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지식을 나눕시다

우유를 사러 편의점에 갔다가 토요일자 한국일보를 사들고 왔다. 가장 눈길을 끈 기사/칼럼은 이광일 논설위원이 쓴 '지식을 나눕시다'('정보'가 아니라 '지식'이다). 세계 수위를 다투는 인터넷강국이지만 우리의 인터넷은 '지식의 바다'라고 하기엔 아직 쑥스러운 수준이다. 오늘 아침에도 '마샬 버만'과 '들뢰즈의 영화론'에 관한 자료들을 좀 찾아보려다가 뭔가 그럴 듯한 게 눈에 띄지 않아 혀를 차고 있던 참이었다(물론 영어로 구글에서 검색하면 사정은 좀 달라진다). 그러는 사이에 미국 명문대학들에서는 자신들의 강의를 무료로 공개한다고 하고(한국의 대학은 등록금 천만원시대를 감당할 만한 강의를 제공하고 있는가?), 구글에서는 수백만권의 책을 영인해서 인터넷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바야흐로 새로운 지식사회로 진입해들어가는 게 아닌가 싶은데, 우리의 관심이나 대처는 너무 고답적이고 너무 한가해 보인다(내용도 없는 리포트/논문들이 몇 천원씩 '거래'되는 게 '한국적 지식'의 현주소인가?). 문제의식이 좀 확산될 필요가 있다.

한국일보(07. 02. 17) 지식을 나눕시다

가히 인터넷 세상이다. 하다 못해 자기 집 전화번호가 생각이 안 나도 인터넷에 들어가 “우리 집 번호는?”하고 칠 정도다. 모든 게 인터넷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한글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별 게 없다. 거의 잡담 수준의 정보가 올라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조금 깊이 있는 정보가 있겠다 싶으면 예외 없이‘전문자료’라고 해서 돈을 내고 사야 한다. 심지어 30쪽짜리 논문 한 편이 7,000원을 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 영어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온갖 지식의 세계가 펼쳐진다. 예를 들어 history(역사)를 쳐 보라. 한 두 사이트만 들어가면 세계사에 관한 개요를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관심 분야에 따라 거기에 연결된 사이트를 찾아 들어가면 지역별, 시대별로 아주 전문적인 수준까지도 공부할 수 있다.

이처럼 한글 인터넷과 영어 인터넷이 차이가 나는 이유는 인터넷에 정보를 올리는 사람에 있다. 우선 지식 수준이 높아야 한다. 그 다음 그런 지식을 남에게 공짜로 제공할 만큼 헌신적이어야 한다(*위키피디아의 한국어판을 영어판과 비교해보아도 알 수 있다). 한글 인터넷이 내용 면에서 별 매력이 없는 이유는 우선 매력적인 수준의 지식을 갖춘 사람이 적고, 그나마 그런 지식이라도 인터넷에 올리려는 열정을 가진 사람은 더더구나 적기 때문이다. 미국의 어지간한 학회는 최근호를 제외하고는 학회지 내용을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그것도 디자인을 아주 멋지게 해서. 반면 우리나라 학회들 중에서 홈페이지에 제대로 정보를 올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러니 한글을 사용하는 인터넷 사용자들의 지식 수준은 영어권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매력적인 지식을 갖춘 헌신적인 사람을 단기간에 많이 키울 수는 없다. 그나마 지금과 같은 여건에서 우리의 지식 수준을 높이는 방법은 딱 한 가지밖에 없다. 돈을 내고 사게 돼 있는 각종 전문자료를 네티즌들이 무료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전문자료들은 대개 논문의 형태인데 한두 회사가 학술지를 내는 학회나 연구기관과 계약을 맺고 일반에 판매하는 방식이다. 그래 봐야 회사만 돈을 벌 뿐 학회나 연구기관은 다른 전문자료를 무료로 열람할 수 있는 권리 정도밖에는 돌아오는 것도 없다.

일반인들은 터무니없는 가격에 알량한 자료를 사거나 무슨 무슨 학회지에 실린 논문 한 편을 보기 위해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을 뒤져야 한다. 인터넷 시대에 이런 번거로움이 없다. 교육인적자원부가 1999~2005년에 실시한 두뇌한국(BK)21 사업도 그렇다. 1조 5,700억원을 들여서 나온 수많은 논문들이 인터넷에는 올라 있지 않다. 그냥 책이나 논문의 형태로 출판됐을 뿐이다. 이것만 그냥 인터넷에 올려도 지식검색에서 볼 만한 내용이 훨씬 많아질 것이다. 국민 세금을 엄청 쏟아부어 나온 결과물을 극소수의 사람만 볼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낭비 중에서도 터무니없는 낭비다.

그래서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교육부도 좋고, 문화부도 좋고, 학술진흥재단도 좋으니 정부가 나서서 서고에서 잠자고 있는 연구물들을 인터넷으로 끌어냈으면 한다. 저자에게 최소한의 지적재산권 사용료만 지급하고 모든 국민이 볼 수 있도록 개방하는 것이다. 논문 한 편에서 영화나 소설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고, 제품 개발의 소재를 얻을 수도 있고, 전문지식을 키울 수도 있다. 이제 공부는 학생만 하는 시대가 아니다. 지식은 누구에게 들어가느냐에 따라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

구글에서는 지금 미국 주요 대학 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1900년 이전 발행 도서를 영인해 인터넷에 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종수만 해도 수백 만 권에 달한다. 그 방대한 자료가 다양한 사람들에게 흘러들어갈 때 어떻게 활용될지는 예측을 불허한다.(이광일 논설위원)

한겨레(07. 02. 17) 미 명문대 온라인 공짜강좌 ‘펑펑’

카리브해 연안 세인트루시아에 살고 있는 캐나다 출신 기업가 로버트 크로건은 요즘 미 아이비리그 명문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무료 강의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이 대학 몇몇 강좌의 강의노트가 자신이 추진중인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업무와 폭넓게 관련된 ‘세계 개발’과 ‘기업금융’ 등의 강의도 공부하고 있다. 크로건은 “(MIT 강좌가) 내가 사회에서 배운 실무지식과 제도교육의 용어들을 서로 연결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말했다.

미군 소위인 로니 매튜도 노트르담 대학의 ‘신학의 기초’ 온라인 강좌에 빠져 있다. 그는 담당 교수인 게리 앤더슨의 강의 계획과 내용, 과제에 따라 하루에 한 시간씩 성경을 읽고 있다고 <원스트리트저널>이 15일 전했다.

미국에서 강의 내용을 온라인에 무료 공개하는 대학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문턱이 높은 대학 강의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도록 해, 이른바 ‘교육의 민주화’를 추구하겠다는 게 강좌를 공개하는 대학들의 공식적인 설명이다. 이 외에도 △대학 지원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동문 기부금을 확충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신문은 분석했다.

강좌 공개에 가장 적극적인 대학은 MIT다. 현재 1500개 강좌의 강의 노트와 교육과정을 온라인에 올려 놓고 있다. 오는 11월까지 1800개로 확대해 사실상 대학의 모든 강좌 내용을 공개할 계획이다. 노트르담대도 지난 가을부터 ‘철학개론’ 등 8개 강좌의 강의노트와 필독서 목록, 과제물 등을 온라인에 올려 놓고 있으며, 2년 안에 30강좌로 확대하기로 했다. 아이비리그의 또다른 명문 예일대도 오는 가을 학기에 ‘구약개론’과 ‘물리학의 기초’ 등 7개 학부 강좌를 영상 녹화해 공개할 계획이다.

아이팟과 같은 엠피3 플레이어와 컴퓨터로 음성 파일을 내려받는 방식인 ‘팟캐스팅(Podcasting)’을 통해 강좌를 공개하는 대학도 늘고 있다. 미 서부 최고 명문 스탠퍼드 대학은 지난 가을학기부터 ‘위기의 문학’, ‘역사 인물로서 예수’ 등 3강좌를 애플의 아이튠 유 사이트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공개 강좌수를 12개로 늘릴 계획이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도 강의 공개를 위해 일부 강좌를 음성과 영상 파일로 제작하고 있다.

