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쥐

......
"열대 지방에서 말라리아에 걸리셨겠죠?"
시어도릭이 열대 지방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실론 섬에 사는 숙부가 해마다 선물로 차를 한 상자 보내 준다는 것뿐이었기 때문에, 말라리아조차 그에게서 빠져나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태의 진상을 조금씩 그녀에게 알려 줄 수 있을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생쥐를 두려워하세요?" 얼굴이 그보다 더 빨개질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는 얼굴을 더욱 빨갛게 붉히면서 대담하게 물었다.
"하토 주교를 먹어 치운 생쥐들처럼 떼 지어 들어오지만 않으면 무섭지 않아요. 그런데 그건 왜 물으세요?"
"방금 내 옷 속을 생쥐 한 마리가 기어 다니고 있었거든요." 시어도릭은 제 목소리 같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곤란하기 이를 데없는 상황이었죠."
"꼭 끼는 옷을 입고 있다면 정말 곤란하셨겠군요."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생쥐는 오히려 편안했을지도 몰라요."
"부인이 주무시는 동안 어떻게든 생쥐를 쫓아내야 했습니다. 그가말을 이었다. 그러고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덧붙여 말했다. "나는 생쥐를 쫓아내려다가 이 꼴이 된 겁니다."
생쥐 한 마리를 쫓아냈다고 해서 오한이 들지는 않을 텐데요." 그녀가 외쳤다. 그 경박한 태도가 시어도릭한테는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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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그녀는 그의 곤경을 알아차렸고, 그가 당황하여 쩔쩔매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그의 몸속에 있는 모든 피가 한 곳에 총동원되어 그의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것 같았고, 수많은 생쥐보다 더 나쁜 굴욕의 고통이 그의 영혼 위아래로 기어 다녔다. 그리고 머리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하자 완전한 공포가 굴욕감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시시각각 기차는 사람들로 붐비는 종착역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었다. 지금은 객실 구석에서 그를 빤히 지켜보는 한 쌍의 눈이그를 마비시켜 무력하게 만들고 있을 뿐이지만, 종착역에 도착하면수십 개의 눈이 그 한 쌍의 눈을 대신하여 그를 흘깃거릴 것이다. 가능성은 희박하고 절망적이지만, 한 가닥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앞으로 몇 분이 그것을 결정할 터였다. 길동무가 행복한 잠에 빠져들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가능성은 점점 사라져 갔다. 시어도릭은 이따금 그녀를 몰래 훔쳐보았지만, 깜박거리지도 않고 크게 뜬눈만 보았을 뿐이다.
"종착역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녀가 말했다.
시어도릭은 여행이 끝났음을 알리는 작고 꼴사나운 집들이 많아지는 것을 이미 알아차리고, 그와 함께 공포가 점점 커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말은 신호 같은 작용을 했다. 사냥꾼에게 쫓기는 짐승이 은신처에서 뛰쳐나와 일시적인 안전을 얻을 수 있는 다른 피난처로 미친듯이 돌진하듯, 그는 무릎덮개를 옆으로 내던지고 흩어진 옷들을 미친 듯이 주워 입었다. 그는 창밖으로 지나가는 교외의 한산한 역들을 의식했고, 목이 메어서 숨이 막히고 심장이 망치질하듯 두근거리는 감각을 의식했고, 그가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는 객실 구석의 얼음 같은 침묵을 의식했다. 마침내 옷을 다 입고 거의 착란 상태에 빠진 그가 - P61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순간, 기차가 속도를 늦추어 천천히 기어가듯 종착역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러자 여자가 말했다.
"미안하지만 나를 마차에 태워 줄 짐꾼을 불러 주실 수 없을까요?
몸도 좋지 않으신데 성가시게 해서 죄송하지만, 눈이 먼 사람은 기차역에서는 너무 무력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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