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유대인으로부터 1931 ~ 32년도와 비교해 3배나 더 많은 기부금을1935~36년도에 모았다.) 이것이 반드시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으로 이민가고 싶어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오히려 자존심의 문제였다. 《유대인 룬트샤 우》의 편집장 로베르트 벨치가 고안하여 그당시 가장 유행한 슬로건, 자부심을 갖고 착용하라, 노란별을!‘은 당시의 일반적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1933년 4월 1일의 ‘불매일 (유대인이 하얀 바탕에 6각별 배지를 착용하도록 강요당하기 무려 6년 전)에맞서서 만들어진 이 슬로건이 담고 있는 논쟁의 초점은 ‘동화주의자를과, 새로운 혁명적 발전‘에 합류하기를 거부한 사람들, 즉 ‘언제나 시대에 뒤처진 사람들 (die ewig Gestrigen)을 겨냥했다. 독일에서 온 증인들은 상당히 흥분된 채 이 슬로건을 법정에서 상기했다. 매우 탁월한 언론인 로베르트 벨치는, 당시 장래에 일어날 일들을 예측할 수 있었다면 절대로 그 슬로건을 발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최근에 말한 점을 그 증인들은 잊어버리고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구호와 이데올로기 논쟁과는 완전히 별개로, 오직 시온주의자들만이 독일 당국과 협상할 기회를 가졌던 것은 그 몇 년 동안 평범한 사실이었다. 독일 당국이 유대인에 대해 주된 상대자로 삼았던 유대 신앙 독일시민중앙연합은 당시 95퍼센트의 조직된 독일계 유대인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자신의 회칙에 ‘반유대주의에 대항해 투쟁하는 것‘을 주요 임무라고 명시한 것이 바로 그 이유였다. 그 단체는 정의상 갑자기 국가에 적대적인 조직이 되어버렸고, 만약 그들이 감히 그임무를 실제로 수행하려 했다면 박해받았을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 몇 년 동안 히틀러의 정권 장악이 시온주의자들에게는 주로 ‘동화주의의 결정적인 패배로 보였다. 따라서 시온주의자들은 적어도 한동안 나치 당국과 어느 정도 범죄가 아닌 일에 협조할 수 있었다. - P119

아이히만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시온주의자들이나 팔레스타인 담당유대인 기관의 명령을 받지 않고 스스로 게슈타포나 친위대와 접촉하곤 하는 팔레스타인 밀사들이었다. 그들은 영국령의 팔레스타인으로 유대인의 불법 이민을 도와주려고 왔는데 게슈타포와 친위대가 이를모두 도와주었다. 
- P120

빈에서의 일어난 아이히만의 인격 변화에 대해 어떠한 의구심이 있든지 간에, 이 직책에로의 임명이 그의 출세의 진정한 시작을 의미한다.
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1937년과 1941년 사이에 그는 4번 승진했다. 14개월도 채 되지 않아 그는 하급중대 지휘관에서 최고중대 지휘관으로 승진했고, 1년 반뒤에 그는 상급대대 지휘관이 되었다. - P125

폴란드 정부가 먼저 이 꿈을 꾸었는데, 1937년에 많은 공을 들여 이 아이디어를 검토했지만 거의 300만 명이나 되는 유대인을 죽이지 않고 그곳으로 배로 운송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프랑스 외무장관 조르주 보네가 그 꿈을 꾸었는데, 그는 프랑스 거주 외국인 유대인 20만 명을 프랑스 식민지로 수송하는 다소 온건한 계획을 수립했다. 그는 1938년에 이 문제를 놓고 독일 측 상대인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와 상담하기도 했다. 여하튼 아이히만은 1940년 여름 그의 이주사업이 완전히 중지되었을 때 400만의 유대인을 마다가스카르로 소개하는 세부계획을 수립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이 기획을 위해 그 다음해 러시아 침공이 시작될 때까지의 대부분의 시간을소비한 것 같다. (400만은 유럽을 유대인이 없는 지역으로 만들기에는 턱없는 숫자이다. 여기에는 분명히 300만의 폴란드계 유대인은 포함되지 않았을 것인데 이들은 누구나 다 알듯이 전쟁이 발발한 첫날부터 학살되었다.) 아이히만과 그보다는 덜 광신적인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어느 누구도 이 모든 일을 처음부터 진지하게 다루지는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그곳이 프랑스령이라는 사실은 물론이고 그 지역이 사람 살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이 계획에는 전시이자 영국 해군이 대서양을 장악하고 있었던 시기에 400만 인구를 수송할 선적 공간이 요구되기 때문이었다. 마다가스카르 계획은 항상 모든 서유럽 유대인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일을 준비하는외투로 사용하려는 의도에서 수립되었다. (폴란드 유대인을 몰살시키는 데는 이러한 외투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 P139

