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사란 무엇인가 - 역사와 언어의 새로운 만남
나인호 지음 / 역사비평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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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역사의미론에 의하면, 언어가 과거의 실상, 다시 말해 역사적 실재를 구성한다. 이는 이중의 의미에서 그렇다. 먼저, 역사가 실제로 일어난 것을 의미한다면, 여러 행태의 언어 행위 혹은 언어적 매개체 없이는 어떤 사건도 완성될 수 없고 어떤 정치·사회적 시스템도 존재할 수 없다. 모든 정치·사회·경제적 행위는 말하기와 답변, 계획의 발표, 논쟁, 밀약, 명령, 규약의 작성, 합의와 이견의 선언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처럼 모든 사건의 발생, 모든 제도의 형성과 변화는 이미 언어에 의해 규정된다. 또한 역사가 일어난 것에 대한 이야기를 의미한다면, 언어 없이는 어떤 역사적 사실, 나아가 과거의 정치·사회적 현실 세계 전반의 전달과 재구성도 불가능하다. 유물이나 유적 등의 비언어적 전승물도 결국 언어에 의해 구성되고 유의미하게 경험될 수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과거의 사실은 언어가 없다면 존재할 수도 경험할 수도 없고, 그것에 대해 어떤 지식도 얻을 수 없다."(14)


# 개념사 : 언어와 정치·사회적 실재, 혹은 언어와 역사의 상호 영향을 전제한 채 이 둘이 서로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탐구하는 역사의미론(historical semantics)의 한 분야


1부 개념사란 무엇인가?


1장 개념이란 무엇인가?


"실재와 실재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는 개념 사이에는 기본적으로 균열과 불일치가 존재한다." "따라서 개념사가에게 개념이란 정의의 대상이 아니라 해석의 대상이다. 니체가 『도덕의 계보』에서 말했다시피, 정의될 수 있는 것은 단지 비역사적인 개념뿐이다. 언어와 실재의 관계는 모호하다. 역사적으로 언어도 변화했고 현실도 변화했다. 언어의 변화는 현실의 변화에, 현실의 변화는 언어의 변화에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이 둘은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양자의 변화는 시간적으로 일치하기도 하지만, 다르게 전개되기도 한다. 또 양자 간에는 변증법적 지양도 일어나지만, 해결되지 못할 대립 관계가 존재할 수도 있다. 개념을 해석한다는 것은, 언어의 역사와 실재의 역사 간의 이런 모호하고도 복잡한 긴장 관계를 탐구한다는 의미이다. 개념 속에는 이렇게 모호하고도 복잡한 긴장 관계가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다."(28-9)


"그런데 '실재'란 달리 보면 후대의 역사가가 만든 언어적 구성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언어와 실재 사이의 긴장을 탐구한다는 것은, 곧 통시적으로 볼 때 과거 행위자가 자신이 경험한 세계를 표현해놓은 사료의 언어와, 그가 경험한 것 이상의 사실을 표현하려는 현재 역사가의 언어가 갖는 긴장 관계를 탐구한다는 의미이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언어와 실재 사이의 긴장이란 과거 행위자들이 당연한 현실이라고 생각했던 것, 즉 '과거의 현재'와 오늘날의 우리가 재구성한 당시의 현실, 즉 '현재화된 과거' 사이의 긴장이기도 하다." "이 난제를 대하는 개념사의 연구 방식은 과거 행위자가 경험한 '현재'를 표현하고 있는 사료의 언어와 우리가 경험한 '과거'를 표현하고 있는 현재의 언어 사이의 차이점을 밝히고, 전자를 후자로 번역하면서 양자가 어느 지점에서 수렴될 수 있는가를 밝히는 절차로 이루어져 있다."(29-31)


"이념사와 관념사에 의하면, 이념/관념은 지속적으로 사용되면서 실제 역사적 맥락, 즉 각 시대의 구체적 정치·사회적 맥락을 초월해 핵심적 의미의 내용이 변하지 않는 단단한 실재이다." "독일 이념사를 이론화한 미국의 러브조이는 관념사란 〈널리 확산된 채 많은 사람들의 생각(mind)의 뿌리〉가 된 관념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러브조이가 말하는 '관념'이란, 여러 사상들로부터 구체적인 정치·사회적 맥락과 다양한 이데올로기적 불순물 및 역사적 영향을 제거한 뒤 남는 순결한 '단위관념'을 의미한다. 그리고 '단위관념'은 마이네케의 '이념'과 마찬가지로 시대와 역사적 맥락을 초월해 핵심적 의미 내용이 변하지 않은 채 여러 시대의 여러 사상('관념복합체')들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치는 상수常數이다. 또한 상수로서의 관념은 초경험적·초역사적·형이상학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생성, 발전, 완성이라는 고유의 장기지속의 역사를 갖는다."(35-6)


"개념사는 이와 달리 개념을 인간의 경험 세계, 즉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초월해 불변하는 단단한 실재가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서로 다른 의미를 내뿜고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유연하고 유동적인 언어적 구성물로 본다. 이념/관념사가들과 달리 개념사가들은, 어떤 이가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어떤 어휘를 어떤 의도로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중시한다. 즉 특정한 정치·사회적 맥락 속에서 일어나는 '개념'의 이데올로기적 사용과 의미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코젤렉이 마이네케의 이념사를 비판하면서 말했듯이 〈개념사는 그 속에서 개념이 발전하고 특정한 화자에 의해 사용되는 특정한 상황의 특정한 언어 사용〉을 연구한다. 따라서 이념/관념사가들에게는 '오류'의 원인이 되는 개념(관념/이념)의 다양성과 모호함, 혼란스러움이 개념사가들에게는 '개념'의 진정한 특징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관념(이념)'은 진화할 수 있지만 '개념'은 진화할 수 없고, 단지 변화하는 것이다."(38-9)


# 개념사와 담론사의 차이점

1. 개념은 특정 담론의 구성 요소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특정 담론의 의미론적 상징이 된다. ('대중'이나 '국민'이라는 개념이 특정 담론에 사용되었을 때, 주어진 맥락 외에도 다른 많은 의미를 연상시킬 수 있다.)

2. 개념은 전혀 다른 담론과 담론 사이를 이동한다. ('계몽'은 17세기에는 날씨 담론의 맥락에서 사용되다가 18세기에 철학과 역사 담론으로 편입되었다.)

3. 개념들은 경우에 따라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의미구조를 형성한 채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 등장하는 담론들에게 반복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기독교도'와 '이교도', '서양'과 '동양' 같은 비대칭적 반대개념들이 그러하다.)

4. 개념사는 담론사와 달리 역사적·사회적 실재가 언어적 구성물에 불과하다는 포스트모더니즘적 관점을 취하지 않는다.


"개념은 단어 이상이다. 모든 개념은 단어가 될 수 있지만, 역으로 모든 단어가 개념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단어는 어떻게 개념이 되는가? 실용적 차원에서 언급하자면 한 단어가 다의적多意的이면 다의적일수록, 한 단어가 모호한 뜻을 내포하면 할수록 단어는 개념에 가까워진다. 코젤렉은 말한다. 〈단어는 사용되면서 명확해질 수 있다. 반면 개념은 개념이 되기 위해 다의적이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단어와 개념의 차이는 결정적으로 그것의 의미들이 정의定意될 수 있는가 아니면 단지 해석의 대상인가에 달려 있다. 〈단어의 의미들은 정의에 의해 정확히 결정되지만, 개념들은 단지 해석할 수 있을 뿐이다.〉 이를테면 명확하게 정의될 수 있는 순수한 기술적 용어나 전문용어들은 개념이 아니다. 반면 각 시대의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진행되는 공적 논쟁에 동원되는 용어들은 개념이 된다. 그 용어들은 항상 다의적이며, 더 나아가 그 안에 상호 모순과 충돌을 일으키는 논쟁적인 의미들을 쌓고 있기 마련이다."(51-2)


"개념사는 실재의 변화와 이와는 다르게 전개되는 개념의 변화를 관련지어 탐구함으로써 과거의 인식지평과 현재의 인식지평을 포괄하는 통일적인 역사 서술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루치앙 횔셔의 '산업화' 개념 연구를 보면, 1900년 이전의 유럽인들에게는 산업 발전이 필연적으로 다른 경제 부문─특히 농업 부문─의 희생을 가져올 것이라는 경제철학이 일반적이었다. 더 나아가 이렇게 불균형한 경제 발전은 반드시 사회적 위험을 초래하리라는 우려가 '산업주의'라는 개념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하지만 1900년경 관세 논쟁의 와중에 일부 자유주의적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새로운 사고의 전환이 일어났다. 그들에 의하면, 산업적 생산방식의 원리는 단지 산업(상공업)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고 농업 등의 다른 경제 분야, 나아가 문화 및 사회 전반에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산업화'는 '근대화'라는 목적론적인 역사철학의 본질적 요소가 되었다."(64-5)


2장 개념사의 다양성


# 개념사 연구 방법론

1. 코젤렉의 기본개념의 구조사 : 오랫동안 반복되어 사용됨으로써 체계화된 의미론적 구조를 파악한다. 개념의 의미구조는 경제나 정치 같은 물적 구조들과 더불어 언어 행위라는 사건의 전제조건을 만든다.

2. 라이하르트의 사회사적 의미론 : 코젤렉이 다루지 않은 일상용어를 연구대상으로 삼아, 개념의 사회적 영향력을 분석한다. 코젤렉이 말한 '언어의 사회사', 즉 개념의 공시적 분석을 특별히 강조한다.

3.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핵심어 연구 : 핵심어, 즉 기본개념은 자본주의 사회의 헤게모니 관철을 위한 문화적 도구라는 전제하에 일상 영역에서 관철되는 개념의 의미론을 탐구하면서 개념사의 정치를 지향한다.

4. 페레스의 '기본 개념이 아닌 개념'의 연구 : 기본개념과 불평등한 의미론적 대립구도 속에서 열등한 타자와 우월한 자신을 규정하는 비대칭적 반대개념들에 주의를 기울여, 그 안에 내재된 모순, 모호함, 공백 등을 추적한다.


"코젤렉에 의하면 한 개념의 여러 의미들은 시간적으로 서로 다른 시대에서 연유한다. 따라서 〈개념은 다양한 시간의 층을 지닌다. 다시 말해 개념의 다양한 의미들은 서로 다른 시간의 지속성을 갖는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한 개념에 포함되어 있을 수 있는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에 주목한다고 했다. 마치 아날 학파가 역사를 단기적 사건의 층위, 그 밑의 중기적 변화, 그리고 보다 깊은 곳의 장기지속이라는 세 범주로 구분했듯이, 코젤렉은 개념의 역사를 개별 언어 행위(사건), 중기지속, 그리고 장기지속이라는 시간적 구조 속에서 파악한다. 따라서 그에 의하면 한 개념이 다양한 역사적 맥락에서 사용될 때 다양한 의미들이 나타나는 것은, 단순히 정치적 당파성, 사회적 이해관계, 혹은 그 개념의 정치·사회적 기능상의 차이 때문만이 아니라, 그 속에 내포된 각 의미들의 다양한 시간적 지속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다."(73-4)


"여기서 근대적 시간에 대한 코젤렉의 중요한 명제인 '경험공간과 기대지평의 균열'을 언급해보자. 18세기가 경과되면서 유럽인들의 의식 속에서 경험의 공간과 기대지평 사이의 간극은 점점 빠른 속도로 멀어지게 되었다. 다시 말해 이 시기를 경과하면서 현존하는 정치·사회적 실재에 대한 경험과 미래에 달성되어야 할 이상적 상태에 대한 기대 사이의 간극이 점점 멀어지고, 새로운 경험이 빠른 속도로 축적되는 것과 비례해서 기대지평은 빠른 속도로 점점 더 먼 미래를 향해 멀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의식 변화는 바로 개념의 의미 변화를 통해 가시화되었다. 예를 들어 '공화주의' 개념은 18세기 이후 더 이상 현존하는 정치적 사실 관계를 묘사하는 개념이 아니라 미래에 달성되어야 할 완전한 공화국의 이상이라는 기대를 담은 개념이 되었다." "이처럼 개념 속에는 과거의 경험, 현재의 실재, 미래에 대한 기대가 포함되어 있다."(79-80)


"라이하르트의 개념사는 코젤렉의 개념사 연구에 아직 남아 있는 〈이념사적 잔재〉를 떨쳐버리고자 했다. 라이하르트는 특히 코젤렉의 개념사 연구가 이론적 의도와 달리 그 실행에서 지식인들과 대사상가들의 텍스트에 치중하는 〈정상에서 정상으로의 이동〉이라는 종래의 이념사적 관행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라이하르트에 의하면, 개념사 연구가 의미를 지니려면 무엇보다 개념의 사회적 대표성, 다시 말해 개념에 담긴 의미론의 사회적 영향력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개념의 사회적 대표성은 보통 사람들이 사용했던 일상용어의 연구를 통해 비로소 정확히 측정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무엇보다 일상 생활 세계에 초점을 맞추면서, 개념 속에 어떤 일상적 경험과 기대가 반영되었는가, 그리고 일상의 경험과 기대가 개념화되는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말하기 전략이 조직화되고, 어떤 이데올로기적인 요소들이 담기게 되었는가에 초점을 맞춘다."(83-4)


"윌리엄스는 역사의미론을 표방하면서도 단어의 의미 변화와 역사적 콘텍스트 사이의 관련성을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이런 취약점에도 불구하고─아니면 바로 그 취약점 때문에─윌리엄스의 개념사는 독특한 면모를 보인다. 코젤렉이나 케임브리지 학파의 연구가 개별 개념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개념과 개념 사이의 관계, 더 나아가 여러 개념들 사이에 어떤 구조적 특징이 있는가를 거의 밝혀주지 못하고 있는 데 비해, 윌리엄스는 그것들 사이의 상호 관계, 즉 특정 단어들의 〈내적 구조〉를 조명한다. 윌리엄스에 의하면 특정 단어들의 의미의 확장, 변형, 전위는 유관 단어들에서 보이는 비슷한 변화와 상호 영향 관계에 놓여 있다." "윌리엄스의 핵심어 연구는 개별 개념의 개념사를 넘어서 정치·사회적 어휘 체계의 통합적 재구축을 통해 전체 담론의 특징적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담론사적 개념사로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100-2)


"페레스가 보기에 코젤렉의 기본개념의 구조사는 그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코젤렉의 근대성 개념에 담긴 보편주의이며, 다른 하나는 기본개념이라는 개념에 내재된 보편주의이다. 주지하듯이 보편주의는, 정확히 말해 유럽(서양)보편주의는 다른 한편 유럽예외주의, 이와 관련하여 오리엔탈리즘과 같이 타자들을 불평등한 대립 관계 속에서 규정하는 정신적 습속과 함께 유럽(서양)중심주의의 핵심적 요소이다." "문제는 그의 근대(성) 개념이 '경험공간'과 '기대지평'의 관계에서 형성된 보편적 구조로 환원됨으로써 시간적·공간적 특수성이 무시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 구체적인 역사주체들, 그리고 '경험공간과 기대지평의 균열'에 대한 그들의 구체적인 경험이 도외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유럽(서양)보편주의는 비유럽인들과 유럽(서양)사회 내에 존재하는 사회적 소수자들의 경험을 주변화 혹은 배제시키고, 그들을 침묵하는 하위주체로 만들어버린다."(112-3)


3장 근대 비판으로서의 개념사─코젤렉의 성찰적 역사주의에 대하여


"중세사가 브룬너에게 개념사란 서구에서 발원한 자유주의에 대항하고 독일 민족의 전통을 복원하기 위한 지적·정치적 도구였다. 그는 19세기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가 구축한 '헌정국가(Rechtsstaat)'를 역사적 필연성이 결여된 우연한 에피소드로 치부하면서, 이런 부르주아적 자유주의 질서는 이제 나치 독일의 민족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질서에 의해 대체될 운명에 처해 있다는 신념을 견지했다. 이런 정치적 신념에 기초하여 그는 자유주의 역사 서술에 의해 왜곡된 역사학을 구원할 새로운 수단을 찾았는데, 그것이 개념사였다. 그는 부르주아 자유주의적 규범에 의해 각인된 현존하는 '기본개념'들이 과거의 실재를 왜곡시킨다고 비판하면서, 이 시대착오주의를 수정하기 위한 방편으로 과거의 개념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복원할 것을 주장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그에게 개념사란 단순히 역사 연구의 한 방법이 아니라 역사가에게 부과된 인식론적 명령이었다."(137-8)


"1945년 이후 독일 개념사는 탈나치화 과정을 겪었다. 이제 독일 개념사는 서구적 근대성의 극복이라는 민족주의적 과제로부터 벗어나, 범 유럽적 관점에 입각해 근대 산업사회와 전통사회 사이에 놓인 인식의 심연을 이어주려는 사회사적 개념사로 변화했다." "콘체는 브룬너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역사에 나타난 언어 혼란에 대한 불쾌함〉을 없애기 위해 개념을 명료하게 정리하려 했다. 그리고 이런 의도는 과거의 실재를 객관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학술 개념의 구성이라는 목표로 구체화되었다. 이는 역설적으로 근대 학술 개념을 불신하고 과거 행위자의 언어를 복원시키려 했던 브룬너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갔음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하여 콘체는 언어를 근대화라는 사회사적 진행 과정의 지표로서만 간주하는 전형적인 사회사가의 태도를 견지했다. 그에게 개념의 변화는, 이를테면 경기지수의 변화와 유사하게 사회구조의 실제적 변화를 보여주는 증거물이었다."(139-40)


"반면 코젤렉은 이런 실재론을 극복했다. 그는 언어와 실재 간의 차이, 개념 변화의 역사와 사회사적 진행 과정 간의 내용적·시간적 차이를 강조했다. 이런 전제 아래서 양자의 긴장 관계 및 복잡한 상호 얽힘의 관계를 섬세하게 읽어내려 했다. 이런 태도는 언어가 근대화라는 사회사적 진행 과정의 지표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이를 추동했던 요소라는 명제로 구체화되었다. 여기에는 그의 독특한 역사인식론이 작용했다. 그에 따르면, 역사적 실재 혹은 진실이란 사료의 언어와 현재 역사가의 언어, 즉 과거 행위자의 개념과 현재 역사가의 학술적 개념, 그리고 이에 내포된 과거의 인식지평과 현재의 인식지평 모두를 포괄하거나, 혹은 그 사이에 있는 그 무엇이다. 따라서 근대화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은 양자 모두의 관점에서 다차원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처럼 코젤렉은 브룬너의 텍스트 해석학적이고 정신사적인 방법과 콘체의 사회사적이고 실증주의적인 방법 모두를 넘어선 개념사 연구 모델을 정립했다."(140-1)


"홉스봄은 서구에서 두 가지 혁명, 즉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통해 본격적으로 전통사회가 해체되고 현대사회가 출현하게 되었음을 강조한다. 서구 사회 근대화의 원동력을 정치혁명과 급진적 산업화에서 찾는 그의 '이중혁명' 이론은 서구 역사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를 대변하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코젤렉은 이 대전환기를 특징짓는 또다른 혁명적 변화를 상정했다. 바로 '언어혁명'이다. 코젤렉은 대략 1750년에서 1850년까지의 기간을 이른바 '말안장의 시대(Sattelzeit)', 말년에는 '문턱의 시대(Schwellenzeit)'라고 은유적으로 명명하면서, 이 기간 동안 유럽 사회는 전통적 개념 세계에서 근대적 개념 세계로의 근본적인 변화, 즉 언어혁명을 겪었다고 말한다." "전통적인 세계관과 상징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꾼 이 개념의 혁명적 변화야말로 서구인들이 근대화 과정에서 경험한 가장 근본적인 문화적 혁명으로서, 근대 서구 사회를 탄생시킨 또 하나의 원동력이었다."(142-3)


# 개념의 혁명적 변화 과정을 함축하는 네 가지 범주

1. 민주화 : 신분사회가 해체되면서 많은 개념들의 사용 범위가 엘리트층을 넘어 하부계층으로 확대되었다.