이런 강의 공개에는 재단 지원금도 활용되고 있다. 교육자료 공개 촉진 운동을 벌이고 있는 ‘윌리엄 플로라 휼릿 재단’은 지금까지 각 대학과 비영리 재단에 6800만달러 이상을 기증했다. 이 재단의 교육 프로그램 간부인 캐서린 캐설리는 “지식은 공공재다. 공공재는 자유롭게 공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 쪽에선 잠재적인 지원자를 늘리겠다는 목적이 크다. MIT의 공개강의 이용자 조사를 보면, 대학 입학 전 이 강의 사이트를 알고 있었던 신입생의 3분의 1은 강의 내용이 대학 선택과 등록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답했다. 대학들은 강의내용 공개가 지원자를 줄일 것이라고 걱정하지는 않는다고 신문은 전했다.(강성만 기자)

07. 0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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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늘빵 > [퍼온글] 효과적인 독서법. 어떻게 읽은 것인가(How to Read It)

   # 효과적인 독서를 위한 방법들은 여러 가지 있습니다. 그냥 이것도 자료라 생각을 하시고 편안하게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인터넷 사이트를 돌아다녀 보니 이런 내용이 있어서 소개를 합니다.

효과적인 독서법. 어떻게 읽은 것인가(How to Read It)

의도

우리는 매일 읽는다. 하지만 "잘 읽는 법"은 배운 적이 거의 없다. 그 몫은 철저히 자신의 것이다. 잘 읽는 법이란게 있나? 있다. 분명히 있다. 설사 타인의 그것이 나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는 않더라도 나의 그것을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된다. 부인할 수 없다. 왜 우리는 이런 "일상의, 그러나 매우 중요한 기술"들에 대해서는 함구하고만 있었는가.

깊이 읽기 #

같은 주제 읽기 Syntopical Reading (Read from various materials on the same subject)

깊이 읽기 위해 "넓게 읽는다"는 것은 어찌보면 역설적이다. 하지만 정말 깊게 파려면 동시에 넓게 파지 않으면 안된다. 한가지 특정 주제가 있을 때에 이에 관련된 책을 ?구할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다 읽는다. 꼭 책 전체이어야 할 필요는 없고, 한 챕터씩도 좋다. 다만, 한 곳에서 어떤 매듭을 짓기 이전에, 이 책 저 책 오가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하다. 책을 읽을 때에는 도서관 같은 곳이 있으면 좋고, 한번에 모조리 몰아서 읽는 것이 효과가 크다. 처음 한권 마치고, 두권 마칠 때는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세권 네권째부터는 여러 책에 걸쳐 출현하는 공통 용어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며, 그걸 지나면 비슷한 표현(phrase)이나 단어, 심지어는 비슷한 문장까지 인식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언어 공부에 엄청난 도움이 된다 -- 발음이건, 문장이건, 동일 대상을 다르게 표현한 것을 많이 접하는 것, 이것이 언어 공부의 요체다.) 또 이 때 즈음이면 이 주제에서 "무엇이 중요한 것"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 것인지 파악하게 되고, 점점 재미와 속도가 붙는다.

이것이 여덟, 아홉권에 이르게 되면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알게 되고, 그 특정 주제에 대한 한 든든한 뒷심이 생기고, 전문가가 되었다는 자신감도 든다. 그 주제에 대해 계통도와 전체 그림(deep structure)이 그려지는 것이다. 이후에 남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혹은 다른 책을 보다가 그 주제에 속한 무엇이 언급되면 그것이 다른 것들 사이에서 어떤 위상을 갖고, 어떤 중요성을 갖는지 대번에 말할 수 있게 된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우선, 공부라는 것, 독서라는 것에 대해 상당한 자신감을 쌓을 수 있으며(자신감은 효과적인 학습에 아주 중요하다 -- 최근 뇌과학의 성과들이 이런 감정적 상태가 학습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보여줬다), 짧은 시간에 많은 텍스트를 읽을 수 있고(한 권씩 읽어나갈수록 읽기가 점점 수월해지며 엄청난 속독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 결국 속독은 스키마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해당 분야의 표현들을 무의식적으로 학습하게 되는(예컨대, 친구들과 이야기 하다가도 그 주제가 나오면 무심코 완전한 영어문장이 튀어나올 수 있다) 장점이 있다.

김창준은 대학 심리학 개론 수업 시간에 그날 진도나갈 부분(한 챕터)에 이 방법을 사용했다. 학교 도서관에 있는 모든 심리학 원서를 옆에 쌓아놓고, 인덱스와 차례를 보고 해당 주제들을 찾아가며 십여권을 독파했다. 대략 여덟시간 정도가 걸렸던 것 같다. 언제 시간이 갔는지 모를 정도로 무섭게 몰입했었다. 다음날 수업 시간에 교수가 설명을 하면 김창준은 교수보다 훨씬 여유있는 자세에서 강의를 "관찰"할 수 있었다. "아 지금 저 이야기는 이 부분에서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군, 왜 교수는 저런 지엽적인 것에 시간을 낭비하나.", "아주 중요한 것을 설명하고 있군. 저건 아무개의 설명과 비슷하군.", "여기는 원서 갑과 을, 병을 조금씩 긁어모아 만들고, 저기는 정과 무에서 문장 하나 손대지 않고 고대로 직역해서 넣었군. 그런데 왜 공저라고 달아놨을까", "우리 교재는 이 부분에서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있군. 완전히 틀렸다. 완전히. 아마 이 글을 쓴 사람은 갑이라는 책을 봤을게다.", "이 부분은 상당히 미묘한데 교수는 어떻게 설명할까 상당히 기대되는군."

이 방법을 "잘 이해되지 않는 주제"에 대해 적용할 수도 있다. 흔히들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듣다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그걸 계속 반복해서 보고, 고민하고, 자신의 머리를 탓하게 된다. 물론 이 과정도 아주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때로는 다른 정보원을 보게 되면 금새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마치 어떤 버그 때문에 날밤을 새고 고민을 하던 중 옆에 지나가던 사람이 힐끗보고는 문제의 원인을 지적해 주는 경우와 같다. 동일한 주제에 대해 다양한 자료를 접하게 되면 오히려 더 혼동될 것 같지만(입시 준비에 책 여러권 보지 말라는 금언이 있다), 그것은 자신이 머리 속에서 정리를 해나가며 읽는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오히려 더 투명하고 명료해진다. 읽으면서, 중복되는 정보가 무엇이고, 차이가 있는 정보가 무엇인지 구분해라. 그리고 이 정보의 출처를 꼭 같은 정보원 종류에만 한정시킬 필요는 없다. 책, 코드, 사람, 실험, 인터넷, 논문, 백과사전, 자료는 늘 풍부하다.

Syntopical Reading이 잘 되면 Build Your Own Taxonomy가 가능해진다.

kz도 전공분야의 책을 자꾸 보면서 이런 걸 느꼈다. 다만, 이 경우엔 비슷한 용어와 비슷한 구성이 보이기 시작하면 읽기 자체가 지루해졌다. 그래서 다음 조목이 필요하다.