이러한 계산이 이루어진 것은 다양한 살상 설비들의 ‘수용능력‘에 따른 것이었고, 또 일부 죽음의수용소들 인근에 지사를 차려놓고 노예 노동자들을 이용하여 이익을 보려는 수많은 기업체들의 노동력에 대한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친위대가 운영하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산업체들 외에도 파르벤(I. G.
Farben), 크루프 베르케(Krupp Werke), 지멘스-슈케르트 베르케(Siemens-Schuckert Werke)와 같은 유명한 독일 회사들이 루블린의 죽음의 수용소 인근과 아우슈비츠 내부에 공장을 세웠다. 친위대와 사업가들 사이에는 탁월한 협조가 이루어졌다. 아우슈비츠의 회스는 파르벤의 대표들과 아주 진실한 마음으로 이루어진 사회적 관계에 대해 증언했다. 노동 조건을 고려해 보면 분명히 노동을 통한 살인을 생각했음이 분명했다. 힐베르크에 따르면 파르벤 소속 공장 한 곳에서 일한 대략 3만 5000명의 유대인 가운데 적어도 2만 5000명이 사망했다.) 아이히만이 관계된 한에서 볼 때 초점이 되는 것은 이동과 운송이 더 이상 최종단계의 해결책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의 부서는 단지 도구 역할을 했을 뿐이다. 따라서 마다가스카르 계획이 보류되었을때 아주 격분하고 실망할 좋은 이유가 된 셈이다. 그리고 위로를 받은 유일한 일은 1941년 10월에 있었던 상급대대 지휘관으로의 승진이었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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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전소설의 요괴는 민간 전래 요괴와는 많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외양 묘사가 구체적인 경우가 있는가 하면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합니다. 저지르는 악행도 천차만별일 뿐만 아니라 최후를 맞는 모습도 독특합니다. 주변 인물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이야기를 이끄는 주요 캐릭터로서 살아 숨쉬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고전소설의 요괴는 인간과 같은 욕망을 가집니다. 식욕 같은 원초적 욕망에서부터, 재물을 갖고픈 욕망, 사랑받고 싶은욕망, 명예를 누리고 싶은 욕망, 자신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고차원적 욕망까지 지닙니다. 또한 그 욕망에 오롯이 집중합니다.
- P4


이처럼 <전우치전>에 등장하는 여우 요괴 두 마리는 성욕에 사로잡혀 소중한 보물을 빼앗겨 버린 어리석은 존재다. 또 본의 아니게 인간에게 요술을 전수해 준 딱한 요괴이기도 하다. <전우치전>뿐만 아니라 고전소설에 등장하는 여우 요괴는 성욕이 특히 강하다. 현대물에서 인간이나 가축의 간을 먹는 여우의 모습이 많이 부각되지만, 이러한 여우는 고전소설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인간의 피와 살을 먹고 배를 채우는 여우보다는 구슬을 통해 남성 혹은 여성의 정기를 흡입하거나, 직접적인 성관계를 통해 정기를 얻는 여우가 더 많은 것이다.
......그러나 요괴는 타고난 습성과 성품을 길들이기 매우 어렵다. - P25

여우 구슬과천서

한국의 구비설화에는 여우 구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있다. 대략적인내용은 여자로 변신한 여우 입속의 구슬을 남자가 삼킨 후에 특별한 능력을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볼 때, 여우 구슬은 하늘과 땅의 이치를 터득하게 하는 신묘한 물건이다. 그렇기에 전우치전>의 전우치도 여우 구슬을 삼킨 후 천리와 지리에 모두 등통하게 된 것이다.
중국 문헌에 나타난 여우 구슬은 그 효능이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중국의 설화집인 《태평광기(太平廣記)》에서는 여우 구슬이 온 세상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만드는 물건으로 나타난다. 당나라 사람인 유중애는 그물로여우를 잡아 바둑알처럼 둥글고 맑은 여우 구슬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는데, 그 이후로 아버지가 어머니를 매우 애지중지했다. 여우 구슬이 인간 사이의 사랑의 감정을 조절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여우의 천서는 어떠할까. 한국 구비설화에는 남자가 여자로 변신한 여우에게서 천서를 얻어 내용의 일부를 익히던 중, 여우가 천서를 되찾아가는 이야기가 나타난다.  - P27