2. 시간화 : 많은 개념들의 의미 내용 속에 이전에는 없던 미래의 기대와 목표를 지닌 운동 개념으로 변화되었다.

3. 이데올로기화 : 많은 개념들이 내용적 구체성, 혹은 역사적 사실과 사회적 실재와의 직접적인 관련성을 잃고 점점 더 추상화되었다.

4. 정치화 : 더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참여하고, 동원되면서 해당 용어들(과 반대개념들)의 정치사회적 활용도와 영향력이 증대되었다.


"〈역사들로부터 더 이상 아무것도 배울 수 없지만, 동시에 역사학은 가르침을 줄 수 있다〉는 역사주의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코젤렉은 탈이데올로기화된 새로운 역사철학, 즉 '역사' 개념에 담긴 함의들에 대한 새로운 비판적 성찰을 주장했다. 그리고 역사학은 이 '성찰적 역사주의'에 기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성찰적 역사주의'의 목표는 메타역사인 '역사'를 경험 세계 속에서 역사화하자는 것이다. 이 목표는 이중의 전략을 지니고 있다. 그 하나는 역사철학자들의─결국은 비역사적이고 형이상학적인─거대서사를 해체하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박한 역사학자들에게 '역사적 인식'이란 결국 메타역사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후자의 맥락에서, 그는 역사적 문제제기 없이 사료 자체는 아무런 역사적 인식을 주지 못하며, 역사적 문제제기는 역사적 경험을 뛰어넘는 메타역사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계몽했다."(164)


2부 여섯 개의 개념으로 근대 읽기


1장 근대─근대 개념의 새로운 이해를 위한 단상


"비교문학가이자 문예사가인 굼브레히트는 '모던'이라는 용어를 통해 개념화될 수 있는 것들을 이 용어에 내포된 세 가지 의미 유형을 가지고 구분했다. 먼저 '현 교황'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전의'라는 뜻과 반대되는 '현재의'라는 의미 속에서 '모던'은 그때그때 현재마다 바뀔 수 있는 제도를 대표하는 개념·대상·사람을 지칭한다. 둘째, '낡은'과 반대되는 '새로운'의 의미 속에서 '모던'은 한 시대로 체험된 현재를 지칭한다. 이때 '모던'은 '과거 시대와 구별되는 새로운 시대'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영원한'과 반대되는 '일시적인'이라는 의미 속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특정 시기의 현재가 '미래에 다가올 현재의 과거'로서 생각된다. 이때의 '모던'은 '미래를 준비하는 이행기'의 의미를 지닌다. 물론 이런 구분은 단지 '모던'이라는 말을 통해 개념화된 복잡한 의미의 층위들을 분석하기 위한 이념형적 구분에 불과하다."(172-3)


"서양의 근대 개념에는 무엇보다 서양인들의 새로운 역사적 시간 경험에서 비롯된 '근대'라는 시대 자체의 역동성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다. 근대가 '새로운 시대'인 것은 근대가 성취한 문명적 내용 때문이 아니라, '시대 스스로 끊임없이 새롭게 변화하는 과도기'이기 때문에 과거와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새로운 시대'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를 포함한 동양의 근대 개념에서는 서양문명과의 조우로 인한 정치·사회·경제·문화적 변화의 내용이 갖는 새로움이라는 함의가 강조된 반면, 서양의 근대 개념에서는 무엇보다─사후적 관점에서 회고한 것이 아니라─당대인들이 경험한 '시대 자체의 완전한 새로움'이라는 함의가 강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시대 자체의 완전한 새로움'이란 단순히 연대기적으로 '새로운 시대', 곧 '새로운 역사적 시기(period)'라는 의미를 넘어, 이전에는 없던 '신기원적 시대(epoch)'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180-1)


2장 문명과 문화─핵심어로 읽는 유럽인의 근대적 정체성


"고대 로마의 식자층에게 civilis란 '미개한', '야만적인', '군사적인', '형사처벌적인' 것의 반대개념을 의미했으나, cultus/cultura는 그런 용도로 쓰이지 않았다. 후자는 경작되지 않은 농토와 경작된 농토의 차이처럼 모든 인간의 정신적 개발(발전)의 가능성을 전제로 한 차이만을 강조하기 위해 쓰였다. 특히 civilis라는 개념 속에는 농촌적 삶보다 도시적이고 정치적으로 조직된 삶의 방식이 우월하다는 의식이 담겨 있다. 이런 점은 오늘날에도 '야만'의 반대개념으로서 '문화'보다 '문명'이 더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음을 고려해볼 때 현대적 '문명' 개념에도 일정 부분 지속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civilis는 정치 공동체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연관되어 있었다. 이처럼 문명은 정치적 뿌리를 갖고 있음에 비해, 문화는 그렇지 못했다. cultura는 정치적 함의를 내포하지 않은 채 개인으로서의 인간 활동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191-2)


"그러나 16~17세기를 지나면서 '문명' 개념의 뿌리가 된 civilitas가 civilite, civility 등으로 번역되면서 이상적인 '정치 공동체' 내지 '도시 시민의 공동체 생활'이라는 전통적인 정치적 의미보다는 점점 더 '예절바름', '공손함' 같은 도시사회 구성원(시민)의 도덕적 덕목을 지칭하는 데 쓰였다. 또한 civilitas는 상태나 성취의 결과보다는 과정을 강조하는 civilize, civiliser 등으로 번역되면서 유럽 내부나 유럽 외부의 '야만적' 타자들을 도덕적·정신적으로 교육시키자는 함의가 내포된 개념으로도 쓰였다. 이런 변화는 종래의 cultus/cultura 개념에 내포된 개인의 교육, 개인의 도덕적이고 지적인 활동의 의미와 일치한다." "이제 cultura는 부분적으로 (정치사회) 공동체 생활과 관련된 정치 규범적이고 실제적인 부분까지 포함된 인간의 모든 활동을 포함하는 광의의 의미로 확산되어 쓰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cultura 개념은 많은 점에서 새로이 변화하는 civilitas 개념과 중복되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192-3)


"또한 두 개념은 학술 담론에서 유럽중심주의적 세계상을 확립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문명과 문화야말로 유럽적인 것, 나아가 미국까지 포함한 서양적인 것의 특수성을 나타내는 결정적 요소로 간주되었다. 이런 관념에 기초하여 단선적 진보의 등급에 따라 세계 각 민족들의 문명 및 문화의 정도를 측정하고 서열 짓는 분류 작업들이 행해졌다. 전통적인 '문명' 민족 대 '야만' 민족의 이항 대립적 표현 외에 새로운 개념들이 첨가되면서 더 복잡한 분류가 행해지곤 했다. '비문명적' 민족과 '야만' 민족이 구별되었으며, '야만인' 외에 '역사 없는 민족', 혹은 '반半문화' 민족, '완전문화' 민족 등의 술어가 만들어졌다. '문명' 민족과 '야만' 민족의 구별은 다른 뉘앙스의 '자연 민족' 대 '문화 민족'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야만 상태-미개 상태-문명 상태'라는 다단계적 분류가 학문적으로 시도되기도 했다. 이처럼 문화와 문명이야말로 세계 속 유럽의 지도적 위치를 결정하는 척도가 되었다."(203-4)


3장 미국과 아메리카니즘─독일인이 정형화한 미국


"대개 타자는 부정적으로 규정되고 정형화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의 주제인 ‘미국’ 개념은 다르다. '미국'은 한편으로 '독일'과 반대되는 부정적 이미지로 정형화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 독일인들의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투영된 긍정적 이미지로 졍형화되기도 했다. 이런 내용적 모호함과 더불어, 여타의 비대칭적 반대개념들과 달리 '미국'은, 독일에서 끊임없이 논쟁의 대상이 되면서 정치적·이데올로기적 대립과 사회적 갈등을 표현하고 또 이를 심화시키는 전형적인 기본개념이었다. 그 가운데 미국은 '낯선 땅'이라는 공간 개념에서 '근대성의 상징', 따라서 독일의 미래를 선취하는 탈영토화된 시간 개념으로 바뀌었다. 개념의 변화는 '아메리카니즘'이라는 신조어를 통해 표현되었다. 이처럼 '미국'은 단순히 타자 지칭을 위한 비대칭적 반대개념일 뿐만 아니라, 독일 사회의 변화를 이끈 역사적 선도 개념의 역할도 수행했다."(227-8)


4장 여자─비대칭적 반대개념의 병리학


"근대의 특징은 '남자'와 '여자'라는 일상어가 추상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개념으로, 더 나아가 정치적 슬로건으로 바뀌었다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경험하는 서로 다른 남자들과 여자들이, 혹은 너무나 이질적인 궁정사회의 남녀와 농촌사회의 남녀가 생물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또한 철학적으로 하나의 통일된 속성, 즉 '남성성'과 '여성성'을 지닌 존재로 추상화되고 불평등하게 구별된 것은, 근대 부르주아지 사회에 들어서였다. 이와 더불어 '남자'와 '여자' 개념의 사회적 위상도 변했다. 두 개념은 부르주아지 사회와 국민국가의 도덕적·정치적 질서를 지탱해주는 핵심적 규범의 역할을 수행했다. 이 단계가 바로 '정상적인' 남자의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 '정상적인' 여자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했던, 따라서 이런 분업을 여자가 올바르게 수행하는 한 여자의 가치가 인정되었던 단계이다."(264)


"1890년대부터 1920년대에 이르는 세기 전환기를 특징짓는 중간층 남성들의 지적·문화적 운동이자 정치·사회적으로 성장하는 '여자'의 사회적 의미를 부정하던 '세기말 모더니즘'은 아버지 세대에 대한 분노와 부정, 자신의 현재적 남성 정체성에 대한 과도한 불안 속에서, 새로운 남성성을 갈구했다. '순수한' 남성성, '새로운 남자', 남자만의 유토피아가 구상되었고, 남자만의 우정과 사랑이─물론 동성애까지 포함하여─강조되면서, 마침내 '여자' 개념이 적대적 개념으로 변했다. 이제 더 이상 '여자'는 열등하지만 우월한 남자의 역할과 남성성의 정체성을 위해 필요한 존재로 인식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여자' 개념은 이른바 '남자에 속하지 못하는 자', 즉 유대인 및 여타의 소수인종, 여성적 남성 동성연애자, 노숙자, 범죄자, 평화를 외치는 정치가, 위선적 남성 등과 함께 진정한 남자가 아닌 모든 이들을 지칭하는 광범위한 외연을 지닌 기표로 확대되었다."(265-6)


"'여자'가 제거되어야 할 적을 지칭하는 기표로 전화된 것은 '남자'가 정치적인 개념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남자' 개념의 정치화 현상은 이미 제1차 세계대전 전야에 시작되었고, 전쟁을 거치면서 확립되었다. '남자' 개념의 정치화 현상은 방황하는 남성성이 마침내 안식을 얻은 이른바 '남성동맹'이라는 하위문화가 사회에 뿌리내림으로써 시작되었다."(286) "제1차 세계대전을 경과하면서 남성동맹의 전투 강령은 더욱 구체화되었다. '여성적인 것'과 '여성'은 정치적으로 부르주아지 사회와 그 정치적 구성물,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평등의 원칙과 의사소통, 그리고 개인의 자유와 동일시되었다." "마침내 여성적 민주주의를 이기고 남성적 파시즘이 승리했다. 역사상 그 어느 곳에서도 파시즘 국가만큼 남자다움이 과시되고 남성성이 고양된 적은 없었다. 특히 남자의 몸이 핵심적인 정치적 상징으로 고양된 것은, 인종주의가 민족주의와 결합되어 나타난 독일 나치즘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290-2)


"그러나 더 큰 역설을 언급하자. 파시스트 체제가 패한 1945년 이후 유럽 각국에서는 탈파시스트화, 탈나치화가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여자'는 민족의 순결성을 더럽힌 부역자를 지칭하는 부정적 기표가 되었다. 대표적으로 나치 독일군과 관계를 맺은 프랑스 여자들에 대한 강제 삭발과 폭행, 그리고 강간 행위를 꼽을 수 있다. 분노한 프랑스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가한 폭력을 애국적 행위로 미화했다. 더 나아가 파시즘 자체를 비난하기 위해 또 한 번 '여자' 개념이 동원되었다. 나치는 여자의 본성인 색욕을 전유한 '동성애자'라는 전통적 의미에서 '동성애자'로 비난받았을 뿐만 아니라, 많은 영화 속에서 '나치 팜므 파탈'이 창조되었다. 이처럼 여자들을 부역자로 규정짓고 파시즘을 여성화시키면서 남성사회는 부르주아적 전통을 회복했다. 이후 남자의 전통적 헤게모니는 본질적으로 지속되고 있으며, 그 속에서 여자는 정형화된 하위주체로 머무르고 있다."(297)


5장 역사─근대적 역사 개념의 새로움


"헤로도토스 이후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역사는 미래 세대를 위해 서술되었다. 헤로도토스는 〈인간계의 사건이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잊혀져가고 그리스인과 이방인이 이룬 놀라운 위업들을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될 것을 우려하여〉 『역사』를 썼다." "투키디데스는 〈인간성으로 말미암아 반복되거나 유사할 것이 틀림없는 미래에 대한 해석을 위해 과거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얻고자 하는 연구가들에게 본인의 역사가 유용하다고 판단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저서가 〈영원한 유산〉으로 저술되었음을 강조한다." "중국의 경우도 유사했다. 공자가 『춘추』에서 확립한 유교적 역사해석학은 도덕 정치적 이념에 입각해 있었다. 잘한 일은 칭찬하고 잘못된 일을 호되게 꾸짖는다는 이른바 포폄褒貶의 태도가 그것이다. 향후 중국의 역사 해석은 항상 도덕 정치적 정통성이라는 전제로 했으며, 역사는 도덕적 가르침과 정치적 교훈을 주는 교사의 역할을 했다."(309-11)


"대략 18세기 후반 이전의 서양에서는 '역사'라는 집합단수 대문자 역사는 무척 낯선 것이었다. 단지 그 경험 주체('누구의')나 서술 대상('무엇에 대한')과 연관되어 사용되었던 '역사들'이 자연스러운 표현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 이후, 특히 코젤렉에 의하면 독일어권에서는 대략 1780년 이후로, 집합단수 '역사' 개념이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전체적 역사', '역사 자체', 혹은 '역사 일반'이나 '즉자 대자적 역사'라는 새로운 표어들과, 종래에는 복수명사였으나 이제 단수명사로 쓰이기 시작한 '역사'라는 단어는, 모두 근대적 집합단수 역사 개념을 의미하는 표현들이었다. 동시에 이 새로운 집합단수 '역사' 속에 이전까지 Geschichte라는 말로 표현되던 실제로 일어난 일(사건, 사실)의 의미와 Historie라는 말로 표현되던 실제로 일어난 일에 대한 서술(이야기) 및 지식의 의미가 하나로 통합되었다. 그럼 이렇게 정의된 집합단수 '역사'에는 어떤 함의들이 새롭게 내포되었는가?"(312-3)


"역사라는 하나의 개념 속에 실제로 일어난 일과 그에 대한 서술(이야기) 및 지식이 통합되었다는 데 주목해보자. 이는 곧 사건들이 진행되는 과정과 그것을 인식하는 과정, 혹은 객관적 실재와 그에 대한 주관적 성찰이 하나로 수렴되었음을 뜻한다." "예를 들어 제1차 세계대전이 역사적 실재가 되려면 단순히 1914년에서 1918년의 기간 동안 일어났던 여러 전투 및 여타 사건들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이것들을 역사적 실재로 인식할 수 있는 역사 자체라는 주관적 인식 범주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는 동시에 역사 자체라는 인식 범주는 역사 자체라는 객관적 실재가 전제되어야만 존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말을 일반화시켜보면, 역사란 그것이 인식되어야 비로소 존재할 수 있으며, 동시에 역사를 인식하려면 역사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집합단수 역사 속에는 역사 자체라는 선험적 범주가 없다면 모든 개별 역사들은 경험될 수도 또한 인식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314)


"마지막으로, 이처럼 역사가 실재 개념이자 동시에 성찰 개념으로 수렴되면서 내용적으로도 분질적인 변화가 일어났음을 지적할 수 있다. 이제 역사는 스스로 주체가 되어 자기 자신을 성찰의 대상으로 삼고 관장하는 최종심급이 되었다. 〈세계의 심판으로서 세계사〉(실러)나 〈세계사가 행하는 일〉(헤겔) 같은 표현이 유행했다. 이전에는 역사 자체라는 것을 경험하거나 인식하기 위해 신神이나 자연 혹은 운명(티케Tyche, 운명의 신으로 역사 자체를 관장하는 주체로 인식됨) 같은 역사외적 존재들에게 의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주체가 되는 역사'라는 생각이 집합단수 역사로 표현되면서 이런 역사외적인 존재들이 역사로 대체된 것이다. 이제 역사는 과거 오로지 신만이 지녔던 전지전능함과 절대적 정당성, 신성함을 지닌 주체가 되었다. 이런 생각은 특히 프랑스 대혁명을 거치며 일반화되었다."(315)


"근대적 역사 서술에서는 과거처럼 교훈을 얻기 위해 역사적 사례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배열할 것인가 하는 수사학적 문제가 아니라, 특정 사건과 특정한 상황의 역사적 맥락을 만들어내는 일련의 시간과 그 연속을 재구성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개별 사건들과 특정 상황들은 시간의 연속 속에서 단순한 연대기적 배열을 뛰어넘어 그것들 사이의 내적 관계를 구조화시키는 설명 맥락, 즉 플롯에 따라 새롭게 질서지어졌다. 그리고 이 통일적인 서사구조를 통해 역사가 체계적으로 이해되며, 개별 사건들에 내재된 보편적인 역사적 의미와 객관적인 역사적 진실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과학적 역사의 발전은 역사 서술의 심미화와 상응한다. 개별 역사들에 내재된 전체적 맥락과 보편적 의미, 즉 집합단수 역사의 객관적이고 실제적인 진실을 밝히기 위해 역설적으로 개연성을 높이는 서사적 통일성이 강조되면서, 과학을 지향하지만 동시에 허구적 거대서사가 되어버린 근대 역사학이 등장한 것이다."(323-4)


# 포스트모던 역사학의 관점 : 집합단수 역사를 전제로 한 거대서사, 서구(유럽)중심주의, 과학의 권위로 포장된 역사 서술 및 지식의 권력화 현상, 다양한 역사 이야기를 불가능하게 하는 집합단수 역사 자체에 대하여 비판


