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 - 자유주의의 본질적인 모순에 대한 분석
패트릭 J. 드닌 지음, 이재만 옮김 / 책과함께 / 201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서론 자유주의의 종말


"자유주의는 실패해왔다. 어딘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충실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는 성공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자유주의가 '더 완전'해질수록 자유주의의 내적 논리가 더 분명해지고, 자기모순이 더 드러날수록 자유주의 주장의 변질인 동시에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실현인 병폐들이 생겨났다. 공정성을 증진하고, 문화와 신념의 다원성을 옹호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자유를 확대하겠다던 정치철학이 실제로는 엄청난 불평등을 낳고, 균일성과 균질성을 강요하고, 물질적·정신적 퇴폐를 조장하고,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자유주의가 얼마나 성공했는지 가늠하는 방법은 자유주의가 달성하겠다던 목표와 정반대되는 목표를 얼마만큼 달성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누적되는 재앙을 우리가 자유주의의 이상에 부응하지 못하는 증거로 여길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가 초래한 폐해가 바로 자유주의의 성공의 징후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21-2)


1장 지속 불가능한 자유주의


"그리스 철학은 파이데이아paideia, 즉 덕성 교육을 폭정을 미연에 방지하고 시민의 자유를 보호하는 주된 방안으로 강조했다." "로마와 중세 기독교의 철학 전통은 한편으로 그리스의 전통을 좇아 폭정을 막는 주된 방향으로 덕성 함양을 강조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지도층의 권력을 제한하는 동시에 정치적 여론을 비공식적으로, 때로는 공식적으로 표현할 길을 (다양한 정도로) 열어두기 위해 제도적 형태들을 개발하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가 자유주의와 연관 짓는 통치의 제도적 형태들 중 상당수, 이를테면 입헌주의, 권력분립, 정교분리, 임의적 통치를 막는 권리와 보호책, 연방주의, 법치, 제한된 정부 등은 적어도 처음에는 근대 이전에 수백 년에 걸쳐 구상되고 개발된 것이다. 개인의 권리를 보호해야 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할 수 없다는 신념은, 비록 언제나 한결같이 인정되고 실천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중세 유럽의 철학적 성취였다."(46-7)


"그렇지만 자유주의의 성취는 대부분의 경우 본래 공유하던 어휘와 개념을 재규정하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인간학적 가정에 입각해 기존 제도를 식민화하는 방법으로 달성한 것이다." "오래전부터 자유는 정치체 안에서나 개인의 영혼 안에서나 폭정을 미연에 방지하는 자치의 조건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따라서 자유에는 개인 차원에서 욕구를 스스로 제한하는 규율과 훈련이 필요하고, 이에 상응해 정치체 차원에서 자치의 기술을 증진시키는 덕목들을 가르치는 사회적·정치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여겨졌다." "근대의 현저한 특징은 이 오래된 정치관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자유주의의 토대를 놓은 사상가들의 주요 목표는 국내 평화를 위해 비합리적이라고 결론 내린 종교와 사회의 규범을 해체하는 것이었다. 이로써 안정과 번영을 증진하고 궁극적으로 개인의 양심과 행동의 자유를 증진할 것으로 그들은 내다보았다."(47-8)


# 근대 자유주의적 사고와 실천 방안

1. 마키아벨리 : 정치의 토대를 (공동선과 정치적 화합 같은) '높은 것'에 대한 염원이 아닌 (계급별 이해관계에 기반한 대립 같은) '낮은 것'의 신뢰성에 두고자 한다.

2. 홉스 : 개인주의적인 합리성이 오래된 사회 규범과 관습을 대체할 수 있다고 보았고, 합리성에서 이탈하는 경우는 국가의 법적 금지와 제제로 바로잡을 수 있다.

3. 베이컨 : 자연과학으로 대표되는 유용한 실용 학문을 장려, 확대한다면, 자연의 지배력과 한계에 인간이 종속되어 있는 상태를 극복하고 삶의 조건을 개선할수 있다.