이와 비슷하게 중국의 태평광기에도 여우의 천서 이야기가 전한다. 당나라의 도사 손증생이 여우 소굴에서 천서를 빼앗아 왔는데, 여우 무리가 찾아와 한 부를 필사하도록 허락해 줄 테니 전서만은 돌려달라고 한다. 이에 손증생은 여우에게 천서를 읽는 비법을 전수받고, 사본 한 부만을 간직한다. 그리고 그 시대 최고의 술사(術士)가 되는데, 황제인 현종에게까지 끝내 천서를
보여주지 않다가 처형당하고 만다. 비슷한 다른 이야기들에서도 여우의 천서를 익힌 주인공들이 사형을 당하거나 여우에게 화를 당하는 비극적 결말이보인다.
인간이 알아볼 수 없는 문자로 적힌 천서에는 대체 어떤 내용들이 담겨있었을까? 한국 설화에서는 주로 몸의 형체를 바꾸는 둔갑술을 배우게 되었다고 나온다. 그리고 천서의 마지막 장에 쓰인, 옷고름을 숨기는 방법까지 채 익히지 못해 완벽하게 둔갑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둔갑해서 몸을 숨겨도 옷고름만은 보여서 결국 들키고 마는 것이다. 또한 천서를 통해 재물을마음대로 가질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편 중국 설화에서는 천서를 통해 음양의 이치를 통달하고 앞날을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으로 나온다. 이러한 도술은 얼마든지 착한일에 쓰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설화 속 주인공들은 그 도술을 마구잡이로 사용하다가 화를 당하곤 한다. 이는 천서가 애초부터 요괴인 여우의 책이고, 그 책에는 악한 일에 쓰는 삿된 요술이 기록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요괴의 책일지라도 인간의 것으로 승화시켜 선한 데 쓸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경우는 찾아볼 수가 없다. 아마도 요괴의 강력한 요술에 빠지면 인간이 마음대로 절제하기 어려워서일 것이다. 
- P28

여우 꼬리의 개수

여우가 등장하는 고전소설 33편을 살펴보면 무려 18편의 작품에 꼬리아홉 달린 여우가 등장한다. 나머지 15편의 작품 속 여우는 꼬리가 1개, 3개,
5개, 7개로 다양하다. 이처럼 꼬리  아홉 달린 여우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의 신화 - 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에는 ‘청구산(靑丘山) 혹은 청구국(靑)에 꼬리 아홉 달린 여우가 산다‘는 기록이 세 군데나 발견된다.
동쪽으로 3백 리를 가면 청구산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의 어떤 짐승은 생김새가 여우 같은데 아홉 개의 꼬리가 있으며, 그 소리는 마치 어린애 같고 사람을 잘 잡아먹는다."
"청구국이 그 북쪽에 있는데 그곳의 여우는  네 개의 발과 아홉개의 꼬리를 지니고 있다."
"청구국이 있는데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가 산다."
‘청구(靑丘)‘라는 지명은 오래전부터 중국에서 동방, 곧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구미호가 산다고 언급한 실증적인 근거를 찾을 수는 없지만, 예전부터 우리나라와 구미호 사이에 깊은 연결고리가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고전소설에서 여우 꼬리의 개수와 여우의 능력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이하다.
......
우리는 숫자 9를 완성과 성취의 의미를 담은 최고의 수로 여기곤 한다. - P41