6장 자본주의 정신─신조어로 표현된 세기말의 근대 비판


"1902년 독일의 국민경제학자 좀바르트가 『근대 자본주의』에서 처음으로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개념을 사용했을 때나, 그 2년 뒤 좀바르트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이 개념을 말했을 때, 이 개념은 단순히 사회 근대화를 위한 발전 이데올로기의 표어로서 사용되거나, 혹은 자본주의적 근대문명을 찬양하고 이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의도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사용한 '자본주의 정신' 개념 속에는 오히려 서구의 혁명적인 근대화 과정에 대한 불쾌함, 혹은 비관주의적 근대 진단과 심각한 위기의식으로 점철된 당대인들의 근대문명에 대한 비판적 담론이 응축되어 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자본주의 정신' 개념을 사용하면서 당대인들의 근대문명 비판 담론을 특정한 방향으로 조직화하려 했다. 이처럼 '자본주의 정신' 개념은 원래 근대문명에 대한 비판적 의식의 표현이자 동시에 문명 비판의 도구로서 기능했다."(329-330)


"베버에 따르면, 서구의 개신교 시민계급은 오늘날 〈근대적 삶에서 가장 강력한 힘인〉 자본주의를 탄생시킨 근대적 주체이다. 이제 모든 인류의 생활 방식을 규정하는 〈근대적 경제 질서라는 우주〉를 탄생시킨 세계사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 근대적 주체는 '세속적 금욕주의'에 기반을 둔 자아를 잃어버렸다. 〈승리하는 자본주의〉는 자신의 〈기계적 토대〉 위에서 〈고도의 정신적 문화 가치〉를 집어던졌다. 이제 근대적 주체는 자신이 만들어낸 제도화된 합리성, 즉 관료주의적 메커니즘의 〈단단한 강철 구조물(stahlhartes Gehause)〉 속에 감금되고 말았다. 이렇게 자아를 상실한 근대적 주체의 문화적 태도는 배금주의 및 물질주의, 유대인의 〈천민자본주의적〉 에토스, 경쟁의 열정에 입각한 스포츠적 성격의 영리 추구, 공리주의 같은 무목적적이고 비윤리적인 공허한 '자본주의 정신'에 의해 특징지어진다."(346-7)


"베버의 '자본주의 정신' 개념은 비관주의적인 근대문명 비판의 상징으로 기능하면서 동시에 매우 강한 정치적 함의도 담고 있었다. 이 개념은 비주류로 밀린 민족주의적이고 종파주의적인 독일 자유주의자들의 정치·사회 비판 담론과 보편적인 근대문명 비판 담론을 통합시키는 매개 고리 역할을 했다. 이를 통해 자아를 상실한 독일 개신교 부르주아지에게 한편으로는 민족의 지도계급으로서의 사명, 즉 '금욕적 합리주의'에 입각한 인격체(Personlichkeit)로 발전해 대중민주주의 시대의 새로운 문화적 에토스를 지도하는 독일 민족의 예언자로서의 소명을 각성시키려는 베버의 염원이 표현되고 있다. 하지만 베버의 '자본주의 정신' 개념은 역설적이게도 영미 세계 민족주의의 보편사적이고 시민종교적인 자기정당화에 기여했다. 특히 미국의 퓨리타니즘 신화와 냉전 시대 아메리카니즘의 자기정당화는 베버의 '자본주의 정신' 개념에 힘입은 바가 크다."(347-8)


"좀바르트는 베버와 마찬가지로 근대적 문명을 창조한 주체가 자신의 결과물에서 소외되었음을 강조한다. 그가 보기에 오늘날의 〈고도자본주의 시대〉는 〈관료주의적 거대 경영〉 속에서 기계화 되어버렸다. 그런데 베버와 달리 좀바르트는 그 근본 원인으로서 근대적 주체의 자아 상실 대신 자아 분열과 변질을 강조한다. 그는 근대적 주체를 특징짓는 두 가지 '자본주의 정신' 중 〈사업 정신〉은 소수의 〈영웅적〉인 것과 제도의 틀 안에서 기계화된 〈대중적〉인 것으로 분열되었고, 〈시민 정신〉은 자연과학과 근대기술을 탄생시킨 〈게르만-로마적 정신〉과 상인적 〈유대 정신〉으로 분열되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 분열의 결과는 전반적인 〈영웅 정신〉의 소멸과 〈시민 정신〉의 탈종교화와 탈윤리화, 마침내 '자본주의 정신' 일반의 〈상인 정신〉으로의 변질이다. 이것이 창조적이었던 〈초기 자본주의〉에서 물화된 〈고도 자본주의〉 단계로의 이행 과정이다."(351-2)


"좀바르트는 〈상인 정신〉을 가장 대표적으로 구현한 주체를 때로는 유대인에게서, 때로는 영국이 대표하는 '서구 문명'에서 찾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영미 세계의 퓨리타니즘 정신과 유대 정신을 동일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처럼 좀바르트의 '자본주의 정신' 개념은 수세에 몰린 자유주의자들과 문화비관주의적이고 보수적인 교양시민들의 잡다한 신경질적 근대 비판 담론들을 통합시켜주는 매개 고리 역할을 했다. 정치적으로 그의 '자본주의 정신' 개념은 반유대주의와 반영反英 감정 및 반국제주의를 고취시키면서 독일 민족을 정치사회적으로 통합하려 한 급진민족주의의 표어로 기능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좀바르트의 '자본주의 정신' 개념은 당시 독일 부르주아지의 근대화 과정에 대한 고통스러운 경험, 그로 인한 노이로제적 위기의식, 그리고 역사의 종말론적 반전에 대한 갈망을 잘 표현해주는 지표라는 점에서 핵심적 의의를 지닌다."(3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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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반양장) - 현실적 급진주의자를 위한 실천적 입문서
사울 D. 알린스키 지음, 박순성.박지우 옮김 / 아르케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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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조직가로서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의 세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서부터 시작해 나간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어떤 의미에서도, 우리가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는 모습으로 세상을 바꾸어 나가려는 우리의 바람을 약화시키지 않는다. 우리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모습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필수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체제 내부에서 일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체제 내부에서 일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말에 따르자면, 새롭게 한 발을 내딛는 것이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모든 혁명적 변화는 반드시 우리 대중들이 변화를 수동적으로나마 수용하고 거부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난 다음에야 일어난다." "만약 우리가 그들과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리고 우리와 연합하도록 그들을 격려하지 않으면, 그들은 보수화될 것이다."(28-9)


"우리의 젊은이들은 의미 있는 행동에 반드시 필요한 예비절차에 대해 조바심을 낸다. 효과적인 조직화는 즉각적이고 극적인 변화에 대한 욕구, 또는 내가 다른 곳에서 말한 것처럼 혁명이 아닌 계시에 대한 요구 때문에 좌절된다." "급진적 실용주의의 이름으로,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현 체제 안에서 그 모든 억압에도 여전히 거리낌 없이 정부를 고발하고 정책들을 공격하고 반대파의 정치 기지를 만들기 위해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을, 물론 정부가 괴롭히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싸울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자유는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는 정치적 광기를 제외하고는 다른 출발할 곳이 없으므로, 바로 현재의 체제에서부터 출발할 것이다. 혁명적 변화를 원하는 우리 중 일부는 혁명이 개혁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이는 너무도 중요하다. 정치적 혁명이 대중적 개혁이라는 지지 기반 없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상정하는 것은 정치에서는 불가능을 요구하는 것이다."(29-31)


1장 지향


"정치적 현실주의자들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그들이 보는 세상은 눈에 보이는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의해 주로 움직이는 권력정치의 현장이며, 그곳에서 도덕은 편의주의적인 행동과 이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사학적인 근거일 뿐이다." "법규들은 '공공선'이라는 고결한 목적을 갖고 만들어지지만, 그 이후 실제적으로는 공공의 탐욕이라는 동기 하에 집행된다. 이 세상에서는 불합리성이 인간에게 마치 그림자처럼 들러붙어서 옳은 일들이 그릇된 이유로 행해진다. 일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우리는 정당화를 위하여 옳은 이유들을 긁어모은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서는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불가피하게 다른 문제를 만들어낸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서는 영원히 행복한 결말도, 영원히 슬픈 결말도 없다." "지평선이란 영원히 저 멀리에 있을 뿐이며, 우리를 앞쪽으로 손짓해서 부르고 있을 뿐이다. 이는 삶 자체를 좇는 것과도 같다. 이것이 바로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고, 당신의 출발점이다."(52-4)


"일단 있는 그대로의 세상으로 들어서고 나면, 잘못된 생각들을 하나씩 버릴 수 있다. 우리가 버려야 하는 가장 주요한 환상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사물의 양면성을 분리시켜 파악하는 인습적 사고방식이다. 지적으로 우리는 모든 것이 기능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행동할 때의 우리는 모든 가치와 문제들을 분할하고 고립시킨다. 우리는 주변의 모든 것을 빛과 어둠, 선과 악, 생과 사와 같이 결코 분리할 수 없는 반대개념의 짝으로서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어가기 시작한다. 행복과 불행은 분리될 수 없다." "모든 것은 삶이라는 거대한 노아의 방주 안에서 짝지어져 있다." "이러한 모순 또는 반대개념과 그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상호 작용하는 긴장에서부터 창조가 시작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모든 긍정에는 부정이 있으며, 반드시 뒤따라오는 부정적인 것 없이는 어떠한 긍정적인 것도 없고, 부정적 측면을 갖지 않은 어떠한 정치적 낙원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54-5)


2장 수단과 목적


"행동하는 사람은 수단과 목적의 문제를 실용적이고 전략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는 목적에 대해서는 그것이 성취될 수 있는지 또한 성취를 위해 치러야만 하는 대가만큼의 가치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만 묻고, 수단에 대해서는 그것들이 잘 작동할지에 대해서만 묻는다." "현실적인 혁명가는 〈양심은 관찰자들의 덕목일 뿐 행동하는 사람의 덕목은 아니다〉라는 괴테의 말을 이해할 것이다. 실질적인 행동 과정에서는 개인적인 양심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인류에게 이득이 되는 결정이라는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상황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언제나 인류의 이득을 위한 선택을 해야만 한다. 행동은 집단의 구원을 위한 것이지 한 사람의 개인적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개인적 양심을 위하여 집단의 이득을 희생시키는 사람은 '개인적 구원'에 대한 남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사람들을 위하여 '부패'될 만큼 그들을 염려하지 않는다."(66-7)


"링컨은 자신의 첫 번째 취임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저는 지금 합중국에서 존재하고 있는 노예제도에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간섭할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제게 그렇게 할 적법한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렇게 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습니다'라고 선언하였던 연설들 중 하나를 저는 인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를 후보로 지명하고 선출한 사람들은 제가 이를 비롯하여 많은 유사한 선언을 했으며 결코 그것들을 번복하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그런 결정을 한 것입니다.〉 입장을 전환한 링컨의 윤리적 태도에 대해 아마도 비판을 가할 사람들은, 원칙이나 입장이라고 불리는 것들에 대해 사람이 한결같고 헌신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움직이지도 변하지도 않는 세상이라는 이상할 정도로 비현실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다. 실제 인간사의 정치에서, 일관성은 미덕이 아니다. 옥스퍼드 대사전에 따르면, 일관성이 있다는 것은 〈정지하고 있거나 움직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74)


3장 단어들에 대해


"왜 동일한 의미를 전달하지만 평화적인 그리고 그토록 부정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단어들을 사용하지 않는가? 이러한 질문이 정당하게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단어들을 대체할 수 없는 몇 가지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먼저, '힘(권력)'이라는 한 단어를 사용하는 대신 '에너지를 활용함'과 같은 단어의 조합을 사용하게 되면 그 의미가 희석된다. 순화된 동의어들을 사용함에 따라 본래의 단어들에 결합되어 있는 비통함과 고뇌, 애증, 고통, 승리감이 사라진다. 그 결과로 남는 것은 무균무취의 활기 없는 인생의 모조품에 불과하다. 실제 인간사의 정치에서 우리는 노예들과 황제들을 다루고 있지, 신전의 처녀 사제들을 다루지 않는다." "힘(권력)이 아닌 다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우리가 다루고 있는 모든 것의 의미를 바꾸는 것이다. 일찍이 마크 트웨인이 말한 것처럼, 〈적절한 단어와 거의 적절한 단어의 차이는 번갯불과 반딧불의 차이와도 같다.〉"(95)


"타협은 허약함, 우유부단함, 고매한 목적에 대한 배신, 도덕적 원칙의 포기와 같은 어두움을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단어이다. 순결이 하나의 덕목이었던 과거의 문화에서, 사람들은 여자가 (순결을 잃은 것을) 〈타협했다〉고 표현했다. 이 단어는 보통 윤리적으로 불미스럽고 추잡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조직가에게 타협은 핵심적이고 아름다운 단어이다. 타협은 언제나 실질적인 활동 속에 존재한다. 타협은 거래를 하는 것이다. 거래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숨 고르기, 보통 승리를 의미하며, 타협은 그것을 획득하는 것이다. 당신이 무에서 출발한다면, 100%를 요구하고 그 뒤에 30% 선에서 타협을 하라. 당신은 30%를 번 것이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사회는 끊이지 않는 갈등 그 자체이며, 갈등은 간헐적으로 타협에 의해서만 멈추게 된다. 일단 타협이 이루어지면, 바로 그 타협은 갈등, 타협 그리고 끝없이 계속되는 갈등과 타협의 연속을 위한 출발점이 된다."(107)


4장 조직가의 교육


"조직가들을 교육시키려고 노력했던 경험은 어디에서도 내가 바라던 만큼 성공적이지 않았지만, 나와 나의 동료들에게는 상당한 교육이 되었다. 우리는 항상 자기반성의 상태에 놓여 있었다." "경험과 소통이라는 영역은 조직가에게 근본적인 것이다. 조직가는 자신의 청중이 경험한 범위 내에서만 소통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떠한 소통도 불가능하다. 조직가는 패턴, 보편성, 의미를 끊임없이 찾아감으로써 언제나 하나의 체계화된 경험을 형성해 나가고 있다. 조직가는 자신의 상상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사건들 속으로 부단히 들어가려고 하며, 그들과 공명하면서 그들이 사건들을 자기 자신의 정신적 소화기관 속으로 밀어 넣음으로써 더 많은 경험을 축적하려고 한다. 조직가가 그들이 경험을 아는 것은 소통을 위해 필수불가결하다.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서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조직가가 비정상적일 만큼 거대한 체계화된 경험을 발전시키기 시작한다는 것은 분명하다."(122)


"(인생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불확실성이라고 생각하는) 조직가는 낡은 것으로부터 새로운 것을 쉬지 않고 창조한다. 그는 모든 새로운 생각들이 갈등으로부터 발생한다는 것을, 또한 인간이 새로운 생각을 가졌던 때에는 언제나 바로 그 생각이 과거와 현재에 존중되고 있던 생각들에 대한 도전이었으며 필연적으로 갈등이 몰아쳤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호기심, 불경, 상상력, 유머 감각, 자유롭고 편견 없는 마음, 가치의 상대성과 인생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태도, 이 모든 것은 서로 융합되어, 창조를 자신의 최대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종류의 인물을 만든다. 그는 창조를 인생의 의미에서 진정한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지도자와 조직가의 기본적인 차이이다. 지도자는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권력을 쌓기 위해 그리고 사회적이면서도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권력을 잡고 휘두르기 위해 행동한다. 그는 스스로 권력을 원한다. 조직가의 목표는 다른 사람이 사용할 권력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134)


5장 의사소통


"대중조직에서 당신은 주민들의 실제 경험 바깥으로 나아갈 수 없다. 예를 들자면 나는 이런 질문을 받아 왔다. 왜 당신은 가톨릭 신부나 기독교 목사나 유대교 목사에게 유대-기독교 유리나 십계나 산상수훈에 의존해서 말을 걸지 않습니까. 나는 결코 그런 말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나는 그들에게 그들 자신의 자기이익, 그들 교회의 복지 그리고 심지어는 교회의 물질적 재산에 기초해서 접근한다. 내가 그들에게 도덕주의적 방식으로 접근했다면, 이는 그들의 경험 바깥에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내 말을 듣기만 하고, 기껏해야 매우 호의적으로 나에게 내가 얼마나 고귀한가를 말할 것이다." "협상에서처럼 설득을 위한 소통은 다른 사람의 개인 경험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이는 상대방의 중요 가치나 목표를 알아내고 당신의 행동 방침을 바로 그 표적에 맞추는 것이다. 당신은 어떤 쟁점의 합리적인 사실이나 윤리에만 단순히 기초해서는 어느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다."(146-7)


"효과적 소통에서 또 다른 실천원칙은 사람들이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모세가 하느님에게 하느님이 해야만 하는 것을 말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떤 조직가라도 공동체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래도 많은 경우 조직가는 공동체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꽤 괜찮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 있으며, 공동체가 그러한 행동을 하도록 제안하고 유도하고 설득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무엇을 해야 할지 공동체에게 말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에 그는 함축적인 질문들을 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어느 누구도 체면을 잃지 않도록 하면서, 또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제외되지 않도록 하면서 잘 다듬어진 질문들이 계속된다. 제안된 모든 행동방침들의 모든 약점들이 질문을 통해 검토된다. 언젠가는 누군가에 의해 행동방침 Z가 제안되고, 다시 질문을 거친 다음에 그것의 장점들이 드러나면서 그것으로 결정이 난다."(150-1)


6장 시작의 순간


"조직가가 해야 할 일은 기성질서가 조직가 자신을 '위험한 적'이라고 공개적으로 공격하기에 이르도록 기성질서를 교묘하게 부추기고 괴롭히는 것이다. '적'이라는 말은 조직가를 인민의 편에 놓고 무산자들과 동일시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 말은 조직가에게 특별한 자질을, 곧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기성질서에 대항하여 그 자신의 힘을 강하게 세워줄 수 있는 수단을 그에게 주게 되는 특별한 자질을 제공할 정도는 아니다. 여기에서 또다시 우리는 (사랑이 아니라) 권력과 공포가 믿음의 형성에서 핵심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부족 부분은 '위험한'이라는 낙인을 기성질서가 사용함으로써 해소된다. 바로 그 한마디 말 속에 기성질서는 조직가에 대한 두려움, 조직가가 기성질서의 절대력에 위협적인 존재라는 두려움을 담아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비로소 조직가는 자신의 '출생증명서'를 가지게 되었고, 활동을 시작할 수 있다."(162)


"종종 조직화를 시작할 때 부딪히는 큰 어려움 중의 하나는 사람들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되면, 조직가들은 민주적인 사회를 위한 결단을 내릴 역량이 일반 대중에게 있는가 하는 회의를 마음 속으로 가지게 된다." "조직가나 선교사, 교육자, 또는 다른 어떤 외부인이라도 그들에게 분명하지 않은 문제는 간단히 말해서 바로 이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열악한 상황을 바꿀 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때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사람들이 조직화되어 변화를 일으킬 힘을 가지게 되면, 그때 그들은 변화의 문제에 부딪히면서 어떻게 변화를 일으킬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소통과 교육을 위한 첫 번째 필요조건은 주민들이 알려고 하는 이유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힘을 위한 도구나 환경을 창조하는 것이야말로 이유를 제공하고 지식을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만든다."(167-9)