I found, when I was studying mathematics, that 2 things were true: (1) the teacher was not too good and (2) the book was not too good. So I would always buy a half-dozen books on the topic and try to get the full picture by reading the same sections in each book. The combination helped me understand much more than the sum of the content. Also, I was never opposed to reading something as much as 10 times until I squeezed everything out of it

http://www.paulgraham.com/undergrad2.html


겸손하기 Be Humble

깊이 읽으려면, 아니 온전히 읽으려면, 아니 읽어서 무엇이라도 배우려면 겸손해져야 한다. 내가 겸손하게 읽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은 나의 선택이다. 거기서 생기는 이득은 또 고스란히 나에게 온다. 겸손하지 못하고 읽으면, 배우는 것이 없다. 책의 세상이 나의 세상으로 들어올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다. 아무리 하찮아보이는 것이라도 겸손하게 읽으면 무엇이건 배우게 된다. 책의 가치는 나와 책이 같이 만드는 것이다. 실험을 해보라. 이제까지 자신이 읽었던 책 중에서 정말 가치 없는 책이라고 치부했던 책을 다시 꺼내어 들고 Be Humble을 적용해서 읽어보라. 최초 그 책을 읽고 몇 달, 몇 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그동안 성장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SeeAlso 내가성장했다고느낄때) 좀 더 Be Humble을 연마해야 한다. 얼마나 많이 배울 수 있느냐는 것은 당신이 결정한다.

자신만의 분류 만들기 Build Your Own Taxonomy

Syntopical Reading을 하면서 해당 주제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과 얼개를 짜나간다. 예를 들어 OOP에 대한 책들을 읽는다면, 각각의 책에서 제시하는 OOP의 특징들을 서로 비교하면서 자신만의 OOP의 특징의 계층도를 형성해 나간다. 그리고 이것을 이리저리 재구조화 해본다. 책을 읽다가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면 이것은 자신의 계층도에서 어느 위상에 속하는지 생각해 본다. 코드를 읽으면서도 이미 코드에 명시적으로 드러난 계층도(예컨대 클래스 다이어그램)에만 얽매이지 말고, 연관 코드를 읽으면서(Syntopical Reading) 자기 나름대로 새로운 계층도를 그려본다. 코드에 귀를 기울이면 새로운 계층도의 출현을 볼 수 있다. 알고리즘 책을 읽는다면, 자신 나름대로의 알고리즘 분류법을 그리고 가장 큰 줄기 3-5가지를 만든다. 지금 이 구체적 테크닉이 어느 줄기에 속하는지 생각해본다. 정말 깊이읽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걸 하기 이전에 Be Humble로 순수하게 읽기가 되어있어야 한다.

줄 그으며 읽기 Underline Reading

내용의 중요도와 종류에 따라 색깔 혹은 모양을 달리하여 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읽기를 할 때에는 자신이 원하는 부분(예컨대 빨간색 혹은 파란색)만 재빨리 찾아 읽는다. 초등학교 때 책을 읽으며 새까맣게 연필로 밑줄을 긋는 습관을 들인 사람이 꽤 있는 듯 하다. 어떤 사람은 밑줄을 긋지 않으면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줄 그으며 읽기는 이런 습관적이고 기계적인 손동작과 별 관련이 없다. 따라서 이 독서법은 손가락으로 읽기와 구분해야 한다. 그렇다고 배타적인 것은 아니며, 서로 직교적, 독립적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줄그으며 읽기는 깊이 읽기에 해당된다. 그만큼 책의 내용을 더 깊이 이해하고 분석하며 읽게 된다. 필자와 대화를 하는 느낌이 든다. 스스로 자꾸 자문하고 각성하게 되기도 한다. 논문 등 어려운 글을 읽거나 할 때에 쉽게 지칠 수 있지만 이 방법을 사용하면 왠지 힘이 난다.

이 방법을 체계적으로 적용한 예로는 삼색볼펜초학습법이 있다. 김창준이 아는 대학생 중에는 이 방법을 사용해서 시험 공부를 아주 수월하게, 잘 하는 친구가 있다. 나중에는 시험 범위를 다 보는 데 몇 십 분도 채 걸리지 않으면서도 전체 내용이 머리 속에 좌악 떠오른다. 이 방법을 독서모임이나 스터디 등에 적용해서 아주 좋은 효과를 얻기도 했다. 꼭 볼펜만이 아니고, 색연필이나 그냥 흑색 연필(이 경우 줄 모양을 달리해서 구분한다)을 사용할 수도 있다. 색연필은, 김창준이 수십가지를 사용해 본 결과, 개인적으로 FABER-CASTELL의 873 COLOR 모델을 사용하고 있다.

구체적인 것 먼저 읽기 Read from concrete to abstract -- dreamneo

통계학을 공부할 때였습니다. 통계학에서 배우는 시그마 등의 이론이 도대체 왜 필요한지 감을 잡을 수 없을 때였습니다. 그 때, 우연히 친구방에서 "통계를 알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라는 조그만 책자를 발견했습니다. 훑어보니 실제 생활에서 통계학이 어떻게 쓰이는 가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조금 흥미가 생겨서 친구에게 부탁해서 그 책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공장에서 불량부품을 줄이는 방법등.. 의 내용이었습니다. 지금 그때 깨달았던 것들은 다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한 건 책을 통해서 수업시간에 배웠던 딱딱한 이론이 어떻게 쓰이는 지 알고난 후, 통계학 시간이 과장해서, 10배는 재미있어졌다는 것입니다. 물론 재미있었진만큼 이해도 더 잘되었고, 성적도 더 좋아질 수 있었습니다. 구체(Concrete)한 것이 추상(Abstract)한 것보다 먼저 교육되어져야 한 다는 것은 여러 연구를 통해서 다루어진 것 같습니다. 김창준님등 여러 사람들의 실제적인 고백에서도 발견했던 것이구요.

교과서의 경우에는 많은 내용을 구조적으로 담아야 하는 이유로 구체적인 사례나 적용들을 빼먹습니다. 그 내용을 다 집어넣는다면 교과서 들고 수업시간에 들어가기 더 힘들어지겠죠. 지금도 한, 두권 집어넣으면 어깨에 부담이 상당한데요. 하지만 참고서들은 책꽂이에 꽂아두고 필요할 때만 보면 되기에.. 구체적인 사례들을 소개한 참고서를 활용한다면 체계적이고 함축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교과서 혹은 추상적인 글들을 이해하는데 무척 도움이 될 것입니다.

빨리 읽기 #

재며 읽기 Measure It (If you can't measure it, you can't improve it)

(원서를) 빨리 읽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읽기 속도를 WPM이라는 단위로 재기도 한다. Word-Per-Minute이다. 잘 교육 받은 영미 대학생 경우 500-600 WPM 정도 된다. 우리나라 대학생은 100-200 WPM 정도다. 영어를 잘한다는 학생도 200 WPM을 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빨리 읽는 것만이 중요한 것만은 아니다.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잡지를 논문 읽듯이 하는 것을 상상해 보라. 왜 이렇게 느릴까? 그것은 단순히 "빨리 읽는 훈련"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까? 간단하다. 날마다 비슷한 분량(신문 사설 하나 분량 정도), 비슷한 난이도의 새 글을 한 숨에 읽는다. 이 때, 그 글을 읽고 나서 누군가가 대강의 줄거리에 대한 질문을 해도 대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읽는다. 그냥 눈만 스치면 안된다. 챠트를 만든다. (SeeAlso InformationRadiator) 날마다 자신의 WPM을 기록한다. 그냥 "빨리 읽으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속도를 올릴 수 있다. 그런데, 하버드대학에서인가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일반적으로 읽기 속도를 높이면 이해도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김창준은 이 방법을 이용해서 한달 만에 WPM을 딱 두 배 올렸다.

속도뿐만 아니라 이해도도 재며 읽기를 할 수 있다. 글을 한번 읽고, 책을 덮은 다음 빈 종이에 방금 읽은 것의 줄거리를 정리해 보라. 그리고는 다시 책을 펼쳐서 다른 색 펜을 들고 내가 빠트린 것이 있다면 채우고 틀린 것이 있다면 고치면서 확인을 한다. 그리고 자신이 썼던 글에 대해 점수를 준다. 1에서 5점 사이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1이면 "전체를 제대로 이해 못했다", 2이면 "몇가지 사실만 이해했다", 3이면 "전체적인 감은 오지만 자세히는 모르겠다", 4면 "대부분은 이해했는데 몇 가지를 빠트렸다", 5면 "완전히 이해했다" 식으로 나름대로 스케일을 정하면 되겠다. 이걸하면 독서일기도 하게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하루종일 읽기 Whole Day Reading

GoldenTimeMethod 를 책읽기에 적용해 볼 수 있다. 하루 종일 (원서, 코드를) 읽는 것이다. 그러면서 매 시간 자신의 능률을 기록한다. 5등분(최상, 상, 중, 하, 최하) 정도면 충분하다. 하루를 이렇게 보내고 나면 어떨 때 책이 빨리, 잘 읽히고, 어떨 때 잘 안 읽히며, 어떻게 하면 보다 쉽게 읽히는지 경험할 수 있다. "읽기"의 거의 모든 면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이 중요하다.