의외로 보기 드문 먹보 요괴

(삼문취록)의 멧돼지처럼 본체가 돼지인 요괴는 다른 작품에도나온다. (금방울) , 〈이수문전〉, (최고운전)에는 금돼지가 등장하고, (김윤전), 〈명주보월빙〉, 〈조씨삼대록)에는 멧돼지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들 여섯 작품의 돼지 요괴는 (삼문취록)의 멧돼지처럼 잡식성이 아니다. 대부분 무언가 먹는 모습은 나오지 않고, 여인 납치나 인간을 괴롭히는 다른 악행을 벌이는 데 집중한다. 예외적으로 (김윤전)의 멧돼지가 머리 다섯 달린 귀신으로 변신해 행인을 잡아먹기는 하지만, <삼문취록>의 멧돼지처럼 인간의 음식까지 가리지않고 먹지는 않는다. 한편 돼지 이외의 다른 요괴에게도 잡식성은 나타나지 않는다. 가장 흔하고 많을 것 같은 먹성 좋은 요괴가 삼문취록 단 한 작품에만 나오는 것이다.
흔히 요괴라면 당연히 인간의 장기나 혈육, 정기를 먹는다고만생각하기 쉽다. 물론 요괴가 가장 많이 먹는 것은 인간이다.  - P53

다만 몇몇 작품에서 인간에게 제사 음식을 풍성히 차리도록 요구하는 요괴를 발견할 수 있다. (보은기우록)의 백룡, (삼강명행록)의 교통, (명주보월빙)의 야차 등은 제사 음식을 바치지 않으면 괴롭히겠다고 백성들을 위협한다. 그런데 막상 제사 음식을 먹는 모습은 직접 드러나지 않는다. 배를 채우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제사 음식을 차려 제를 올리고 공경하는 대접을 받고 싶었던 듯하다. 식욕보다 존중의 욕구를 더 중시한 요괴인 것이다. 그러한 다른 요괴들과 비교해 봤을 때, 〈삼문취록>의 멧돼지는그야말로 식욕의 화신이라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 P54

한편으로 올출비채는 고전소설에 등장하는 여성 요괴들과 비교해 볼 수 있다. 인간 여성으로 변신하는 요괴들을 살펴보면 양반집의 처녀나 유부녀로 변신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그렇기에 남성에게 인생이 좌지우지되는 인간 여성의 모습을 흉내 내며 살아간다.
어찌 보면 틀에 박힌 여성 캐릭터인 것이다. 이와 비교해 볼 때, 올출비채는 참으로 신선하면서도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남편을 때려눕히는 것도 모자라 지극히 어려워해야 했을 관계인 도련님들에게까지 호통을 치며 꾸짖으니,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여성 가장이다.
물론 올출비채와 같은 참신한 캐릭터는 ‘인간‘이라는 제약이 없었기에 가능했겠지만 말이다.


《삼강명행록》은  중국 명나라의 실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정씨 가문의 주요 인물인 정흡, 사씨, 정철의 여정을 보여준다. 작품의 제목은 ‘유교의 세 가지 강령인 충·효·열이라는 밝은 행실에 대해 적은 기록‘이라는 뜻이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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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22-02-26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읽고 갑니다.
 

"내가 아닌 것이 되는 게 좋아요?"
"다시 원래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걸 안다면, "
"원래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적은 없어요?"
가후쿠는 잠시 생각했다. 그런 질문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도로는 정체되고 있었다. 그들은 수도고속도로에서 다케바시 출구로 향하는 참이었다.
"그런다고 달리 돌아갈 데도 없잖아." 가후쿠는 말했다.
미사키는 그 말에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가후쿠는 쓰고 있던 야구모자를 벗어 모양새를 점검하고 다시 썼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타이어가 달린 대형 트레일러 옆에서 노란색 사브 컨버터블은 그야말로 보잘것없어 보였다. 마치 거대한 유조선 옆에 떠 있는 관광용 소형 보트 같다.
"괜한 소리인지도 모르지만." 미사키가 조금 뒤에 말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요?"
"좋아." 가후쿠는 말했다.
"가후쿠 씨는 왜 친구를 안 만들죠?"
가후쿠는 미사키의 옆얼굴에 호기심 어린 눈빛을 던졌다. "내가 친구가 없다는 걸 어떻게 알지?"
미사키는 살짝 어깨를 움츠렸다. "두 달 가까이 날마다 차로 모시다보면 그 정도는 알죠."

- 드라이브 마이 카 - P32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다는 건, 특히 남자와 여자가 관계를 맺는다는 건, 뭐랄까, 보다 총체적인 문제야. 더 애매하고, 더 제멋대로고, 더 서글픈 거야."