7장 전술


"갈등 전술 속에는 조직가가 언제나 보편적인 것으로 바라보아야만 하는 일정한 규칙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상대방을 골라내어 표적으로 만든 뒤에 '고정화' 시켜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복잡하고 상호 연관되어 있는 도시 사회에서 어떤 특정한 나쁜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을 골라낸다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끊임없이 그리고 어느 정도는 정당한 책임 전가가 일어난다. 도시화, 복잡한 대도시 행정체계, 상호 결합된 대규모 기업들의 복잡성, 도시·군 및 대도시의 행정당국들 사이에 서로 얽혀 있는 행정업무 등이 특징으로 부각되고 있는 요즈음, 적을 정확하게 식별해 내는 어려운 문제는 점점 더 자주 발생할 우려가 있다. 만일 집중해서 공격할 표적을 갖고 있지 않다면, 이는 분명 전술상 좋지 못하다." "표적은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언제나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해야만 한다. 책임이 여러 영역으로 분산되는 것을 조직이 내버려 둔다면, 공격은 불가능해진다."(199-200)


"유산자들에 대항한 전쟁에서 기본이 되는 전술은 정치적 대중유술(柔術)이다. 무산자들은 유산자들에게 경직된 방식으로 저항하지 않고, 오히려 잘 계획된 능숙한 방법으로 움직여서 유산자들의 힘의 우위가 그들의 파멸의 원인이 되도록 한다. 예를 들자면, 유산자들은 공공연하게 책임감과 도덕심, 법, 정의의 관리인인 체하기 때문에, 그들은 도덕원리와 규칙을 담은 자신들의 고유한 교본에 따라 살아가라고 하는 압박에 항상 노출될 수 있다. 어떤 조직도, 심지어 조직화된 종교조차도 자신들의 고유한 교본에 쓰여 있는 자구에 맞추어 살 수 없다. 당신은 그들의 규칙과 규범 '교본'으로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 수 있다. 바로 이것을 위대한 혁명가 사도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편지를 쓸 때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새로운 계약을 이행하게 하셨을 따름입니다. 이 계약은 문자로 된 것이 아니고 성령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기 때문입니다.〉"(223)


"일단 싸움이 시작되어 어떤 전술적 행동이 채택되면, 갈등이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의 경험 속에는 이러한 점을 뒷받침해 주는 많은 이유가 존재한다. 너무 오래 끄는 갈등은 지겨운 일이 된다는 사실은 아무리 자주 반복해도 지나치지 않다. 동일한 보편적 원리가 전술 행동이나 특정한 다른 행동들 모두에 적용된다. 인간은 단지 제한된 기간 동안만 어떤 구체적 주제에 대해 관심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이 이러한 이유들 중의 하나이다. 집중, 감정적인 열중, 심지어 신체적 에너지, 흥분되고 도전적이고 매력적인 특별한 경험은 단지 그런 만큼만 지속될 수 있다. 이는 성욕에서 갈등에 이르기까지 인간 행위의 전 영역에서 진실이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지루하고 반복적인 것이 되고, 감정적으로도 단조로운 일이 되며, 심지어 다른 어떤 것보다 더 나쁜 따분한 것이 된다. 전술가가 갈등에 개입하는 순간부터 시간이 그의 적이다."(231-2)


8장 위임장 전술의 기원


"우연, 당신의 행동에 대응한 예상할 수 없는 반응, 불가피성, 즉흥성 등이 전술의 방향과 설정을 결정한다. 분석적 논리는 당신이 서 있는 위치, 당신이 다음에 할 수 있는 일, 당신이 예상할 수 있는 위협과 희망을 평가하는 데 필요하다. 바로 이러한 분석이 당신을 전술의 맹목적 포로가 되지 않도록 해주고 또한 당신을 전술에 뒤따르는 우연한 사건으로부터 보호해 준다. 하지만 전술 그 자체는 행동과 대응행동의 자유로운 흐름으로부터 나타나며 조직가에게 표면상의 혼란을 쉽게 수용할 것을 요구한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조직가는 상황 적응에 유연하고, 진부하지 않아야 한다. 비록 어떤 기회나 붙잡아야 할 수단이 자신이 특정한 시기에 염두에 두고 있던 논점들이 아닌 다른 논점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그러한 기회나 수단에 예민하게 반응해야만 한다. 조직가는 자신이 어떤 계획이나 일정표 또는 구체적 판단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서 혼란에 빠져서는 안 된다."(240-1)


9장 가야 할 길


"행동을 위한 조직화는 현재 그리고 앞으로 10년 동안 미국의 백인 중산계급에 집중될 것이다. 우리 국민의 4분의 3이 경제학적 관점에서나 그들의 자기정체성 관점에서 중산계급이라고 할 때에, 그들의 행동이나 무반응이 변화의 반응을 결정할 것은 분명하다. 중산계급의 대부분을 이루는 '침묵하는 다수'는 행동을 하도록 자극을 받아야만 한다. 침묵과 굴복이 하나인 것처럼, 행동과 발언도 하나이다." "모든 저소득층이 조직화되더라도 그리고 어떤 천재적 조직화를 통해 그들이 모두 하나의 연합체로 단결된다고 하더라도, 그 연합체는 중대하고 기본적이고 필요한 변화를 가져올 정도로 충분히 강력하지 못할 것이다. 그 연합체는 모든 소수자 조직, 소수민족, 노동조합, 정당 또는 작은 조직 등 조직이라면 종류에 상관없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바로 그것은 협력자들을 찾아내는 일이다. 권력의 실제적 활용이라는 차원에서 다른 어떤 대안도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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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 - 정체성 정치를 넘어
마크 릴라 지음, 전대호 옮김 / 필로소픽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들어가는 말


"나는 20세기 미국 정치사를 기독교 신학 용어에 빗대 두 개의 《통치 체제》로 구분하는 것이 유용하다고 제안한다. 첫째는 루스벨트 통치 체제로, 뉴딜 시대부터 1960년대 시민권 운동과 '위대한 사회'(린든 존슨 대통령이 내세운 구호)의 시대까지 이어지다가 1970년대에 소진되었다. 둘째 레이건 통치 체제는 1980년대에 시작되어 현재 기회주의적이고 무원칙적인 대중영합주의에 의해 종결되는 중이다. 각각의 통치 체제는 미국의 미래에 관한 고무적 이미지와 정치적 의제들을 좌우하는 특징적인 원칙들을 동반했다. 루스벨트 체제는, 시민이 위험과 곤경으로부터 서로를 보호하고 기본권의 부정否定에 맞서는 활동에 함께 참여하는 그런 미국을 그렸다. 표어는 연대, 기회, 공적 의무였다. 레이건 체제는 국가의 속박에서 풀려난 가정과 소규모 공동체, 기업이 번창하는 더 개인주의적인 미국을 그렸다. 표어는 자기 신뢰, 최소 정부였다. 첫째 체제는 정치적이었고, 둘째는 반反정치적이었다."(12)


"진보의 중대한 기권은 레이건 시대에 시작되었다. 루스벨트 체제가 끝나고 야심찬 통합 우파가 부상하면서, 미국 진보주의자들은 심각한 과제에 직면했다. 미국 사회의 새로운 현실에 적합하게 과거 시도들의 실패에서 얻은 교훈을 반영하여 미국민이 공유할 미래에 관한 신선한 정치적 비전을 제시하라는 과제에 말이다. 진보주의자들은 이 과제를 수행하지 못했다. 대신에 그들은 우리가 시민으로서 공유하는 바와 우리를 한 나라로 묶는 것에 대한 감각을 완전히 잃은 채 정체성 정치 운동에 몰두했다." 정체성에 매혹되고 집착하는 태도는 그 원리, 곧 개인주의를 강화했다. "루스벨트 진보주의와 이를 지지하는 노동조합들을 상징하는 이미지는 서로 악수하는 두 개의 손이었다. 정체성 진보주의를 표현하는 흔한 이미지는 프리즘이 단일한 광선을 색깔 성분들로 분해하여 무지개를 만드는 모습이었다. 이 두 상반된 이미지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12-3)


"좌파의 정체성 정치는 원래 대규모 민중 계층들─아프리카계 미국인들, 여성들─을 위한 것이었으며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정치 제도를 동원하고 정비함으로써 중대한 역사적 과오들을 바로잡으려 했다. 그러나 그 정체성 정치는 1980년대 즈음에 자기 존중과 점점 더 협소하고 배타적으로 되는 자기 정의定義를 내세우는 사이비정치에 자리를 내주었다 .오늘날 우리의 학교와 대학에서 배우는 것은 그런 사이비정치다. 그로 인한 주요 결과는 젊은이들의 시선이 더 넓은 세상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기 자신을 향하는 것이었다. 젊은이들은 공익에 대해서 생각하고 공익을 실현하려면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준비를 하지 못한 채로 방치되었다. 특히 젊은이들은 자신과 무척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여 공동의 노력에 참여하게 하는 어렵고 생색나지 않는 과제를 맡을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13-4)


"그러나 정체성 진보주의에 대해서 제기할 수 있는 가장 뼈아픈 비난은 그 정치적 입장이 특정 집단들을 보살핀다면서 오히려 그 집단들을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진보주의자들이 소수자에게 추가로 관심을 기울이는 것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소수자들은 권리를 박탈당할 위협이 가장 크니까 말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소수자들을─공허한 인정과 〈찬양〉의 몸짓에 머물지 않고─유의미하게 돕는 유일한 길은 선거에서 승리하여 장기적으로, 정부의 모든 층위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성취하는 유일한 길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하는 메시지로 그들을 한데 모으는 것이다. 그런데 정체성 진보주의는 정반대의 일을 한다." "정체성 진보주의의 역설은 그 입장이 소망한다고 공언하는 바들이 실제로 이루어지도록 사고하고 행동하는 능력을 마비시키는 것에 있다."(15-7)


제1장 반反 정치


"한 혁명은 다른 혁명을 은폐할 수 있다. 역사적 기억 속에서 1989년의 대표적 사건은 소련의 붕괴다." "(소련 붕괴의) 가장 큰 역설은, 냉전의 마지막 10년에 걸쳐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 정치가 진보하는 동안 미국인들이 민주주의 정치의 실행에 투입하는 역량은 점점 더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로널드 레이건은 공개적으로 폴란드의 연대자유노조를 비롯한 친민주주의 세력들을 지지하고 소련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에게 베를린 장벽의 철거를 극적으로 촉구했지만, 미국 내에서 그는 공익이나 공익 달성을 위한 정치 참여을 운운하는 것이 더는 무의미하다고 여기는 민중이 선출한 대통령이었다. 미국에서는 삶을 대하는 새로운 관점이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었다. 그 관점은 사회의 필요와 욕망보다 개인들의 필요와 욕망에 절대적 우선권을 부여했다. 이 부지불식간의 혁명은 지난 반세기 동안 일어난 어떤 역사적 사건보다 더 강력하게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쳤다."(30-1)


"미국 사회는 지나치게 개인적인 부르주아 사회가 되었다. 물질적으로도 그러하고 문화적 신조들에서도 그러하다. 당사자의 선택. 개인의 권리. 자기 정의. 우리는 마치 혼인서약을 읊듯이 이 단어들을 말한다." "(개인주의 신조를 충실히 반영한) 레이건의 교리문답은 어떤 전통적 의미에서도 보수적이지 않다. 의존과 의무를 통한 전통적 결속보다 자기 결정이 우선이라는 점을 공리로 삼으니까 말이다. 자연적인 (가정부터 국가까지의) 집단 소속 욕구가 존재한다는 것이나 우리가 그 욕구를 충족시켜야 마땅하다는 것에 대해서 이 교리문답은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내 것과 네 것을 따지기 위한 어휘는 있으나, 공익을 환기하거나 계급을 비롯한 사회적 실재들을 다루기 위한 어휘는 없다. 이 교리문답이 그리는 그림 속에서 우리는 공간 속에 뿔뿔이 흩어진 채로 제각기 고유한 속력으로 자전하며 고유한 궤적을 따라 운동하는 기본입자들이다."(33-6)


# 레이건의 교리문답

1. 좋은 삶은 독립적인 개인의 삶이다.

2. 부의 분배가 아니라 축적을 우선해야 한다. 

3. 시장이 자유로워질수록, 시장은 더 많이 성장하고 모든 사람을 부유하게 만든다.

4. 독재적 정부나 비효율적 정부 혹은 부당한 정부가 아니라, 정부 그 자체가 문제다.


이 모든 것은 루스벨트 통치 체제에 동반되었던 교리문답과의 근본적 결별이었다. "무릇 교리문답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완고해지고 형식화하다가 결국 사회적 현실로부터 분리되는 경향이 있다. 바로 그런 변화를 미국 진보주의가 1970년대에 겪었다. 공익을 위한 집단적 활동은 합법적인 것이라는 원칙에 더하여 미국 진보주의는 공익 달성을 위한 최선의 길은 언제나 세금, 재정 지출, 규제, 법원의 판결이라는 신앙고백을 추가했다. 1980년대에 이르자, 정부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그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다는 가정을 의문시할 이유들이 셀 수 없이 쌓여 있었다. 베트남전쟁, 워터게이트 사건, 스태그플레이션 앞에서의 무능함 등이 그런 이유들이었다. 위대한 사회에 너무 많은 프로그램들이, 너무 서둘러, 거창한 미사여구와 함께 도입되어 사람들의 기대를 부풀렸고, 그 기대는 실망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40-1)


"그들의 가장 어리석은 행동은 그들의 (또한 나의) 바람이 입법 과정에서 성취되지 않으면 그 과정을 우회하기 위해 법원에 점점 더 많이 의존한 것이었다. 희귀어류 보호부터 낙태와 통학버스 같은 더 민감한 사안들까지 모든 것에 법원의 판결이 비 오듯 쏟아졌다. 진보주의자들은 여론의 동향을 살피고 합의를 이끌어내고 보폭을 좁히는 습관을 상실했다. 그리하여 대중은, 법이 교육 수준이 높은 엘리트들의 전유물에 불과하다는 우파의 주장에 점점 더 귀가 솔깃해졌다. 결국 그 비난이 정착했고, 그때 이래로 사법부 공직 후보자에 대한 인준은 고도로 당파적인 절차가 되었다. 현재 그 절차를 주도하는 것은 우파다. 이 모든 요인들의 복합적 작용으로, 정부의 행위는 비효율적이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역효과를 낸다, 혹은 제멋대로다, 라고 믿는 미국인이 (협력을 원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점점 더 늘어났다."(42)


"레이건의 공화당은 동부의 진보주의적 상류층과 억울함을 느끼는 남부 주민, 민주당을 저버린 중서부 소수민족 육체노동자들, 외곬의 자유시장주의자들, 반공 투사들, 정신 이상에 가까운 음모론자들, 1960년대의 분화적 변화에 밀려난 종교 지도자들, 그리고─이 집단을 경시할 수 없는데─여성주의를 어머니이자 주부인 자신들에 대한 공격으로 여긴 보수적 여성들을 결집했다. 그들이 이룬 집단은 이데올로기적으로나 기질적으로나 통합되기 어려운 연합체였다. 무엇보다도, 미국이 무엇이고 무엇이 될 수 있는가에 관한 공통의 비전이 부재했다. 레이건이 그 비전을 제시하자 공화당은 연합체이기를 그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통합되었으며 선거 승리의 역량을 갖춘 세력이 되었다. 현재 미국 대통령의 특징적인 표현을 빌리면, 이후 공화당은 〈잘 정비된 기계well-tuned machine〉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다. 그리고 최근까지도 그러했다."(48-9)


제2장 사이비 정치


"새로운 반정치적 국가관에 직면한 진보주의자들은 정체성 정치의 덤불 속에서 길을 잃었고 그 덤불에 어울리는, 억울함을 토로하며 분열을 조장하는 차이의 수사법을 개발했다." "진보주의자들은 제도권 바깥에서 작동하는 사회운동들에 매혹되었고 민중을 업신여기는 태도를 발전시켰다." "진보주의자들은 (학생들에게 시민의 책무를 가르치기보다는)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도록 훈련하고 학생 자신의 머리 바깥에 펼쳐진 세계에 무관심하도록 방치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진보 및 급진진보 정치 활동가들은 주로 노동계급이나 농업 공동체 출신이었고 지역의 정치 클럽이나 직업 현장에서 육성되었다. 그러나 그 시절은 지나가버렸다. 오늘날 진보 및 급진진보 정치 활동가들은 거의 다 대학교들에서 육성된다." "이는 진보주의의 전망이 우리의 고등교육기관들에서 일어나는 일에 적잖이 의존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63-5)


"어떤 의미에서 시민권 운동은 더 과거에 있었던 종교적 인종적 소수자 집단들의 투쟁과 공통점이 더 많았다. 양쪽 모두에서 관건은 시민으로서의 평등과 존엄을 인정받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여성주의의 1차 물결과 2차 물결, 그리고 초기 동성애자 권리 운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치면서 전이轉移가 시작되었다. 이제 관심의 초점은 한편으로 우리가 민주 시민으로서 우리 자신을 미국과 동일시하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미국 내 다양한 사회집단들과 우리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 사이의 관계가 더는 아니었다. 시민의 지위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대신에 사람들은 개인적 정체성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인종, 성적 취향, 성별 등으로 물든 유일무이한 난쟁이, 내면의 호문쿨루스를 의미하는 개인적 정체성을 말이다. '내가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존 F. 케네디의 도발적인 질문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되었다."(70)


"원래 신좌파는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구호를 약간 맑스주의 식으로 해석하여, 겉보기에 개인적인 모든 것이 실은 정치적이라는 뜻으로, 권력투쟁에서 벗어난 영역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저 구호를 정반대의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즉, 우리가 정치 활동이라고 여기는 것이 실은 그저 나를, 내가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는지를 표현하는 개인적인 활동일 따름이라는 뜻으로 말이다." "'정체성'은 신좌파를 산산이 분열시켰다. 흑인들은 대다수의 지도자가 백인이라는 점에 불만을 표했고, 여성주의자들은 대다수 지도자가 남성이라는 점을 불평했다. 머지않아 흑인 여성들은 급진주의적 흑인 남성들의 성차별과 백인 여성주의자들의 암묵적 인종차별을 싸잡아 불평하고 있었다. 하지만 흑인 여성들 역시 여성동성애자들로부터 이성애 가족의 자연스러움을 전제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 이 모든 집단들이 정치로부터 바라는 바는 사회정의와 전쟁 종식 그 이상이었다."(79-80)