"첫 번째 혁명이자 자유주의의 가장 기본적이고 뚜렷한 측면은 주의주의主意主義 이념─개인의 규제받지 않는 자율적 선택─을 정치의 토대로 삼는다는 것이다."(56) "주의주의에 따르면, 자유주의는 '권리'를 옹호하지 그 어떤 의미에서도 특정한 '좋음'을 옹호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는 토대에 대해 중립적이지 않다. 경제학 강의가 인간을 그저 효용을 극대화하는 개별 행위자로 기술할 뿐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실은 학생들에게 영향을 끼쳐 더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유주의는 사람들에게 헌신을 피하고 유연한 관계와 유대를 받아들이라고 가르친다. 자유주의에 따르면 정치적·경제적 관계만 대체 가능하고 끊임없이 재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장소와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국가와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 종교와의 관계를 막론하고 모든 관계가 그러하다. 자유주의는 느슨한 연계를 조장한다."(60)


"근대 이전 정치사상,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에서 영향을 받은 정치사상은 인간을 포괄적인 자연계 질서의 일부로 이해했다." "그러나 두 번째 혁명이자 자유주의를 구성하는 두 번째 인간학적 가정은 이런 인간의 자기제한이라는 요건을 거부했다. 자유주의는 먼저 인간을 구속하는 자연계 질서 관념을 대체했으며, 그런 다음 인간 본성 관념 자체를 대체했다. 자유주의는 자연과학과 인간과학, 그리고 인류와 자연계의 관계를 변형하기 시작했다. 이 혁명의 첫 번째 물결─르네상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근대 초 사상가들이 처음 일으켰다─은 인간이 자연과학과 변형된 경제체제를 이용해 자연을 지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두 번째 물결─대체로 여러 역사주의 학파들이 특히 19세기에 일으켰다─은 고정된 인간 본성이라는 관념을 인간의 '가소성'과 도덕적 진보 역량에 대한 믿음으로 대체했다."(61-2)


"아이러니하게도 자율성의 영역을 더욱 완전하게 보호하려면 국가의 역할을 더 확대할 수밖에 없다. 자율성의 영역에서 자유를 누리려면 가족부터 교회까지, 학교부터 마을과 공동체까지, 비공식적이고 익숙한 기대와 규범으로 행동을 통제하는 모든 형태의 결사와 관계로부터 해방될 필요가 있다. 이런 통제는 대체로 정치적인 통제가 아닌 문화적 통제였다─법은 가족과 교회, 공동체를 통해 배우는 비공식적인 행동 기대치인 문화 규범만큼 포괄적이지 않았고, 대체로 문화 규범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개인들이 이런 결사들로부터 해방됨에 따라 실정법을 통해 그들의 행동을 규제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자유주의는 결국 두 가지 존재론적 요소, 즉 해방된 개인과 통제하는 국가에 이른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이 두 실체를 완벽하게 묘사했다. 국가는 오로지 자율적인 개인들로만 구성되고, 이 개인들은 국가에 의해 '억제'된다."(65)


2장 개인주의와 국가주의 통합하기


"홉스와 로크 모두 우리가 사회계약을 맺는 까닭은 단지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를 더 안전하게 행사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또한 두 사람 모두(특히 로크) 정치체 이전 상태에서는 다른 개인들의 무법 경쟁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다루기 어렵고 적대적인 본성 역시 자유를 제한한다고 본다. 로크 철학의 주된 목표는 국가의 비호를 통해 우리의 자유─욕구를 충족하는 능력으로 정의된 자유─의 전망을 확대하는 것이다. 법은 자치를 위한 규율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를 확대하기 위한 수단이다." "자유주의 이론에 따르면, 개인들이 사회계약을 통해 국가를 '창출'함과 동시에 실질적 의미에서 자유주의 국가가 자유(환경에 대한 지배력을 확대하는 인간의 능력으로 점점 더 정의된 자유)를 확대할 조건을 마련함으로써 개인들을 '창출'하는 것이다. 현대의 숱한 정치 보도가 시사하는 것처럼 개인과 국가가 본질적으로 충돌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자유주의는 양자 사이에 아주 깊은 연계를 확립한다."(79-80)


"듀이는 '공공 사회주의'를 요청했고, 크롤리는 '노골적인 사회주의'를 지지한다고 썼다. 그러나 이들이 개인의 불가침성과 존엄성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린다면 잘못일 것이다. 두 사람 저술의 일관된 주제는 '구舊자유주의'의 갑갑하고 제한적인 개인주의를 제거해야만 더 진실하고 더 나은 형태의 '개성'이 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비자유의 족쇄들─특히 경제적 퇴보와 불평등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나야만 새롭고 더 나은 개성이 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절정에 이르면 '여럿'과 '하나'가, 우리의 사회적 본성과 우리의 개성이 조화를 이룰 것이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우리는 구자유주의가 말끔히 제거된 뒤에야 '개성'과 '공동사회'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완전하게 알 수 있을 테지만, 진보적 자유주의 전통의 이런 핵심 주장에 따르면 바로 고전적 자유주의를 극복해야만 진정한 자유주의가 출현할 수 있다."(88)


