었다. 어떤 선수가 다른 신발을 선택한다면, 누군가가 다른 신발을신는다면, 이는 단지 나이키 브랜드만 거부한 게 아니라 나 역시 거부한 것이다. 물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세상 모든 사람이 나이키를 신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나이키가 아닌 다른 운동화를 신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화를 내서는 안된다. 그러나 쇼터가 타이거를 신고 나타나 나를 실망시킨 것은 확실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날 밤 나는 홀리스터에게 전화했다. 그도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다. 그는 원색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홀리스터가 그처럼 화를내는 모습을 보면서 은근히 기뻤다. 나이키 직원이라면 당연히 나처럼분노가 복받쳐 올랐을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처럼 분노를 자아내게 하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1976회계연도가 끝날 무렵, 우리의 매출은 1400만 달러로 전년에 비해 두배 증가했다. - P422

우델은 기차가 항상 정시에 떠나도록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기차가 달릴 철로를 까는 사람은 바로 헤이즈였다. 헤이즈는 심오한 회계 시스템을 개발했는데, 우리 회사는 그것 없이 돌아갈 수 없었다. 우리가 수동 회계 시스템에서 자동 회계 시스템으로 넘어갈 때 헤이즈는 원시적인 기계를 가져와 여기저기를 고치고 커다란 주먹으로 어설프게 두들기더니 신비할 만큼 정확한 기계로 바꾸어놓았다. 우리가 미국 밖에서 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 환율이 심하게 요동쳤다. 이때 헤이즈는 독창적인 외환 헤징 시스템을 구축해 마진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게 했다. - P425


비록 우리가 야단법석을 떨고 온갖 기행을 다 저지르고 신체적으로도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나는 우리가 막강한 팀이라고 생각했다. 몇 년 뒤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가르치는 어느 저명한 교수도 나이키를 연구하고는 나하고 똑같은 결론을 내렸다. "일반적으로 한 사람이 한 회사를 책임질 때 사업을 전락적, 전술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회사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그러나 나이키는 운이 좋았다. 버트페이스는 사업을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게 했다!".
사람들이 보기에 우리는 대책 없는 오합지졸 같았을 것이다. 우리는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았고, 목표를 향해 한 마음, 한뜻이 되었다. 우리 중 대다수가 오리건 출신이었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 시골뜨기 혹은 잡초 부스러기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사명을 띠고 세상에 태어났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심하게 혐오한 나머지, 자아를 억눌러야 했다. 우리는 가장 똑똑한 사람을 따로 두지 않았다. 헤이즈, 스트라세, 우델, 존슨은 어디를 가더라도 가장 똑똑한 사람이 될 수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이 가장 똑똑하다거나 그다음으로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로 우리의 버트페이스에서는 모욕과 학대가 난무했다.
정말이지 학대 그 자체였다. 우리는 서로에게 끔찍한 별명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말로 아주 작살을 냈다. 사업 아이디어 혹은 회사가 직면한 위협에 관해 토론할 때, 우리는 상대방의 감정 따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특히 나한테는 더욱 그랬다. 
- P426

그날 날씨는 너무나도 화창했다. 사무실 바깥의 햇빛은 얻은 노란색이었고, 하늘은 몇 달 만에 처음으로 푸른색이었다. 루디가 회의실에 앉아 미소 지을 때 나는 마음이 산란해지고 봄날의 나른함을 느꼈다.
그는 다짜고짜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러닝화에 공기를 주입하는 방법을 고안해냈습니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고 연필에서 손을 떼고는 물었다. "왜 공기를 주입하죠?"
"쿠션을 강화하기 위해서입니다. 발을 더 많이 지탱해주기 위한 것이죠. 인생의 여정을 위한 것이라고나 할까요?"
"지금 저한테 농담하시는 거죠?"
신발업계에는 온갖 종류의 멍청이가 있다는 이야기는 여러 번 들었다. 드디어 말로만 듣던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루디는 22세기의 누군가가 염력으로 전해준 듯한 밑창을 건넸다. 그것은 쓸데없이 크고 투박하게 생긴 데다. 투명하고도 두꺼운 플라스틱 안에 거품처럼 보이는것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돌려주면서 물었다. "이게 거품입니까?"
"압축 에어백입니다."
나는 밑창을 내려놓고는 루다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찬찬히 훑어보았다. 6피트 3인치 190 센티미터에 피골이 상접한 몸매, 볼품없이 헝클어진 검은 머리, 두툼한 안경알, 웃을 때 입 한쪽이 처지는 모습을 보니, 비타민 D가 심각하게 결핍된 것 같았다. 햇볕을 충분히 쬐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애덤스 패밀리 미국 만화가, 찰스 애덤스가 만들어낸 가공의캐릭터 옮긴이의 오래전에 잃어버린 자손인지도 모른다.
- P435