"건강한 정당 안에서 작동하는 힘들은 구심력이다. 그 힘들은 파벌들과 이해 관심을 모아서 공통의 목표와 전략을 만들어내도록 유도한다. 그 힘들은 공통 이익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혹은 최소한 발언하는 것을 모든 각자의 의무로 만든다. 반면에 운동 정치에서 작동하는 힘들은 모두 원심력이다. 그 힘들은 점점 더 작은 파벌들로의 분열을 유도한다. 단일한 사안에 강박적으로 매달리고 이데올로기적 우월성을 엄숙하게 내세우는 파벌들로의 분열을 말이다." "사안 중심의 운동에서 정체성 중심의 운동으로 관심이 서서히 이동하면서, 미국 진보주의의 초점도 공통성에서 차이로 옮겨갔다. 그리하여 폭넓은 정치적 비전이 밀려나고 그 자리를 사이비정치가, 느끼는 자아와 그 자아의 인정 투쟁에 관한 뚜렷이 미국적인 수사법이 차지했다. 그리고 알고 보니 그 수사법은 생산하는 자아와 그 자아의 이익 투쟁에 관한 레이건의 반정치적 수사법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81-2)


"우리의 상상 속 대학생이 캠퍼스의 정체성 중심 사고방식에 깊이 빠져들수록, 그는 '우리'라는 단어를 더욱 불신하게 될 것이다. 집단들의 차이를 은폐하고 특권층의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서 보편주의자가 사용하는 계략이라고 선생들이 가르쳐 준 그 단어를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학문적 경향들이, 사실상 우리 사회의 전 분야에서 권장되는 급진적 개인주의에 지적인 멋까지 부여한다는 점이다. 삶의 모든 것을 익명의 권력이 주무른다는 신비주의적 사상을 우리의 상상 속 대학생이 받아들인다면, 그가 민주 정치에서 발을 빼고 그것에 빈정거리는 시선을 던지더라도, 그 행동은 완벽하게 정당화될 것이다." "그는 말하자면 '페이스북 정체성 모형'에 사로잡힐 것이다. 이 모형에서 자아란, 내가 '개인 브랜드'와 유사하게 구성하는 홈페이지다. 그 자아는 타인들과 연결되는데, 나는 그 연결들을 나의 재량대로 좋아하거나 싫어할 수 있다."(89-91)


"루스벨트 통치 체제 기간에 집단 정체성은 우리의 정치 시스템이 사회구성원들의 평등한 지위라는 약속을 이행하도록 강제하는 필수 수단으로 인정받았다. 반면에 페이스북 모형의 관심사는 오로지 자아, 바로 나의 자아다. 공통의 역사나 공통의 이익, 심지어 공통의 생각조차도 그 모형의 관심사가 아니다. 오늘날 좌파 성향의 젊은이들은─우파 성향의 젊은이들과 정반대로─자신의 정치적 참여를 이런저런 정치사상들과 관련지을 가능성이 작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이 X로서, 다른 X들에 관심이 있고 X성과 연관된 의제들에 관심이 있어서, 정치에 참여한다고 말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그들은 Y들, Z들과 동맹할 전략적 필요성을 인정하고 어느 정도 공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각자의 정체성은 유동적이며 여러 차원을 지녔고 그 차원들 각각이 인정받을 자격이 있으므로, 동맹은 결코 정략결혼 이상일 수 없다."(93)


"지난 10년 동안 새롭고 매우 의미심장한 어법 하나가 대학교들에서 주류 언론으로 흘러들었다. 그것은 'X로서 말하는데'라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발언자가 특권적인 지위에서 이 사안에 관하여 말한다는 점을 듣는 이에게 알린다. 이 표현은 정의상 비X의 관점에서 유래한 질문들을 차단하는 장벽을 세운다. 그리고 의견 대립을 권력 관계로 규정한다. 결과적으로 논쟁에서 도덕적으로 우월한 정체성을 들먹이고 질문이 들어올 때 가장 강하게 분노를 표현하는 사람이 승자가 된다. 그리하여 과거라면 '나는 A라고 생각해. 그리고 그 근거는 이러이러해'라는 식으로 시작되었을 학급 토론이 지금은 'X로서 말하는데, 네가 B라고 주장하는 것은 나를 모욕하는 거야'라는 형태를 띤다. 만약에 정체성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면, 이런 형태의 논쟁 전술은 완벽하게 합리적이다. 정체성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말은 공평한 대화의 장은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금기가 논쟁을 대체한다."(94)


제3장 정치


"우리의 공적인 삶이 하루가 다르게 더 추해지고 있는 트럼프 집권 이후 진보주의자들이 트럼프에게 저항하기 위해 매우 신속하게 조직을 꾸리는 광경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저항은 본성적으로 반응이다. 저항은 앞을 내다보기가 아니다. 그리고 반反트럼프주의는 정치가 아니다. 나는 진보주의자들이 트럼프의 모든 행보 각각에 대응하는 데 몰두하느라 사실상 그가 원하는 게임을 하게 되는 불상사를 염려한다. 트럼프가 진보주의자들에게 내준 기회를 그들이 잡지─심지어 알아채지─못하게 되는 불상사를 염려한다. 트럼프가 통상적인 공화당 정신과 그나마 얼마 남지 않았던 원칙 있는 보수주의를 파괴해버린 지금, 경기장은 텅 비어있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기억하는 세월을 통틀어 최초로 우리 진보주의자들 앞에 이렇다 할 이데올로기적 적수가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트럼프 너머를 바라보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105-6)


# 민주정치를 재학습하기 위한 4가지 교훈

1. 운동 정치보다 제도 정치가 먼저다.

2. 목표 없는 자기표현보다 민주적 설득이 먼저다.

3. 집단 정체성이나 개인 정체성보다 시민의 지위가 먼저다.

4. 개인주의와 원자화를 막는 시민 교육이 긴요하다.


"정체성 진보주의자들은 선거 승리가 정치 활동의 제일 목표라는 교훈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운동 정치의 마법에 걸려 있다." "미국 헌법의 기틀을 잡은 사람들은 정치 활동이 반드시 협의와 타협을 요구하는 제도를 통해 걸러지도록 만들고, 정치 활동이 빈번한 선거, 견제와 균형, 공무원의 자율성, 군대와 법규의 제정 및 공평한 집행에 대한 시민의 통제로 구성된 시스템에 의존하도록 만들었다. 더구나 이 모든 일이 세 층위의 정부에서 이루어지도록 만들었다. 이것은 정치적 성공을 위해서는 조금씩 쌓아가는 지루한 작업이 아주 많이 필요함을 의미했고, 미국 헌법의 입안자들은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겼다." "낭만주의자들은 이같이 극적이지 않은 정치관을 꺼린다. 그들은 정치를 제로섬 대립─민중과 권력의 대립, 또는 문명과 폭도의 대립─으로 간주하는 쪽을 더 선호한다. 그쪽이 훨씬 더 가슴 설레는 일이기 때문이다."(109-11)


"그러나 운동 정치의 그 어떤 성취도 제도 정치를 통해 무효화될 수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철칙이다. 반대로 제도 정치의 성취가 운동 정치를 통해 무효화되는 것은 민주주의의 철칙이 아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을 개혁한 운동들은 많은 것을 해냈고 특히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을 변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어쩌면 이것이 무릇 운동의 가장 중요한 역할일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운동은 이루고자 하는 구체적인 정치적 목적을 혼자 이뤄낼 능력이 없다. 운동은, 운동의 목표에 공감하지만 기꺼이 느리고 끈기 있게 선거운동을 벌이고 법안을 만들고 협상을 통해 법안을 통과시키고 관료들을 감독하면서 법이 집행되는지 감시하는 시스템 정치가들과 공직자들을 필요로 한다. 마틴 루터 킹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운동 지도자였다. 그러나 힐러리 클린턴이 옳게 지적한 대로, 파벌 정치가 린든 존슨의 노력이 없었다면 킹의 노력은 물거품으로 돌아갔을 것이다."(113-4)


"입법 절차에 대한 불신과 당의 목표 성취를 위해 법원에 의존하는 경향이 심화되면서 민주당 엘리트들은 폭넓은 민중에서 분리되었다." "의제를 법원으로 가져간다면, 당신은 당신의 주장이 절대적인 법에 따라 옳다고 주장하기만 하면 되고 당신의 사건을 배당받은 판사들만 설득하면 된다." "이 전술은 모든 의제를 협상의 여지가 없는 불가침의 정의에 관한 문제로 간주하는 습관을 진보주의자들에게 심어주었다. 또한 이 전술은 불가피하게 반대자들을 다른 견해를 지닌 동료 시민들이 아니라 부도덕한 괴물들로 낙인찍어서 내친다. 더 나아가 이 전술은, 사람들이 서 있는 자리를 확인하고 그들을 설득하려 애쓰고, 사회적 합의를 형성해가는 끈기 있는 작업으로부터 진보주의자들을 해방시켰다." "이 접근법은 공화당 정치인들이 자신들이야말로 민중의 진정한 대변자이며 민주당 정치인들은 고위성직자 계급이라고 주장할 여지를 대폭 열어주었다. 그리고 이 이미지는 대중의 정신 속에 여전히 남아 있다."(117-8)


"민주 정치의 관건은 설득이지, 자기표현이 아니다. '내가 여기 있다. 나는 퀴어queer다'라는 말로는 머리 쓰다듬기나 곁눈질 이상의 반응을 결코 유발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신과 사람들이 모든 사안에 대해서 동의하는 일은 영원히 벌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받아들여라. 민주주의에서는 다른 견해가 항상 존재하리라고 예상해야 한다. 정체성과 연결된 사회운동에 열중할 때 발생하는 결과 하나는 당신이 유사한 생각과 유사한 얼굴과 유사한 학력을 가진 사람들로 둘러싸이는 것이다. 당신이 설득하려는 사람들을 순수성 검사의 대상으로 삼지 말라. 만사가 원칙의 문제인 것은 아니며, 원칙의 문제가 불거졌을 때에도, 대개의 경우 이 원칙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이 원칙 못지않게 중요한 다른 원칙들을 어쩌면 희생시켜야 함을 상기하라. 도덕적 가치들은 결국 완벽하게 맞아 들어가서 전체를 이루도록 제작된 퍼즐의 조각들이 아니다."(121-2)


"선입견과 무관심은 뿌리가 깊다. 대다수 사람들은, 나나 나와 가까운 누군가가 당할 수도 있는 고통이라고 (비록 추상적으로라도) 느끼지 않는 한, 타인들의 고통을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가령, 동성애자 권익 보호 운동은 대중이 이 문제들에 관심을 갖게 했지만, 태도의 변화는 미국 전역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자식들이 부모에게 (때로는 부모가 자식들에게)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고백하며 눈물을 흘리는 동안에 이루어졌다." "반면에 인종은 전혀 다른 문제다. 미국 사회의 인종 분리를 감안할 때, 백인 가족들은 흑인 미국인들이 삶을 볼 기회가 거의 없고, 따라서 이해할 기회도 거의 없다. 나는 흑인 남성 운전자가 아니며 앞으로도 영원히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흑인 남성 운전자의 경험에 공분하려면 나 자신과 그를 동일시할 모종의 길이 더욱더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가 유일하게 공유한 것은 시민의 지위다. 우리 사이의 차이가 강조되면 강조될수록, 그가 당한 학대에 내가 격분할 가능성은 더 낮아진다."(132-3)


"시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선은 자치self-government의 원리에 입각한 교육을 통해 민주적 시민들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그 원리가 행동을 유발하려면, 우리가 타고나지 않은 감정 속에 그 원리가 뿌리를 내려야 한다. 그리고 감정은 가르칠 수 없다. 감정은 우러나도록 유도해야 한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일은 정치 분야가 존재하는 모든 일을 통틀어 가장 기적에 가깝다. 시민적 감정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엔트로피의 지배를 받는다. 시민들 사이의 연대가 열악하거나 약화되면 자연스럽게 정치-아래의subpolitical 애착이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경향이 있다." "민주주의자들이 없는 민주주의는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 그런 민주주의는 타락하여 과두정치, 신권정치, 인종적 민주주의, 부족주의, 권위적 일당독재, 혹은 이것들이 조합된 체제로 된다."(136-7)


"또 한 세대의 시민을 이전 세대와 유사하게 시민으로 키우는 것은 그리 끔찍한 일이 아닐 것이다. 약간의 수정을 거친다면, 옛 모형은 본받을 가치가 있다. 열정과 헌신뿐 아니라, 지식과 논쟁도 그러하다. 당신의 머리 바깥의 세상에 대한 호기심, 당신과 비슷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 미국과 미국의 모든 시민들을 위하는 마음, 그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각오를 본받을 가치가 있다. 우리 모두를 위한 공통의 미래를 상상하는 야심도 그러하다. 이것들을 가르치는 부모나 교육자는 정치 활동─구체적으로 시민을 육성하는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오직 시민이 있을 때만, 우리는 그들이 진보적 시민으로 되는 것을 바랄 수 있다. 그리고 오직 진보적 시민이 있을 때만, 우리는 미국을 더 나은 궤도에 진입시키는 것을 바랄 수 있다. 당신이 도널드 트럼프와 그가 대표하는 모든 것에 저항하고자 한다면, 이것이 당신의 출발점이어야 한다."(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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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 - 자유주의의 본질적인 모순에 대한 분석
패트릭 J. 드닌 지음, 이재만 옮김 / 책과함께 / 201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서론 자유주의의 종말


"자유주의는 실패해왔다. 어딘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충실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는 성공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자유주의가 '더 완전'해질수록 자유주의의 내적 논리가 더 분명해지고, 자기모순이 더 드러날수록 자유주의 주장의 변질인 동시에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실현인 병폐들이 생겨났다. 공정성을 증진하고, 문화와 신념의 다원성을 옹호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자유를 확대하겠다던 정치철학이 실제로는 엄청난 불평등을 낳고, 균일성과 균질성을 강요하고, 물질적·정신적 퇴폐를 조장하고,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자유주의가 얼마나 성공했는지 가늠하는 방법은 자유주의가 달성하겠다던 목표와 정반대되는 목표를 얼마만큼 달성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누적되는 재앙을 우리가 자유주의의 이상에 부응하지 못하는 증거로 여길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가 초래한 폐해가 바로 자유주의의 성공의 징후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21-2)


1장 지속 불가능한 자유주의


"그리스 철학은 파이데이아paideia, 즉 덕성 교육을 폭정을 미연에 방지하고 시민의 자유를 보호하는 주된 방안으로 강조했다." "로마와 중세 기독교의 철학 전통은 한편으로 그리스의 전통을 좇아 폭정을 막는 주된 방향으로 덕성 함양을 강조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지도층의 권력을 제한하는 동시에 정치적 여론을 비공식적으로, 때로는 공식적으로 표현할 길을 (다양한 정도로) 열어두기 위해 제도적 형태들을 개발하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가 자유주의와 연관 짓는 통치의 제도적 형태들 중 상당수, 이를테면 입헌주의, 권력분립, 정교분리, 임의적 통치를 막는 권리와 보호책, 연방주의, 법치, 제한된 정부 등은 적어도 처음에는 근대 이전에 수백 년에 걸쳐 구상되고 개발된 것이다. 개인의 권리를 보호해야 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할 수 없다는 신념은, 비록 언제나 한결같이 인정되고 실천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중세 유럽의 철학적 성취였다."(46-7)


"그렇지만 자유주의의 성취는 대부분의 경우 본래 공유하던 어휘와 개념을 재규정하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인간학적 가정에 입각해 기존 제도를 식민화하는 방법으로 달성한 것이다." "오래전부터 자유는 정치체 안에서나 개인의 영혼 안에서나 폭정을 미연에 방지하는 자치의 조건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따라서 자유에는 개인 차원에서 욕구를 스스로 제한하는 규율과 훈련이 필요하고, 이에 상응해 정치체 차원에서 자치의 기술을 증진시키는 덕목들을 가르치는 사회적·정치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여겨졌다." "근대의 현저한 특징은 이 오래된 정치관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자유주의의 토대를 놓은 사상가들의 주요 목표는 국내 평화를 위해 비합리적이라고 결론 내린 종교와 사회의 규범을 해체하는 것이었다. 이로써 안정과 번영을 증진하고 궁극적으로 개인의 양심과 행동의 자유를 증진할 것으로 그들은 내다보았다."(47-8)


# 근대 자유주의적 사고와 실천 방안

1. 마키아벨리 : 정치의 토대를 (공동선과 정치적 화합 같은) '높은 것'에 대한 염원이 아닌 (계급별 이해관계에 기반한 대립 같은) '낮은 것'의 신뢰성에 두고자 한다.

2. 홉스 : 개인주의적인 합리성이 오래된 사회 규범과 관습을 대체할 수 있다고 보았고, 합리성에서 이탈하는 경우는 국가의 법적 금지와 제제로 바로잡을 수 있다.

3. 베이컨 : 자연과학으로 대표되는 유용한 실용 학문을 장려, 확대한다면, 자연의 지배력과 한계에 인간이 종속되어 있는 상태를 극복하고 삶의 조건을 개선할수 있다.