"서로 경쟁하면서도 자유주의 프로젝트의 앙편 모두는 개인이 선호하는 생활방식을 영위할 수 있는 해방의 영역을 넓힌다는 목표를 일관되게 추구해왔고, 자율적 개인이 출현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환경으로서 국가의 팽창을 공히 지지하기에 이르렀다. '보수적' 자유주의자들은 국가 팽창에 불굴의 적대감을 보이면서도, 공동체의 삶에서 시장의 역할을 제한할 수도 있는 지역적인 통치 형태나 전통적인 관습을 극복하기 위해 국내 시장과 국제 시장을 보호하는 국가의 능력에 줄곧 의지한다. 그리고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은 팽창하는 국가가 개인 자유의 궁극적인 보호자라고 열변을 토하면서도, 특히 성적 관행과 무한히 유동하는 성 정체성, 가족의 정의, 자신의 삶을 끝내는 개인의 선택 같은 문제를 개인 '구매자와 판매자'의 공개 시장에 맡기는 방식을 선호하는 까닭에 '품행과 도덕'에 관한 한 국가의 강요를 제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91)


"1953년 저작 《공동체 추구》에서 로버트 니스벳은 전통적인 인간 공동체와 제도를 해체한 결과,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공동체 추구'를 더 이상 충족하지 못하는 상황이 도래했다고 주장했다. 국가주의는 원자화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 폭력적으로 반발하는 가운데 등장했다. 정치적·사회적 동물로 태어나는 사람들은 제대로 된 인간으로서 기능하기 위해 일군의 두꺼운 집단 연대를 필요로 한다. 가족(확대가족뿐 아니라 핵가족까지), 장소, 공동체, 지역, 종교, 문화와 이어진 가장 깊은 유대를 빼앗겨 뿌리가 없어진 사람들, 이런 결속의 형태들이 인간의 자율성을 제한한다고 마음 깊이 믿게 된 사람들은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단 하나 남은 정당한 조직, 즉 국가를 통해 소속감을 느끼고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려 한다. 니스벳이 보기에 파시즘과 공산주의의 발흥은 자유주의가 국가보다 작은 결사와 공동체를 공격하는 데 따른 예측 가능한 결과였다."(93)


"토크빌은 《아메리카의 민주주의》에서 이렇게 썼다. 〈평등의 시대에는 어느 누구도 타인을 도울 의무가 없고 동료로부터 상당한 지원을 받을 아무런 권리도 없으므로, 누구나 독립적인 동시에 취약하다. 따로 떼어서 생각해서도 안 되고 섞어서 생각해서도 안 되는 이 두 가지 상태는 민주정의 시민들에게 극히 상반되는 두 가지 본능을 부여한다. 시민은 독립적인 까닭에 서로 평등한 사람들 사이에서 완전한 자신감과 자부심을 갖지만, 취약한 까닭에 때때로 외부의 지원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시민은 어느 동료에게도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데, 모두가 무기력하고 냉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서 그는 전반적으로 몸을 낮추는 가운데 홀로 우뚝 서 있는 거대한 실체[후견 국가]로 자연히 눈을 돌리기 마련이다. 그의 욕구는, 특히 갈망은 계속해서 그 실체를 생각나게 하며, 결국 그는 그 실체를 자신의 개인적인 취약함을 보강하는 유일하고도 긴요한 지지물로 여기게 된다.〉"(95)


3장 반문화로서의 자유주의


"자유주의는 통치체제 또는 법적·정치적 질서인 것 이상으로 인간의 시간 인식을 재규정하려는 노력이다. 다시 말해 시간 경험을, 특히 과거, 현재, 미래의 관계를 바꾸려는 노력이다. 사회계약론은 개인을 인간관계와 장소에서만 분리해냈던 것이 아니다. 시간에서도 분리해냈다. 사회계약론이 묘사하는 것은 역사가 없는 영원한 조건, 어느 시대에나 적용햐려는 의도가 담긴 사고실험이다. 이렇게 기발한 착상을 하는 뻔한 이유의 이면에는 인간이란 본래 영원한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라는 생각이 숨어 있다. 이 착상은 우리가 참고하기 위해 되돌아봐야 하는 어떤 역사적 '사회계약'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언제나 본래 자율적인 선택을 하는 행위자, 계속 계약을 맺으면서 우리 자신에게 이로운 것을 인식하는 행위자라는 부단한 믿음에 호소한다." "자유주의는 이 조건을 특히 인간의 시간 경험을 담는 그릇인 문화를 해체하는 방법으로 만들어낸다."(111-2)