따라읽지 않기 Remove Subvocalization

읽는 동안에 자신의 마음의 목소리를 듣는가? 이걸 서브보칼리제이션이라고 한다. 혀를 움직여야만 글이 읽히는 보칼리제이션보다는 약한 병증이다. 물론, 어려운 글을 읽으면 거의 모두가 자동으로 서브보칼리제이션을 한다. 하지만 문제는 모든 글에 대해 이걸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최고 읽기 속도는 자신의 마음의 목소리가 내는 최고의 속도를 넘지 못한다. 우리나라 학생의 대다수가 외국어에 대해 이 문제를 안고 있다. 대부분은 학생 하나를 일으켜 세우고 교과서를 읽히고 나머지는 묵독시키는 것에서 무의식적으로 익혀진다. 어떻게 해소할까? 아주 심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냥 "빨리 읽으려고 노력"하면 자연 해결되고, 특별한 방법을 찾는다면 Finger Reading을 해보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시 읽기 Read Again

빨리, 그리고 깊이 읽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은 많이 그러나 여러번 읽는 훈련이다. 그러면 동일한 글에 대해 속도를 높일 수 있고, 조만간 처음 보는 글도 빨리 읽을 수 있다. (여기서 한번에 거듭 읽는 단위는 글자나 행과 같은 작은 것보다 챕터나 책 전체와 같은 큰 것임에 유의한다.) 만약 어려운 것을 읽어야 한다면 오랜 시간에 걸쳐 한 번 읽는 것보다 짧게 전체를 여러번 읽는 것이 이해도나 전체 소요 시간에 훨씬 나은 경우가 많다. 무언가를 읽다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거든, 좀 여유를 갖고 잘 이해가 되지 않아도 무조건 전체를 다 읽어라 -- 필요하다면 이해가 안되는 부분 옆에 간단히 표시를 하고 넘어간다. 완전한 통독을 한번 마치고 나서 다시 읽어본다. 세번 정도 반복을 하면 아주 경이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설혹 몇 번 반복을 해서 봤던 책이라고 할지라도 얼마간 지난 후에 다시 한번 Read Again을 해본다.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깨달으며, 자신과 책이 함께 성장했음을 느낄 수 있다. (김창준은 세 달 정도에 걸쳐 같은 책을 5번인가 읽은 적이 있다. 아주 놀라운 경험이었다.) 김창준은 철학책이라면 최소 2번은 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것도 한자리에 앉아서 두번을 연달아 본다. 남들이 한번 볼 시간에 빨리 두번 이상 보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에 시간을 더 투자해서 꼼꼼히 봐야하고, 무엇은 몰라도 그냥 넘어가도 괜찮은지 감이 온다. 덕분에 더 깊이, 더 빨리 읽을 수 있는 것 같다. 꼭 한 번 시도해 보고, 두 번 이상 읽기에 적당한 자신만의 속도를 찾고, 또 필요하다면 그 속도를 자유롭게 조절할 능력을 기르기를 권한다. 다시 읽기를 체계적으로 적용한 것으로는 포토리딩이 있다.

See Also(http://no-smok.net/nsmk/SeeAlso)/

Do It Again To Learn(http://c2.com/cgi/wiki?DoItAgainToLearn) 가로 속 사이트 참조하시고요.

 신데렐라식 읽기/그날로 읽기 Cinderella Reading aka First Day Reading

아직까지도 손대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손대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읽을 것이 수중에 들어온 시점부터 곧바로 맹렬히 읽어서 무슨 일이 있어도 그날 자정까지는 일독을 하도록 한다. 만약 서점에서 책을 샀다면 그 책을 갖고 집으로 오는 버스 속에서 읽거나, 집에 도착하자 마자 바로 읽기 시작한다. 절대 중간에 "다른 일"이 끼어들지 않게 한다. 이 때 일독은 Pareto Reading을 적용할 수 있다. 그리고, Cinderella Reading이 끝나면 Prioritize를 적용한다.

파레토 읽기/20% 읽기 Pareto Reading aka 20% Reading

책을 모두 읽기는 힘들다. 또 책을 읽기 전에는 그 책의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없다. 이럴 때 Pareto Reading을 적용한다. 보통 Cinderella Reading과 함께 한다. Pareto Reading은 책의 20%만이라도 일단 빨리 읽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기서 20%는 직선적 구조에서의 20%일 수도 있고, 다각도에서 접근하는 20%일 수 있다. 직선적 구조라면, 책이 총 200페이지일 때, 처음 40페이지를 읽는 것이고, 다각도 접근이라면 "한 페이지에서 20% 정도만 보면 된다"는 마음으로 책의 끝까지 훑는 것을 말한다. Jig-Saw Puzzle Reading이 그런 예가 된다. 양자는 상황에 따라, 혹은 자신의 스타일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이 방법을 행하면 책 전체에 대한 그림을 가질 수 있고, 나에게 필요한 것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고, 저자의 사고의 틀에 익숙해 질 수 있다. 이게 되고 나면 나머지 80% 읽기는 순식간에 가능하다. 이 Pareto Reading이 끝나면 Prioritize를 할 수 있다.

우선순위 매기기 Prioritize

빨리 읽으려고 할 때 양을 줄이는 방법이 있다. 이 때 중요한 것만 읽도록 한다. 그러면 적게 읽으면서도 많이 읽는 효과를 가져온다. 우선 Pareto Reading 등을 통해 책 전체의 감을 얻은 후에, 책에 대해 평가를 한다. 만약 지금 당장 나에게 어떤 이득을 가져올 수 있고, 꼭 읽어야만 하겠다는 느낌이 들면 빨간색,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읽어볼만 하겠다, 읽으면 좋겠다 싶으면 초록색의 인덱스를 붙인다. 만약 앞의 두 경우가 아니라면 아무것도 붙이지 않거나 혹은 파란색을 붙인다. 색깔은 책의 온도를 나타낸다(무지개 색 순서). 그리고 인덱스에 그 책을 수중에 넣은 날짜를 기입한다. 우선순위가 나뉘어졌으면, 빨간색 책들을 모두 마치기 이전에는 초록색 책은 절대 보지 않는다. 그리고, 빨간색 책들은 지금 당장 중요한 책인만큼 "빨리" 읽는다. 읽고 나서 재독할 가치가 있다고 느껴지면 노란색을 붙인다. 또 중간 중간 자신의 리스트를 재검토하여 초록색 책이 빨간색으로 뜨거워지기도 하고, 차가워지기도 한다. 어떤 책은 계속 초록색으로 남아있고, 지속적으로 빨간색 책이 늘어나다 보니, 몇 개월 째 뒤로 미뤄지는 책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책에 대해 이미 Pareto Reading까지 했다면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아마 그 책은 자신에게 별 필요없는 책일지도 모른다.