"첫 번째 혁명이자 자유주의의 가장 기본적이고 뚜렷한 측면은 주의주의主意主義 이념─개인의 규제받지 않는 자율적 선택─을 정치의 토대로 삼는다는 것이다."(56) "주의주의에 따르면, 자유주의는 '권리'를 옹호하지 그 어떤 의미에서도 특정한 '좋음'을 옹호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는 토대에 대해 중립적이지 않다. 경제학 강의가 인간을 그저 효용을 극대화하는 개별 행위자로 기술할 뿐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실은 학생들에게 영향을 끼쳐 더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유주의는 사람들에게 헌신을 피하고 유연한 관계와 유대를 받아들이라고 가르친다. 자유주의에 따르면 정치적·경제적 관계만 대체 가능하고 끊임없이 재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장소와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국가와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 종교와의 관계를 막론하고 모든 관계가 그러하다. 자유주의는 느슨한 연계를 조장한다."(60)


"근대 이전 정치사상,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에서 영향을 받은 정치사상은 인간을 포괄적인 자연계 질서의 일부로 이해했다." "그러나 두 번째 혁명이자 자유주의를 구성하는 두 번째 인간학적 가정은 이런 인간의 자기제한이라는 요건을 거부했다. 자유주의는 먼저 인간을 구속하는 자연계 질서 관념을 대체했으며, 그런 다음 인간 본성 관념 자체를 대체했다. 자유주의는 자연과학과 인간과학, 그리고 인류와 자연계의 관계를 변형하기 시작했다. 이 혁명의 첫 번째 물결─르네상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근대 초 사상가들이 처음 일으켰다─은 인간이 자연과학과 변형된 경제체제를 이용해 자연을 지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두 번째 물결─대체로 여러 역사주의 학파들이 특히 19세기에 일으켰다─은 고정된 인간 본성이라는 관념을 인간의 '가소성'과 도덕적 진보 역량에 대한 믿음으로 대체했다."(61-2)


"아이러니하게도 자율성의 영역을 더욱 완전하게 보호하려면 국가의 역할을 더 확대할 수밖에 없다. 자율성의 영역에서 자유를 누리려면 가족부터 교회까지, 학교부터 마을과 공동체까지, 비공식적이고 익숙한 기대와 규범으로 행동을 통제하는 모든 형태의 결사와 관계로부터 해방될 필요가 있다. 이런 통제는 대체로 정치적인 통제가 아닌 문화적 통제였다─법은 가족과 교회, 공동체를 통해 배우는 비공식적인 행동 기대치인 문화 규범만큼 포괄적이지 않았고, 대체로 문화 규범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개인들이 이런 결사들로부터 해방됨에 따라 실정법을 통해 그들의 행동을 규제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자유주의는 결국 두 가지 존재론적 요소, 즉 해방된 개인과 통제하는 국가에 이른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이 두 실체를 완벽하게 묘사했다. 국가는 오로지 자율적인 개인들로만 구성되고, 이 개인들은 국가에 의해 '억제'된다."(65)


2장 개인주의와 국가주의 통합하기


"홉스와 로크 모두 우리가 사회계약을 맺는 까닭은 단지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를 더 안전하게 행사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또한 두 사람 모두(특히 로크) 정치체 이전 상태에서는 다른 개인들의 무법 경쟁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다루기 어렵고 적대적인 본성 역시 자유를 제한한다고 본다. 로크 철학의 주된 목표는 국가의 비호를 통해 우리의 자유─욕구를 충족하는 능력으로 정의된 자유─의 전망을 확대하는 것이다. 법은 자치를 위한 규율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를 확대하기 위한 수단이다." "자유주의 이론에 따르면, 개인들이 사회계약을 통해 국가를 '창출'함과 동시에 실질적 의미에서 자유주의 국가가 자유(환경에 대한 지배력을 확대하는 인간의 능력으로 점점 더 정의된 자유)를 확대할 조건을 마련함으로써 개인들을 '창출'하는 것이다. 현대의 숱한 정치 보도가 시사하는 것처럼 개인과 국가가 본질적으로 충돌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자유주의는 양자 사이에 아주 깊은 연계를 확립한다."(79-80)


"듀이는 '공공 사회주의'를 요청했고, 크롤리는 '노골적인 사회주의'를 지지한다고 썼다. 그러나 이들이 개인의 불가침성과 존엄성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린다면 잘못일 것이다. 두 사람 저술의 일관된 주제는 '구舊자유주의'의 갑갑하고 제한적인 개인주의를 제거해야만 더 진실하고 더 나은 형태의 '개성'이 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비자유의 족쇄들─특히 경제적 퇴보와 불평등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나야만 새롭고 더 나은 개성이 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절정에 이르면 '여럿'과 '하나'가, 우리의 사회적 본성과 우리의 개성이 조화를 이룰 것이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우리는 구자유주의가 말끔히 제거된 뒤에야 '개성'과 '공동사회'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완전하게 알 수 있을 테지만, 진보적 자유주의 전통의 이런 핵심 주장에 따르면 바로 고전적 자유주의를 극복해야만 진정한 자유주의가 출현할 수 있다."(88)


"서로 경쟁하면서도 자유주의 프로젝트의 앙편 모두는 개인이 선호하는 생활방식을 영위할 수 있는 해방의 영역을 넓힌다는 목표를 일관되게 추구해왔고, 자율적 개인이 출현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환경으로서 국가의 팽창을 공히 지지하기에 이르렀다. '보수적' 자유주의자들은 국가 팽창에 불굴의 적대감을 보이면서도, 공동체의 삶에서 시장의 역할을 제한할 수도 있는 지역적인 통치 형태나 전통적인 관습을 극복하기 위해 국내 시장과 국제 시장을 보호하는 국가의 능력에 줄곧 의지한다. 그리고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은 팽창하는 국가가 개인 자유의 궁극적인 보호자라고 열변을 토하면서도, 특히 성적 관행과 무한히 유동하는 성 정체성, 가족의 정의, 자신의 삶을 끝내는 개인의 선택 같은 문제를 개인 '구매자와 판매자'의 공개 시장에 맡기는 방식을 선호하는 까닭에 '품행과 도덕'에 관한 한 국가의 강요를 제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91)


"1953년 저작 《공동체 추구》에서 로버트 니스벳은 전통적인 인간 공동체와 제도를 해체한 결과,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공동체 추구'를 더 이상 충족하지 못하는 상황이 도래했다고 주장했다. 국가주의는 원자화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 폭력적으로 반발하는 가운데 등장했다. 정치적·사회적 동물로 태어나는 사람들은 제대로 된 인간으로서 기능하기 위해 일군의 두꺼운 집단 연대를 필요로 한다. 가족(확대가족뿐 아니라 핵가족까지), 장소, 공동체, 지역, 종교, 문화와 이어진 가장 깊은 유대를 빼앗겨 뿌리가 없어진 사람들, 이런 결속의 형태들이 인간의 자율성을 제한한다고 마음 깊이 믿게 된 사람들은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단 하나 남은 정당한 조직, 즉 국가를 통해 소속감을 느끼고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려 한다. 니스벳이 보기에 파시즘과 공산주의의 발흥은 자유주의가 국가보다 작은 결사와 공동체를 공격하는 데 따른 예측 가능한 결과였다."(93)


"토크빌은 《아메리카의 민주주의》에서 이렇게 썼다. 〈평등의 시대에는 어느 누구도 타인을 도울 의무가 없고 동료로부터 상당한 지원을 받을 아무런 권리도 없으므로, 누구나 독립적인 동시에 취약하다. 따로 떼어서 생각해서도 안 되고 섞어서 생각해서도 안 되는 이 두 가지 상태는 민주정의 시민들에게 극히 상반되는 두 가지 본능을 부여한다. 시민은 독립적인 까닭에 서로 평등한 사람들 사이에서 완전한 자신감과 자부심을 갖지만, 취약한 까닭에 때때로 외부의 지원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시민은 어느 동료에게도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데, 모두가 무기력하고 냉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서 그는 전반적으로 몸을 낮추는 가운데 홀로 우뚝 서 있는 거대한 실체[후견 국가]로 자연히 눈을 돌리기 마련이다. 그의 욕구는, 특히 갈망은 계속해서 그 실체를 생각나게 하며, 결국 그는 그 실체를 자신의 개인적인 취약함을 보강하는 유일하고도 긴요한 지지물로 여기게 된다.〉"(95)


3장 반문화로서의 자유주의


"자유주의는 통치체제 또는 법적·정치적 질서인 것 이상으로 인간의 시간 인식을 재규정하려는 노력이다. 다시 말해 시간 경험을, 특히 과거, 현재, 미래의 관계를 바꾸려는 노력이다. 사회계약론은 개인을 인간관계와 장소에서만 분리해냈던 것이 아니다. 시간에서도 분리해냈다. 사회계약론이 묘사하는 것은 역사가 없는 영원한 조건, 어느 시대에나 적용햐려는 의도가 담긴 사고실험이다. 이렇게 기발한 착상을 하는 뻔한 이유의 이면에는 인간이란 본래 영원한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라는 생각이 숨어 있다. 이 착상은 우리가 참고하기 위해 되돌아봐야 하는 어떤 역사적 '사회계약'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언제나 본래 자율적인 선택을 하는 행위자, 계속 계약을 맺으면서 우리 자신에게 이로운 것을 인식하는 행위자라는 부단한 믿음에 호소한다." "자유주의는 이 조건을 특히 인간의 시간 경험을 담는 그릇인 문화를 해체하는 방법으로 만들어낸다."(111-2)


"토크빌은 '조각난 시간'이 개인주의를 낳는 방식을 인식했고, 자유민주주의의 근본적인 논리에 따라 이런 개인주의가 다시 심대한 사회적·정치적·경제적 결과를 불러올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가 특히 우려한 점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행위를 시간 연속체의 일부로 보지 못하고, 따라서 자신의 행위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인간 공동체의 일부로서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려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귀족 시대의 본질적 특징은 누구나 스스로를 세대 간 질서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민주주의의 특징은 개인을 해방한다는 명목으로 그런 사슬을 '부순다'는 것이다. 조각난 시간 경험은 세대 간 질서와 빚으로부터 개인을 해방하는 데에는 이로울지 몰라도 정치적 영향 면에서는 (현재의 행동이 미래 세대에게 끼칠 영향을 도외시하는 식으로) 해로울 것이었다."(114)


"자유주의는 무無장소성을 중시한다. 자유주의의 '자연상태'는 추상적인 개인들이 똑같이 추상적인 장소에 있다는 무장소 견해를 상정한다. 자유주의는 사람들이 그 누구에게서도 생겨나지 않는다는 인간학적 가정(홉스의 표현대로 〈땅에서 버섯처럼 생겨나 서로에 대한 그 어떤 의무도 없이 자란〉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가 그 어디에서도 생겨나지 않는다는 가정에도 의존한다. 누군가 태어나고 자라는 장소는 그의 부모나 종교, 관습만큼이나 우연히 정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무엇보다 자유롭게 선택하는 존재로 여겨야 한다. 모든 관계와 제도, 믿음과 마찬가지로 장소 역시 선택하는 존재로 말이다." "토머스 제퍼슨이 미국 독립선언문을 작성하기에 앞서 자기 견해를 로크식으로 조정한 글에서 언명한 대로, 자유주의적 인간을 규정하는 가장 근본적인 권리는 자신의 출생지를 떠날 수 있는 권리다. 우리의 기본 조건은 집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117-8)


"문화 해체는 뿌리 뽑힌 개인의 해방, 구석구석 스며들고 에워싸는 시장, 국가의 권한 확대, 셋 모두의 전제조건이다. 사람들은 도움을 청하기 위해 당국에 개인 해방이라는 명목으로 문화 규범과 관행을 느슨하게 풀어달라고 호소하고, 당국은 다양한 압력을 가해 오래된 비공식 규범의 본질적인 특징을 축소하거나 해체한다. 규범이 사라진 상황에서 개인들은 해방된 자유를 추구하면서 법을 위반하거나 명백한 해를 가하지 않는 선에서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욕구를 채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문화적 관행과 기대를 통해 발전하는 행위의 본보기가 없을 경우, 해방된 개인들은 필연적으로 분쟁을 벌이게 된다. 오늘날 그런 분쟁을 조정할 수 있는 유일한 권위는 국가다. 이런 이유로 국가는 한때 보통 문화 규범으로 해결했던 지역의 사안을 다루기 위해 법적·정치적 활동을 확대하고 있다.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는 문화 해체를 요구한다. 그리고 문화가 사라질수록 리바이어던은 커지고, 책임감 있는 자유는 작아진다."(128-9)


"자유주의 치하에서 '문화'는 진본에 기생하며 실제 문화를 대체하는 자유주의적 모조품을 가리키는 단어가 된다." "'문화'는 복수가 아닌 단수로 불리곤 하지만, 실제 문화는 다수이고 지역적이며 특수하다. 우리는 영리기업이 대량소비를 염두에 두고서 시장조사를 거쳐 표준화한 산물인 '대중문화' 같은 현상들에 대해 말하곤 한다. 문화는 지역적·역사적 경험과 기억의 축적인 반면, 자유주의 '문화'는 지역적 경험이 뿌리 뽑히고 기억이 사라지고 모든 장소가 다른 모든 장소가 될 때 남는 공백이다. 다수의 실제 문화들은 '다문화주의'에 대한 찬양으로 대체된다." "모든 문화를 똑같이 찬양하는 것은 사실상 어떤 문화도 찬양하지 않는 것이다. '다원주의'나 '다양성', 또는 소매업 세계의 '선택'을 운운하는 주장이 늘수록 실제 문화들은 더 확실하게 파괴된다. 자유주의적 다원주의와 다양성은 하나같이 차이를 지지하는 균질한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널리 퍼진 무관심주의를 요구하고 보장한다."(130-1)


4장 기술과 자유 상실


"오늘날의 기술사회는 새로운 종류의 정치기술을 통해 생겨난다. 이 기술은 우리를 무엇보다 각자의 야심과 욕망을 이루어내기 위해 분투하는 개인으로 만들고자 고안된 것이다. 즉, 고대의 덕성 찬양과 공동선을 향한 열망을 개인의 자기이익과 고삐 풀린 야심, 공공복리보다 사적 이익 추구를 우선하는 태도,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모든 관계를 재고하는 후천적 능력 등으로 대체한다. 새로 발명된 정치기술─'새로운 정치학'─은 사실상 과학과 기술의 목표와 목적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좌우한다. 기술은 정치적·사회적 규범 및 믿음과 무관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규범이 기술 개발과 응용을 결정짓는다. 그럼에도 자유주의가 도입하는 일군의 규범은 기술이 그 어떤 규범이나 의도와 무관하게 발전한다는 믿음, 외려 기술이 우리의 규범과 정치체, 심지어 인간성까지 형성하고 우리의 통제에서 필연적으로 벗어나기 마련이라는 믿음으로 우리를 이끈다."(147-8)


"일찍이 1978년에 대니얼 부어스틴은 《기술 공화국》에서 〈기술은 그 자체로 추진력을 만들어내고 비가역적〉이며 〈우리는 갈수록 치료 감호의 세계에서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라고 썼다. 이 말은 곧 우리가 더 이상 기술들을 선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홉스와 로크가 상상한 자연상태에 있는 존재로 우리를 바꾸어가는 기술들 쪽으로 불가피하게 이끌린다는 의미다. 그리하여 우리는 자율적이고 자유롭되 우리에게 독립감을 선사하는 바로 그 기술들에 종속되리라는 것이다. 기술들은 우리의 선택을 받기보다는 우리가 더는 통제하지 못하는 역학으로부터 생겨날 것이고, 우리가 그저 어렴풋하게만 알고 있는 체제를 더욱 확대할 것이다. 텔레비전 채널들은 기술적 파국을 이야기하는 드라마들로 점점 채워지고 있으며, 그 중 다수는 우리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할 때조차 저 멀리 막후에서 우리를 조종하는 듯한 그림자 같은 미지의 권력을 가정한다."(155)


5장 자유학예에 반대하는 자유주의


"자유학예가 반영하는 전근대의 자유관은 예컨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 등의 가르침에서, 그리고 성서뿐 아니라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 단테, 모어, 밀턴의 저술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나는 기독교 전통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로 간의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모두 자유란 우리의 선천적 상태가 아니라 습관 들이기와 훈련 및 교육을 통해, 특히 자제력 단련을 통해 획득하는 상태라는 데 동의한다. 자유는 오랜 학습 과정의 결과다. 자유는 이성과 정신의 고귀한 능력을 사용해 스스로를 다스리는, 덕성 함양을 통해 학습하는 역량이다. 이런 전근대적 자유관은 인간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는 상태를 노예 상태로, 가장 저열한 욕구에 이끌려 더 나은 본성을 거스르는 상태로 규정한다. 자유학예의 핵심 목표는 자유민과 자유시민을 이런 자유관에 부합되게 양성하는 것이었다. 자유학예는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었다."(162)


"반면 자유주의는 우리가 자유로워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가정하지 않고 우리가 자유롭게 태어난다고 가정하면서 시작한다. 자유주의 치하에서 자유학예는 인문학에서,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에서 그리고 경제학과 경영학에서 시종일관 추구하는 목표인 개인 해방의 도구가 된다. 인문학 내에서 정체성 주장에 기초하는 해방운동들은 과거를 억압의 저장고로 간주하고, 이런 이유로 교육의 원천으로서 인문학이 가진 정당성을 대체한다. 그러는 동안 자율성 경험을 실질적이고도 효과적으로 증진하는 학문들─STEM, 경제학, 경영학─이 정당한 연구의 유일한 주제로 여겨지기에 이른다. 자유학예를 통해 자유로운 인간을 교육한다는 고대적 견해는 사적 개인의 학예를 강조하는 견해로 대체된다.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공공의 것)에 알맞은 교육이 '레스 이디오티카res idiotica'(그리스어로 '사적'이고 고립된 사람)에 적당한 교육으로 대체되는 것이다."(160-1)


6장 새로운 귀족정


"사회적 상향 이동과 하향 이동이 모두 가능하고 이제 경쟁이 세계화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모든 계급은 만연한 불안감을 공유하고 있다." "전진하는 자유주의가 장담하는 대로라면 개인들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출생과 인종, 젠더, 지역의 우연성으로부터 자유로움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학생들은 거의 누구나 경제적 제로섬 게임에 얽매여 있다. 출세주의와 스펙 쌓기는 오늘날 교육 실패의 결과가 아니다. 그런 현상에는 학생들이 교육 초기부터 깊숙이 받아들이는 가르침, 즉 오늘날의 사회는 경제적 승자와 패자를 양산하며 교육 인증서야말로 개인의 최종 지위를 결정하는 거의 유일한 요인이라는 가르침이 반영되어 있다. 고대인이라면 '노예교육'이라고 불렀을 법한 것에 속박되어 있는 오늘날의 대다수 학생들은 부모와 사회 일반이 만류하는 자유교육을 기피한다. 자유주의는 한때 자유민에게 적합하다고 여겨졌던 교육의 쇠퇴를 불러온다."(189-90)


"존 로크는 자유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문헌인 《통치론》에서 새로운 정치경제 체제가 기존과 다른 지배층을 낳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소유권에 관하여'라는 장에서 로크는 세계를 두 부류의 사람들로 나누었다. 즉 '근면하고 합리적인' 사람들과, '불만 많고 다투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로크는 게으르고 현실에 안주하는 통치자 계층, 지위를 물려받고 경쟁이나 도전에 부딪힐 일 없이 다스리는 계층이 다른 무엇보다 불만 많은 성격을 드러낼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집단을 다른 집단으로, 즉 불만 많은 귀족이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탓에 자신들의 뚜렷한 성격을 온전히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근면성과 합리성'에 고무되는 집단으로 바꾸자고 제안한다." "이 대목에서 로크는 통치와 무관한 평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근면하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통치하는 사회는 생산성과 자산 가치를 높여 결국 모두의 부를 늘려줄 것이라고 주장한다."(192-4)


"자유주의 지배층liberolocracy은 안정된 사회제도, 얄궂게도 오늘날 밀의 사상을 따르는 개인들을 위한 도약대 역할을 하는 제도의 이점 덕택에 자신들의 지위가 유지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과거 귀족 가문의 지위는 토지 및 영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고, 그래서 세대 간 연속성과 장자 상속제를 중시했다. 이에 반해 자유주의 지배층의 가족은 느슨한 세대 간 연대, 휴대 가능한 자격증명서, 대체 가능한 부의 상속, 그리고 계층 이동의 전망에 의존한다. 한편 자유주의 지배층은 로크라면 '불만 많고 다투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불렀을 법한 이들 사이에서 가족과 그에 따른 사회 규범이 현저히 약화되는 세태에 대해 주도면밀하게 침묵을 지킨다. 그 이유는 자유주의의 산물인 해방된 개인들이 이제 하층민으로 떨어진 '불만 많고 다투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전통적으로 불우한 가족까지 지원했던 사회 형태와 제도의 해체에 따르는 대가를 떠안으라고 명령한다는 데 있다."(210-1)


"플라톤은 '이상적인 정체'를 철학적 연습 문제로 제시했던 데 반해, 자유주의는 '이상적인 정체'와 비슷하게 구성되는 질서, 즉 인간은 근본적으로 평등하다는 신화를 동원해 불평등의 정당성을 믿게 만드는 질서를 구현하기 위해 '고귀한 거짓말'의 한 버전을 채택했다. 자유주의 질서는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발전하는 체제 내에서 그들의 지위가 높아지고 그에 따라 형편이 계속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부추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더 중요한 점은 자유주의 질서가 자유주의 지배층에게 그들이 새로운 귀족이 아니라 오히려 귀족 질서의 반대파라는 심각한 자기기만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 자기기만을 감추는 주된 수단은 불우한 사람들을 위한 사회적 정의와 관심이라는 겉치장이다. 자유주의 지배층은 어려서부터 흔히 그들을 엘리트로 길러내는 교육기관에서 그런 겉치장을 빈틈없이 주입받는다. 그런데도 바로 그들은 《국가》를 읽다가 '고귀한 거짓말' 논의를 마주하면 대개 속임수라며 혐오감을 보일 것이다."(212-3)