"토크빌은 '조각난 시간'이 개인주의를 낳는 방식을 인식했고, 자유민주주의의 근본적인 논리에 따라 이런 개인주의가 다시 심대한 사회적·정치적·경제적 결과를 불러올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가 특히 우려한 점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행위를 시간 연속체의 일부로 보지 못하고, 따라서 자신의 행위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인간 공동체의 일부로서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려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귀족 시대의 본질적 특징은 누구나 스스로를 세대 간 질서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민주주의의 특징은 개인을 해방한다는 명목으로 그런 사슬을 '부순다'는 것이다. 조각난 시간 경험은 세대 간 질서와 빚으로부터 개인을 해방하는 데에는 이로울지 몰라도 정치적 영향 면에서는 (현재의 행동이 미래 세대에게 끼칠 영향을 도외시하는 식으로) 해로울 것이었다."(114)


"자유주의는 무無장소성을 중시한다. 자유주의의 '자연상태'는 추상적인 개인들이 똑같이 추상적인 장소에 있다는 무장소 견해를 상정한다. 자유주의는 사람들이 그 누구에게서도 생겨나지 않는다는 인간학적 가정(홉스의 표현대로 〈땅에서 버섯처럼 생겨나 서로에 대한 그 어떤 의무도 없이 자란〉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가 그 어디에서도 생겨나지 않는다는 가정에도 의존한다. 누군가 태어나고 자라는 장소는 그의 부모나 종교, 관습만큼이나 우연히 정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무엇보다 자유롭게 선택하는 존재로 여겨야 한다. 모든 관계와 제도, 믿음과 마찬가지로 장소 역시 선택하는 존재로 말이다." "토머스 제퍼슨이 미국 독립선언문을 작성하기에 앞서 자기 견해를 로크식으로 조정한 글에서 언명한 대로, 자유주의적 인간을 규정하는 가장 근본적인 권리는 자신의 출생지를 떠날 수 있는 권리다. 우리의 기본 조건은 집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117-8)


"문화 해체는 뿌리 뽑힌 개인의 해방, 구석구석 스며들고 에워싸는 시장, 국가의 권한 확대, 셋 모두의 전제조건이다. 사람들은 도움을 청하기 위해 당국에 개인 해방이라는 명목으로 문화 규범과 관행을 느슨하게 풀어달라고 호소하고, 당국은 다양한 압력을 가해 오래된 비공식 규범의 본질적인 특징을 축소하거나 해체한다. 규범이 사라진 상황에서 개인들은 해방된 자유를 추구하면서 법을 위반하거나 명백한 해를 가하지 않는 선에서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욕구를 채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문화적 관행과 기대를 통해 발전하는 행위의 본보기가 없을 경우, 해방된 개인들은 필연적으로 분쟁을 벌이게 된다. 오늘날 그런 분쟁을 조정할 수 있는 유일한 권위는 국가다. 이런 이유로 국가는 한때 보통 문화 규범으로 해결했던 지역의 사안을 다루기 위해 법적·정치적 활동을 확대하고 있다.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는 문화 해체를 요구한다. 그리고 문화가 사라질수록 리바이어던은 커지고, 책임감 있는 자유는 작아진다."(128-9)


"자유주의 치하에서 '문화'는 진본에 기생하며 실제 문화를 대체하는 자유주의적 모조품을 가리키는 단어가 된다." "'문화'는 복수가 아닌 단수로 불리곤 하지만, 실제 문화는 다수이고 지역적이며 특수하다. 우리는 영리기업이 대량소비를 염두에 두고서 시장조사를 거쳐 표준화한 산물인 '대중문화' 같은 현상들에 대해 말하곤 한다. 문화는 지역적·역사적 경험과 기억의 축적인 반면, 자유주의 '문화'는 지역적 경험이 뿌리 뽑히고 기억이 사라지고 모든 장소가 다른 모든 장소가 될 때 남는 공백이다. 다수의 실제 문화들은 '다문화주의'에 대한 찬양으로 대체된다." "모든 문화를 똑같이 찬양하는 것은 사실상 어떤 문화도 찬양하지 않는 것이다. '다원주의'나 '다양성', 또는 소매업 세계의 '선택'을 운운하는 주장이 늘수록 실제 문화들은 더 확실하게 파괴된다. 자유주의적 다원주의와 다양성은 하나같이 차이를 지지하는 균질한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널리 퍼진 무관심주의를 요구하고 보장한다."(130-1)