나는 스트라세와 함께 어떤 제품은 잘 팔리고 어떤 제품은 잘 발리지 않는 이유를 가지고 여러 날에 걸쳐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우리는 사람들이 나이키에 대해 무엇을 생각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하는 더욱 광범위한 주제로 논의하게 됐다. 우리는 포커스 그룹이나 시장 조사팀이 따로 없었다. 그런 그룹이나 팀을 둘 만한 형편이 안됐다. 우리는 주로 직관이나 심지어 점괘에 의지했다. 사람들은 틀림없이 나이키의 디자인을 좋아한다. 이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했다.
사람들은 틀림없이 나이키의 스토리도 좋아한다. 나이키는 오리건의육상 괴짜들이 만든 회사다. 사람들은 틀림없이 자신이 나이키를 신는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를 좋아한다. 나이키는 브랜드 이상의 의미를지녔다. 나이키는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나이키는 할리우드에서도 명성을 떨쳤다. 우리는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크고 작은 스타. 떠오르는 스타, 사라지는 스타 등 온갖 종류의 스타를 대상으로 판촉 활동을 펼치기 위해 영업사원을 보냈다. 텔레비전을 켤 때마다 스타스키와 허치>, (600만 불의 사나이>, <두 얼굴의 사나이 같은 인기 시리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나이키를 신고나왔다. 할리우드를 담당한 우리 영업사원들은 〈미녀 삼총사의 여주인공 파라 포셋이 세뇨리타 코르테즈를 신고 나오게 만들었다. 이는세뇨리타 코르테즈의 인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나이키를 신은 파라의 모습이 텔레비전에 잠깐 비치면, 미국 전역의 나이키 소매점에서는 세뇨리타 코르테즈가 다음날 오전까지 완전히 매진되곤.했다. - P444

당시 우리가 주로 고용하던 운동선수들과는 정반대 인물이었다. 나이키에는 존슨과 나 이외에도 앉아서 일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브라운이 운동선수 출신이든 그렇지 않든, 이와 상관없이 그는 나이키의 철학을 완벽하게 전달하는 캠페인과 슬로건을 생각해냈다. 그가 만든 광고에는 미송- Dauglas fir, 미국 서부산 커다란 소나무 -으로 둘러싸인시골길을 혼자서 외롭게 달리는 육상 선수가 등장한다. 확실히 오리건을 상징하는 것이다. 광고 카피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다른 사람을이기는 것은 비교적 쉽다. 나 자신을 이기는 것은 끝없는 헌신을 요구한다."
사람들은 이 광고가 대담하고 신선하다고 했다. 이 광고는 제품 자체가 아니라 제품의 이면에 있는 정신에 집중했다. 이런 접근 방식은1970년대에는 결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우리가 이 광고를 통해 세상을 뒤흔들 만한 것을 얻기라도 한 것처럼 나에게 축하의 말을 전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가 겸손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광고의 힘을 믿지 않았다. 사실 전혀 믿지 않았다. 나는제품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설명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품질이다. 나는 광고가 나의 선택이 잘못됐음을 입증하거나 나의 마음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물론 우리 에이전시 사람들은 내 생각이 1000퍼센트 잘못됐다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고객들이 당신이만든 광고 때문에 나이키를 구매한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까?
그것을 나한테 수치로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습니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아니, 그들은 "우리는 확실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한 셈이다. - P446


돈이 굴러 들어오면서, 돈은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우리 중 어느 누구도 돈만 추구하는 삶을 살지는 않았기 때문에 돈이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고,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지도 않았다. 그러나 돈에는 다음과 같은 본질이 있었다. 많든 적든, 좋아하든 그렇지않든 돈은 당신의 일상을 정의한다. 우리의 과제는 돈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 P538

이제 나이키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나이키에 관해 이야기 하지만, 실제로는 기껏해야 사실의 일부만 전할 뿐이다. 나이키의 정신에 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나는 주로 유감스러운 심정으로 나이키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거나 끝맺곤 했다. 나는 잘못된 판단을 수백 아니 수천 번 했다. 매직 존슨이 포지션이 따로 없는 선수라서 NBA에서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던 사람이 바로 나다. 리안 리프가 페이튼 매닝보다 더 뛰어난 NEL 쿼터백이 될 것이라고 말했던 사람도 바로 나다.
이런 이야기는 유감스럽기는 하지만 그냥 웃어넘기면 그만이다. 하지만 심각하게 유감스러운 것도 많다. 나는 히라쿠 이와노가 직장을 그만두고 난 뒤 전화하지 않았다. 1996년에 보 잭슨과의 계약을 갱신하지 않았다. 조 패터노 감독-펜실베이니아대학교 미식축구의 전설적인 명감독이다. 그러나 부하 코치였던 제리 샌더스키가 소년들을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됐을 때,
대학 측과 패터노 감독이 샌더스키의 성추행 사실을 알고도 눈감아준 사실이 밝혀지자 불명예 퇴진했다. 이후 필 나이트는 자신이 설립한 보육원에서 패터노 감독의 이름을 빼버렸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있다.
나는 직원들을 정리해고할 수밖에 없었던 나쁜 경영자였다. 10년 동안 세 번이나 정리해고를 실시해 총 1500명을 내보냈다. 이 일은 지금도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 P541

기업가는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한마디로 사기꾼이다. 기업가는 때로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때로는 포기해야 할 때를 알고, 다른 것을 추구해야 할 때를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포기는 중단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업가는 결코 중단해서는 안된다.
성공에는 행운도 큰 역할을 한다. 그렇다. 나는 행운의 위력을 공개적으로 인정한다. 운동선수, 시인, 기업가에게는 행운이 따라야 한다.
열심히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서 훌륭한 팀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고, 머리도 좋아야 하고, 결단력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행운이 결과를 결정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이를 두고 행운이라고 부르지 않고, 도道, 로고스Logos, 즈냐나 Jina, 다르마 Dharma, 정신,
신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하자면, 당신이 열심히 노력할수록, 당신의도는 더욱 좋아진다. 어느 누구도 이런 도를 정확하게 정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나는 정기적으로 도를 쌓으려고 노력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 자신에게 믿음을 가져라. 이런 믿음에 대해서도 믿음을 가져라.
믿음은 다른사람이 아닌 당신이 정의하는 믿음이어야 한다. 믿음 그 자체는 당신의 마음 속에서 정의된다. - P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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