-드라이브 마이카  - P37

 하지만 아무리 잘안다고 생각한 사람이라도,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타인의 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본다는 건 불가능한 얘깁니다. 그런 걸 바란다면 자기만 더 괴로워질 뿐이겠죠. 하지만 나 자신의 마음이라면,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분명하게 들여다보일 겁니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나 자신의 마음과 솔직하게 타협하는 것 아닐까요? 진정으로 타인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나 자신을 깊숙이 정면으로 응시하는 수밖에 없어요.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 드라이브 마이카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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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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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 스타킹 한 켤레
- 케이트 쇼팽

어느 날 소머스 부인은 예상치 못했던 15달러를 손에 넣었다.
그녀에게는 무척 큰돈처럼 느껴졌고, 낡고 오래된 지갑이 지폐로 불룩해지자 그녀는 중요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는데, 그녀로서는 오랫동안 느끼지 못한 기분이었다.
그녀는 이 돈을 어디에 쓸지 무척 고민했다. 하루 이틀 그녀는 꿈을 꾸듯 움직였지만, 사실 머릿속으로는 돈을 어떻게 투자할지 골몰히 계산하고 있었다. 그녀는 성급하게 행동해서 나중에 후회하고싶지 않았다. 하지만 신중하고 적절하게 돈을 쓸 방법이 선명히 떠오른 것은 사위가 조용한 한밤중에 그녀가 뜬눈으로 누워 이런저런계획을 머릿속에서 굴리고 있을 때였다.
재니에게 평소보다 1~2달러 정도 더 비싼 신발을 사주면 좀 더오래 신을 수 있을 터였다. 재니와 맥과 아들들의 셔츠를 만들 무명원단을 몇 미터 살 것이다. 원래는 지금 입고 있는 옷을 감쪽같이 수선해서 계속 입힐 요량이었다. 맥은 드레스가 한 벌 더 필요했다. 그녀는 제대로 할인하는 예쁜 무늬 옷감을 상점 진열창 너머로 본 적있었다. 그러고 나서도 한 상자에 두 켤레가 든 새 스타킹을 살 돈이 남을 것이다. - P93

그러면 바느질할 시간을 얼마나 아낄 수 있을까! 아들들에게는 야구 모자를, 딸들에게는 세일러 모자를 사줄 것이다.
난생처음으로 새 옷을 입고 단정하고 예뻐 보일 아이들을 떠올리자 그녀는 신이 나고 초조해졌으며 설레어서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이따금 이웃들은 그 옛날 ‘좋았던 시절‘에 대해 이야기했다. 소머스 부인이 자기가 소머스 부인이 되리라는 걸 알기도 전이었다.
그녀는 그런 우울한 회상에 빠지지 않았다. 그럴 시간이 없었다. 과거에 할애할 시간은 1초도 없었다. 당장 눈앞에 있는 일을 하기도 바빴다. 이따금 미래가 어떤 흐릿하고 수척한 괴물처럼 두렵게 느껴졌지만, 다행히도 내일은 절대 오지 않는다.
소머스 부인은 할인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헐값에 파는 물건에 조금씩 가까워지기 위해 몇 시간이고 서 있을 수 있었다. 필요하면 팔꿈치로 사람들을 밀칠 수도 있었고, 언젠가 그녀가 계산할 차례가 올 때까지 물건을 꽉 붙잡고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날 그녀는 피곤하고 조금 어지러웠다. 그녀는 빈약한 점심을 허겁지겁 먹었고 아니! 생각해 보니, 그녀는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고 집을 청소하고 장을 보러 나갈 준비를 하다가 점심 먹는것 자체를 잊어버렸다!
비교적 한산한 카운터 앞의 스툴에 앉은 그녀는 셔츠 안감과 무늬 있는 한랭사 더미를 포위하고 있는 드센 무리를 뚫고 들어갈 용기와 힘을 짜내려고 애썼다. 팔다리에 힘이 쭉 빠졌고, 그녀는 카운터에 아무렇게나 올려놓았다. - P94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이었다.
점차 그녀는 손끝 아래 부드럽고 기분 좋은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했다. 손 아래 실크 스타킹이 한 무더기 쌓여 있었다. 근처에 놓인 가격표가 스타킹 가격이 2달러 50센트에서 1달러 98세트로 할인 중이라고 알렸다. 카운터 뒤쪽에 있던 소녀가 실크 스타킹을 보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녀는 누가 그녀에게 다이아몬드 왕관을 구매할 생각으로 한번 살펴보겠느냐고 묻기라도 한 것처럼 웃었다. 하지만 그녀는 보들보들하고 은은히 빛나며 고급스러운 스타킹을 계속 어루만졌고, 이제는 두 손으로 집어서 스타킹의 광택을 살피고 뱀처럼 손가락 사이를 쓸고 내려가는 감촉을 느꼈다.
그녀의 창백한 두 뺨에 불현듯 홍조가 떠올랐다. 그녀는 소녀를 쳐다봤다.
"8 1/2 사이즈가 있을까요?"
8 1/2 사이즈는 아주 많았다. 사실, 그 사이즈가 가장 많았다.
여기 하늘색이 한 켤레, 저기에는 라벤더색, 검은색도 있었고 짙고 연함이 다양한 갈색과 회색이 있었다. 소머스 부인은 검은 스타킹을 들고 아주 오랫동안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녀가 질감을 확인하는 척하자 점원이 품질이 우수하다고 보증했다.
"1달러 98센트라고요." 그녀는 소리 내어 생각했다."음, 그럼 한 켤레 주세요." 그녀는 점원에게 5달러짜리 지폐를 주고 잔돈과 봉지를 기다렸다. 얼마나 자그마한 봉지인지! 그녀의 낡고 헤진 장바구니에 넣자 사라진 것만 같았다 . - P95