4장 기술과 자유 상실


"오늘날의 기술사회는 새로운 종류의 정치기술을 통해 생겨난다. 이 기술은 우리를 무엇보다 각자의 야심과 욕망을 이루어내기 위해 분투하는 개인으로 만들고자 고안된 것이다. 즉, 고대의 덕성 찬양과 공동선을 향한 열망을 개인의 자기이익과 고삐 풀린 야심, 공공복리보다 사적 이익 추구를 우선하는 태도,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모든 관계를 재고하는 후천적 능력 등으로 대체한다. 새로 발명된 정치기술─'새로운 정치학'─은 사실상 과학과 기술의 목표와 목적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좌우한다. 기술은 정치적·사회적 규범 및 믿음과 무관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규범이 기술 개발과 응용을 결정짓는다. 그럼에도 자유주의가 도입하는 일군의 규범은 기술이 그 어떤 규범이나 의도와 무관하게 발전한다는 믿음, 외려 기술이 우리의 규범과 정치체, 심지어 인간성까지 형성하고 우리의 통제에서 필연적으로 벗어나기 마련이라는 믿음으로 우리를 이끈다."(147-8)


"일찍이 1978년에 대니얼 부어스틴은 《기술 공화국》에서 〈기술은 그 자체로 추진력을 만들어내고 비가역적〉이며 〈우리는 갈수록 치료 감호의 세계에서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라고 썼다. 이 말은 곧 우리가 더 이상 기술들을 선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홉스와 로크가 상상한 자연상태에 있는 존재로 우리를 바꾸어가는 기술들 쪽으로 불가피하게 이끌린다는 의미다. 그리하여 우리는 자율적이고 자유롭되 우리에게 독립감을 선사하는 바로 그 기술들에 종속되리라는 것이다. 기술들은 우리의 선택을 받기보다는 우리가 더는 통제하지 못하는 역학으로부터 생겨날 것이고, 우리가 그저 어렴풋하게만 알고 있는 체제를 더욱 확대할 것이다. 텔레비전 채널들은 기술적 파국을 이야기하는 드라마들로 점점 채워지고 있으며, 그 중 다수는 우리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할 때조차 저 멀리 막후에서 우리를 조종하는 듯한 그림자 같은 미지의 권력을 가정한다."(155)


5장 자유학예에 반대하는 자유주의


"자유학예가 반영하는 전근대의 자유관은 예컨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 등의 가르침에서, 그리고 성서뿐 아니라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 단테, 모어, 밀턴의 저술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나는 기독교 전통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로 간의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모두 자유란 우리의 선천적 상태가 아니라 습관 들이기와 훈련 및 교육을 통해, 특히 자제력 단련을 통해 획득하는 상태라는 데 동의한다. 자유는 오랜 학습 과정의 결과다. 자유는 이성과 정신의 고귀한 능력을 사용해 스스로를 다스리는, 덕성 함양을 통해 학습하는 역량이다. 이런 전근대적 자유관은 인간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는 상태를 노예 상태로, 가장 저열한 욕구에 이끌려 더 나은 본성을 거스르는 상태로 규정한다. 자유학예의 핵심 목표는 자유민과 자유시민을 이런 자유관에 부합되게 양성하는 것이었다. 자유학예는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었다."(162)


"반면 자유주의는 우리가 자유로워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가정하지 않고 우리가 자유롭게 태어난다고 가정하면서 시작한다. 자유주의 치하에서 자유학예는 인문학에서,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에서 그리고 경제학과 경영학에서 시종일관 추구하는 목표인 개인 해방의 도구가 된다. 인문학 내에서 정체성 주장에 기초하는 해방운동들은 과거를 억압의 저장고로 간주하고, 이런 이유로 교육의 원천으로서 인문학이 가진 정당성을 대체한다. 그러는 동안 자율성 경험을 실질적이고도 효과적으로 증진하는 학문들─STEM, 경제학, 경영학─이 정당한 연구의 유일한 주제로 여겨지기에 이른다. 자유학예를 통해 자유로운 인간을 교육한다는 고대적 견해는 사적 개인의 학예를 강조하는 견해로 대체된다.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공공의 것)에 알맞은 교육이 '레스 이디오티카res idiotica'(그리스어로 '사적'이고 고립된 사람)에 적당한 교육으로 대체되는 것이다."(160-1)