읽은 책의 숫자에 유의하라. 지난 주에 읽은 책 숫자가 5권이었다면 이번 주에 계획하는 책도 5권을 넘지 않도록 한다. 만약 이번주에 계획한 빨간책을 다섯권 다 보았고, 초록색 책을 두권 보았다면 다음 주에는 총 7권까지 계획할 수 있다. (See Also Yesterdays Weather ) 그리고 한번 빨간책이 된 책은 그날부터 (예컨대) 일주일 이내에 마치지 않으면 그 책을 영원히 보지 못할 것이라는 마음자세를 갖는다. 책의 유효기간을 정해 놓는 것이다. 보통 어느 시점에건 빨간 책의 숫자는 5권 이내가 좋다. 이 Prioritize는 책 뿐만이 아니고 웹 문서, 잡지 기사 등 모든 읽을거리에 적용할 수 있다. 이 경우, 인덱스 붙이기가 불편할 수도 있는데, 별도의 인덱스카드에 "빨간 읽을 것" 목록을 모아 관리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가능하면, 같은 색의 읽을 것들을 물리적으로 동일 공간(바구니, 상자, 기타 등등)에 모아두는 것이 좋다 -- 웹 문서라면 인쇄를 해서 같은 공간에 모아둘 수 있다.

시간 제한 읽기 Time Limit Reading

물리적인 한계를 마주하면 인간은 의외의 능력을 내기도 한다. 임의의 시간제한을 두고 읽기를 하면 속독 훈련도 되고, 정말 빨리 읽을 수 있다. 시험기간에 분치기 초치기를 하는 동안 자신의 엄청난 정보흡수력에 놀란 적이 있을 것이다. 같은 원리로 어떤 시간제한을 두도록 한다. 책을 보고 대충의 양과 시간을 정한다. 예컨대, "3, 4, 5 장을 40분만에" 읽는다고 정한다. 그리고 정확히 40분 후면 이 책의 3, 4, 5장이 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생각으로 온힘을 다해 읽는다. 만약 근처에 도서관이 있다면 도서관 마감시간을 이용하면 아주 좋다. 예를 들어 도서관이 밤 8시 50분에 문을 닫는다면, 8시부터 책 한권을 읽기 시작한다. 그 책을 8시 50분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다 읽도록 한다. 엄청난 두뇌회전 훈련이 된다. 마치 머리로 단거리 경주를 한 느낌일 것이다. 이런 훈련을 날마다 하면 아주 비약적인 발전을 맛볼 것이다.

한 자리에서 읽기 One Sitting Reading

이번에 읽을 양을 정한다. 그것이 두 세개의 장(chapter)이건, 하나의 파트이건, 아니면 책 한 권이건 상관없다. 이 때 가능하면 최소 하나의 장 이상이 되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걸 읽을 때까지 절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계속 읽는다. 처음 양을 정할 때 자기 생각에 한자리에서 모두 읽기엔 좀 많다 싶은 정도로 정하는 것이 좋다. 읽을 때는 꼭 모든 글자를 하나 하나 읽을 필요가 없다 -- 책 한권을 한번 볼 시간에 빨리 세번 보는 것이 훨씬 나은 경우가 많다. 김창준은 이 방법을 애용한다. 250 페이지 정도의 가벼운 교양서적이라면 한 시간 안에 일독을 마친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재독을 한다. 속도가 빠르면 그만큼 전체의 그림을 얻기 쉽고, 저자의 정신구조(mental frame)에 빨리 도달할 수 있지만 속도가 느리면 뒤에 것을 읽는 동안 앞의 것이 가물가물해지고, 자꾸 들춰봐야할 필요가 생기며 양자의 관계나 연결점이 잘 다가오지 않으며, 책을 다 읽은 후에도 파편적인 기억은 나도 저자가 전달하려고 하는 골자는 놓치기 쉽다.

See Also : Go Straight To The End

손가락으로 읽기 Finger Reading

손가락으로 읽는 부분을 따라가면서, 또 눈은 손가락을 따라가면서 읽는 방법이다. How To Read A Book 에서도 소개하고 있다. 팔을 움직이기가 불편하다면 볼펜 같은 것을 손에 들고 손목을 이용해서 펜을 움직이면 좋다. 이 때 책 위에 직접 밑줄을 긋지는 않는다.

이 방법은 되돌아가기와 따라읽기(See Also 따라 읽지 않기) 를 제거하는 데에 엄청난 효과가 있다. 사실 사람들은 한 문장을 읽는 데에 적게는 두세 번 많게는 열 번도 넘게 이전 글자로 눈이 되돌아간다. 이 과정은 무의식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스스로도 알지 못한다. 그런데 손가락으로 읽기를 하면 되돌아가기나 따라 읽기를 최소화 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이 직접 읽는 속도를 의식적으로 제어할 수 있기 된다. 내용이 어려우면 속도를 늦추고 쉬우면 올릴 수 있다. 읽는 글에 더욱 집중하기도 쉽다.

단, 손가락으로 읽기를 한다고 억지로 속도를 높히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이해하는 수준에서 속도를 조절하라. 글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속도를 내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지금 당장 한 시간 정도만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들고 손가락으로 읽기를 실험해 보라. 자신이 읽은 분량에 꽤 놀라게 될 것이다. 자신이 읽는 모든 자료에 대해 손가락으로 읽기를 해보라. 여유가 별로 없다면 날마다 15분 정도씩을 정해 놓고 일주일 동안만 같은 책을 손가락으로 읽기를 통해 읽어나가라. 날마다 재며 읽기를 해보라. WPM이 올라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Power Reading에서는 다양한 손가락으로 읽기 패턴들을 가르쳐 주는데, 그 방법을 사용한 사람들에게 보통 2배 정도의 WPM 향상이 있었다고 한다.

새롭게 읽기 #

조각 그림 읽기 Jig-Saw Puzzle Reading

읽기가 지루해지거나, 읽기 싫은 글이 있다. 어떻게 할까? 거꾸로읽기와 부분 읽기가 있다. 단락개념에 충실한 글(영미권의 대부분의 글)이라면 매 단락의 첫 문장(혹은 끝문장, 혹은 첫문장과 끝문장)만으로 순독, 역독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일단 관심이 가는 부분 혹은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의 살 붙여 나가기를 한다. XP의 첫 번째 이터레이션과 비슷하게 전체 뼈대를 잡는 것이다. 효과는 엄청나다.

자리와 자세 바꾸기 Change Your Place And Posture

만약 잘 읽히지 않는다면, 그 읽히지 않는 문제를 갖고 더 씨름하는 것보다 아예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상황을 시도해 보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읽는 장소를 바꾸거나, 자세를 바꾸는 것이다. 책상에서 읽었다면 바닥에서 읽고, 쇼파에서 읽었다면 딱딱한 의자에서 읽는다. 방에서 읽었다면 마루에서 읽고, 도서관에서 읽었다면 잔디밭에서 읽고, 엎드려서 읽었다면 걸으면서 읽어본다. 만약 장소 이동이 어렵다면 자신의 책상을 정리하고 방을 닦음으로 자신의 장소를 변화시킬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전혀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읽을 수 있다. 재충전이 되는 것이다.

김창준은 학교 도서관에서 뭔가를 읽다가 졸음이 오면 이 방법을 썼다. 잠이 오면 절대 대항해 싸우지 않고, 내가 졸리는구나 하고 자각하는 순간 바로 자세를 바꾼다. 보통 정자세에서 읽기 시작하다가 졸음이 오면 좀 삐딱하게(마치 불량학생처럼) 옆으로 앉는다. 잠이 확 달아난다. 그렇게 몇 분을 지나도 여전히 졸음이 오면 책상이 없는 푹신한 의자(중대생은 알 것이다)로 가서 읽는다. 기분이 새로워진다. 그렇게 하고 잠시 후에 다시 졸음이 오면 책을 들고 서가 사이를 오가면서, 창가 옆에 기대어 서서 읽는다. 그래도 졸리면 읽을 거리를 바꾸고, 정말 그래도 졸리면 집에 가서 잔다.