그러고 나서 소머스 부인은 할인 코너 쪽으로 가지 않았다.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여성용 탈의실이 있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조용하고 사람이 없는 구석으로 간 그녀는 입고 있던 면 스타킹을벗고 실크 스타킹으로 갈아신었다. 그녀는 어떤 뚜렷한 생각을 하거나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지 않았고, 자기 행동의 동기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 순간 그녀는 피곤하고 고달픈 기능을 잠시 멈추고, 그녀의 행동을 지휘하고 책임감에서 놓아주는 어떤 자동적인 충동에 자신을 맡기고 있었다.
야들야들한 실크가 살에 닿는 느낌이 어찌나 좋은지! 그녀는 쿠션이 깔린 의자에 누워 여유로운 기분을 잠시 즐기고 싶었다. 그녀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리고 그녀는 면 스타킹을 돌돌 말아서 가방에 넣고 다시 신발을 신었다. 그녀는 곧바로 신발 가게에 가서 신발을 신어 보는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깐깐했다. 점원은 그녀가 뭘 원하는지 도통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그는 그녀의 스타킹에 어울리는 신발을 찾지 못했고, 그녀는 쉽게 만족하지 않았다. 그녀는 치마를 걷어붙이고 발을 한쪽으로, 머리는 반대쪽으로 돌리며 반들반들하고 코가 뾰족한 구두를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발과 발목이 매우 예뻐 보였다. 그것들이 자신의 것이며 자기 몸의 일부라고 믿기 힘들었다.  - P96

그녀는 점원에게 자기는 세련되고 발에 꼭 맞는 구두를 원하며, 신발이 마음에 들면1~2달러 정도 더 쓰는 것은 상관없다고 말했다.
소머스 부인이 마지막으로 장갑을 맞춘  것은 오래전 일이었다.
가끔 그녀는 할인하는 장갑을 사곤 했는데, 가격이 너무 저렴했기때문에 손에 맞으리라고 기대하는 자체가 헛되고 비합리적이었다.
이제 그녀는 장갑 판매대의 쿠션 위에 팔꿈치를 올렸다. 예쁘장하고 상냥한 소녀가 손목이 긴 키드 장갑을 소머스 부인의 손에 능숙하게 재빨리 끼웠다. 그리고 소녀는 손목 부분을 쓸어내리고 깔끔하게 단추를 채웠고, 소녀와 소머스 부인은 가지런히 장갑을 낀 손을 함께 보며 넋을 잃고 감탄했다. 하지만 돈을 쓸 곳은 또 있었다.
거리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창가에 책과 잡지를 쌓아 놓고 파는 판매대가 있었다. 소머스 부인은 그녀가 다른 즐거운 것들에도 익숙했던  시절에 자주 읽던 비싼 잡지를 두 권 골랐다. 그녀는 책을 포장하지 않고 그냥 들었다. 그녀는 길을 건너며 최대한 치마를 들었다. 그녀의 스타킹과 구두와 꼭 맞는 장갑이 그녀의 자태에 놀라운 변화를 주었으며, 그녀는 잘 차려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소속감과 자신감을 느꼈다.
그녀는 무척 배고팠다. 여느 때였으면 그녀는 집에 갈 때까지 허기를 참았다가 집에서 차를 한잔 끓이고 아무거나 눈에 보이는 간식을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를 지배하고 있는 충동은 그런 생각은 머릿속에 들이지도 않았다.
- P97