6장 새로운 귀족정


"사회적 상향 이동과 하향 이동이 모두 가능하고 이제 경쟁이 세계화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모든 계급은 만연한 불안감을 공유하고 있다." "전진하는 자유주의가 장담하는 대로라면 개인들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출생과 인종, 젠더, 지역의 우연성으로부터 자유로움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학생들은 거의 누구나 경제적 제로섬 게임에 얽매여 있다. 출세주의와 스펙 쌓기는 오늘날 교육 실패의 결과가 아니다. 그런 현상에는 학생들이 교육 초기부터 깊숙이 받아들이는 가르침, 즉 오늘날의 사회는 경제적 승자와 패자를 양산하며 교육 인증서야말로 개인의 최종 지위를 결정하는 거의 유일한 요인이라는 가르침이 반영되어 있다. 고대인이라면 '노예교육'이라고 불렀을 법한 것에 속박되어 있는 오늘날의 대다수 학생들은 부모와 사회 일반이 만류하는 자유교육을 기피한다. 자유주의는 한때 자유민에게 적합하다고 여겨졌던 교육의 쇠퇴를 불러온다."(189-90)


"존 로크는 자유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문헌인 《통치론》에서 새로운 정치경제 체제가 기존과 다른 지배층을 낳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소유권에 관하여'라는 장에서 로크는 세계를 두 부류의 사람들로 나누었다. 즉 '근면하고 합리적인' 사람들과, '불만 많고 다투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로크는 게으르고 현실에 안주하는 통치자 계층, 지위를 물려받고 경쟁이나 도전에 부딪힐 일 없이 다스리는 계층이 다른 무엇보다 불만 많은 성격을 드러낼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집단을 다른 집단으로, 즉 불만 많은 귀족이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탓에 자신들의 뚜렷한 성격을 온전히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근면성과 합리성'에 고무되는 집단으로 바꾸자고 제안한다." "이 대목에서 로크는 통치와 무관한 평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근면하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통치하는 사회는 생산성과 자산 가치를 높여 결국 모두의 부를 늘려줄 것이라고 주장한다."(192-4)


"자유주의 지배층liberolocracy은 안정된 사회제도, 얄궂게도 오늘날 밀의 사상을 따르는 개인들을 위한 도약대 역할을 하는 제도의 이점 덕택에 자신들의 지위가 유지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과거 귀족 가문의 지위는 토지 및 영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고, 그래서 세대 간 연속성과 장자 상속제를 중시했다. 이에 반해 자유주의 지배층의 가족은 느슨한 세대 간 연대, 휴대 가능한 자격증명서, 대체 가능한 부의 상속, 그리고 계층 이동의 전망에 의존한다. 한편 자유주의 지배층은 로크라면 '불만 많고 다투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불렀을 법한 이들 사이에서 가족과 그에 따른 사회 규범이 현저히 약화되는 세태에 대해 주도면밀하게 침묵을 지킨다. 그 이유는 자유주의의 산물인 해방된 개인들이 이제 하층민으로 떨어진 '불만 많고 다투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전통적으로 불우한 가족까지 지원했던 사회 형태와 제도의 해체에 따르는 대가를 떠안으라고 명령한다는 데 있다."(210-1)


"플라톤은 '이상적인 정체'를 철학적 연습 문제로 제시했던 데 반해, 자유주의는 '이상적인 정체'와 비슷하게 구성되는 질서, 즉 인간은 근본적으로 평등하다는 신화를 동원해 불평등의 정당성을 믿게 만드는 질서를 구현하기 위해 '고귀한 거짓말'의 한 버전을 채택했다. 자유주의 질서는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발전하는 체제 내에서 그들의 지위가 높아지고 그에 따라 형편이 계속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부추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더 중요한 점은 자유주의 질서가 자유주의 지배층에게 그들이 새로운 귀족이 아니라 오히려 귀족 질서의 반대파라는 심각한 자기기만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 자기기만을 감추는 주된 수단은 불우한 사람들을 위한 사회적 정의와 관심이라는 겉치장이다. 자유주의 지배층은 어려서부터 흔히 그들을 엘리트로 길러내는 교육기관에서 그런 겉치장을 빈틈없이 주입받는다. 그런데도 바로 그들은 《국가》를 읽다가 '고귀한 거짓말' 논의를 마주하면 대개 속임수라며 혐오감을 보일 것이다."(212-3)