한번은 노총각 혼자 사는 이층집 이층에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한쪽 벽면이 전부 유리로 되어있고 밖으로는 푸른 나무와 잔디가 보이는 그런 장소였다. 노총각 혼자라서 이층에는 가구가 거의 전무한채 카페트만 깔려있고, 큼직한 소파하나가 유리창을 마주한채 층 하나를 독차지 하고 있었다. 내가 당시에 느낀 것은 "장소"가 내 심신의 상태와 일의 효율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기억하건데 그 때처럼 책의 글자가 진공청소기에 빨려오듯이 쏙쏙 들어온 적은 없었다. 그 때 이후로, "좋은 집"을 가져야겠다는 꿈을 지니게 됐다. (당신은 어떤 장소에서 글이 잘 읽히십니까? 아직 발견을 못하셨다구요?)

daybreak도 유사한 경험이 있다. 20평 남짓되는 독신자 아파트에, 가구가 거의 없었고, 천장이 높았으며, 벽면 한쪽이 모두 유리창이었다. 창밖으로 잘 정돈된 잔디와 집, 가로수가 그림같이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동네였다. 그 집 안에서는 책을 읽어도 술술 읽혔고, 포커나 고스톱을 쳐도 너무 잘 되었다. 어떠한 것을 해도 조금도 답답하지 않고, 너무나 잘 되었다. "장소" 또는 "공간" 이라는 것이 그렇게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전에는 알지 못했다. 보다 일찍 알았다면 daybreak은 건축학도가 되었을 것이다.

자리와 자세 바꾸기의 한 가지 유용한 방법으로, 서서 읽기가 있다. 도서관에서 졸릴 때 1002 가 의도적으로 하는 방법 중 하나(실제로 이용 중)이다. 도서관의 의자에서 읽다가 졸릴 경우 남들 안 보이는 곳에서 (보이는 곳에서 서서 읽으면 좀 그러니; 뭐 잠깨기 위한 효과를 높이려면 남들 보이는 곳에서 시선을 의식하게끔 하는 방법도 있겠다) 10분~20분 정도 서서 읽고 중간 중간 의도적인 하품을 해주면 (방법 : 입을 크게 벌리고 작은 호흡을 계속해주다보면 큰 하품 한번이 나온다.) 잠이 잘 깨진다. 가끔은 서서 돌아다니기도 한다. 개인적 경험에 의하면, 서서 읽는 경우 저절로 빨리 읽으려고 하는 효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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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물만두 > 살인무도회 (Clue)

1954년 뉴잉글랜드. 으시시한 빅토리아식 성에 전세계의 형사, 탐정들 여섯 명이 초대를 받아 모인다. 이중에는 인기 게임에 나오는 말많은 피콕 부인, 머스타드 대령, 미스 스칼렛등이 포함되어 있다. 사람들이 도착하자 그들 각각에게 다른 무기들을 하나씩 준다.주인은 이곳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날 것이라고 미리 말한다. 그런데 정작 살인된 사람은 주인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 살인사건의 범인은 모두 여섯명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특이하게도 결말은 모두 세가지 버전으로 극장마다 다르게 상영되었다. 비디오테잎에는 세가지 결말이 모두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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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미스터리 영화를 찾았다고 알려준 만돌이...

그 말만 믿고 디브이디를 찾았더니만 없다.

우리나라에 출시 안됐다 ㅠ.ㅠ

쩝... 입맛만 다시다 말았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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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너희가 섹스의 공포를 아느냐?

작년 여름에 근간 목록에 올라와 있던 파스칼 키냐르의 에세이 <섹스와 공포>에 대한 기대를 표명한 바 있는데, 반년이 지나서 드디어 책이 출간됐다. 이 겨울이 가기 전에 중후한 에세이 한 권을 읽을 수 있게 되어 반갑다. 발빠른 리뷰도 올라와 있어서 옮겨놓는다.

한국일보(07. 02. 10) 쾌락 뒤에 숨겨진 공포 '섹스와 공포'

사회적인 공인을 통과하지 않은 섹스에 대한 현대인들의 끈질긴 공포감은 어디서 연유된 것일까. 이 같은 공포감의 연원으로 기독교의 엄격한 청교도주의를 꼽는 것이 정설처럼 굳어져있지만,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의 원작자인 프랑스 소설가 파스칼 키냐르는 이에 의구심을 품었다. 특히 1980년대 에이즈의 등장으로 인한 청교도적 윤리의 확산은 키냐르의 의구심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됐다.

섹스에 대한 현대인의 공포감의 뿌리를 찾아가던 키냐르의 눈길이 멎은 곳은 폼페이의 회화였다. 통음난무의 자유분방한 풍조를 반영하듯 폼페이의 벽화들은 에로틱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벽화에 그려진 인물들의 시선은 수줍고 심각했다. 즐겁고 쾌활해야 할 그림 속의 여인들은 정면을 바라보지 못했고 겁에 질려있었다.

키냐르는 <섹스와 공포>에서 자유로웠던 초기 로마의 성윤리가 공포감에 짓눌리게 되는 시기는 공화정이 제국의 형태로 정비되던 아우구스투스 황제기(BC 18~AD 14)라고 지적한다. 황제는 간통 처벌법인 ‘율리아의 법’ 제정 등 성의 억압을 통해 시민들을 통제하고 이를 기반으로 황제권을 강화하려 했다. 여자를 유혹, 밀애를 즐기는 내용을 노래한 당대의 인기시인 오비디우스는 당장 ‘불온시인’으로 낙인 찍혀 다뉴브 강변으로 쫓겨나 그곳에서 생을 마쳐야 했다.

성에 대한 억압과 금기가 없었던 기독교가 ‘로마의 윤리’를 따르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면 죽음이 오고 영적인 것에 마음을 쓰면 생명과 평화가 온다’ ‘음행하는 자는 제 몸에 죄를 짓는 것이다’라며 기독교인의 윤리를 설파하는 신약의 로마서는 바로 이 때에 쓰여졌다. 로마인들이 알몸을 가리기 위해 팬티를 착용하게 된 것도 이 시기의 변화된 성 모럴을 반영한 풍속이라는 것.

키냐르는 아우구스투스가 재위하던 32년이 단지 로마역사의 변곡점과 같은 시기가 아니라 세계사의 ‘지진’과도 같은 기간이었다고 과감하게 결론내린다. 디오니소스적이었던 로마의 에로티시즘이 이 시기 불안과 공포감에 가득찬 우수로 변질됐고, 이 공포감은 적대감으로 탈바꿈하면서 기독교 원죄의식의 질료가 됐다는 것이다. 섹스를 지옥으로 보내버린 중세의 청교도적 윤리가 이 시기에 뿌리 내리고 있고 현대의 성 윤리 역시 일정 부분 중세 윤리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시기는 신대륙 발견기보다도 더 큰 변혁기라는 것이다.

역자 송의경씨는 “탄생이 죽음으로의 출발을 의미하는 양면성이 있듯이 섹스에는 쾌락과 공포가 본질적으로 혼재돼 있다”며 “섹스에서 공포만을 분리해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 현대인들이 쾌활함이라는 에로티시즘의 또 다른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책”이라고 말했다.(이왕구 기자) 

07. 02.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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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책벌레는 무엇으로 사는가

아이를 유치원 차에 태워보내고 편의점에 가서 '한겨레'를 사들고 왔다. 금요일자 '18도'를 챙겨두기 위해서인데 몇 안되는 일간지가 편의점에는 딱 한 부씩만 들어와 있기 때문에 오후에 가보면 간혹 없을 때가 있다(물론 이런 수고를 하는 건 오늘 '재택근무'를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출판 칼럼니스트' 표정훈씨 이야기가 '한국의 글쟁이'의 18번째 연재로 실려 있다. 언론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이 대표적인 '탐서주의자'에 대해선 굳이 부연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그의 궁리닷컴을 방문한 지가 꽤 오래됐군). 나도 간혹 '책벌레'란 소리를 듣긴 하지만, 이 '국민 책벌레'에 견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우리 시대에 책벌레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그를 통해서 엿보기로 한다. 한겨레의 기사와 함께 지난달 중앙일보에 게재한 표정훈의 칼럼을 같이 옮겨놓는다(아래 작업실 사진을 내 방구석이 지저분하다고 구박하는 아이나 아이엄마가 봐야 하는데!.. 둘러보니 내가 더 나은 것 같지도 않군^^;).