# 고귀한 거짓말 : 이 나라에 있는 여러분은 모두 형제입니다. 그러나 신은 여러분을 만들면서 통치하기에 적합한 사람들에게는 황금을 섞었으니, 그들이 가장 존경받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반면에 보조자들에게는 은을 섞었고, 농민들이나 다른 장인들에게는 쇠와 청동을 섞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모두 동족이기에, 대개 여러분 자신을 닮은 자손을 낳기는 하지만, 때로는 황금의 자손에게서 은의 자손이, 은의 자손에게서 황금의 자손이,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에게서 다른 종류의 자손이 태어나기도 합니다. -《국가》 3권 415a-415b


7장 시민권의 퇴화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는 오늘날 서구의 대다수 사람들이 유일하게 정당한 정치조직 형태로 여기는 정체를 가리킬 때 널리 쓰인다.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에서 '자유주의'는 형용사처럼 명사 '민주주의'와 함께 쓰여 인민들이 통치하는 오래된 정체 형태를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이 표현은 겉보기 의미와는 다른 목적을 가진다. 우선 '자유주의'는 '민주주의'를 변경할 뿐 아니라 유구한 정체를 사실상 정반대되는 정체로, 즉 인민들이 통치를 하지 않고 자유주의적인 사적 개인으로서 물질적·군사적 혜택을 누리며 살아가는 데 만족하는 정체로 재규정하자고 제안한다. 그와 함께 명사 '민주주의'는 한층 강직한 형태의 시민권을 이른바 대중의 동의로 대신하는 자유주의 정체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자유주의는 공적인 것보다 사적인 것을, 시민 정신보다 자기이익을, 공동선보다 개인들의 의견 취합을 끊임없이 강조함으로써 시민권의 퇴화를 불러온다."(217)


"(대중의 분열과 파편화를 부추기고 정예 엘리트들이 정부를 운영하는 구조를 제도화한) 자유주의의 진짜 비범한 성과는 미묘하되 꾸준하게 영향을 끼치고 교육하는 방법으로 시민들로 하여금 자수성가한 개인이라는 이상─표현적 개인주의─과 '민주주의'를 동일시하게 만든 것, 그리고 정부가 강력하고 멀리 있으며 실은 표현적 개인주의의 기회와 경험을 확대함으로써 정당성을 얻는다는 사실을 감추는 정치적 민주주의의 광휘를 받아들이게 만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가 주로 권리, 권력, 부의 확대라는 형태로 '자유의 제국'을 계속 넓히는 한, 능동적인 민주적 자치의 부재는 받아들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기까지 한 목표가 된다. 결국 자유주의는 정체로서 규율 잡힌 자치를 함양해야 하는 민주정의 난제를 포기한 채 정부를 유익하되 별개인 실체, 재화를 무한히 공급하고 사적 정체성을 제약 없이 확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실체로 여기기에 이른다."(218)


"평범한 시민들의 '민주적 능력'에 대한 우려는 민주주의에 대한 명시적인 비판을 낳았을 뿐 아니라 민주적 외피를 주장하는 이들마저 민주적 통치를 제한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혁신주의자들은 관료제의 성장─정치의 전문화─과 행정의 '과학'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또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타당한 공공정책을 결정하고 실행하기에 가장 적절하고 객관적인 방법은 유권자들의 일시적인 변덕이 아닌 사회과학(특히 정치학을 포함해)이라며 사회과학을 앞장서 홍보했다. 20세기 초에 우드로 윌슨 같은 사회과학계의 주요 인물들은 정치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추진함으로써 가치 편향적인 정책을 사회과학 방법론으로 대체할 토대를 마련하고자 했다." "여론의 역할은 정책을 만드는 책임자들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리하여 민주주의는 행정 전문가들이 능숙한 솜씨로 알맞은 정책을 수립하면서 검토하고 참조하는 선호의 표현, 개인 의견의 총합 정도로 국한되었다."(222-4)


"시민적 문해력civil literacy, 투표, 공공정신이 계속 낮게 나타나는 문제는 자유주의로 해결할 수 있는 부수적인 병폐가 아니다. 그것은 자유주의의 전례 없는 성공의 결과다." "매디슨은 특히 민주정─시민들의 참여도가 높은 소규모 직접 민주정─의 위험을 두 가지 원천에 힘입어 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는 새로운 정치학의 '대의 원리'이며, 둘째는 '관할 범위 확대', 즉 시민들의 연합('파벌') 가능성을 최소로 줄이고, 이권의 수를 늘리고, 시민들 간의 정치적 신뢰와 활동을 억제할 만한 대규모 정치체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매디슨은 궁극적 주권이 선거라는 연계를 통해 계속 국민에게 있기는 하지만, 대표들이 국민의 의지를 지나치게 따라서는 안 된다고 확신했다. 대의제의 바람직한 결과는 〈자국의 진짜 이익을 지혜로써 가장 잘 분별할 수 있는 선출된 시민들이라는 여과재를 통과하게 하는 방식으로 대중의 견해를 정제하고 확대하는 것이다〉라고 그는 주장했다."(225-7)


"오늘날 민주주의─특히 우리가 민주주의라 부르는 쇠약한 구경꾼 정치─를 비판하는 자유주의자들은 실은 자유주의의 소산인 퇴화된 시민들의 뒤틀리고 쪼그라든 통속적 행동을 비난한다. 주요 자유주의자들은 그런 퇴화를 대중의 에너지를 더욱 차단할 필요성의 증거로 들면서, 그 대신 자유주의 국가의 선출된 금권 정치인과 관료가 원격 운영을 통해 더욱 보장해줄 사적 영역에서의 욕구 충족을 제안한다. 이렇듯 오늘날 국가 정치에 초점을 맞춘 시민 교육을 확대함으로써 민주적 참여를 북돋자고 외치는 자유주의자들은 그들의 해결책이 바로 그들이 없애려는 병폐의 근원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시민들의 무관심을 바로잡으려면 중앙정부의 권력을 엄격히 제한하고 시민들에게 지역 자치를 참여할 기회를 주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자유주의자들에게 여전히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시민들의 무관심 또는 무지를 핑계로 정치를 자유주의 국가의 조치와 동일시하는 견해를 강화한다."(242-3)


결론 자유주의 이후의 자유


"자유주의 이후 시대로 나아가려면, 자유주의가 초기에 감탄스러운 열망을 바탕으로 호소력을 발휘했으나 대개 그런 열망의 변질에 의존해 성공해왔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자유주의 옹호자들은 여성이 불평등한 조건에서 해방된 것을 자유주의의 성공 사례로 곧잘 거론하고,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은 무조건 여성을 자유주의 이전의 속박 상태로 다시 밀어넣자는 제안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여성해방의 주된 실질적 성과는 여성 다수를 시장자본주의의 노동력으로 투입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꼽는 여성해방의 가장 중요한 증거는 여성이 생물학에서 점차 벗어난다는 것, 그리하여 실체가 없는 다른 신체─미국이라는 '법인'─에 이바지하고 또 실질적인 정치적 자유를 모조리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경제질서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자유주의는 여성이 가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곧 해방이나 마찬가지라고 단정하지만, 실은 여성에게나 남성에게나 인간을 훨씬 더 에워싸는 굴레를 씌운다."(256)


"자유주의는 일군의 고귀한 정치적 이상에 호소하면 부상했으나 결국 새롭고 포괄적인 퇴화를 초래했다. 더 무정하게 말하자면, 자유주의 설계자들은 두루 공유하는 정치적 이상을 의도적으로 전유한 다음 자유, 민주주의, 공화주의의 새로운 정의로부터 이득을 가장 많이 얻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유리하도록 그것을 전복했다. 자유주의의 성공을 발판으로 삼는다는 것은, 자유주의가 초기에 발휘한 호소력의 정당성과 실패의 깊은 이유를 둘 다 인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시민의 자치와 개인의 자치 둘 모두의 형태로 실질적인 자유를 제공한다는 뜻이지, 소비자주의적·성정 방종을 자율성으로 착각하는 오해와 체제 내 시민의 무력함을 결합한 자유의 대용물을 제공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유주의는 서구의 이상에 복이자 재앙이었으며, 어쩌면 그 실패와 거짓 약속, 충족되지 않은 갈망으로 우리를 더 나은 무언가로 이끄는, 불가피한 단계인지도 모른다."(2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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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파된 정신 - 정치적 반동에 관하여
마크 릴라 지음, 석기용 옮김 / 필로소픽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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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반동反動, reaction이란 무엇인가?" "혁명의 발생과 활력 그리고 소진에 관한 수많은 이론들과 달리 반동에 관한 한 그런 이론은 없고, 그저 반동이란 비록 사악한 동기까지는 몰라도 어쨌든 무지와 비타협성에 뿌리를 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기도취적인 확신만 있을 뿐이다. 이는 당혹스러운 일이다. 두 세기 동안 세계 전역의 정치 운동에 영감을 불어넣었던 혁명의 정신은 자취를 감추었을지언정, 오히려 혁명에 맞서 생겨난 반동의 정신은 살아남아서 중동에서부터 중앙아메리카에 이르는 지역에서 매우 강력한 역사적 힘을 증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아이러니가 우리의 호기심을 유발해야 마땅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그 대신 우리는 일종의 우월감에 젖은 분노를 표출하다가 그나마도 그냥 접어버리고 만다. 반동주의자들은 훌륭한 지적 탐구의 변두리로 내몰려 있는 마지막 남은 '타자他者'다. 우리는 그들을 모른다."(8-9)


"반동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가 아니다. 반동주의자들 역시 혁명가들 못지않게 나름대로 급진적이며 역사적 상상의 산물들에 단단히 사로잡혀 있다. 구원의 새 사회 질서와 회춘하는 인간을 기대하는 새천년의 꿈이 혁명가들을 고취시킨다. 반면에 반동주의자들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새로운 암흑시대에 돌입하고 있다는 묵시록적 공포다. 조제프 드 메스트르 같은 반反혁명 사상가들에게 1789년은 영광스러운 여정의 시작이 아니라 그 여정의 종말을 의미했다. 가톨릭 유럽이라고 하는 그 견고한 문명이 순식간에 거대한 난파선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드 메스트르와 그의 수많은 후예는 일종의 공포 이야기를 늘어놓는 달변가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오랜 세월에 걸친 문화와 지성의 발전이 어떻게 계몽주의라는 정점에 도달했고 그것이 구체제를 대체 어떻게 갉아먹었기에 그 체제는 도전을 받자마자 산산조각 나버렸는지 흔한 신파조로 늘어놓았다."(11-2)


"반동주의자의 신앙 고백은 억지 인과 관계로 점철되어 있다." "반동의 정신은 난파된 정신이다. 다른 사람들은 늘 원래 모습 그대로 흐르는 시간의 강물을 보지만, 반동주의자들은 천국의 파편 더미가 눈앞에서 둥둥 떠내려가는 것을 본다. 반동주의자는 시간의 망명자다. 혁명가의 눈에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찬란한 미래가 보이며 그 미래에 감전된다. 지금 시대의 거짓말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온갖 광채를 발하는 과거만을 바라보는 반동주의자 역시 그런 과거에 감전된다. 반동주의자는 자기가 적수보다 더 강력한 입장을 갖고 있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자기는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의 예언자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의 수호자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것이 반동 문학에 면면히 흐르는 그 기이하게도 신명 나는 절망감, 그 선명한 사명감을 설명해준다." "반동주의자가 전통적 인간상이 아닌, 확연히 현대적인 인간상으로 비치는 이유는 그가 가진 노스탤지어의 호전성 때문이다."(12-3)


1부 사상가들


"19세기 내내 헤겔은 옳든 그르든 세계 역사의 합리적 전개 과정을 발견한 인물로 이해되었다. 그 과정이란 근대 관료주의 국가, 부르주아적인 시민 사회, 프로테스탄트적인 시민 종교, 자본주의 경제, 기술의 진보, 그리고 헤겔 자신의 철학에서 그 정점에 이르게 될 터였다." "이런 주장에 맞서 역사(철학)으로부터 사유의 독립성을 되찾고자 희망했던 일부 반反헤겔주의자들은 칸트나 데카르트 같은 이전 철학자들에게로 회귀하라고 장려했다. 다른 이들은 더 주관적 행로를 택했다. 니체나, 세기말에 때마침 독일어로 번역되고 있던 키르케고르의 실존주의적 역설들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헤겔의 역사의식이 전체 문화를 상대주의의 위기로 이끌었다는 느낌이 점점 자라나는 가운데 이러한 전환들은 뒤이어 에드문트 후설과 청년 마르틴 하이데거의 현상학 저술들에서 그 결실을 맺었다." "철학의 오류는 오로지 인간을 일상의 경험으로 되돌려 보내줄 새로운 종류의 치료적 사유를 통해서만 교정될 수 있을 터였다."(32-4)


"로젠츠바이크가 '20세기적 의미에서 종교를 지키기 위한 전투'를 요청한 것은 헤겔을 겨냥한 것이기도 했다. 물론 더 근거리의 목표물은 19세기 내내 독일의 종교적 사유를 지배했던 자유주의 신학의 여러 학파였다. 다비드 프리드리히 슈트라우스와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 같은 인물들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신학은 프로테스탄트 기독교의 교리들을 근대적 사유와 타협시키려는 시도에서 출발했고, 이런 노력에서 헤겔은 유용한 동맹군으로 입증되었다. 헤겔은 종교가 단지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는 프랑스 계몽주의 관점을 공유하지 않았다. 또한 근대적인 자연 정복이 종교를 소멸시킬 것이라고도 믿지 않았다. 그는 프로테스탄트주의와 근대 국가가 근본적으로 사실상 조화를 이루었으며 역사가 절정에 이르더라도 종교는 계속해서 도덕과 시민 교육을 통해 개인을 국가와 화해시키는 일을 도우면서 준準관료주의적 기능을 수행할 것이라고 생각했다."(34-5)


19세기가 양산한, 스스로에게나 유대주의에게나 어떤 위험도 없는, 일체의 수식어가 붙지 않은 '유대인'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귀환이라는 생각은 "역사에 반대하고 종교를 옹호하며 두 전선에서 싸우는 로젠츠바이크의 전투를 연결하는 고리다. 헤겔의 역사철학에서 절정에 도달한 근대 철학은 인간을 삶에서 떼어놓았고 자신이 가진 대부분의 것들로부터 소외시켰다. 기독교이건 유대교이건 근대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을 신에게서 소외시키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고, 신의 명령은 훌륭한 시민 정신과 부르주아적 예의범절 수준으로 전락한 상태였다. 만약 인간이 자기 자신과 자신의 신에게 귀환하고자 한다면, 만약 다시 완전하게 사는 법을 배우고자 한다면, 모종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 다시 말해 시간 속에 틀어박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으로부터 탈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뜻이다. 바로 이 치료법이 로젠츠바이크의 저술들이 제공하고자 한 것이다."(37)


"《정치 종교들Die politischen Religionen》에서 그 싹을 전부 찾을 수 있는 뵈겔린의 이야기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비롯해 고대 근동 지역의 초기 문명들에서 시작한다. 이곳의 국가들은 자기들에게 정통성을 제공하는 신의 기운을 하사받았다." "(기독교의 부흥 이후에 등장한) 초월적인 신국神國을 인간의 지상 국가와 구분한다는 생각은 서구 역사에서 심오한 영적·정치적 함의를 지니는 것이었다. 이 구분은 한편으로 왕궁을 통과하지 않고도 신에게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의 직접적인 인도 없이도 인간이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겠다는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정신적 풍요는 정치적 빈곤의 위험을 수반했고 마침내는 인간이 신의 감시로부터 전적으로 자유로워지고 싶은 유혹까지 생겨났다. 17세기와 18세기의 과격한 계몽주의는 그 유혹에 기꺼이 굴복하면서 기독교가 시작한 그 과업을 완성했다. 뵈겔린의 말을 빌리자면, 〈신을 참수해버린 것이다.〉"(59-60)


"하지만 정치가 신으로부터 근대적 해방을 이룩한 것이 곧 인간이 인간으로부터 해방되었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실제로는 정반대였다. 계몽주의는 신이 국가에 개입하지 못하게 만들었지만, 문명을 처음 생겨나게 한 신격화의 관행을 철폐할 수는 없었다. 뵈겔린의 견해에 따르면, 계몽주의 이후 근대 서구 역사에서 벌어진 일이란 곧 인간이 그 자신의 행위를 신성한 어휘들로 진술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인간 자신이 전통적 권위의 원천들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치 질서를 창조한 일들을 그런 식으로 생각했다. 근대의 인간은 프로메테우스가 되었다. 무엇이든지 전부 다 자기 의지대로 바꿔버릴 수 있는 신이라고 믿게 된 것이다." "〈신이 세상의 뒤로 들어가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세상의 사물들이 새로운 신이 되었다〉는 뵈겔린의 말을 이해하고 나면, 20세기의 거대한 이념 운동들인 마르크스주의, 파시즘, 민족주의 등은 모두 선지자들, 사제들, 신전에 바쳐진 희생 제물들로 가득 찬 '정치종교들'이 된다."(60)


"뵈겔린이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이름을 가장 널리 알리게 된 사상, 곧 그노시스적인 '기독교 종말론의 내재성'을 통해 현 시대가 탄생했다는 사상 덕분에 그는 냉전과 대중문화와 학생 반란, 그리고 그 밖에 사실상 거의 모든 것에서 '서구의 위기'를 목도한 미국 보수주의자들 사이에 많은 숭배자를 거느렸다. 뵈겔린은 헤겔과 마르크스를 그노시스적인 선지자이자, 〈그노시스의 정신이 그 속을 휘젓고 있는 시시한 중재자들〉로 격하함으로써 그들과 그 아류들을 떨쳐낼 수 있는 세계사적 이유들을 제공했다. 근대 정치 혁명들, 자유 진보주의, 기술의 발전, 공산주의, 파시즘의 이력들이야말로 초월적 질서라는 바로 그 관념에 맞선 그노시스주의의 반란을 증언하는 것들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뵈겔린이 이런 반란에 대해 기독교가 부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나, 미국 혁명이 그런 반란의 결과물이었다는 사실은 어쨌든 그의 보수주의 독자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67)


"초기 저술에서 스트라우스는 '신학-정치적 문제'와 그것이 근대 계몽주의와 맺고 있는 관계에 관해 독특한 시각을 발전시켰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종교 전쟁들에 혐오감을 느끼고 고전 철학의 현실초월성에 좌절한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종교와 고전 철학 둘 다에게서, 즉 아테네와 예루살렘 둘 다에게서 벗어난 새로운 유형의 사회를 창조하고 싶어 했다. 한편으로 그들은 종교를 조롱하면서 그것의 분쇄를 원했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철학의 주된 관심이 진리나 아름다움이나 선에 대한 사색에서 벗어나 더 실천적인 목적들을 지향하도록 방향을 전환했다. 이 방향 전환의 기념비가 바로 프랑스의 《백과전서》다." "계몽주의의 사상가들이 기껏해야 철학과 세계가 더 악화되도록 방치함으로써 철학의 사명을 왜곡하자, 철학은 19세기에 상대주의와 허무주의를 탄생시키면서 절대적 진리에 도달하는 통로가 되리라는 자기확신을 신속히 잃어버렸다."(80-1)