# 고귀한 거짓말 : 이 나라에 있는 여러분은 모두 형제입니다. 그러나 신은 여러분을 만들면서 통치하기에 적합한 사람들에게는 황금을 섞었으니, 그들이 가장 존경받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반면에 보조자들에게는 은을 섞었고, 농민들이나 다른 장인들에게는 쇠와 청동을 섞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모두 동족이기에, 대개 여러분 자신을 닮은 자손을 낳기는 하지만, 때로는 황금의 자손에게서 은의 자손이, 은의 자손에게서 황금의 자손이,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에게서 다른 종류의 자손이 태어나기도 합니다. -《국가》 3권 415a-415b


7장 시민권의 퇴화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는 오늘날 서구의 대다수 사람들이 유일하게 정당한 정치조직 형태로 여기는 정체를 가리킬 때 널리 쓰인다.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에서 '자유주의'는 형용사처럼 명사 '민주주의'와 함께 쓰여 인민들이 통치하는 오래된 정체 형태를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이 표현은 겉보기 의미와는 다른 목적을 가진다. 우선 '자유주의'는 '민주주의'를 변경할 뿐 아니라 유구한 정체를 사실상 정반대되는 정체로, 즉 인민들이 통치를 하지 않고 자유주의적인 사적 개인으로서 물질적·군사적 혜택을 누리며 살아가는 데 만족하는 정체로 재규정하자고 제안한다. 그와 함께 명사 '민주주의'는 한층 강직한 형태의 시민권을 이른바 대중의 동의로 대신하는 자유주의 정체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자유주의는 공적인 것보다 사적인 것을, 시민 정신보다 자기이익을, 공동선보다 개인들의 의견 취합을 끊임없이 강조함으로써 시민권의 퇴화를 불러온다."(217)


"(대중의 분열과 파편화를 부추기고 정예 엘리트들이 정부를 운영하는 구조를 제도화한) 자유주의의 진짜 비범한 성과는 미묘하되 꾸준하게 영향을 끼치고 교육하는 방법으로 시민들로 하여금 자수성가한 개인이라는 이상─표현적 개인주의─과 '민주주의'를 동일시하게 만든 것, 그리고 정부가 강력하고 멀리 있으며 실은 표현적 개인주의의 기회와 경험을 확대함으로써 정당성을 얻는다는 사실을 감추는 정치적 민주주의의 광휘를 받아들이게 만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가 주로 권리, 권력, 부의 확대라는 형태로 '자유의 제국'을 계속 넓히는 한, 능동적인 민주적 자치의 부재는 받아들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기까지 한 목표가 된다. 결국 자유주의는 정체로서 규율 잡힌 자치를 함양해야 하는 민주정의 난제를 포기한 채 정부를 유익하되 별개인 실체, 재화를 무한히 공급하고 사적 정체성을 제약 없이 확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실체로 여기기에 이른다."(218)


"평범한 시민들의 '민주적 능력'에 대한 우려는 민주주의에 대한 명시적인 비판을 낳았을 뿐 아니라 민주적 외피를 주장하는 이들마저 민주적 통치를 제한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혁신주의자들은 관료제의 성장─정치의 전문화─과 행정의 '과학'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또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타당한 공공정책을 결정하고 실행하기에 가장 적절하고 객관적인 방법은 유권자들의 일시적인 변덕이 아닌 사회과학(특히 정치학을 포함해)이라며 사회과학을 앞장서 홍보했다. 20세기 초에 우드로 윌슨 같은 사회과학계의 주요 인물들은 정치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추진함으로써 가치 편향적인 정책을 사회과학 방법론으로 대체할 토대를 마련하고자 했다." "여론의 역할은 정책을 만드는 책임자들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리하여 민주주의는 행정 전문가들이 능숙한 솜씨로 알맞은 정책을 수립하면서 검토하고 참조하는 선호의 표현, 개인 의견의 총합 정도로 국한되었다."(222-4)