길모통이에 식당이 하나 있었다. 그녀가 들어가 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식당 밖에서만 이따금 그녀는 얼룩 하나 없이 말끔한 다마스크와 빛나는 크리스털, 세련된 사람들을 조용히 시중드는 웨이터를 봤다.
그녀의 걱정과는 달리 그녀가 들어갔을 때 아무도 놀라거나 불쾌해하지 않았다. 그녀는 작은 테이블에 혼자 앉았고, 친절한 웨이터가 곧바로 와서 주문을 받았다. 그녀는 많이 먹고 싶지 않았다. 맛있고  고급스러운 것으로 몇 입, 여섯 개의 블루 포인트 굴, 크레스를 곁들인 통통한 포크찹, 달콤한 디저트 크림 프라페처럼, 라인 포도주, 그리고 결국 작은 블랙커피 한 잔.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느긋하게 장갑을 벗어 옆에 놓았다. 그리고 그녀는 나이프의 뭉툭한 부분으로 종이를 분리하며 잡지를 읽었다. 모든 것이 매우 유쾌했다. 다마스크는 창밖에서 봤을때보다 심지어 더 깨끗했으며 크리스털은 더 반짝였다. 조용한 남녀 손님은 그녀를 흘끔거리지 않았고, 그녀의 자리처럼 작은 테이블에서 한가로이 점심을 즐기고 있었다. 부드럽고 감미로운 음악이 흘렀고 미풍이 창문을 통해 살랑살랑 들어왔다. 그녀는 한 입 먹고, 한두 줄을 읽고, 호박빛 포도주를 홀짝이고, 실크 스타킹 속에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가격은 상관없었다. 그녀가 돈을 세어서 웨이터에게 건네주고 팁으로 동전 하나를 쟁반에 더 놓았더니,
그는 마치 그녀가 왕족의 피가 흐르는 공주라도 되는 것처럼 고개 숙여 인사했다. - P98

그녀의 지갑에는 아직도 돈이 조금 남았고, 그녀의 다음 유혹은 마티네 포스터라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녀가 극장에 들어갔을 때는 조금 늦어서 연극이 이미 시작했고 관람석이 꽉 차 있는 듯했다. 하지만 군데군데 빈자리가 있었고그녀는 그중 한 곳으로 안내를 받아서, 사탕을 먹고 요란한 옷차림을 자랑하며 시간을 때우러 극장에 온 화려한 여자들 사이에 앉았다. 오로지 연기를 감상하고 극을 즐기려고 온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극장에 있는 그 누구도 소머스 부인만큼 그곳을 느끼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무대와 배우들과 관객들 모두를 하나의 큰 인상(印象)으로 끌어모아 흡수하고 즐겼다. 그녀는 우스운 장면에서 웃음을 터뜨리고, 비극적인 장면에서는 옆자리에 앉은 화려한 부인과 함께 울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에 관해 잠깐 대화를 나눴다. 현란한 차림의 부인은 향수를 뿌린 하늘하늘한 레이스 손수건에 코를 풀고 눈가를 두드렸고, 소머스 부인에게 사탕을 권했다.
연극이 끝났고 음악이 멈췄으며 관객은 빠져나갔다. 꿈에서 깬것 같았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소머스 부인은 길모퉁이로 가서 케이블카를 기다렸다.
그녀 맞은편에 앉은 예리한 눈을 가진 남자는 그녀의 작고 창백한 얼굴에 떠오른 표정이 흥미로운 모양이었다.  - P99

그는 그 얼굴에서 자기가 무엇을 읽었는지 혼란스러웠다. 사실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가 절절한 소망을 읽을 수 있는 마법사라면 모를까.
케이블카가 멈추지 않고 계속, 계속, 영원히 달리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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