한겨레(07. 02. 08) 출판 칼럼니스트 표정훈

아주 아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읽고 싶은 책을 사달라 부모를 조르는 게 일이었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참고서보다 교양서를 즐겨 읽었으며, 대학에 들어간 뒤에는 아예 학교 도서관을 구획 나눠 차례대로 정복해 들어가는 사람. 심지어 우리말 책만으로는 성이 안차 궁금한 책이 있으면 원서라도 사서 읽고(물론 자기 전공도 아닌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가 좋아서 독후감을 쓰고 책을 분류하고 읽고 싶은 책의 모습을 그리는 사람. 책 읽는 게 세상에서 가장 좋으니 책만 읽고 살아가고 싶어하는 이런 책벌레는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까?

표정훈(38)씨는 그 답을 보여주는 책벌레다. 10여년 전만해도 표씨 같은 책벌레들을 위한 똑떨어지는 직업은 없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책벌레들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직업이 생겼으니, 바로 ‘출판 칼럼니스트’ 또는 ‘출판 평론가’란 직종이다(*내가 궁금한 것 중 하나는 '출판평론가'나 '도서평론가' 등의 직함이 어떻게 구별되는지이다. 같은 지면에 나란히 실린 '이권우의 요즘 읽은 책'에서 가령 이권우씨는 언제나 '도서평론가'라고 자신을 소개하기 때문이다. 범위의 문제인가?).

취미가 직업이 되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먹고 살 수 있다는 점에서 책벌레들에겐 가장 이상적인 직업이다. 물론 책벌레가 아니면서 출판 평론가가 될 수는 없겠지만, 출판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표씨는 알아주는 책벌레다. 또한 이권우, 박천홍, 최성일씨 등 요즘 활발히 글을 쓰는 다른 출판 칼럼니스트들이 대부분 출판관련 저널리스트 출신인데 견줘 표씨는 거의 유일하게 오로지 책벌레로만 지내다가 자연스럽게 출판 글쟁이가 된 이다.

학창시절을 책과 보낸 표씨는 대학 졸업 후 새내기 번역가가 된다. 때마침 불어온 인터넷 바람 속에서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홈페이지를 만들었는데,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생생한 책 이야기로 입소문을 탔다(*그게 궁리닷컴이다 http://www.kungree.com/). 한 일간지에서 가볼만한 사이트로 그 홈페이지를 소개했고, 이어 책관련 칼럼을 써보라는 제안을 해왔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 표씨는 물만난 고기처럼 책벌레다운 글솜씨를 보여주었다. 그 뒤 여러 매체에서 책과 출판에 대한 글요청이 몰려들면서 표씨는 자연스럽게 이른바 ‘출판칼럼니스트’란 직업을 갖게 되었다.

표씨는 여러 책을 쓰고 번역했지만 저술가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글쟁이에 가깝다. 책이란 보편적인 주제를 글로 쓰기 때문에 <한겨레>부터 <조선일보>까지, 매체의 분야에 상관없이 글 부탁을 받는다(*'한국의 글쟁이'로 이미 소개됐던 역사학자 이덕일씨도 그러하다). 쓰는 글은 서평이 주류를 이루지만 책, 그리고 독서문화를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를 넘나든다. 또한 우리 출판계에서 책문화 전도사로도 활동해왔다. 책과 출판 관련 전시회를 기획하는 일도 여러차례 맡았다. 삼성출판박물관, 아단문고 전시회를 기획했고, 2005년 우리나라가 주빈국으로 참가한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한국관 기획위원으로 힘을 보탰다. 여기에 꾸준히 번역을 하는 동시에 여러가지 책 기획에 참여해왔다(*해서 들은 바로는 표씨가 언제나 큰 배낭을 메고 다닌다는 것. 출판사들에서 얻은 책들을 잔뜩 담아서).

이 넓은 활동폭이 가능한 것은 모두 그가 ‘책벌레’인 덕분이다. 표씨가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하는 책은 일주일에 3~4권, 3분의 1 정도 읽는 책이 대여섯권이다. 1만여권의 책을 가지고 있고, 월 50만원 정도를 책 구입에 쓴다(*같은 책벌레로서 잠시 견주어보니, 나보다 많이 읽지만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는 아니다. 그가 주로 많이 읽는 역사서들을 나는 그다지 읽지 않는다. 아니 읽을 시간을 내기 어렵다. 그리고, 1만여권의 책을 갖고 있다면 나보다는 약간 많은 수치일 듯하다. 도서구입비 월 50만원은 비슷한 듯하다).

책벌레들의 특징이 ‘박람강기’(博覽强記)라는 점을 감안해도 표씨의 지식은 넓이 면에서 도드라진다. 교수도 아니고 박사도 아닌 그가 이런 지식을 갖게 된 비결은 꼬리를 물며 책을 이어가는 독서습관이다. “책을 읽으면 참고문헌에 있는 책이나 관련있는 책, 거론된 책을 찾아서 읽거나 체크를 해놔요. 저자가 마음에 들면 그 사람 다른 책을 조사해서 알아놓아요. ‘이 짓’을 한 10년 넘게 했어요. 그렇게 하니까 책의 그물이 지어지는 거죠. 외국에 가서 책을 보다가도 참고도서 목록이 충실하면 정작 그 책 내용은 별로라도 사는 경우도 있어요.” 이런 모든 조사과정이 지식으로 쌓이는 셈인데,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고 이런 과정 자체를 즐기기 때문에 하는 일이다(*적어도 대학원생 이상이면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 최소한 자기 전공에 대해서는). “책이 전경이라면 그 전경을 둘러싼 배경을 조사하고 알아가는 것, 그게 즐겁기도 하고 그렇게 하면 더 잘 볼 수 있으니까요.”

여기에 그가 가장 자신 있어하는 장기인 인터넷 검색능력이 더해진다. 그런데 이 검색의 노하우에는 특별한 비결이 없다. 어떻게 해야 잘 찾느냐고 묻자 답은 맥빠지게도 “책을 읽어라”였다. 그 다음이 표씨가 ‘열쇳말 그물짓기’라고 부르는 검색과정이다. 역시 대단할 것은 없지만 대신 집요한 추적 의지의 중요성을 엿보게 한다. 니콜라스 루만이란 독일 사회학자를 찾은 과정을 예로 들어보자. 루만은 사회학 석학이지만 동시에 지식과 정보를 잘 관리, 편집해서 많은 책을 쓴 것으로도 유명한 학자다. 표씨가 찾고자 한 것은 이 사람의 지식관리법. 문제는 단순히 루만의 이름만 검색어로 치면 사회학 업적만 건조하게 화면에 뜰 뿐이다(*나의 관심은 보다 고리타분해서 루만의 '지시관리법'보다는 그의 대저 <사회체계들>에 가 있다. 아직까지 번역/소개되지 않는 게 사회학자들의 직무유기가 아닌가, 의혹을 품으면서).

표씨는 흔히 다작하는 저술가들이 활용하는 도구인 ‘인덱스 카드’ 등을 독일어로 추가해 다시 검색한다. 그래도 역시 원하는 지식관리법은 여전히 안나온다. 다음은 영어로 ‘지식’을 뜻하는 ‘knowledge’와 ‘관리’란 뜻의 ‘management’를 검색어로 보탠다. 이런 식으로 계속 검색어를 더해가며 찾아가면 결국은 나오게 되어 있다는 것이 표씨의 지론이다. 이렇게 찾아낸 정보들 가운데 원하는 항목들을 모아가며 계속 연관개념을 찾아낸다. 이런 작업을 오랜 세월 규칙적으로 해오면서 쌓인 지식량, 그리고 노하우가 아니라 정보가 어디에 있을지 알고 유추해내는 ‘노웨어’(know-where)가 표씨 스스로 꼽는 자산이자 강점이다(*그의 책들을 아직 안 읽어봐서 얼만큼의 '강점'인지는 잘 모르겠다. <탐서주의자의 책> 정도는 읽어둘 법한데, 책은 '당신이 없는 사이에' 출간됐었다).