"스트라우스는 소크라테스의 활동에서 비롯된 고대와 중세의 플라톤적 전통이 정치적 관계나 교육상의 관계에서 비밀스런 전승을 실천했다고 제안하기에 이른다." "스트라우스가 포착한 특징에 따르면 중세 초기의 이슬람 철학자 알파라비와 중세 유대 철학자 마이모니데스는 자신들이 고전 세계에는 알려져 있지 않던 계시 종교들이 설정한 강력한 규약들에 직면해 있음을 깨달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계시와 철학은 결코 서로를 논박할 수 없으며 또한 어느 한 쪽을 버리지 않고 지성적으로 종합할 수도 없다고 보았다." "이것은 독자에게 진정한 철학이란 모든 신학적·정치적 몰입에서 벗어나 자유를 유지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가르친다." "스트라우스에 따르면, 알파라비와 마이모니데스의 성취는 철학이 비밀스런 전승으로 실천될 때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고 또 통속적으로 실천되었을 때는 어떻게 정치적으로 책임을 다할 수 있는지 증명해 보였다는 것이다."(83-5)


"그의 관심은 이 전통이 근대기에 들어서 어떻게 사라져버렸는지를 규명하는 데 고정되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서구 사상의(그리고 암묵적으로 서구 문명의) 쇠퇴와 타락의 미토스로 전환했다. 여기서 스트라우스가 하이데거에게 진 빚이 가장 뚜렷하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저작을 함께 읽으면 역사적 비관주의가 지적 노스탤지어로 옮겨지고 그런 다음 정치적 행동으로 되먹임 되는 상이한 방식들과 관련된 교훈을 얻을 수 있기도 한다. 하이데거 자신이 바로 이 주로를 따라 달린 사람이다. 전도유망한 현대 철학의 위대한 희망으로 출발한 그는 10년 후 '국가사회주의의 내면적 진리와 위대성'을 찬양하는 열정적인 파시스트가 되었고 시종 〈오로지 신만이 지금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라고 예언하면서 정치적 불명예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스트라우스는 정치에 결코 관여하지 않았지만, 그가 창도한 학파가 양성해낸 놀라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워싱턴 정가의 열성적인 정치 파벌로 경력을 쌓았다."(85-6)


2부 흐름들


"초기 문명들이 스스로 위안을 삼고자 사용했던 가장 흔한 역사적 신화들이 숙명적인 쇠퇴의 이야기들이었다는 점은 흥미로운 심리학적 사실이다. 그런 이야기들은 어째서 지금의 삶이 그렇게 고단한지에 대한 현세적인 이유들을 제공한다. 우리는 황금시대 우리의 원천들에서 한참 멀리 내쫓긴 '철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괴롭다." "기독교는 숙명적 쇠퇴라는 이 옛날이야기에 등을 돌렸다." "기원후 4세기 초 사람인 카이사레아의 에우세비오스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파고든 최초의 기독교 사상가인데, 그의 설명에 따르면, 신은 섭리의 한 손을 사용하여 아브라함에서 예수에 이르는 히브리의 역사를 인도함으로써 '복음을 준비'시켰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 신은 작은 공화정이었던 로마를 거대하고 강력한 제국으로 건설했다." "에우세비오스는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라는 비관적인 이교異敎 신화에 맞서, 낙관적인 '이제 모두 안녕'을 제공했다."(105-6)


"당연히 에우세비오스주의는 신학적 올가미다. 나쁜 일들이 생기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 신화와 거기에 매여 있는 희망들이 무너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410년 로마 약탈 사건 이후에 이를 직접 목격했다. 로마의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즉시 절망감이 퍼져 나갔다. 그들은 자기들이 버린 고대 이교의 신들에게서 벌을 받은 것은 아닌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이에 맞서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식 사고의 방향을 역사의 흐름에서 벗어나 종말론적 결말을 지향하는 쪽으로 전환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이 이교적인 로마를 번성케 해서 교회와 결합시킨 이유를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다고 독자들에게 말한다. 신이 로마가 무너지도록 내버려둔 이유도 역시 알지 못한다. 그것은 신의 소관이다. 우리가 할 일은 복음을 전파하고 옳게 처신하며 계속 독실하게 신을 섬기는 것이다. 나머지는 신의 두 손 안에 있다."(106-7)


"단지 거쳐 지나가는 순례자의 교회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미지와 승리의 교회라는 에우세비오스의 이미지가 빚어내는 이 긴장은 중세 가톨릭의 시대에서는 결코 해소되지 않았다. 교황의 권위를 둘러싼 내부 갈등 및 동방 교회가 오스만 튀르크와 빚은 외부 갈등이 수세기 동안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로마 가톨릭교회는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승리를 거둔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이 이루어질 때까지 그랬다. 중세 기독교인들이 받은 종교개혁의 충격은 410년 이후 로마 기독교인들이 경험한 충격만큼이나 컸다. 단, 한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 루터와 칼뱅과 과격한 개혁가들의 맹공 이후의 로마 가톨릭교회는 결코 그들의 근대판 아우구스티누스를 보유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계몽주의 시대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가톨릭교회는 이런 도전들에 맞서 혁신자들을 비난하고, 일부 차이들은 묵인하고, 마지막에는 그런 혁신들이 본래 가톨릭 교리와 잘 맞는다는 방식으로 대응했다."(107-8)


"그러나 여러 문명이 단일한 하나의 '프로젝트'가 규정해놓은 불연속적인 시기들을 거치는 것처럼, 〈중세 기독교가 실패했고, 종교개혁이 실패했고, 신앙 고백적인 유럽이 실패했고, 그리고 서구 현대성이 실패하는 중〉이라고 상상하는 것이 대체 무슨 도움이 될까? 삶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리고 역사도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종교개혁 직전의 수십여 년 동안 서구 문명이 절정에 도달했다고 상상하는 것도 역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슬람 문명이 초기 칼리프 정권 때나 중세 스페인에서 절정에 도달했다고 상상하는 일이 무슬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신화들은 '가보지 않은 길'(우리가 잃어버린 세계)로 다시 돌아가는 데에 정치 활동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식의 더 음헌한 몽상에 자양분을 제공하는 일밖에는 하지 못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교훈대로 우리는 우리가 가는 대로 우리의 길을 포장해야 할 운명이다. 나머지는 신의 소관이다."(125-6)


바울을 좌파의 보고寶庫로 승격시킨 최초의 인물은 슈미트를 숭배한 유대인이었던 야콥 타우베스다. "그의 중요한 주장은 〈바울의 당면 과제는 하나님의 새로운 민족을 확립하고 적출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슈미트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서 사용한 용어인 '정치 신학political theology'이라 부르는 것의 본보기다. 그가 의미하는 정치 신학은 법적·정치적 구조물들이 적법성을 얻거나 잃는 방식에 관련된 논의다. 이 절차는 인간이건 신이건 '주권자'가 내린 임의의 결단에 의존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슈미트에 따르면 모든 사회는 일종의 위로부터의 정치적 계시에 암묵적으로 의존하며 이 계시는 그 어떤 보편적 원리도 반영하지 않고 그 어떤 자연적 한계도 인정하지 않으며 단지 무언가를 있게 하는 의지와 능력일 따름이다." "슈미트뿐만 아니라 타우베스도 진지한 정치학은 모두 이러한 신비로운 이중적 성격을 띤다고 보았다."(132)


"1993년에 타우베스의 강연 원고가 정식 출간되자 유럽 좌파는 사도 바울을 시기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 바울에 관한 책과 논문이 드문드문 선을 보이고 있다. 일부는 흥미롭고 일부는 싸구려다. 가장 놀라운 사람은 확실히 알랭 바디우다. 1960년대 초에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루이 알튀세르에게 배운 학생이었고, 1970년대에는 급진적인 마오주의자이자 캄보디아 크메르 루주 정권의 옹호자였던 바디우는 이제 거의 여든의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중국의 문화혁명을 따뜻하게 묘사하는 글을 쓴다. 그러던 바디우가 1997년에 《성 바울 : 보편주의의 토대》를 출간했을 때 프랑스는 충격을 받았다. 이 책은 성 바울의 급진적 보편주의를 재발견해서 혁명 정치에 적용할 것을 좌파에게 요청한다. 바디우가 바울의 특출난 광신도가 되어버린 것이다." "오늘날 그는 '민주주의'라는 멋진 단어 뒤로 숨어서 너무도 졸렬하게 시치미를 떼고 있는 야비한 '자본가-의회주의'를 비난할 때 자기 말에 귀 기울이는 청중을 발견한다."(133-5)


"다른 형태의 전가 행위와 마찬가지로 반反유대주의 역시 역사적 비관론이 먹여 살리고 있다." "반식민주의 운동들은 일당 독재 정권으로 바뀌었고, 소비에트 모형은 소멸했고, 학생들은 정치를 포기하고 취업 경력을 좇았으며, 서구 민주주의 정당 체제는 고스란히 현상 유지 중이고, 경제는 부富를 생산했고(골고루 나눠 갖지 않는 채로), 세계 전체가 연결성connectivity에 홀려 있다. 페미니즘, 동성애자 인권, 가부장적 권위의 쇠퇴 등 성공적인 문화 혁명이 있었고 그것이 지금은 서구 바깥으로도 퍼저 나가기 시작한 상태다. 그러나 정치 혁명은 없었고, 이제는 일어날 전망도 보이지 않는다. 무엇을 겨냥할 것인가? 누가 지휘할 것인가? 그 후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아무도 이런 질문들에 답을 갖고 있지 않으며 이런 질문을 계속 던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우리가 오늘날의 좌파에게서 발견하는 것은 역설적 형태의 노스탤지어가 전부다. 바로 '미래'를 그리워하는 노스탤지어다."(141-2)


"그리하여 그 노스탤지어에 자양분을 제공할 수 있는 지적 보고寶庫를 찾는 아주 절박한 탐색이 이어졌다." "이를테면 정치적 지배는 맨눈에는 뚜렷이 보이지 않는 것들에 의존한다는 식의 설명이었다. 에테르처럼 눈에 보이지 않으나 모든 곳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미셸 푸코의 '권력' 이론은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첫 단계였다. 그다음은 슈미트의 복권이었다. 슈미트가 '정치적인 것'의 본질이라면서 태연하게 옹호한 피아彼我의 구분이 정치는 투쟁이지 숙고나 협의나 타협 같은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런 생각들에다가 반 토막만 이해된 성 바울의 종말론을 보태보라. 기적과도 같은 구원의 혁명에 대한 확신이 실제로 다시 한번 가능할 것처럼 보일 것이다. 역사에 작용하는 힘들이나 논쟁과 조직화라는 고된 노력을 통해 분출된 혁명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가장 기대하기 어려울 때, 한밤의 도둑처럼 그렇게 도래하는 혁명이다."(142-3)


3부 사건들


"2015년 1월 7일 아침에 두 명의 프랑스인 무슬림 사이드 쿠아치와 셰리프 쿠아치 형제가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지의 파리 사무실에 침입해서 열두 명을 살해했다. 도주하기 전에 그들은 이 신문사가 여러 해 동안 선지자 무함마드를 모욕하는 카툰을 여러 편 실은 데 대한 복수라고 외쳤다." "이 살인 행위들은 경악보다는 공포를 자극했다. 정치적 이슬람주의는 적어도 2년 동안 프랑스에서 초미의 관심사였다." "파리의 학살은 프랑스 사회에서 이슬람의 본분을 둘러싸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문화 전쟁을 재연했으며 그 방식이 매우 심각했다. 뒤이어 나타난 격렬한 대중 토론의 양상은 친숙한 양태였다. 좌파 언론인과 정치인은 신속하게 그 공격이 〈이슬람과는 무관하다〉라고 선언하고 프랑스의 실패한 경제·사회 정책의 희생자들에게 퍼붓는 비난을 멈추라고 경고했다. 우파 진영의 비판자들은 그들이 현존하는 정치적 이슬람주의, 이민, 다문화주의의 위험성을 무시하고 있다며 비난했다."(147-9)


"그런데 그때 새로운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우파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단지 가까운 과거만이 아닌 세계 역사의 흐름 전반에 관해 낭랑한 선지자의 논조로 말하는 목소리였다. 그들은 현재의 위기를 이해하려면 훨씬 더 뒤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들로, 제3공화국의 흥망성쇠로, 나폴레옹으로, 프랑스 혁명으로, 심지어 계몽주의나 중세 때까지 한참을 뒤로 말이다. 이런저런 정부 정책이나 이런저런 개혁에 논의의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이 참극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그저 눈을 감고 있겠다는 뜻이다. 우리는 더는 우리의 운명을 통제하지 못한다. 바로 이것이 이 문제의 진실이다. 우리가 비로소 깨달은 상황은 프랑스를, 어쩌면 서구 문명 전체를 파국의 경로에 기어코 들어서게 만든 비참한 정치적·문화적 실책들이 빚어낸 예견된 결과다. 그리고 이제 그 계산서가 도착한 것이다."(149-50)


"문화적·물리적 약점 탓으로 돌려진 프랑스-프러시아 전쟁의 패배 이후로 지금껏 프랑스인들은 출생률에 집착해왔다. 오늘날 출생률은 유럽 기준으로는 비교적 높은 편이지만, 북·중 아프리카 이민자 '인종' 가족들의 높은 출생률이 그 수치를 떠받치는 것으로 보인다.(정부는 민족별 통계를 내놓지 않는다.) 이것이 극우파에게는 주요한 강박 관념이 되었다. 그들의 저술은 인구학적 관성의 힘으로 프랑스를 조용히 무슬림 국가로 바꿔놓게 될 이른바 '거대한 대체grand remplacement'가 임박했다는 예측들로 가득 차 있다. 백인 여성의 자궁은 페미니즘 때문에 시들어버렸다. 다문화주의 덕분에 밀물처럼 쇄도하는 다산多産의 이민자들이 계속 허용된다. 이것이 프랑스 무슬림들을 '국민 속의 국민un peuple dans le peuple'으로 여겨야 하는 또 한 가지 이유다. 이는 사실 우파가 현재의 위험에 맞춰 번안한 유럽 반유대주의의 고전적 주제일 뿐이다."(157)


후기


"'시대'란 우리가 역사를 읽기 쉽게 만들려고 숫자 표시 테이프 위에 적어놓은 두 개의 연도 사이에 있는 공간에 불과하다. 우리가 혼돈의 경험들에다 '사건들'을 새겨 넣을 때에도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에 더 가까울수록, 그리고 우리의 구분들이 사회와 더 밀접하게 관련될수록 연대학의 책임이 더 커진다. 이 말은 또한 분류법에도 해당한다. 유類 개념을 식물에 적용할 때는 반향을 얻지만, 그것을 인간에게 적용할 때는 사정이 다르다. 후자의 위험은 바로 물상화物象化다. 이런 일은 실재를 이해하기 위해 사물의 분류에 도움이 되는 개념을 발전시키고 난 다음(예를 들면 '아리안' 어족) 뒤이어 그 개념이 실재에 아로새겨진 사실이라고 선언할 때 일어난다.(특징적인 문화와 역사를 지닌 동질적인 '아리안' 민족) 우리는 인종과 관련하여 그런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배우고 있으나, 역사를 이해하는 문제에 관한 한 우리는 여전히 구제 불능의 물상화하기 족속이다."(182-3)


"진보와 퇴보, 순환의 서사들은 모두 역사의 변화를 유발하는 메커니즘이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우주의 자연법칙일 수도 있고, 신의 의지일 수도 있고, 인간의 정신이나 혹은 경제적 힘들의 변증법적 발전일 수도 있다. 일단 그런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나면, 우리는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고 무슨 일이 다가올지 틀림없이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만에 하나 그런 메커니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나?" "이에 대한 응답으로, 매년 해가 지날 때마다 점점 벌어지는 찢어진 시간의 부위가 황금시대 혹은 영웅시대 혹은 그냥 평범한 시대로부터 우리를 점점 멀어지게 한다고 하는 묵시록적 역사관이 발전한다. 이런 시각에서는 실제로 역사에는 오로지 한 사건만이 존재한다. 우리가 의도했던 세계와 우리가 살 수밖에 없게 된 세계를 분리시킨 카이로스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우리가 과거에 대해 알 수 있고 또 알아야만 하는 전부다."(185-6)


# 카이로스kairos : '기회' 또는 '특별한 시간'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로 제우스의 아들인 기회의 신을 뜻하기도 한다.


"묵시록적 역사 자체에도 인간적 절망의 기록으로 남겨진 역사가 있다." "이 사건들이 결정적 파열구로 집단의 기억에 아로새겨진 묵시록적 상상 속에서는 과거가 아니라 바로 현재가 타향이다. 그것이 바로 그런 상상이 천국의 문을 활짝 열어젖힐 두 번째 사건을 그렇게라도 꿈꿔보려 하는 이유다. 그런 묵시록적 시선의 초점은 지평선 위에 고정되어 있다. 그러면서 그 시선은 메시아, 혁명, 지도자 혹은 시간 그 자체의 종말을 기다린다. 오로지 세상의 종말만이 지금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물론 파국에 직면한 상황이라면 이 섬뜩한 확신이 실제로는 간단명료한 상식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를 통틀어 보건대, 그런 상상은 터무니없는 희망을 자극하여 불가피하게 실망으로 이어졌고 그런 희망을 간직했던 사람들을 훨씬 더 황폐하게 만들고 말았다. 왕국으로 들어가는 문은 그대로 닫혀 있었고, 남아 있는 것은 오로지 패배와 파멸, 망명의 기억들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세계에 대한 환상을 잃어버렸다."(186-7)


"묵시록적인 역사 서술은 결코 유행에 뒤처지는 법이 없다. 오늘날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2차 세계대전을 통해 강하고 고결한 모습으로 등장했던 나라가 어쩌다 '60년대의 대재앙' 이후 위험한 세속 정부에게 지배되는 방탕한 사회가 되고 말았는지를 말하는 통속적 신화를 선호한다." "사정은 유럽에서 더 심각하다. 특히 동유럽에서 그렇다. 헝가리 사람들은 주변에 유대인과 집시가 그렇게 많지 않았을 때 얼마나 살기가 더 좋았는지 다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잃어버린 황금시대의 믿음이 가장 크게 설득력을 얻고 당연시되는 곳은 무슬림 세계다." "독실한 무슬림이라면 누구나 선지자가 7세기의 여명에 그랬듯이 지금 이 시대와 맞서 싸워야 한다. 그 선지자는 타협하지 않았고, 해방시키지 않았고, 민주화하지 않았고, 발전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는 신의 말씀을 대변하고 신의 율법을 실행했다. 우리가 선지자의 신성한 본보기를 따라 그 일을 성취하고 나면 영광의 시대가 영원히 되돌아올 것이다. 인샬라."(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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