"시민적 문해력civil literacy, 투표, 공공정신이 계속 낮게 나타나는 문제는 자유주의로 해결할 수 있는 부수적인 병폐가 아니다. 그것은 자유주의의 전례 없는 성공의 결과다." "매디슨은 특히 민주정─시민들의 참여도가 높은 소규모 직접 민주정─의 위험을 두 가지 원천에 힘입어 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는 새로운 정치학의 '대의 원리'이며, 둘째는 '관할 범위 확대', 즉 시민들의 연합('파벌') 가능성을 최소로 줄이고, 이권의 수를 늘리고, 시민들 간의 정치적 신뢰와 활동을 억제할 만한 대규모 정치체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매디슨은 궁극적 주권이 선거라는 연계를 통해 계속 국민에게 있기는 하지만, 대표들이 국민의 의지를 지나치게 따라서는 안 된다고 확신했다. 대의제의 바람직한 결과는 〈자국의 진짜 이익을 지혜로써 가장 잘 분별할 수 있는 선출된 시민들이라는 여과재를 통과하게 하는 방식으로 대중의 견해를 정제하고 확대하는 것이다〉라고 그는 주장했다."(225-7)


"오늘날 민주주의─특히 우리가 민주주의라 부르는 쇠약한 구경꾼 정치─를 비판하는 자유주의자들은 실은 자유주의의 소산인 퇴화된 시민들의 뒤틀리고 쪼그라든 통속적 행동을 비난한다. 주요 자유주의자들은 그런 퇴화를 대중의 에너지를 더욱 차단할 필요성의 증거로 들면서, 그 대신 자유주의 국가의 선출된 금권 정치인과 관료가 원격 운영을 통해 더욱 보장해줄 사적 영역에서의 욕구 충족을 제안한다. 이렇듯 오늘날 국가 정치에 초점을 맞춘 시민 교육을 확대함으로써 민주적 참여를 북돋자고 외치는 자유주의자들은 그들의 해결책이 바로 그들이 없애려는 병폐의 근원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시민들의 무관심을 바로잡으려면 중앙정부의 권력을 엄격히 제한하고 시민들에게 지역 자치를 참여할 기회를 주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자유주의자들에게 여전히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시민들의 무관심 또는 무지를 핑계로 정치를 자유주의 국가의 조치와 동일시하는 견해를 강화한다."(242-3)


결론 자유주의 이후의 자유


"자유주의 이후 시대로 나아가려면, 자유주의가 초기에 감탄스러운 열망을 바탕으로 호소력을 발휘했으나 대개 그런 열망의 변질에 의존해 성공해왔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자유주의 옹호자들은 여성이 불평등한 조건에서 해방된 것을 자유주의의 성공 사례로 곧잘 거론하고,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은 무조건 여성을 자유주의 이전의 속박 상태로 다시 밀어넣자는 제안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여성해방의 주된 실질적 성과는 여성 다수를 시장자본주의의 노동력으로 투입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꼽는 여성해방의 가장 중요한 증거는 여성이 생물학에서 점차 벗어난다는 것, 그리하여 실체가 없는 다른 신체─미국이라는 '법인'─에 이바지하고 또 실질적인 정치적 자유를 모조리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경제질서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자유주의는 여성이 가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곧 해방이나 마찬가지라고 단정하지만, 실은 여성에게나 남성에게나 인간을 훨씬 더 에워싸는 굴레를 씌운다."(256)


"자유주의는 일군의 고귀한 정치적 이상에 호소하면 부상했으나 결국 새롭고 포괄적인 퇴화를 초래했다. 더 무정하게 말하자면, 자유주의 설계자들은 두루 공유하는 정치적 이상을 의도적으로 전유한 다음 자유, 민주주의, 공화주의의 새로운 정의로부터 이득을 가장 많이 얻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유리하도록 그것을 전복했다. 자유주의의 성공을 발판으로 삼는다는 것은, 자유주의가 초기에 발휘한 호소력의 정당성과 실패의 깊은 이유를 둘 다 인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시민의 자치와 개인의 자치 둘 모두의 형태로 실질적인 자유를 제공한다는 뜻이지, 소비자주의적·성정 방종을 자율성으로 착각하는 오해와 체제 내 시민의 무력함을 결합한 자유의 대용물을 제공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유주의는 서구의 이상에 복이자 재앙이었으며, 어쩌면 그 실패와 거짓 약속, 충족되지 않은 갈망으로 우리를 더 나은 무언가로 이끄는, 불가피한 단계인지도 모른다."(256-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