이는 글을 쓰는 원칙에도 적용된다. 최대한 많이 조사하는 것, 그리고 그 자신이 연구자가 아니고 독자의 연장선에서 글을 쓰는 것이니만큼 독자가 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쓰는 것이다. “글 쓰는 것도 일종의 서비스업”이라고 믿는다. 지식이 담겨 있으면서도 어렵지 않은 글이 그의 지향점이자 특징으로 갖춰진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표씨는 2000년대 초반 등장과 동시에 출판계에서 많은 주목을 받아왔다. 인터넷이란 새로운 도구를 가장 잘 활용해서 다양한 정보를 찾아내고 조합하는 능력, 그리고 원서를 직접 읽고 기획할 수 있는 외국어실력과 기획력으로 새로운 시대에 가장 적합한 필자로 꼽혀왔다.

그동안 표씨가 펴낸 책은 크게 두가지. <책은 나름의 운명을 지닌다>(2003)나 <탐서주의자의 책>(2004) 같은 책과 독서에 대한 지적인 교양 에세이, 그리고 <하룻밤에 읽는 동양사상> 류의 가벼운 실용교양서다. 저술한 책은 그닥 양이 많지는 않다. 주된 분야는 역시 방대한 독서량에서 나오는 지식으로 맛깔스럽게 쓰는 고급스러운 에세이쪽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표씨는 그동안 다양한 여러가지 활동을 해오는 대신 저술의 측면에서는 받아온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책에 대한 에세이 <탐서주의자…>와 <책은 나름의…>가 고급 에세이로 호평을 받았지만, 두 책 모두 짧은 글모음이란 점에서 이제는 표씨가 한 단계 더 뛰어넘는 책을 내주기를 출판계는 기대하고 있다. 여기저기 이것저것 분산되게 쓰고 있는 재능을 이제는 한 분야에 집중할 단계라는 충고도 나온다.

표씨 역시 스스로도 이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활동 폭을 줄이고 출판평론성 글, 각종 에세이 등 토막글을 고사하면서 단행본을 쓰는 데 집중하기로 승부수를 걸고 있다. “당장은 딜레마죠. 들어오는 정기 수입이 토막글이고, 이런 글들이 시간도 적게 들구요. 하지만 글쟁이로서 제가 생산적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 기간이 앞으로 길어야 15년 정도일 것을 감안하면 에너지를 집중해서 호흡이 긴 책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출판평론가의 정년은 55세인가?) 

그래서 표씨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주제를 가리지 않고 실용서도 써보려구요. 독자들과 비슷한 비전공자이지만 교양 분야에 대해 연구가 아니라 공부를 하는 거죠. 그래서 공부한 것을 정리해서 소개하고 흥미를 느끼게 해주는 일을 하려는 겁니다.”(글 구본준 기자)

 

중앙일보(07. 01. 12) 자성의 목소리 없는 출판계

불철주야 책 만들기에 여념 없는 출판인들에게 출판계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지만, 일반 독자들이 바깥에서 보기에는 대체로 심심하다. 각종 사건들로 바람 잘 날 없는 정치권이나 연예계와 비교해보라. 그런데 이 심심한 동네가 '내일은 또 무슨 일이?'라는 걱정을 해야 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정지영씨의 '마시멜로 이야기' 대리 번역 의혹, 한젬마씨 저서 대필 논란, 마광수 교수의 제자 시(詩) 도용 혹은 표절 파문, '인생수업' 표지 사진 표절 혐의, 독서단체를 빙자한 책 사재기 대행 웹사이트 의혹….

책에 표시된 저자 혹은 번역자, 대리번역자와 대필작가, 출판사, 그리고 독자에 대한 다음과 같은 책임론이 사뭇 분분하다. 관행을 방패 삼거나 수단을 가리지 않고 책을 많이 팔려는 출판사의 상략(商略)이 문제다. 번역과 저술에서 실제로 맡은 구실이 미미하거나 사실상 없으면서도 제 이름을 걸어놓은 사람들이 문제다. 대리번역자나 대필작가가 지금 와서 나서는 게 볼썽사납다. 유명인이 쓴 책이나 베스트셀러에만 몰리는 독자들이 문제다.

그런 책임론에 대해 출판계 차원의 솔직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게 아쉽다. 출판인도 아닌 필자가 결례를 무릅쓰고 대신 자성하고 싶다. 첫째, 다매체 환경에서 출판의 위상 문제다. 정지영씨는 방송인으로서의 명성을 발판 삼아 번역자(?)가 되고 한젬마씨는 저자(?)로서의 권위와 유명세에 힘입어 방송인으로 입신했다는 차이는 있지만, 두 사람 모두 영상매체 친화적인 브랜드다. 책이라는 매체 자체의 완결성보다는, 더 인기 있는 다른 매체에 기대려는 출판의 초라해진 자화상을 반성하고 싶다.

둘째, 출판기획의 본말(本末) 문제다. 책도 치밀한 '기획'을 거쳐 시장에 내놓는 '상품'이며 출판업은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활동이다. 그러나 영리 추구 목적의 출판기획에도 본과 말이 있다. 오로지 팔릴 것만을 생각하는 게 그 근본인 것 같지만 책의 존엄에 대한, 어떤 의미에서는 시대착오적인 존중이야말로 진정한 근본이다. 근본을 살피지 못한 점을 반성하고 싶다.

셋째, 베스트셀러의 맹점이다. 베스트셀러 집계의 기술적 공정성과는 별도로 애당초 저자나 번역자 자체가 거짓이거나 교묘한 사재기 상술이 개입할 여지가 있는 한, 베스트셀러 순위는 신뢰하기 힘들다. 고백하건대 필자는 베스트셀러의 요인을 분석하는 글을 쓰곤 했다. 그러나 만일 저자나 번역자 자체가 거짓이거나 사재기로 만들어진 베스트셀러라면 그 요인 분석은 고의가 아니었을지라도 거짓의 공범 구실을 한 셈이니, 이 자리를 빌려 사과드리고 반성하는 바이다.

넷째, 겉으로는 고급 문화인 행세를 하면서 속으로는 진작부터 고쳤어야 할 해묵은 관행을 계속 끌고 가는 이중성을 반성하고 싶다. 출판은 마땅히 지원받아야 할 부문이라며 물적.제도적 지원을 요구할 때는 한껏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정작 출판인과 출판계가 먼저 스스로 개선해야 할 것들을 과감하게 고치는 노력에는 인색하지 않았는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진리를 새삼 떠올릴 때다.

'삼국지'의 한 대목을 떠올려 본다(이하 황석영 '삼국지'(창비)에 바탕을 둠). "이 책은 우리 촉땅에서는 삼척동자도 다 외우고 있는데, 새로 지은 책이라니 무슨 소리요? 이 책은 전국시대에 어느 무명씨가 지은 것이오. 조 승상은 도적질에 능하니 그를 표절해 자신이 지은 것처럼 그대를 속인 것이오." 사신으로 파견된 장송이 조조가 지었다는 '맹덕신서'를 한 번 훑어보고 외운 뒤 조조의 신하 양수에게 한 말이다. 이 일을 전해 들은 조조는 언성을 높여 "옛 사람 생각이 나와 우연히 들어맞았던 게지!"하고 즉시 '맹덕신서'를 찢어 불살라버리라 명했다. 저자이자 발행인인 조조가 보여 준 최소한의 자존심이 차라리 그립다.(표정훈 출판평론가)

07. 02. 09.

P.S. 참고로, '출판평론가'의 자녀교육법이 궁금하신 분들은 '여성동아'(2006년 5월호)의 기사를 참조해보시길(http://www.donga.com/docs/magazine/woman/2006/05/08/200605080500037/200605080500037_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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